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 선진들이 이로서 증거를 얻었느니라 (히11:1-3)


히브리서 11장: 믿음 장: 모델 신앙 인물의 전시장

최근 미국 기독교 뉴스에 따르면, 신앙생활을 하는 인구는 급속도로 감소하고, 가정, 개인 취미 생활, 인간관계, 사회공동체에 집중하는 인구는 급격히 증가하고 있다는 보도를 보았습니다. 그만큼 하나님에 대한 믿음 없이 인간의 행복과 낙을 추구하는 현대인들의 일상을 보여줍니다. 그것은 사사말기의 자기 소행대로 살아가는 인간의 실상을 보여줍니다. 

이러한 영적 암흑의 회오리바람이 불고, 교회에 강타는 쓰나미 시대에 우리는 영적 보고인 히브리서 11장의 신령한 교훈 겸허히 받고 재무장할 때가 다가왔읍니다.

성경은 믿음의 열쇠로 열려지는 진리의 보고(寶庫)입니다. 성경은 믿음으로만 구원에 이른다는 생명의 약속이 보증된 약속의 헌장입니다. 성경은 그리스도인은 반드시 믿음으로 살아야 된다는 하나님의 명령의 하달서입니다. 성경은 믿음으로 살 때 하나님이 반드시 책임져 주신다는 표적의 증언서입니다. 성경은 믿음으로 산 사람들의 아름다움과 믿음을 버리고 산 사람들의 추함을 동시에 보여주는 인물 전시장입니다. 또한 성경은 믿음의 길의 최고봉은 축복이며, 패역의 길의 골짜기는 멸망임을 생생히 보여주는 진리의 비디오입니다. 
특별히 히 11장은 믿음으로 산 구약시대 성도들의 삶의 모습을 선별하여 우리들에게 본보기로 보여 주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 모두가 겪고 있는 시대적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길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 길은 바로 믿음의 선진들처럼 믿음으로 살아가는 길이라는 이 시대에 성도들에게 던져주는 강력한 메시지가 담겨져 있습니다. 

고전 13장이 사랑 장으로 고전 15장이 부활 장(소망 장)으로 지칭되듯이 히 11장은 믿음 장으로 명명되고 있습니다. 이와 같은 세 곳의 성경은 모두 우리가 힘이 들 때 위로와 힘을 주고 아름다운 사랑의 모습과 믿음의 실체를 보여주는 말씀들로 가득 차 있습니다. 그래서 시대와 상황을 초월하여 많은 성도들에게 애독되어지고 있습니다. 

사랑장인 고전 13장은 사랑에 대한 이론적 정의나 해석 보다 사랑의 절대적 가치와 함께 사랑의 삶을 실제적으로 실천할 것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부활 장이요 소망장인 고전 15장은 부활에 대한 이론적 정의나 해석보다 주님의 부활을 목격한 사람들의 예를 소개하면서 부활의 소망 가운데 살아야할 것을 당부하고 있습니다.      

또한 믿음장인 히 11장도 믿음에 대한 이론적 정의나 해석 보다 믿음의 절대적 가치와 함께 제시된 구약의 모델 성도들의 믿음의 삶을 따라 살아갈 것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히 11장은 우주 역사를 창조하시고 다스리시며 심판하실 성 삼위 하나님에 대한 전인격적 확신과 순종과 결단의 삶을 요청하고 있습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오직 믿음만이 하나님께 대한 인생의 취할 마땅한 자세요, 믿음만이 하나님의 구원과 축복을 받는 유일한 방편임을 밝히고 있습니다. 

   


  믿음 조상의 삶의 특성들

히 11장은 5부분으로 나누어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1) 1-3절은 믿음의 정의와 본질 2) 4-7절은 아브라함 이전의 믿음의 조상들에 대한 실증 3) 8-22절은 아브라함, 이삭, 야곱, 요셉 등 조장들의 믿음의 실증 4) 23-31절은 모세로부터 가나안 입성까지 등장한 믿음의 조상에 대한 믿음의 실증 5) 32-40절까지 사사 시대 이후의 믿음의 조상들에 대한 믿음의 실증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히 11장에 나타난 믿음의 조상들의 삶의 특성을 한마디로 축약하여 보면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습니다. 1) 아벨의 믿음-예배하는 믿음  2) 에녹의 믿음-삶으로 보인 믿음 3) 노아-전적으로 신뢰하는 믿음 4) 아브라함의 믿음-절대 순종하는 믿음 5) 사라-확신하는 믿음 6) 이삭-양보하는 믿음 7) 요셉-소망이 담긴 믿음 8) 모세-절대 헌신하는 믿음  9) 이스라엘 백성-정복과 쟁취하는 믿음 10) 라합-모험을 실천한 믿음이라고 믿음의 모습을 우리에게 보여 줍니다. 

