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과 예수님의 첫 번째 선포는 동일하다. ‘회개하라,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느니라’이다. ‘회개하라’에 해당하는 ‘metanoei'te’(메타노에이테)는 하나님께로 돌아서라는 요청이다. 이 말은 근본적으로 ‘방향 전환’(a changing of direction), ‘되돌림’(turning back), ‘마음의 변화’(change of mind)를 의미한다. 즉 잘못된 태도, 말과 행동으로부터 돌아서는 것과 관련이 있다. 정서적 차원에서 느끼는 죄의식가 거리가 멀다. 어떤 환경에서든 하나님께로 돌이키는 것은, 심리학적으로 고려할 때 깊이 생각되고, 자유롭게 결단되며, 자발적으로 결행된 사람 자신의 행위이다. 이 개념을 나타내는 주요한 단어들로 구약에서는 대표적 동사는 ‘슈브’이다. 선지자들은 참된 회심에 해당하는 특별한 단어를 만들어내지 않고 돌아옴을 나타내는 슈브를 대신 사용한다. 이 단어에는 반드시 그러한 것은 아니지만 나쁜 길에 빠진 후에 되돌아온다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왜냐하면 이 단어의 개념은 ‘...로부터 돌아선다’ 것이기 때문이다. 회개는 단순과거형 동사의 일반적인 용법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단회적이며 반복되지 않는 사건이다.
구약성경에서 회개란 악에서부터(렘 18:8) 야훼께로 돌이키는 것으로 묘사되어 있다. 그런데 주체는 누구인가. 악한 사람인가. 아니면 하나님이신가. 성경은 분명히 가르치기를, 보다 더 기본적인 의미에서 회개는 사람 가운데서 이루어지는 하나님의 사역이라고 한다. 신약에서 사람들이 자기들의 구원에 관하여 하나님의 뜻을 따르기로 작정하고 행할 때, 사실은 그들 속에서 일하시는 하나님의 역사로 말미암아 그들이 그렇게 할 수 있게 되는 것으로 가르쳐져 있다.
사람은 그 성품이 악하기 때문에(호 5:4) 이처럼 거룩하신 하나님께로 돌이키기를 거부한다(대하 36:13). 따라서 돌이키는 제 1동자(mover)는 하나님이시다. 물론 죄인은 그 종속적인 역할을 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그것은 어두운 우상숭배, 죄, 사단의 지배로부터 돌이켜 참 하나님과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벧전 2:25)를 예배하며 섬기는 것으로 표현되어 있다.
그럼 돌아가는 대상은 누구인가. 어디인가. 3~5년 전 떠났던 어린 연어가 태평양 건너 알래스카에 이르기까지 2만㎞를 돌아다니다 알을 낳으러 다시 돌아오게 된다. 연어가 그 먼바다까지 나갔다 돌아오는 것은 고향 하천 특유의 냄새와 지구 자기장을 기억하기 때문이다. 지구 자기장으로 자신의 위치를 확인하며 돌아다니고, 고향 하천 근처에 이르면 냄새를 맡아 정확한 위치를 찾는다고 한다. 연어 속에 자기장 지도를 심어 놓으신 분이 누구인가. 누가 연어를 그렇게 만들었는가. 하나님께서 연어에게 회귀할 수 있는 능력을 부여하신 것이다. 하나님께로 돌이켜야 할 주체는 누구인가. 개인이다(왕하 23:25). 민족도 된다(욘 3:10).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이와 같은 주체들을 회심케 함에 있어서 선지들을 그 대리인으로 사용하신다(느 9:26; 슥 1:4). 그리하여 야훼께 돌아오기를 거부하는 자들은 징벌(암 4:6-12)과 포로됨과(호 11:5) 파멸(왕상 9:6-12)과 주임(겔 33:9, 11)을 당하게 된다. 요한은 그리스도가 오시면 그런 자들에게 불세례를 받을 것을 경고했다. 야훼께 돌아오는 자들은 죄 용서함(사 55:7)과 형벌에서 벗어남(욘 3:9, 10)과 풍성한 열매를 맺음(시 51:13; 호 14:4-8)과 생명(겔 33:14, 15)의 축복들을 얻게 된다.
