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인호 박사와 함께 가는 누가복음 산책 (60)

 

임인호 박사 / 서울신학대학, 호서대학교 연합신학대학원, 호서대학교대학원 신약학박사, 서울신대-호서대-중앙신학교 외래교수 역임, 동인교회 담임목사
임인호 박사 / 서울신학대학, 호서대학교 연합신학대학원, 호서대학교대학원 신약학박사, 서울신대-호서대-중앙신학교 외래교수 역임, 동인교회 담임목사

누가복음의 마지막 단원 6부는 예수가 예루살렘에 들어간 이후의 내용을 3장으로 구성해서 말합니다. 1장은 예루살렘에서도 가르치는 예수(19:45-21:38), 2장은 예수의 수난과 죽음(22:1-23:56), 그리고 3장은 예수의 부활과 승천(24:1-53)에 대한 내용이 나옵니다.

 

1. 포괄(inclusio)-시작(19:45-48)과 마무리(21:37-38)

1장은 예수께서 가르친다는 내용을 시작과 마무리로 하여 전체 내용을 전개하여 예수가 예루살렘에서도 가르치고 있음을 말합니다. 예수는 현실문제(1-26), 내세문제(27-41), 종말문제(21:1-36)에 대해서 가르칩니다. 누가복음 전체는 예수를 가르치는 분으로 말합니다. 12살 일화는 예수가 성전에서 선생들 가운데에서 묻고 대답하는 모습을 통해서 예수가 선생의 모습을 지녔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갈릴리 사역을 말할 때에도 누가는 예수가 회당에서 가르쳤다고 말합니다(4:1444). 변화산의 하늘 음성은 예수가 나의 아들이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으라고 선포합니다. 제자들과 사도들은 선생이신 예수의 말을 들어야 하고 예수의 꾸지람을 잘 받아들여야 합니다.

 

1) 성전청결과 가르침

여행의 종착지인 예루살렘에서 예수께서 가장 먼저 하신 것이 가르치는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성전에서 말로만 가르친 것이 아니라, 장사하는 사람들을 내쫓으며 이사야 567절과 예레미야 711절 말씀을 인용하며 가르칩니다. “내 집은 기도하는 집이 되리라, 그런데, 너희는 강도의 소굴을 만들었다누가복음이 쓰여졌던 당시에 이스라엘과 성전이 멸망하여 사라져 버렸다는 점을 생각하면 누가의 이 말에는 일종의 반성적 성찰이 담겨 있다 하겠습니다.

역사적으로 경건한 유대인들은 이스라엘의 멸망과 성전 파괴의 이유에 대해 질문하였습니다. 유대인들이 의인 야고보를 죽였기 때문에 성전과 이스라엘이 멸망한 것이라 생각하였다고 요셉푸스와 유세비우스는 말합니다(유세비우스, 교회사, 223, 요세푸스, 고대사, 20). 그렇다면, 이런 질문이 누가에게도 있었을 것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누가는 성전이 기도의 집이 아니라 강도들의 소굴이 되었다며 성전 청결하며 가르치는 예수 그리고 그를 죽이려는 대제사장들과 서기관 그리고 백성의 지도자들에 대한 모습을 통해서, 하나님의 아들이며 선생이신 예수를 유대인들이 죽였기 때문에 이스라엘이 멸망하고 성전이 파괴된 것이라 말하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2) 강도(lestai/레스타이)

강도는 어떤 사람인가? 요세푸스는 열심당원에게 이 용어를 사용합니다. 하지만 많은 유대인들은 열심당원을 도적이 아니라 애국자라 생각합니다.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두 사람을 마가와 마태는 강도라 말하지만(27:38, 44; 15:27), 누가는 행악자(kakourgoi/카쿠르고이)’라 말합니다. 누가는 왜 강도라는 용어를 사용하지 않는가? 강도의 소굴이 된 성전에서 날마다 가르치는 예수를 죽이려 하는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과 백성의 지도자들은 누구입니까? 예수를 죽이고 싶지만 예수의 말에 많은 백성들이 귀 기울이고 있기 때문에 더 이상 진행시키지 못하는 이들이 강도일 수 있음을 누가는 말합니다.

 

3) 바리새인

예수와 많은 부분 논쟁했던 바리새인은 예수의 수난과 죽음과 관련해서는 더 이상 등장하지 않습니다. 이에 대해 학자들은 잘 설명하지 못합니다. 그것은 누가복음이 바리새인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고 여겼는지에 대한 이해의 부족과 관련이 있습니다.

예수께서 바리새인을 꾸짖고 경고하는 대립하는 여러 장면 때문에 적대적이라 봅니다. 하지만 꾸짖고 경고하는 것은 이 둘의 관계가 적대적임을 보여주기 보다는 예수께서 바리새인을 가르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바리새인은 예수의 적대적 그룹이 아닙니다. 누가복음에는 예수께서 바리새인과 식사하는 장면이 3번 나옵니다. 이것은 예수와 바리새인의 관계가 결코 적대적이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줍니다(7:36; 11:37; 14:1).