그들의 삶의 여건과 환경은 각기 달랐습니다. 그러나 그들에게는 세 가지 공통점이 있었습니다. 

그 하나는 그들 모두 에게 힘겹고 어려운 험산준령의 인생 길을 걸어갔다는 사실입니다. 또 다른 하나는 살아 계신 하나님 앞에서 철저하게 믿음으로 살았다는 사실입니다. 또 다른 하나는 그들이 힘들고 어려운 인생길을 믿음으로 걸어갈 때 살아 계신 하나님의 역사를 체험했다는 사실입니다. 

믿음으로 살 때 하나님이 도와주신다는 것을 확신하고 철저하게 하나님을 체험하고 하고 살아간 믿음의 용장들이었습니다. 그들은 믿음의 사람답게 살아갔습니다. 순종해야할 때 순종하고, 결단해야할 때 결단하고, 헌신해야할 때 헌신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참으로 믿음 안에서 멋있게 살아간 용사들이었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믿음의 사람들이 세상을 이긴 것은 바로 믿음이라는 것을 오늘 우리들에게 보여 줍니다. 그렇다면 위기 상황을 극복하고 믿음의 승리한  모델 인물들의 독특한 점은 무엇입니까?

1. 믿음에 대한 바른 정의를 내리고 있습니다.

히브리서는 “믿음의 책”이라고 불리우고 히브리서 11장은 “믿음의 장”이라고 불리웁니다. 히브리서에는 믿음이란 단어의 명사형이 31회, 동사형이 2회 나타나고 있을 정도로 믿음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히브리서 저자는 본문에서 믿음에 대한 정의를 내리고 있을 뿐 아니라 믿음의 사람들이 또한 믿음에 대한 바른 정의를 알고 살아갔던 것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믿음의 용장, 믿음의 사람들은 믿음에 대한 바른 정의를 내리고 알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누구를 믿어야 하며, 무엇을 믿어야 하며, 어떻게 믿어야 할지를 분명히 알고 믿었습니다. 

첫째, 그들은 믿음의 대상에 대한 바른 이해가 있었습니다. 

아무나 믿어도 되는 것이 아닙니다. 창조주 하나님 외 어떤 피조물이 믿음의 대상이 될 수 없습니다.  가령, 연약한 인생이나 불타 없어질 세상의 것을 믿는 것은 어리석은 일입니다. 또한 허망한 우상이나 이방 신과 귀신을 믿는 것 역시 불행한 일입니다. 누구를 믿어야 하는가? 오직 살아 계신 하나님을 믿어야 합니다. 성삼위 하나님을 믿어야 합니다. 

둘째, 그들은 믿음의 내용이 무엇인지 잘 알고 있었습니다. 

믿음은 믿어야할 분명한 대상이 있어야할 뿐만 아니라 무엇을 믿어야하는 가에 대한 믿음의 내용이 있어야 합니다. 많은 사람들은 믿음의 대상도 잘못 되어있을 뿐만아니라 믿음의 내용도 없이 자신의 신념을 가지고 믿거나 자신의 열심을 의지하거나 또한 다른 사람의 공적을 의지하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모든 것들은 성경적 진리와 가르침에 위배됩니다. 

그러면 믿음의 내용이 무엇입니까? 사도 신경에 고백된 믿음의 내용 즉, 성부, 성자, 성자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이러한 성삼위 하나님에 대한 믿음의 내용은 성경 말씀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믿음의 사람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믿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을 믿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유일한 우리의 구주이심을 믿어야 합니다. 이것이 우리가 믿는 믿음의 핵심적인 내용입니다.

셋째, 그들은 믿음의 자세를 바르게 가졌습니다. 

보이지 않는 것이라 하더라도 눈으로 보는 것처럼 믿어야 합니다. 1절에 보면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라고 했습니다. 

