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종필교수] 눈은 관계의 틀(동기부여)

  • 입력 2021.10.20 18:29
  • 수정 2021.12.01 21:53
글자 크기
프린트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좋은 눈은 새로움을 발견하는 눈이다’

◎바보교회 : 바보교회의 오목사님과 5명의 집사님이 기도 중이었습니다. 하나님! 우리 교회에 능력 있는 일꾼을 보내주세요

◎돌파교회 : 목사님과 70대 이상 5명의 장로님과 집사님이 모여 합심 기도중 이었습니다하나님! 우리 교회 교인들 모두가 능력 있는 일꾼이 되게하여 주시옵소서

바보교회 목사님의 바라봄과 돌파교회 목사님의 바라봄의 법칙을 잘 보셔야 합니다. 한 가지 점에서 큰 차이가 있다.

바보교회 목사님은 기존 교인들을 일꾼으로 보지 않고 있다. 스포츠 감독 중에도 맨날 어디 좋은 선수 스카웃 할 수 없나하고 푸념 섞인 나약한 말만을 하는 감독들이 있다.

존재의 힘은 존재의 대상을 인정하느냐, 인정하지 않느냐에서부터 능력의 차이는 시작된다.

지도자의 시선은 잠자고 있는 휴력을 살아있는 활력으로 소생시키는 지휘자의 지휘봉이다영혼의 생기가 넘치면, 육체는 기쁨의 에너지로 발산한다. 바로 목소리에도 힘이 붙는다. 자신감 넘치는 어휘들로 가득차지요. 말투가 달라진다. 좋은 눈에서 밝은 말소리가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소설가 한강은 채식주의자에서 보기 좋게 살이 붙은 건강한 체격 자신감이 가득해 보이는 표정과 걸음걸이를 가진 남자

은혜를 먹으면 눈이 먼저 바뀐다. 다음은 말이 바뀐다. 그 다음은 발걸음이 바뀐다. 하늘을 향한 시선은 우중충한 나를 신선한 나로 이동시킨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신국론에서 두 개의 도성(공동체)을 말한다. ‘지상의 도성과 하늘의 도성“이다. 하나님을 멸시하기까지 하는 자기 사랑이 지상의 도성을 만들었고, 자신을 멸시하기까지 하는 하나님을 향한 사랑이 하늘의 도성을 이룬 것이지

안종필은 목적을 찾아가는 삶에서 이렇게 쓰고 있다눈은 무엇을 어떻게 보느냐를 결정하는 관계의 틀이다. 관계의 틀이란, “보이는 사물을 네모로 보느냐, 동그랗게 보느냐를 발견하는 시선이다." 그 눈으로 말의 모양을 결정합니다. 감사하게 보면 감사가 보이고 불평으로 보면 원망과 불안이 보입니다.

눈은 시선이다. 시선은 세계를 보는 창이다어제와 오늘을 같은 날로 보는 사람이 있고, 어제와 오늘을 전혀 다른 새로운 날로 보는 사람도 있다.

무엇을 어떻게 볼 것인가상대를 어떤 인물로 볼 것 인가는 바라봄을 결정하는 자신의 눈입니다.

돌파교회는 겨울이 지나 3월이 오면서 새로운 교인들로 가득차 앉을 자리마저 부족하여 주일 예배를 4부로 늘렸답니다교회 이름도 돌다리교회에서 돌파교회로 바꾸었고요.

서울.전주.광주에서도 밀어닥쳐 시골길에 주일이면 경찰서에서 교통까지 정리한답니다. 군수님께서 오셔서 교회를 확장 할 수 있는 부지 2000평을 드릴테니 주차장과 숙소도 건축 하십시오” “우리 군에 자랑입니다. 전국적인 명소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목사님! 절대로 서울 큰교회에서 초빙해도 가시면 안됩니다.” 눈물나는 감동입니다.

좋은 눈은 새로움을 발견하는 눈이다

 

 

저작권자 © 본헤럴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관련기사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모바일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