 

4)식탁교제

식사는 고대 지중해 사회에서 하나의 사회적 의식입니다. 한 사람이 어느 집단에 속하며, 사회적 관계를 잘 유지하는지 가늠하는 잣대입니다. 식사는 사회적인 관계, 누가 포함되고, 누가 배제되는가를 전하는 사회적 암호입니다. 이것은 유대 사회에서 비슷합니다. 식탁은 교제입니다. 함께 식사를 한다는 것은 삶을 공유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식탁 교제는 하나님 앞에서의 교제를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헬라적 배경에서도 유대적 배경에서도 식탁교제는 함께 한 사람과의 우호적인 관계를 말합니다. 지에슬러(J.A.Ziesler), 샌더스(Jack T.Sanders), 브로울리(R.L.Brawley)는 누가가 바리새파에 대해서 긍정적이라 말합니다.

바리새인들에게도 식사는 특별합니다. 뉴스너(neusner)는 바리새인들은 식탁교제를 자신과 다른 사람을 분리시키는 중요한 것으로 생각했다고 말합니다. 종교적 규정을 제대로 준수하지 못하는 대다수 민중, 곧 암하레츠와 자기를 분리해 생각하며, 자기들을 참 이스라엘로 생각합니다.

예수 제자들이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먹고 마십니다(5:30). 예수도 바리새인들이 죄인으로 여기는 사람과 함께 식사합니다. 그러자 바리새인들이 서기관과 함께 수군거립니다. 그러자 예수는 잃었다 찾은 3개의 비유에서 누가는 바리새인과 세리를 형과 동생에 빗대어 말합니다. 비유의 청중은 원망하는 바리새파와 서기관으로, 이들은 모두 목자, 여인, 아버지에게 속합니다. 잃어버렸든지, 남아있던지, 모두 한 목자, 한 여인, 한 아버지에게 속해 있습니다. 이들은 모두 누가공동체의 일원들입니다. 세리와 죄인들과 같은 사람을 누가의 예수는 불평하는 바리새파의 동생이라고 예수는 비유를 통해서 가르칩니다. 뿐만 아니라, 죄를 사하는 권세가 오직 하나님에게만 있다고 생각한 바리새인과 서기관은 예수를 통해서 인자에게도 죄 사함의 권세가 있다는 것을 배웁니다. 뿐만 아니라 이들은 건강한 사람이 아니라 병든 자에게 의사가 필요하다 말하는 예수를 통해서 예수가 의인(건강한 자)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라 죄인(병든 자)을 부르러 왔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5:31-32). 그리고 이들은 인자가 안식일의 주인이라는 것(6:5), 안식일에 병고치는 것이 잘못이라 생각하지만 착한 일을 해야 한다는 것을 배웁니다(6:6-11; 14:1-6). 정결례에서 중요한 것은 겉이 아니라 속을 씻는 것이라는 것을 배우며(11:37-44), 자기를 높이면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면 높아진다는 것도 배웁니다(18:9-14).

 

2. 현실문제(20:1-26)

이 단락은 3부분 A(1-8). B(9-18), A’(19-26)로 구성됩니다. 두 개의 논쟁사이에 비유가 나옵니다. 이런 구성은 권세논쟁(A)과 세금논쟁(A’)과 비유가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보여줍합니다.

A. 권세논쟁(1-8)

이 부분은 a.질문(1-2), b.반문(3-4), b’대답 (5-7), a’예수의 말(8)이라는 소크라테스식 대화법의 형식으로 되어 있습니다. 대제사장과 서기관들과 장로들이 예수께 한 질문은 무슨 권위로 이런 일을 하며, 이 권위를 준 자가 누구냐?는 것입니다. 이들이 궁금해 하는 이런 일(타우타)’은 예수의 가르치며 복음전하는 것과 연결됩니다. 앞 구절을 보면, 예수의 가르치는 말씀에는 권위(4:32,36)가 있으며, 예수는 권위를 가지고 귀신을 꾸짖어 쫓아냅니다(4:35-36). 예수를 죽이려 하는 자들은 예수 가르침의 권위를 의심하며, 그 출처까지 의심하여 질문합니다. 예수는 이들의 질문에 질문으로 응수합니다(3-4). 예수는 요한의 세례가 하늘로부터 온 것인지 사람으로부터 온 것인지를 묻습니다. 이 질문에 이들은 서로 의논합니다. 만일 하늘로부터라면 어찌하여 그를 믿지 아니하느냐? 말할 것이고, 사람으로부터 온 것이라 말하면 백성들이 요한을 선지자로 여기어 돌로 칠 것이라 여기고, 이들은 요한의 세례가 어디에서부터 온 것인지 알지 못한다고 대답합니다. 이들의 이런 모습은 이들이 예수에게 무엇을 기대하며 질문했는가를 잘 보여줍니다. 이들은 질문으로 예수를 죽일 이유를 찾으려 했던 것입니다. 이제 예수께서 말합니다. 나도 무슨 권위로 이런 일을 하는지 말하지 않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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