"실상"은 헬라어로 “휘포스타시스”로 “아래로부터 떠받쳐준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즉 실상은 "떠받쳐 주는 것"입니다.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란 곧 지금 당장 눈앞에 실현되지 않은 것이지만 그렇게 이루어질 것이라는 소망을 가지고 살게 하는 것을 뜻합니다. 

믿음은 떠받쳐 줍니다. 또한 믿음으로 살아감으로 미래에 되어 질 사실이 오늘 실현되도록 떠받쳐 주는 것입니다. 믿음의 사람들은 세상 사람들과는 달리 아직 실현되지 않은 미래의 세계와 일들에 대하여 마치 오늘 실현되고 존재하고 있음을 믿음으로 떠받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믿음이란 미래의 것을 현재에 실재하는 것으로 느끼고 감격하고 살아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노아, 아브라함, 모세, 여호수아의 믿음을 보라. 그들은 아직 이루어지지 않았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오늘 마치 이루어지고 있는 것처럼 믿음으로 떠받쳐 주는 삶을 살았습니다. 

또한 믿음은 보지 못한 것들의 증거라고 하였습니다. “증거”라는 말은 “엘렉코스”라는 말로 “확신” 또는 “신념”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비록 보지 못한 것들이지만 보는 것처럼 내적 확신을 갖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의 약속에 대하여 비록 눈으로 확인할 수 없지만 믿음으로 현재 가지고 있는 것처럼 확신하는 것입니다. 

 주님의 부활을 의심한 도마에게 주님이 무엇이라고 말씀 하셨는가? “너는 나를 본 고로 믿느냐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은 복 되도다”고 요20:29에서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이 담고 있는 의미가 무엇인가? 보지 않고 믿는 것이 진정한 믿음이며 보지 않은 것을 확신하고 살아가는 삶이 바로 믿음의 삶이라는 의미입니다. 

어떤 종교에도 이런 의미가 존재하지 않느냐? 라고 의문을 제기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믿음은 불확실한 막연한 신에 대한 믿음이 아닙니다. 살아 계시고 말씀하시고 역사 하시는 인격자 되신 하나님의 존재와 하나님의 말씀과 그분의 사역을 믿는 것입니다. 
 
한 가지 예를 들면 기차를 타보지 않은 사람에게는 기차를 타는 것이 두려움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그 철로 만든 긴 차량이 어떻게 두 개의 선로 위를 안전하게 달릴 수 있는가? 굉음을 내고 달리는 모습을 보면 혹 탈선하지나 않을까? 하는 두려움이 생길지도 모릅니다. 비행기도 마찬가지입니다. 쇠로 만든 물체가 하늘을 날아다니는 것이 참으로 신기하지만 그 무거운 것이 자칫 땅으로 추락하지나 않을까? 하는 두려움이 생길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안전하리라 믿기에 기차를 타고 비행기를 타는 것입니다. 이렇게 한 번 두 번 타 보면 안전을 몸으로 체험하게 되고 안전에 대해 깊이 신뢰하게 되는 것입니다. 

믿음의 삶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이처럼 믿음의 체험이 있는 사람에게는 두려움이 없습니다. 

본문 2절에서 믿음의 선진들이 “증거”를 얻는 삶을 살았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증거"는 1절의 "증거"와 다른 의미의 말씀입니다. 1절의 "증거"는 "확신을 의미"하나 2절의 "증거:는 "결과를 의미"합니다. 

이 "증거"라는 말은 히 11장에 제일 많이 나타나는 단어입니다. 즉 믿음의 선진들이 믿음으로 살아간 좋은 결과들과 흔적들과 열매들이 나타났음을 보여 줍니다. 

참 믿음은 누구를, 무엇을, 어떻게 믿는가? 로 증명이 됩니다.

성명교회
성명교회

2. 말씀에 근거한 비전을 가졌습니다. 

믿음의 사람들은 분명한 생애의 목적과 비전이 있었습니다. 그들이 가진 생애의 비전이 무엇으로 말미암았는가? 또한 그들이 가진 믿음은 무엇을 근거로 한 것인가? 본문 3절에서는 믿음과 말씀과의 관계를 밝히고 있습니다. 

믿음은 맹목적으로 믿는 것이 아니고 자신의 신념의 강화도 아닙니다. 믿음은 심리적 현상이나 정신적 현상도 아닙니다. 

