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만일 기꺼이 십자가를 진다면, 오히려 십자가가 당신을 져줄 것입니다!"
-토마스 아켐피스-

„이러므로 우리에게 구름 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이 있으니,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버리고,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경주하며,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 보자! 저는 그 앞에 있는 즐거움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히브리서 12:1-2)“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 누구든 지 제 목숨을 구원코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구원하리라! (누가복 음 9:23-24)“


중세기의 수도사 <토마스 아켐피스(Thomas a Kempis, 1380-1471)>는 1413년 <아우구스티누스 수도회> 에서 성직을 받은 후 70 년 간이나 수도원 밖으로 나가지 아니하고, 오직 말씀묵상과 기도생활과 제자 훈련과 신앙서적 필사본을 만드는 일에만 전념했습니다.

<그리스도를 본받아(imitatio christi)>라는 책은 그의 나이 사십 대 때 저술된 것으로 그의 <신앙고백서> 같은 책입니다.

 

 

성경 다음으로 많이 읽혔다는 이 책은 내용이 심오하여 많은 사람에게 큰 감화를 끼쳤는데, 독일의 종교개혁자 <마르틴 루터(Martin Luther, 1483-1546)>도, 노예선의 악랄한 깡패선원이었으나 캄캄한 밤 바다의 거친 풍랑 속에서, 하나님의 용서와 하나님의 구원의 손길을 구하며 밤새 부르짖어 기도하는 회심을 체험한 후, 복음전도자로 헌신하기 위해 항해 중 순전히 독학으로 신학을 공부하여 마침내 당 대의 유명한 설교자가 된 <죤 뉴톤 목사(John Newton, 1725-1807)>도, 그리고 감리교의 창시자인 <요한 웨슬 레(John Wesley, 1703-1791)> 도, 이 책을 통한 영적 감화로 변화를 받아 위대한 복음전도자가 되었습니다.

<토마스 아켐피스>는 한평생 주님만 바라봤고, 주님의 삶만을 본받으려 했습니다.그리고 그가 그토록 본받고 싶어한 <주님의 삶>은 바로 <십자가를 지는 삶>이었습니다. 그는 말하기를 ‚당신이 만일 기꺼이 십자가를 진다면, 오히려 십자가가 당신을 져줄 것입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자기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르는 삶이 어떤 것입니까?

 

1. 그것은 <고난의 쓴 잔>을 각오하는 삶입니다.

 

„그 때에 세베대의 아들의 어미가 그 아들들을 데리고 예수께 와서 절하며 무엇을 구하니, 예수께서 가라 사대, '무엇을 원하느뇨?' 가로되 '나의 이 두 아들을 주의 나라에서 하나는 주의 우편에, 하나는 주의 좌편 에 앉게 명하소서!'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너희 구하는 것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도다! 나의 마시려 는 잔을 너희가 마실 수 있느냐?' 저희가 말하되 '할 수 있나이다!' 가라사대, '너희가 과연 내 잔을 마시려니와, 내 좌우편에 앉는 것은 나의 줄 것이 아니라, 내 아버지께서 누구를 위하여 예비하셨든지 그들이 얻을 것이니라! (마태복음 20:20-23)“

<프러시아>의 <프리드리히 대왕(Friedrich der Große, 재위 1740 ~1786)>은 <그리스도 예수>를 비웃고 조롱하는 <무신론자>였습니다. 그러나 그의 충성스러운 신하 <폰 진란드 장군(General von Sinland) >은 매우 신실한 <크리스챤(Christ)> 이었습니다.

그날도 신하들과 귀족들이 모두 모인 자리에서 대왕의 상스러운 야유가 시작되었습니다. 그는 <그리스도 예수>를 조롱하는 말을 했습니다. 모인 사람들도 그의 말에 동조하는 분위기였습니다. 이 때에 엄숙한 표정을 한 <폰 진란드 장군>이 자리에서 일어나 대왕을 똑바로 쳐다보며 말했습니다.

“대왕폐하! 대왕께서는 내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아십니다. 그래서 나는 전쟁터에서 대왕을 위하여 38번을 싸워서 이긴 것입니다! 나는 이제 나이 많은 늙은이가 되었습니다! 이제 나는 머지 않아 지금 대왕께서 비웃으시는 나의 구주 그리스도를 만나 뵈러 가게 됩니다! 나이 많아 영원을 바라보는 나는 예수 그리스도가 대왕보다 더욱 위대한 분인 것을 압니다! 폐하! 소신은 이제 물러가려 합니다!”

