절제란 무엇인가? 절제는 자유함이다. 절제는 왜 자유함인가? 절제 후에 오는 자유함. 이것은 기쁨이 동반되는 통쾌함이다. 인내와 절제의 힘은 나의 약한 힘을 신이 주는 힘으로 바꾸어 쓰는 창의의 힘이다.
절제는 덜 쓰는 힘이다. 덜 쓰는 힘이란, 그곳에 딱 필요한 적합한 에너지를 말한다. 낭비하지 않는 힘이다. 절제와 인내는 적절하게 잘 조화를 이루어 가면서 사용해야 한다.
인내는 더 쓰는 힘이다. 인내의 힘이 축적되면 절제의 힘이 요구될 때가 온다. 인내를 통하여 얻어지는 것이 기쁨이라면, 절제를 통하여 얻어지는 것은 자유함이다.
나의 시골 서당 훈장 어르신이 계셨다. 내가 중1 겨울방학 때였다. 동네 친구 2명과 함께 6km 떨어진 산골마을 서당에서 사자소학 한문 공부할 때였다. 내 친구에게는 “너무 힘쓰지 마라” 적당히 하라고 하셨고 나에게는 “힘써서 해라” 이렇게 말씀하셨다, 누가 더 공부를 잘하는 것 같나?
내 친구는 정량보다 너무 많이 하고 잘해서 건강이 탈 날까봐 위로와 걱정의 뜻이 담겨 있다. 그동안 여러분들은 어떤 말을 들어왔는가? 내 친구에게는 절제의 힘이 요구됐고, 나에게는 인내의 힘이 필요 했던거다.
우리보다 먼저 서당에 다녔던 형들이 있었는데, 어느 날 내 친구가 앞서게 되었다. 그러다 보니 내 친구로 인하여 중3, 고1 형들이 야단맞는 일이 많아졌다.
30일 코스로 사자소학을 끝내기로 했는데 내 친구는 밤새 공부해서 2주일 만에 통달한 것이다. 나는 좀 게을러서 진도가 느렸다. 훈장님께서는 나에게는 노는 것 참고 인내의 힘을 요구 하셨다.
절제와 인내는 공존하면서 사용해야 할 힘이다. 수고와 땀이 10% 더 필요할 때는 인내의 힘을 작동하라. 힘이 채워졌을 때는 절제의 힘을 조절하라. 힘이 부족해서 목표에 이르지 못할 때가 있고 힘이 지나쳐서 목표 앞에서 자멸에 이를 때도 있다.
온유한 사람이 되는 것을 쉽게 생각하면 안된다. 농경 사회에서는 직업과 생활이 간편하고 단순해서 실수나 실패가 빈번하지 않았다. 그러나 요즘처럼 복잡한 사회구조와 모든 것이 열려있는 시대에는 악마가 깔아놓은 흙탕물로 들어가기가 쉽다.
내 경험으로 살펴볼 때,
2-30대는 인내가 좀 더 필요할 때이고,
40대 이상은 절제가 좀 더 요구되는 시점이다.
4-50대 이후는 어떤 목표치를 이루었거나 이루어가는 시기라고 보기 때문이다. 또한 고집과 아집으로 절제의 에너지를 놓치는 경우가 이 시기다. 다윗왕도 밧새바의 여인을 만났던 때가 40대였다. 그렇게 인내의 길을 달려왔던 다윗왕도 자신의 힘이 넘칠 때 절제하지 못한 거다.
요즘에 기관장이나 공동체의 리더격들이 절제력을 상실하여 명예를 다 잃어버린 사건들을 접하곤 한다. 목사님들도 절제력 상실 부분에 대해서는 예외일수가 없다. 얼마나 긴 시간 고난과 규범을 지켜오면서 달려왔던 길인데 한순간 무너지는 모습에 마음이 시린다. 환경에 관계없이 가장 쉽게 무너지는 것이, 절제 조절 실패다. 특히 마지막 시간 때 필요한 지혜는 절제의 힘이다. 절제 후에 오는 자유함을 누리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