믿음은 하나님의 말씀에 기초를 둡니다. 말씀을 통하여 우리는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가? 하나님이 어떤 일을 하셨는가? 하나님이 무슨 일을 계획하시는가? 하나님이 원하시는 바가 무엇인가?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가? 를 알 수 있습니다. 

우리가 어떤 일을 결정하기 전에 하나님의 뜻을 찾기 위하여 기도하는데, 하나님의 뜻이냐 아니냐를 어떻게 확신할 수 있는가? 하나님의 말씀을 통하여 알 수 있습니다. 말씀이 원하시는 것을 행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뜻을 이루기 위해서는 반드시 우리의 믿음이 따라야 합니다. 

믿음은 우리가 우리 자신을 위하여 우리가 계획한 것을 믿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지성을 믿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하나님께서 그 뜻을 이루기 위하여 우리의 계획과 우리의 지성을 사용하신다. 그러나 근본적으로 그 계획과 지성이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드리는 도구라는 믿음이 있을 때 하나님은 그것을 아름답게 사용하십니다

우리가 어떤 일을 두고 기도하고 믿는다고 할 때. 하나님의 일반적인 뜻과 특별하신 뜻을 어떻게 찾는가 하는 문제가 생깁니다. 

성명교회
성명교회

제가 성명교회를 목회할 당시, 대구 성서지역에 약 5,000천 평의 부지를 구입하고 그 땅에 4,300여평의 교회당과 비전센터를 짓고자 하는 꿈이 있습니다. 그 지역을 통하여 복음사업, 선교사업, 복지 사업, 육영 사업 등을 하기 위한 것이 우리의 꿈이요 비전입니다. 그런데 이 성서지역의 비전이 어떻게 하나님의 뜻임을 알 수 있는가? 그것이 성취된다는 것을 어떻게 믿을 수 있는가? 그 꿈은 바로 지상 교회들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이루시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뜻이요 하나님의 비전이기에 우리의 비전과 목적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이요 이처럼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리는 일은 바로 하나님의 말씀에 일치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어려운 가운데 결국 하나님의 은혜와 온 성도의 눈물, 땀. 기도와 헌신으로 이루는 영광을 얻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비전이 실현되는 믿음을 가지는 것입니다. 이러한 적용은 우리의 개인생활과 가정생활과 우리의 장래에 대하여서도 확실하게 나타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사업을 하건 공부를 하건 이것이 내 육신을 위하고 나 자신만을 위한 일이라면 믿음으로 바라볼 필요도 없고 또 그러한 일에는 믿음의 역사가 일어나지도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선하신 목적이 나의 계획과 나의 비전을 이끌어갈 때 비로소 우리는 그것을 믿음으로 바라 볼 수 있습니다. 우리 선한 믿음을 따라 비전이 현실로 이루어지는 그 역사를 하나님께서 일으키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나 개인적인 특별한 것에 대한 하나님의 뜻을 찾고 구하기 전에 할 일이 있습니다. 그것이 일반적으로 하나님이 원하시고 기뻐하시는 것인가를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통하여 먼저 점검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믿음은 말씀에 기초를 두어야 한다. 여기에 언급된 말씀은 온 세계를 지으신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기록된 말씀이 일뿐 아니라 그 말씀은 우리 심령을 움직이는 말씀이고 역사를 일으키는 말씀입니다. 무엇으로 우주만물이 창조되었습니까? 무엇으로 죽은 나사로를 살려냈습니까?  

말씀으로 온 세계를 창조하셨다는 것은 말씀의 무한한 능력을 의미합니다. 말씀은 또한 우주 만물을 붙들고 다스리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확신할 수 있는 것은 능력 있고 권세 있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우리가 믿고 확신하는 것은 일을 이루시고 역사를 일으키시는 하나님과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참 믿음으로 살기 위해서는 말씀을 읽어야 하고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그 말씀을 믿고 확신해야 합니다. 그 말씀을 행동화해야 합니다. 그러면 그 말씀이 우리에게 역사를 나타내는 증거를 보여줄 것입니다.

<참 믿음은 사람의 생각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기초로 거룩한 비전을 가지는 것입니다. >

3. 말씀에 철저히 순종하는 믿음을 가졌습니다. 

 믿음과 순종은 별개의 것이 아닙니다. 순종이 없는 믿음은 참 믿음이 아닙니다. 이것을 여리고 성 싸움에서 발견할 수 있습니다. 여리고 성 싸움에서 하나님께서 여호수아에게 여리고 성을 하루에 한 번씩, 안식일에는 일곱 번 돌라 고 말씀하셨습니다. 