너무도 당돌한 <폰 진란드 장군>의 태도와 말에 장내 분위기는 큰 두려움에 휩싸였습니다. ‚장군을 즉시 처형하라!‘는 추상같은 대왕의 명령이 떨어질 것으로 여겼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현장에 있던 모든 사람들의 예상과는 다르게 대왕의 떨리는 음성이 들려왔습니다.

“폰 진란드 장군! 내가 잘못했소! 나를 용서하시오!”

신실하고 충성된 성도에게는 주님 만나 뵙게 될 날이 기필코 이르게 될 것임을 다짐하면서, 모든 교회 공동체 일원 들은 주님을 향한 믿음을 담대히 지켜 나가야 합니다.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 류관이 예비되어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니,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니라! 디모데후서 4:7-8)“

신실하고 충성된 <복음전도자>였던 <무디(Dwight Moody, 1837-1899)는 ‚세상이 점점 멀어지니 천국문 이 열린 것이 보이는구나!‘ 라고 말하며 기쁨으로 죽음을 맞이했습니다.

 

2. 그것은 <겸손의 삶>입니다.

 

„너희 중에 큰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하리라! 누구든지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누구든 지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 (마태복음 23:12)“

<벤저민 프랭클린(Benjamin Franklin, 1706. 1. 17-1790. 4. 17)>은 미국의 <건국의 아버지(Founding Fathers) > 중 한 명으로 신생 미합중국의 기틀을 닦는데 크게 기여한 탁월한 < 정치인>입니다. 그는 특별한 공적 지위에 오르지 않았지만, 영국의 식민지인 미국이 영국의 지배로부터 독립하기 위해 막강한 영국군을 상대로 싸울 때, <위싱턴 장군>이 이끄는 <미 독립군>이 프랑스 군(軍)과 동맹을 맺게 함으로써 전쟁의 승기를 잡게 하는 등 <미 합중국>의 탄생에 중추적 역할을 했습니다.

그는 당대의 <계몽사상가(啓蒙思想家))> 중 한 명이었을 뿐 아니라, 유럽과학의 영향을 받아 <피뢰침> 과 <다초점 렌즈> 등을 발명한 뛰어난 <과학자>이기도 했습니다. 미국<달러화폐>에 새겨진 인물 중 대통령이 아닌 인물로 화폐에 새겨진 인물이 둘인데 <알렉산더 해밀턴 (10달러)>과, <벤저민 프랭 클린(100달러)이 바로 그들입니다. 그는 <미국 건국의 지도자>로서 대통령직을 제외하고는 자기가 원하는 모든 중요한 직위를 다 가져 봤을 정도로 유능한 인물이었습니다.

하지만 그가 학교를 다닌 기간은 고작해야 2년 남짓이었습니다.

그는 그의 나이 22살 때에 ‚내 인생에서 가장 우선순위에 두어야 할 것이 무엇일까?‘ 라는 자기 성찰 끝에 12 가지 덕목을 뽑아 자신의 <좌우명>으로 삼았습니다.

첫째- 절제: 과음 과식을 하지 않는다. 둘째- 침묵: 자신과 타인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 말을 하지 않는다. 셋째-질서: 물건을 제자리에 놓고 일은 알맞은 시간에 한다. 넷째- 결단: 해야 하는 일은 꼭 완수한다. 다섯째- 절약: 비싼 것은 사지 않는다. 다른 사람과 자신에게 좋은 것이면 산다.

여섯째- 근면: 시간은 헛되이 쓰지 않는다. 일곱째- 성실: 남을 해치는 책략을 사용하지 않는다. 여덟째- 정의: 남의 권리를 침해하거나 남에게 손해를 입히지 않는다.

아홉째- 중용: 극단은 피한다. 열째- 청결: 몸, 옷, 집이 불결한 것은 절대 용납하지 않는다. 열 한번째- 평정: 사소한 일에 화를 내지 않는다. 열두 번째- 순결: 성(性)을 남용하지 않고 건강과 생산을 위해서 사용한다.

<벤저민 프랭클린>은 그가 정한 이 12가지 행동수칙을 적어 목사님에게 보여주었습니다. 그랬더니 이를 읽어본 목사님이 그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다 좋은데 한가지가 빠졌군요! 바로 '겸손'입니다! 이 12가지를 다 이루었다고 해도 '겸손'이 없으면 12가지를 다 잃은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벤저민 프랭클린은 목사님의 말을 듣고 첫 번째 항목을 <겸손>으로 새로 정했으며, '예수 그리스도와 소크라테스를 본받는다!'라고 적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생활 단위를 13주 단위로 구분하여 매주 한 항목씩 마음 속에 새기며, 자신에게 적용해 나갔습니다.

