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를 따라 걷는 인생길 순례길_유근희목사

"저희에게 이르시되 삼가 모든 탐심을 물리치라 사람의 생명이 그 소유의 넉넉한데 있지 아니하니라 하시고 또 비유로 저희에게 일러 가라사대 한 부자가 그 밭에 소출이 풍성하매"(12:15-16).


●말씀 묵상

"무리 중에 한 사람이 이르되 선생님 내 형을 명하여 유업을 나와 나누게 하소서 하니 이르시되 이 사람아 누가 나를 너희의 재판장이나 물건 나누는 자로 세웠느냐 하시고 저희에게 이르시되 삼가 모든 탐심을 물리치라 사람의 생명이 그 소유의 넉넉한데 있지 아니하니라 하시고 또 비유로 저희에게 일러 가라사대 한 부자가 그 밭에 소출이 풍성하매 심중에 생각하여 가로되 내가 곡식 쌓아 둘 곳이 없으니 어찌할꼬 하고 또 가로되 내가 이렇게 하리라 내 곡간을 헐고 더 크게 짓고 내 모든 곡식과 물건을 거기 쌓아 두리라 또 내가 내 영혼에게 이르되 영혼아 여러 해 쓸 물건을 많이 쌓아 두었으니 평안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자 하리라 하되 하나님은 이르시되 어리석은 자여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예비한 것이 뉘 것이 되겠느냐 하셨으니 자기를 위하여 재물을 쌓아 두고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치 못한 자가 이와 같으니라"(12:13- 21).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사람들은 갖가지 (다른) 이유와 목적을 가지고 있다. 예수께서도 제자들에게 물으셨다.

무리가 나를 누구라 하느냐.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9:18-20, 16:13-16).

교회에 나오는 성도들 가운데 예수 믿으면 축복받는다는 생각이 압도적인 것 같다. 한국 교계에서 (오랫동안)선풍적인 인기몰이를 해온 기복신앙삼박자 축복론이 그 핵심일 것이다.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 됨 같이 네가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31:2)는 성경적 근거를 제시한다. 예수님을 잘 믿으면 만사형통하고 무병장수의 복을 누린다.” 그런 축복을 누리지 못하는 것은 믿음이 좋지 못하기 때문이다라고 역설한다.

영성과 번영을 동일시 한다. 이것이 번영신앙이다. 한국교회에서는 기복 신앙으로 나타났고, 미국에서는 긍정적 사고 또는 성공의 복음으로 나타났다. 구약에서는 욥의 세 친구가 펼친 변론이 그 대표적 요지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번영신앙(신학)은 탐욕을 고취하고 조장하기 마련이다.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돈(자산)을 모으기에 급급하고, ‘성공하면 그것이 곧 신의 축복으로 미장한다. 그러니 크리스천들이 온갖 비리에 연루되어 사회적 지탄을 받게 되는 것이다. 기복 신앙의 위험성을 고찰해 보자.

오늘 성경 본문이 바로 탐욕에 관한 주님의 교훈이다.무리 수만명이 모여들어 예수의 말씀을 듣고 있는데, 한 젊은이가 갑자기 다가와 엉뚱한 요청을 한다.

 

"선생님 내 형을 명하여 유업을 나와 나누게 하소서 하니"(12:13b)

당시 유대 율법으로는 장자가 유산의 두 몫2/3를 받게 된다(21:17). 그러나 유산분배 상의 문제가 생기면 랍비들이 중재하고 조정해 주었다. 그래서 이 청년 역시 예수님을 랍비(선생)로 부르며 그러한 중재 요청을 하게된 것같다.

예수님을 메시아가 아닌 한낱 랍비 또는 명망 있는 스승정도로 이해한 것이다. (아버지의) 유산을 독차지하려는 도 아마 그 무리가운데 있었던 것 같다. 이 없는 자리에서 유산을 동생과 나누어 가지라고 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예나 지금이나, 유산분배 문제로 형제들 간에 불화가 극심한 것은 다를바가 없다. 형제간에 법정투쟁을 하다가 결국 원수 관계로 전락하는 경우를 종종 보게 된다. “돈이 원수야!”가 아니라 돈을 사랑함이 원수를 낳는다라고 말해야 옳을 것이다.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딤전6:10).