1. 회심은 회개를 품고 있다
신약에서 회개와 관련된 단어들은 그리스도를 믿는 신앙을 통하여 유대인이건 이방인이건 죄인이 하나님의 종말론적 나라에 현재적으로 들어감을 입으며 죄용서의 종말론적 축복을 받게 되는 바 하나님께 결정적으로 돌이키는 것만을 가리킨다.
율법으로 돌아간다는 느헤미야 9:29에서 1회 나오고 나머지는 모두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것이다. 돌이키기 이전에 했던 것은 악행, 이전의 행위, 폭력, 우상 및 죄이다. 이렇게 회심이라는 개념은 삶의 모든 영역을 포함하여 어떠한 의식도 대신할 수 없는 방식으로 의지를 요구하시는 하나님과의 새로운 관계를 포함한다는 사실을 적극 강조한다. 요시오카 노보루의 '사라질 것 같은 세계의 말'이라는 책은 소수언어를 다룬 작품이다. 웨일스어(Welsh) ‘히라이스(Hiraeth)’를 다룬 챕터를 보자. 히라이스는 “더는 돌아갈 수 없는 곳에 가고 싶은 마음”을 의미한다. 저자는 히라이스의 뜻풀이를 들려준 뒤 이런 말을 덧붙인다. “돌아갈 곳이 있는 사람은 행복하다고 누군가가 말했지요. 이제는 닿을 수 없다는 그리움이 애달프기에 그토록 잊기 힘들어지는 걸까요.” 악에 빠진 우리의 힘으로 돌아갈 수 없는데 긍휼에 풍성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돌이키시는 것이 은혜다.
신약의 기자들은 회심에 대하여 역동적으로 생각한다. 감정적인 경험으로서 회개와 다르다. 외형적인 행위로서 생각한다. 회심자가 찬동하여 반응하는 복음과 관련하여 회심을 신학적으로 해석한다. 신학적으로 말하자면, 회심은 세례가 상징하는 그리스도와의 연합에 자신을 맡기는 것을 의미한다.
요한은 백성들에게 임박한 하나님의 나라를 준비시키기 위해 그들에게 회개를 촉구하고 물세례를 받으라고 했다. 회심의 세례는 하나님께서 새로운 시대에 맞도록 우리의 본성을 변화시키기 위하여 일하고 계신다는 것을 의미한다. 회심을 선물로서 그리고 과제로서 주시는 이는 하나님 자신이다. 그러나 회심이 우리에게 주어지도록 하고 회심을 하나님께서 주신 새로운 존재의 토대로서 확증하는 것은 우리 자신이다.
회심은 종종 전도의 결과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죄와 자아로부터 하나님께로 돌이키는 행위다. 그 과정에서 특정 시점에, 하나님께서 은혜로써 신자를 거듭나게 하시고, 그에게 오는 세대의 생명을 주신다.
선지자들이 말하는 돌이킴에는 세 가지 측면이 있다. 첫째, 하나님의 뜻에 대한 순종, 즉 하나님 뜻에 맞는 행위를 통하여 하나님을 무조건적으로 인정하는 것이다. 둘째, 모든 인간적 도움과 모든 거짓 신들을 거부함으로써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이다. 셋째, 불경한 모든 것으로부터 얼굴을 돌리는 것을 의미한다. 이 세 번째 측면을 구체적으로 표현한 것은 예레미야 특히 에스겔이다(렘 26:3; 겔 18:26). 에스겔은 “너는 이스라엘 족속에게 이르기를 주 여호와의 말씀에 너희는 마음을 돌이켜 우상을 떠나고 얼굴을 돌려 모든 가증한 것을 떠나라”고 촉구한다.