그는 78세 때 회고록을 쓰면서 말했습니다.

"완벽의 경지에는 오르지 못하였으나, 노력하였던 덕택에 좀 더 선량하고 행복한 사람이 될 수 있었습 니다!"

„너희가 나를 선생이라, 또는 주라 하니 너희 말이 옳도다! 내가 그러하다! 내가 주와 또는 선생이 되 어 너희 발을 씻겼으니, 너희도 서로 발을 씻기는 것이 옳으니라! 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 같이 너희도 행하게 하려 하여 본을 보였노라! (요한복음 13:13-15)“

 

3. 그것은 <섬김의 삶>입니다.

 

„예수께서 제자들을 불러다가 가라사대, '이방인의 집권자들이 저희를 임의로 주관하고, 그 대인들이 저 희에게 권세를 부리는 줄을 너희가 알거니와, 너희 중에는 그렇지 아니하니,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너희 종이 되어야 하 리라!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 물로 주려 함이니라!' (마태복음 20:25-28)“

<론펠 공>은 독실한 <그리스도인>이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을 위해서 무엇을 할까 생각하다가 예수님과 제자들이 <최후의 만찬> 때 썼던 <성배(聖杯)> 를 찾아다가 교회에 봉헌해야겠다고 마음먹고 먼 길을 떠났습니다. 그가 막 성문을 나서는데 한 문둥이가 달려 나와 그에게 구걸을 했습니다.

기분이 상한 그는 ‚나는 하나님의 명으로 주님의 금잔을 찾으려고 길을 떠나는 사람이다! 너처럼 더러운 것이 어찌 나를 괴롭히느냐!‘ 며 상대하기도 싫다는 듯이 급히 지나쳤습니다. 그는 <성배>를 찾아 사방팔방으로 헤맸으나 헛수고였습니다. 오랜 기간 동안 <성배>를 찾아 다니느라 가진 재산을 다 허비한 그가 결국 백발 노인이 되어 고향으로 돌아 왔는데, 그가 막 성 안에 들어서자 이전의 그 문둥이가 또 달려와서 그에게 구걸을 했습니다. <성배>를 찾아 다니느라 오랜 기간 타향에서 굶주림과 추위로 고생했던 <론펠 공>인지라, 전과는 달리 또 다시 그 앞에 불쑥 나타나 구걸하는 그 문둥이를 <긍휼>히 여기는 하는 마음이 있었습니다. 그래 그는 그의 전 재산인 빵 한 조각을 그에게 주면서 말했습니다.

"내가 가진 것이라고는 이 빵밖에 없네! 나사렛 예수의 이름으로 이걸 받게!

그리고 표주박으로 물을 떠다 그에게 주면서 말했다.

"은혜로우신 주님의 이름으로 이걸 마시게!"

그러자 순식간에 문둥이가 주님의 모습으로 바뀌면서, '보라! 나다! 그 빵은 찢기 운 내 몸이며, 그 물은 십자가에서 흘린 내 피다! 가난한 이와 함께 하는 식사야말로 참 성찬이다! 네가 찾던 잔은 바로 네 손에 든 그 표주박이다!‘ 라고 하시는 것이었습니다.

이웃에 대한 봉사가 곧 주님에 대한 봉사임을 가르쳐주는 이야기입니다.

„인자가 자기 영광으로 모든 천사와 함께 올 때에 자기 영광의 보좌에 앉으리니, 모든 민족을 그 앞에 모 으고 각각 분별하기를 목자가 양과 염소를 분별하는 것 같이 하여, 양은 그 오른편에, 염소는 왼편에 두리라! 그 때에 임금이 그 오른편에 있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내 아버지께 복 받을 자들이여! 나아와 창세로 부터 너희를 위하여 예비된 나라를 상속하라! 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었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였고,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였고, 벗었을 때에 옷을 입혔고, 병들었을 때에 돌아보았고, 옥에 갇혔을 때에 와서 보았느니라!‘ 이에 의인들이 대답하여 가로되, '주여! 우리가 어느 때에 주의 주리신 것 을 보고 공궤하였으며, 목마르신 것을 보고 마시게 하였나이까? 어느 때에 나그네 되신 것을 보고 영접하였으며, 벗으신 것을 보고 옷 입혔나이까? 어느 때에 병드신 것이나 옥에 갇히신 것을 보고 가서 뵈었 나이까?‘ 하리니, 임금이 대답하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 (마태복음 25:31-40)“

 

4. 그것은 <십자가 지는 삶>입니다.