그 청년의 속셈을 꿰뚫어 보신 예수께서 답변하신다.

 

"이르시되 이 사람아 누가 나를 너희의 재판장이나 물건 나누는 자로 세웠느냐 하시고"(14)

예수는 사적인 재산분규를 조정하거나 사회적 부정을 해결하려 함이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선포가 자신의 주요 사명임을 시사하신 것이다. 그리고 곧 이어, 그 청년의 요청에 대한 본질을 지적하신다.

 

"저희에게 이르시되 삼가 모든 탐심을 물리치라 사람의 생명이 그 소유의 넉넉한데 있지 아니하니라 하시고"(15)

여기서 탐심이란 물질적 재물욕 만을 뜻하지 않고, “모든 탐심 , 명예욕, 권력욕, 성욕, 식욕 등 온갖 욕망을 뜻한다. 부족함을 채우고, 더 나은 것, 더 많은 것을 갖고저 하는 욕망은 자기보존의 본능이려니 (더 나아가서는 종족 보존의 본능), 이것이 없으면 생명을 유지할 수 없다. 더 큰 것, 더 나은 것, 더 좋은 것을 원하는 욕망 때문에 인류문화가 발전하는 것이다. 다만 지나친 욕망 곧 과욕을 절제해야 한다. 본능적인 욕구일수록 다스리고 절제하지 않으면 본인을 파멸로 몰아가게 된다. 탐욕이 십계명의 열 번째 금령이다.

네 이웃의 집을 탐내지 말찌니라 네 이웃의 아내나 그의 남종이나 그의 여종이나 그의 소나 그의 나귀나 무릇 네 이웃의 소유를 탐내지 말찌니라(20:17).

그러므로, 모든 탐심을 물리치라는 잘못된 번역이다. 원문 휠라소를 영문판들은 대부분 Beware(경계하라. 조심하라)로 번역되어 있다. 공동번역이 더 잘 되었다.

어떤 탐욕에도 빠져들지 않도록 조심하여라.”

모든 탐심을 (완전히)물리칠 수는 없고, 다만 경계하고 절제하고 다스려야 할 일이다. 그러나 탐심을 다스리고 절제한다는 것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그러기에, 평범한 사람들뿐 아니라 비범하다는 사람들 조차도 탐욕의 수렁에 빠져 헤어나오지를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사람의 생명이 그 소유의 넉넉한데 있지 아니하니라는 진리의 말씀을 명심하자. 제아무리 큰 부라도 그것이 행복을 보장하거나 목숨을 연장해 주지 못한다. 탐욕을 쫓아가느라 예수님을 좇아가는 순례길에서 이탈하기 쉽다. 그 진리를 가르치려고 어리석은 부자의 비유를 주셨다.

 

"또 비유로 저희에게 일러 가라사대 한 부자가 그 밭에 소출이 풍성하매 심중에 생각하여 가로되 내가 곡식 쌓아 둘 곳이 없으니 어찌할꼬 하고"(16-17)

한 부자가.”라고 한 것을 보면 이 사람은 이미 부자였다. 어떻게 해서 부자가 되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방금 전에 유산 분배문제로 고심하던 한 청년의 요청으로 시작된 일화(비유)임을 미루어 볼 때, 아마도, 부모의 큰 유산을 물려받아 부자가 된 것 같다. 동생들에게 돌아갈 몫까지 몽땅 가로채 부자가 되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졸지에 갑부가 된 졸부라고나 할까?

