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승주 목사의 호스피스 이야기 (3)

김승주 목사 / (사)안양호스피스협회회장(현), 한국호스피스협회고문(회장, 이사장 역), 한국호스피스완화의료학회 이사(역), 호스피스완화의료 표준교육 교육자(국립암센터)
김승주 목사 / (사)안양호스피스협회회장(현), 한국호스피스협회고문(회장, 이사장 역), 한국호스피스완화의료학회 이사(역), 호스피스완화의료 표준교육 교육자(국립암센터)

(3) 타협(妥協) 단계

부정이나 분노 등은 하나같이 위기를 타개해 보려는 자구책이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결과적으로 돌아오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면, 이제는 타협을 시도하게 된다.

한 번만 고쳐 주신다면 교회를 다니겠습니다” “재산의 절반을 헌금으로 바치겠으니 살려만 주십시오”. ”지금까지는 내 뜻대로 살아왔지만, 이제부터는 주님 뜻대로 살기 위하여 신학교를 가겠습니다 . 타협은 코너에 몰리면서 거치게 되는 본능적 단계이다. 본능이란 이유를 물을 수 없다는 뜻이다. 그렇게 견고한 믿음(?)을 소유하고 있는 듯이 보이던 이들도 죽음 앞에서는 다 흔들린다고 보는 것이 맞다.

 

(4) 우울(憂鬱) 단계

이것도 저것도 아무런 응답을 받지 못할 때, 우울증에 빠지게 된다. “! 나는 결국 안 되는가 보구나!” “! 하나님도 버리시는구나!”

이때가 위험한 것은 절망 중. 극단적 탈출(자살)을 생각하기가 쉽다는 것이다. 말수가 현저하게 줄어들거나, 이따금씩 자살하면 정말 지옥으로 갈까?” 혼잣말처럼 말하기도 하고, 몰래 수면제를 모아두기도 하고, 투신 장소를 보아 두기도 한다.

이때 특히 자살하면 지옥 간다는 식의 억압적 대화는 절대 삼가야 한다억압을 받으면 그래? 지옥 가는 줄 나도 알아! 내가 지금 얼마나 힘들어하는지 알기나 알아?”면서 반발하기도 한다.

이런 경우 얼마나 힘이 들면 그런 생각을 하겠어요ㅠㅠ”. “하나님도 지금 당신의 마음을 잘 이해하고 계실 거예요~~” “지금까지 그 힘든 인생길. 하나님의 은혜로 견디어 오셨잖아요. 지금도 주님은 어떤 계획을 가지고 계실 거예요. 어떻게 인도하시는가 조금만 더 기다려 보십시다하면서 일단 격앙된 감정을 누그러 뜨려가면서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희망을 놓지 않도록 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희망은 반드시 육체적 치유를 의미하는 것은 아님).

또한 도덕적, 영적인 문제가 없다면, 환우의 원하는 사소한 바를 들어주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가령 담배를 원한다던지... 할 경우 과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들어주는 것도 좋은 일이다.

만일 몸도 안 좋은 데 담배가 건강에 얼마나 나쁜 줄 알아?” 식으로 억압을 한다면, “담배 한 대도 내 맘대로 못 피우는 더러운 세상!. 더 이상은 살아서 무엇하겠는가? “는 욱! 하는 마음에 어떤 일이 일어날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만일 그에게서 무슨 불상사라도 일어난다면 그것은 담배 때문에 일어난 일이 아니라, 아무도 자기를 알아주지 않음에 대한 실망에서 일어 난 일이다

(5) 수용 단계

어떠한 시도에도 별다른 변화(응답)가 없다면 결국은 수용할 수 밖에는 없다. 그런데 수용 태도는 가치관에 따라서 부정적 수용과 긍정적 수용으로 나눌 수가 있다.

*부정적 수용이란, “데려 가시겠다는데 할 수 없지 않은가?” 절대자에게 반항하기도 하고, “만사에 시작이 있으면 마침도 있는 것이고, 탄생이 있었으니 죽는 것도 당연한 거 아닌가?” “누구누구도 결국은 죽지 않았던가는 식의 아쉬움 가득 찬 체념을 하게 된다.

위의 생각들이 맞는 말이기는 해도 바람직한 수용태도는 아니다. 별 대책도 없이 죽음을 맞는다면, 미래가 불확실한데 무슨 잠을 자겠는가. 무슨 밥 맛이 나겠는가? 밤마다 악몽에 시달릴 수밖에는 없다. 얼굴은 어두울 수 밖에 없다.

부정적 수용기에는 근거도 없는 어떤 자극(치유 등)을 받게 되면 잘 안정되어 있던 사람도 또다시 강력한 생명으로의 집착을 보이면서 동요하며 안정을 크게 해치게 된다. 말기에서의 동요는 삶의 질을 현저하게 떨어뜨린다. 특히 심방자들은 이점을 유의해야 한다.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 한다고는 하지만, 인간의 최선이 하나님의 계획까지를 꺾을 수는 없다.(9:27) 그리고 그때의 최선은 심방자 자신을 위한 최선인가? 아니면 환우를 위한 최선인가? 진정한 돌봄자의 최선은 환자로 하여금 죽음을 긍정적으로 수용하고, 평안히 지내도록 돕는 일이 아닐까?

긍정적 수용이란, 죽음의 의미를 알고 긍정적으로 수용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 과제는 종교가 아니고서는 답이 나올 수가 없다. ‘다가오는 죽음의 두려움으로부터 자유케 함은 종교의 가장 본질적인 존재 의미이다. 책임질 수도 없는 말로 평온한 심령을 헤집어 놓는 일은 삼가야 한다,

9년간 130명의 말기환자의 안락사를 도운 자살 조력 의사 잭 케보키언은 종교에서 희망을 얻지 못하는 말기환자가 택할 길은 자살뿐이다라고 하였다. 말기환자 앞에서의 교회 리더들의 책임이 이렇게도 큰 것이다.

주님은 히 2:15에서는 죽기를 무서워하므로 일생에 매여 종노릇 하는 모든 자들을 놓아 주려 하심이니하셨고, 8:32에서는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하셨다.

또 바울은 차라리 몸을 떠나 주와 함께 하기를 원하노라”(고후 5:8)라는 고백을 하였다. 그런데 이 고백은 막연한 개념 상 고백이 되어서는 안 된다. 바울처럼 직접 삼층천에 다녀오는 경험이 있던가. 아니면 적어도 실제 현장에서 다가오는 죽음 앞에서도 평안히 지내다가 주무시듯 부르심을 받는 모습을 반복해서 지켜보면서 ! 저렇게 죽을 수만 있다면 나도 죽을 수도 있겠다하는 각오와 확신이 있을 때만 가능할 것이다. 솔직히 그간 지켜본 수많은 분들의 가시는 모습은 직분이나 나이를 불문하고 대동소이(大同小異) 했다.

정서적 5단계를 정의했던 큐블러 로스여사도 암으로 세상을 떠나셨는데 투병 과정에서 너무 힘들어하는 것을 지켜본 어느 사람이 지금 당신의 모습은 평상시 강의하시던 모습과는 너무나 다르게 보인다라고 하자. “그때는 호랑이가 철창 안에 있었고, 지금은 철창 밖으로 튀어나와서 나에게 덤비고 있지 않은가?”했다는 일화가 있다. 죽음의 긍정적 수용! 말처럼 그리 간단한 것이 아니다.

돌봄(감정적 지지. 일시적 지지) : 

-대체요법(웃음치료미술치료향기요법. 발 맛사지 등). 

-예술활동(대중가요클래식올드팝미술작품 감상 등

-전문가 상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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