 

„이러므로 우리에게 구름 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이 있으니,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버리고,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경주하며,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 라보자! 저는 그 앞에 있는 즐거움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히브리서 12:1-2)“

2차 세계대전 후 동유럽 여러 나라들이 소련의 영향하에 공산화되어 갈 때, 동유럽의 어느 나라에 있었 던 일입니다. 공산 혁명군이 쳐들어와 때마침 예배를 드리고 있던 한 교회당을 포위했습니다. 단 한 사람도 빠져나갈 수 없을 만큼 교회당 주변을 여러 겹으로 둘러쌌습니다. 그리고는 장교 한 사람이 차에서 내려 사나운 표정으로 교회당 문을 활짝 열어젖혔습니다. 교회당 안에 있던 사람들 모두가 두려움에 사로잡혀 벌벌 떨었습니다.

"이제 예수를 배척할 사람은 밖으로 나가시오! 그리고 죽어도 예수를 따르겠다는 사람은 예배당에 남아 죽음을 기다리시오!"

예배당 안으로 쩌렁쩌렁 울리는 공산군 장교의 명령은 그야말로 저승사자의 목소리였습니다. 처음 한두 사람이 눈치를 살피며 슬그머니 예배당 문을 빠져나가자, 그 다음 사람들은 저마다 앞을 다투어 우르르 문으로 향했습니다. 잠시 후 예배당 안에는 그 공산군 장교와 순교의 죽음을 각오한 열 댓 명의 신자만 남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그 공산군 장교는 예배당 출입문을 굳게 닫고서 예배당 안에 남아 있는 사람들에게 말했습니다.

"이제 저들은 죽은 목숨이오! 우리의 원래 계획은 예배당에 있는 모든 사람을 죽이는 것이라오! 나도 그리스도인이오! 나는 차마 당신들까지 죽일 수는 없소! 그러니 하나님께서 살려주신 목숨이라 생각 하고 어서 뒷문으로 도망가시오!"

그 시간 예배당 밖으로 나갔던 사람들은 트럭에 실려 어디론가 가고 있었습니다.

„아들을 부인하는 자에게는 또한 아버지가 없으되, 아들을 시인하는 자에게는 아버지도 있느니라! 너희는 처음부터 들은 것을 너희 안에 거하게 하라! 처음부터 들은 것이 너희 안에 거하면, 너희가 아들의 안 과 아버지의 안에 거하리라! 그가 우리에게 약속하신 약속이 이것이니 곧 영원한 생명이니라! (요한 1서 2:23-25)“

<사도 요한>이 기독교인들에 대한 <대 박해의 시기>에 순교의 각오로 믿음을 지킨 <초대교회의 성도> 들에게 보낸 서신입니다.

 

5. 그것은 <복음 전하는 삶>입니다.

 

„오지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 러 나의 증인이 되리라! (사도행전 1:8)“

<성령>으로 거듭난 모든 <성도>에게 <복음전파>는 <의무>요, <책임>이요, <사명>입니다.

„하나님 앞과,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실 그리스도 예수 앞에서 그의 나타나실 것과 그의 나라를 두고 엄히 명하노니,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 범사에 오래 참음과 가르침으로 경책하며, 경계하며 권하라! (디모데후서 4:1-2)

19세기 미국의 세계적 복음 전도자 <무디(Dwight Lyman Moody, 1837.2.5-1899.12.22) >는 수십만 명을 주님께로 인도했습니다. 그는 반드시 하루 한 사람에게 복음을 전한다는 목표를 세워 실행에 옮겼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하루는 아무에게도 전도하지 못했습니다. 그날 밤 잠 자리에 들긴 했으나 책임을 완수하지 못한 죄책감 때문에 도무지 잠이 오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다시 옷을 입고 거리로 나갔습니다.