그 부자에게 또 대박이 터졌다. 한 해 농사가 엄청난 풍작이었다. 소출이 너무 많아 주체를 못 할 정도요 쌓아 둘 곳이 없어고민할 정도가 되었다. 이거야 말로 행복한 고민이 아닌가! 나중에야 어떻게 되든 나도 한번 그런 대박이 나봤으면 한이 없겠다라는 부러운 생각이 들 정도다. 그런데 대박을 너무 부러워할 것 까지는 없다. 거액의 Jackpot이 터지고, 수 백만 불짜리 복권을 탄 사람들 거의 모두가 5-8년 내에 쪽박차는 신세가 된다는 통계 보고가 있다.

그러나 이 대박 난 부자는 복권에 당첨됐다든지, 잭팟을 터트렸다거나, 다른 어떤 불법이나 부정한 방법으로 대박이 난게 결코 아니다. 정당하고 온건한 방법으로, 제 손으로 땀 흘려 노력하고, 대풍을 만난 행운아였다. 어떻든, 만일 내게 그런 대박이 났다면, 나는 어떻게 했을까 생각해 볼 일이다.

대박이 난 그 부자는 이렇게 했다.

 

"또 가로되 내가 이렇게 하리라 내 곡간을 헐고 더 크게 짓고 내 모든 곡식과 물건을 거기 쌓아 두리라 또 내가 내 영혼에게 이르되 영혼아 여러 해 쓸 물건을 많이 쌓아 두었으니 평안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자 하리라 하되"(18-19)

, 이 얼마나 계획성 있고 미래를 잘 준비하는 현명한 태도인가! 이 부자의 계획과 구상을 들은 우리는 감탄하고 찬사를 보내게 된다. 대풍이 매년 오는 것도 아니니 흉작이 들 것도 염두에 두어야 한다. 대박이 났다고 돈을 마구 뿌리지 않고, 허튼데 허비하지도 않고, 저축하고, 은퇴와 노후 대책까지 세우고 준비하는, 그야말로 우리에게 귀감이요 모범으로 보인다. 대박난 지혜로운 부자가 아닌가?

그런데, 예수님은 그 부자를 어리석은 자You fool!”라 부르신다.

 

어리석은 자여”(20)

여기서 어리석다는 말은 생각 없다는 뜻이다. 하나만 생각하고 둘은 생각 못하는 사람이 어리석은 자이다. 대박난 그 부자는, 우리가 보기로는 생각이 깊고 지혜로운 사람 같은데, 예수님 보시기에는 어리석은 자생각 없는 자이다. 왜 그럴까? 어떤 면에서 그 부자가 생각 없는 어리석은 자인지 살펴보자.

 

첫째, 그 부자는 철저하게 자기중심적이고 자기만을 생각하는 극도의 이기주의 자로서 자기 안에 갇혀사는 사람이다. 짧은 세 구절의 표현 속에 ”,“나의()라는 자기중심적, 일인칭 대명사가 무려 11번이나 나온다. 풍작을 이루어 준 자연환경이나, 농사일 하느라 땀 흘려 수고한 일꾼들에 대한 고마움을 생각 못하는 사람이다. 결국 하나님께 대한 감사는 전무하다.

차고 넘치는 를 가지고 불우한 이웃들에게 베푼다든지, 선한 사업을 돕는다든지, 전도·선교사역에 헌납하는 것은 관심조차 없다. , 이웃, 그리고 하나님과의 관계가 무너진 존재이다. 사람이 사람답게 살려면 이웃과의 관계, 하나님과의 관계가 올발라야 하는데, 이 부자는 그 점에서 생각 없는 어리석은 자이다.

가나안 복지에 들어가 풍요로움을 누리게 될 이스라엘 백성에게 내린 모세의 경고를 보라.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로 아름다운 땅에 이르게 하시나니네가 먹어서 배불리고 아름다운 집을 짓고 거하게 되며네 소유가 더 풍부하게 될 때에, 두렵건데 네 마음이 교만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잊어버릴까 하노라또 두렵건데 네가 마음에 이르기를 내 능과 내 손의 힘으로 내가 이 재물을 얻었다 할까 하노라. 네 하나님 여호와를 기억하라 그가 네게 재물 얻을 능을 주셨음이라(8:7-18).