2. 하나님의 나라를 향한 돌이킴
신약성경은 회심을 기술함에 있어서 구약성경과 정확히 일치한다. 회심이란 개념은 야훼께로 돌아섬을 뜻한다. 회심은 회개보다 그 뜻을 더 잘 표현한 말이다. 회개란 우선적으로 죄로 인한 슬픔을 뜻한다. 요한과 예수님의 첫 메시지는 같다. ‘회개하라.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느니라.’ 회개하라는 마음의 변화를 시사한다. 히브리어 개념은 전인이 하나님을 향하여 돌아서는 것을 가리킨다. 그럴 때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다. 그런데 참된 회심에는 회개와 믿음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점은 그리스도와 바울이 복음의 도덕적 요구를 요약하여 선포할 때 연결 지어 말씀한 바 있다. 이처럼 참으로 회심하면, 즉 회개하고 믿게 되면 죄를 용서받게 된다. 회개는 하나님을 향한 마음과 생각의 변화를 의미한다. 믿음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신앙과 그리스도에 대한 신뢰를 의미한다. 회심은 이 둘 다를 포함한다.
신약의 교훈에 따르면, 회심과 거듭남의 행위는 대체로 세례로써 상징된다. 세례는 회심에 이르는 과정들뿐 아니라 거듭남의 정확한 시점까지도 표시한다. 그러므로 회심과 거듭남은 하나님의 측면 뿐 아니라 인간의 측면까지도 포함한다. 인간의 측면에는 영적인 새로운 방향으로 선회하는 회개, 즉 마음의 변화와 구원에 이르는 믿음이 있다(막 1:15). 하지만 회심의 과정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이 하신 일에 반응함으로써 출발한다.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는 예수님의 부르심의 기초는 하나님의 나라를 가까이 오게 하는 데 하나님이 주도권(initiative)을 쥐고 계신다는 선포이다. 인간의 삶 전체는 이 기본 진리에 근거하고 있다.
하나님 한 분에게만 속해 있는 권한을 찬탈한 로마 제국의 통치 밑에서 신음하며, 하나님의 도래를 열망했으나, 하나님께서 침묵을 지키신다고 생각하던 백성들에게 갑자기 나타나, ‘회개하라.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웠느니라’고 부르짖는 한 선지자가 나타났다. 그가 요한이다.
회심한 사람은 세례 때 하나님께 받은 신앙을 고백함으로써(엡 2:8; 골 2:12) 사죄(2:38 상)와 그리스도와 연합됨(롬 6:3-5)과 성령의 선물과 새롭게 하심(딛 3:5)과 새 생명을 살 수 있는 은혜(롬 6:4, 22)을 받을 수 있게 된다. 신약에는 많은 회심의 경험들이 기록되어 있다. 어떤 이들은 격렬하고 극적이다. 어떤 것들은 조용하고 평범하다. 하지만 신약의 기자들은 회심의 그러한 심리적 측면에는 아무런 관심도 보이지 않고 있다.
요한이 직접 밝힌 바와 같이, 요한이 베푼 회개의 세례를 그리스도의 공적인 출현을 예비하기 위한 것이었다. 요한이 ‘회개하라,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웠다’고 외치고 회개의 세례를 베푼 것은 예수님의 공적 사역을 위한 길을 닦아 놓았다. 요한의 태도는 예언자적인 전통에 따른 것이다. 그는 하나님께서 이제 역사하셔서 그의 왕적인 권세를 보이실 것이며, 사람들은 그러한 위대한 사건에 대비해서 회개하여야 하며, 회개의 표시로서 세례를 받을 것을 전파하였다. 그는 이것을 그에게 임한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하여 자신의 예언자적 권위로 수행하였다. 회심한 그리스도인은 회심한 자 답게 살라는 분부를 받으며, 세례를 받아 거듭난 사람은 그 지위에 함축된 의미들을 끊임없이 구현해 나갈 필요가 있다. 더욱이 회심은 원래 개인적인 경험인데 반면에, 회심한 사람들은 교회 공동체에 속하며, 협력하여 자기들의 신앙을 견지하고 봉사해 나가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