밤중에 거리에 서서 전도 대상자를 찾던 중 한 술주정꾼 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는 다짜고짜로 그에게 다가가서 ‚예수님을 아시나요?‘라고 물었습니다. 그 술 주정꾼은 '예수'라는 말을 듣자마자 화부터 벌컥 냈습니다. 그날 밤 그 술주정꾼에게 당한 무디는 기다시피 해서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그 후 3개월이 지난 어느 날 누군가가 집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나가서 문을 열어보니 이전의 그 술주정꾼이었습니다. 그 술주정꾼의 말인즉 그날 밤 '예수님을 아느냐?‘는 무디의 말에 크게 화를 내긴 했지만, 그로부터 무디의 그 말이 항상 귓전에서 떠나지 않아, 마침내 예수를 믿기로 작정했다는 것이었습니다. 성령께서 무디가 뿌린 <복음의 씨>가 그 술주정꾼의 마음 밭 한 가운데서 싹이 나게 한 것입니다.

그러기에 시편 기자는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거두리로다!‘고 찬양했습니다.

<한국 초대교회사>에 기록된 분들 가운데 <최봉석 목사>란 매우 특별한 분이 있습니다. 그분은 날마다 장터와 길거리를 다니면서 '예수 천당! 예수 천당! 하고 외치며 전도를 했습니다.

그분은 지칠 줄 모르는 왕성한 전도사역으로 방방곡곡에 많은 교회들을 세우셨는데, 신사참배 거부로 일경에 체포되어 옥고를 치르시다가 그만 돌아가시고 말았습니다. 본시 공부를 많이 못한 분이시라 <평양신학교>에 들어가 공부를 마치고 목사안수를 받기까지는 많은 어려움이 따랐지만, 그럼에도 당시 사람들은 그를 <최권능 목사>라 불렀습니다. 그만큼 그분의 <복음전도>에 능력이 있었던 것입니다.

이 분이 한 번은 버스를 타고 '예수 믿으세요! 예수 믿으세요!‘ 하고 전도를 하는데 마침 그 버스 안에 <평양신학교 교장>인 <채필근 목사>가 타고 있었습니다. 물론 최봉석 목사님도 그분을 알아보았지만 그런데도 짐짓 앞에 다가가 '예수 믿으세요!‘라고 했습니다.

그 말에 채필근 목사는 조금 어이가 없어 하면서 '여보! 최 목사! 나 채 목사요, 채 목사!‘라고 하고는 눈을 크게 뜨는데, 최봉석 목사님은 아랑곳하지 않고 '어! 벙어리 교인이구나!'하고 가더라는 것입니다. 어떻게 예수 믿는 사람이 전도하지 않고 이렇게 멀거니 앉아만 있느냐 는 뜻이었습니다.

<채필근 목사의 신학>은 <조선신학교>를 함께 설립한 <김재준 목사>와 가까운 <자유주의 신학> 계열로 분류됩니다.

그는 일제 강점기 말기에 <신사참배 강요> 문제를 둘러싸고 한국교회의 입장이 양분되었을 때에, 신사 참배는 단지 일본 국민으로서의 의례일뿐이라는 입장을 견지하며 일제에 동조했습니다.

그는 <조선예수교 장로회신학교>가 강제로 폐교된 뒤, 1940년에 <조선총독부>의 인가를 받아 새로 개교한 <조선신학교 교장>으로 임명되었습니다.

1943년에 <장로교단>이 <일본기독교 조선장로교단>으로 흡수되어 창립총회가 열렸을 때는 초대 통리에 올랐습니다. 반대파가 투옥되는 등 극심한 탄압을 받고 있는 상황에서 출범한 이 조직은 <찬송가>를 편찬할 때 찬송가에 일본 <기미가요>를 실었고, 일제를 옹호하는 <시국 강연회>를 개최했으며, <징병제>가 실시되자 <감사 예배>를 올리는 등 일제에 적극 협조했습니다. 또 이 단체는 <애국기 헌납 운동>이라는 이름으로 태평양 전쟁 지원을 위한 <모금 운동>을 벌이기도 했습니다.

세상과 타협하지 않는 <신앙의 길>, 세속에 굴복하지 않는 <복음 전도자의 길>은 <고난의 길>입니다. 그러나 <하늘의 상급>이 약속된 <영광의 길>입니다.

„네가 장차 받을 환난을 두려워 말라! 볼지어다! 마귀가 장차 너희 가운데서 몇 사람을 옥에 던져 시험을 받게 하리니, 너희가 십일 동안 환난을 받으리라!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면류관을 네게 주리라! (요한계시록 2:10)“

<아멘! >

[사진제공 _스위스 산동네 마을풍경_김정효목사(스위스 한인교회 담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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