 

둘째, 이 대박난 부자는 유한한 것과 무한한 것을 구별하지 못했다. 유한한 재물에 무한성을 부여한다. 자기의 부가 생명을 유지하고 연장해 줄 것으로 믿었다. 또한 당장, “오늘 밤에라도 죽을 수 있는 유한한 존재라는 사실을 생각 못하는 어리석은 자이다.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자는 쾌락주의에 도취한 식도락에 불과하다.

 

"또 내가 내 영혼에게 이르되 영혼아 여러 해 쓸 물건을 많이 쌓아 두었으니 평안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자 하리라 하되 하나님은 이르시되 어리석은 자여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예비한 것이 뉘 것이 되겠느냐 하셨으니"(19-20)

이 말씀만 보면 자칫 잔인하고 매정한 하나님으로 오해하기 쉽다. 인생들이 평안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는꼴을 못 보고, 잔인무도하게 심술을 부려, “영혼을 도로 찾는것처럼 오해할 수 있다. 그러나 사랑이 무량광대하신 하나님은 그런 분이 아니시다. 서두에서 하신 말씀처럼, “사람의 생명이 그 소유의 넉넉한데 있지 아니하니라(15)의 진의를 강조하기 위해 예수님께서 그런 표현을 하신 것이다.

돈은 만사를 해결한다(10:19, 표준)고 믿는 자들의 어리석고 부질없음을 보여 주는 말씀이다. 이 세상에서 돈이면 만사가 OK!”라고 말하지만, 돈이 인간다운 인간의 참된 행복을 보장해 주지는 못한다. “빈 손으로 왔다가 빈 손으로 가는 것이 우리 인생길이 아니던가.

모태에서 빈 손으로 태어났으니, 죽을 때에도, 빈 손으로 돌아갈 것입니다”(1:21, 표준)라고 고백한 욥의 애가를 들어 보면 옛말이 생각난다.

사람이 태어날 때는 손목을 꽉 쥐고 나오지만, 죽을 때는 손목을 쫙 펴고 간다.”

이 세상에 태어날 때는 그 무언가를 움켜쥐려고 하지만, ‘돌아갈때는 모든 것을 다 버려두고 빈손으로 가게 된다. 명심하자. 수의에는 주머니가 없다. 더 심각한 사실은 그 누구도 자신이 돌아갈그 날과 그때를 모른다는 것이다.

 

셋째, “하나님의 나라는 안중에도 없었다. 예수님의 결론을 들어보자.

"자기를 위하여 재물을 쌓아 두고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치 못한 자가 이와 같으니라"(21)

이 부자는 미래 지향적인 사람이다. 미래를 내다보며 준비하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그는 멀리는 보는 것 같지만 깊게보지는 못했다. 자신의 영혼은 운운하지만, 영성은 무시하고 살았다. 육신적인 것, 물질적인 것, 현세적인 것에만 관심을 두고, 하나님의 나라, 죽음, 사후 심판은 관심 밖이었다. 영성이 고갈상태에 있다.

사람이 빵으로만살 수 있는게 아니다(4:4). 성 어거스틴의 고백처럼, 인간의 심령 속에는 하나님만이 채울 수 있는 구멍이 있다. 하나님 외에 다른 어떤 것으로도 그 구멍을 채울 수 없다.

정신분석학에 따르면, 내면의 결함, 공허함을 채우려는 무의식적 욕구가 밖으로 표출된 것이 갖가지 탐욕이다. ‘바닷물은 마시면 마실수록 더 갈증이 난다는 중동지역의 격언도 있다. 가지면 가질수록 더 갖기 원하는 것이 탐욕으로서 남의 것을 빼앗고 빼앗다가 결국은 자기 자신까지 앗아간다. 내 속에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지기까지는 탐욕의 종이 되어 끌려가게 된다. 사도 바울은 탐심은 우상 숭배니라(3:5)라고 경고한다.

이런 사람이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치 못한 자어리석은 자이다. 예수님께서도 이미 경고하셨다.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자기를 잃든지 빼앗기든지 하면 무엇이 유익하리요(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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