 여호수아는 그 말씀을 들었고 믿었습니다. 그 말씀대로 여리고 성이 무너질 것을 확신했습니다. 그리고 여리고 성을 도는 일을 행동으로 옮겼습니다. 그랬을 때 여리고 성이 무너지는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싸움을 하지 않고 성을 도는 행위는 인간적으로 보면 아주 무식한 방법입니다. ‘차라리 성문을 부수는 방법을 취하자’, ‘다른 연합군의 도움을 청하자’, ‘화해 정책을 사용하자’, ‘차라리 포기하자’는 등등의 이야기가 있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믿고 행동으로 실천하며 여리고 성을 돌았을 때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역사를 믿지 않고 우리의 지혜와 방법을 동원하면 우리의 지혜와 방법 수준만큼만 이루어집니다. 그러나 우리의 지혜와 방법이 아니라 하나님의 믿음의 역사를 기대하면 믿는 만큼 역사가 나타나는 것입니다.
  
 교회는 믿음의 사람들이 모여 믿음의 행진을 하는 믿음의 공동체입니다. 그러므로 “항상 믿음으로 합시다”라는 적극적인 자세로, 헌신하고, 행동할 때 하나님의 선하신 역사가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믿음의 사람들의 대 행진 앞에는 홍해 바다가 갈라지고 여리고 성이 정복되고 요단강이 갈라지고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을 밟는 역사가 나타났다고 믿음장 히 11장은 증거하고 있습니다. 

  ‘믿음으로 행하자’, ‘믿음으로 섬기자’ 라는 말을 오해해서는 안 됩니다. 믿음은 결코 주먹구구식이 아닙니다. 믿음은 무식을 예찬하고 이성을 무시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뛰어난 사람의 믿지 못하는 지혜보다 무식해 보이지만 하나님을 믿는 믿음을 더 기뻐하십니다. 이러한 믿음의 확신은 바로 말씀에 근거한 확신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말씀의 나라입니다. 말씀의 확신은 믿음의 승리이며 보장입니다. 내게 성령의 역사로 부딪치는 말씀의 감동이 있기까지 사람의 생각과 목소리를 내지 말아야합니다. 확실한 말씀을 붙잡기까지 기도하고 말씀을 붙잡는 지도자들의 인도를 받아야 합니다. 이렇게 할 때 역사가 나타나는 것입니다. 때로는 믿음의 사람들의 행진이 미친 것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이 무엇을 말하는가? 성경은 주를 위하여 미치는 것이 오히려 온전한 것이라고 하지 않는가?  

 히 11장은 당시 하나님께 미친 사람들이라 불렸던 사람들의 믿음의 역사에 대한 생생한 기록입니다.  

<참 믿음은 사람들의 소리에 귀 기울이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순종하는 것입니다.>

 믿음은 이론이 아니라 실제적인 삶이라는 것을 믿음의 사람들을 통하여 배울 수 있습니다. 우리가 누구를 믿으며 무엇을 믿는가를 점검하는 것은 무엇보다 중요한 일입니다. 

 믿음에 대한 바른 정의를 이해해야 합니다. 우리는 창조주 하나님 살아 계신 하나님을 믿고 있습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을 믿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상황보다 약속의 말씀에 더 주의해야 합니다. 우리가 세운 비전 역시 말씀이 그 근거를 뒷받침해 줄 때 역사를 이루는 비전이 되는 것입니다. 상황변화나 사람의 말에 귀를 기울이는 자가 아니라 말씀에 순종하는 자가 될 때 하나님은 우리를 믿음의 사람으로 인정해 주실 것입니다. 

 불신 가득한 세상,  인공지능 A1이 득세하는 세상, 참된 신앙을 조롱하는 현실, 진정한 믿음의 신앙인을 찾기 어려운 오늘날, 믿음 중심, 말씀 중심의 거룩한 하나님의 종, 신실한 그리스도인들이 되길 축복합니다.


*토의 사항*

1. 히브리서 11장 기록의 목적과 그 내용을 살펴봅시다.

2. 믿음의 조상들의 삶의 특징을 한 마디로 표현하여 봅시다.
 
3.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한 것들의 증거” 라는 의미는 무엇이며 그 예를 한 가지씩 들어봅시다.

4. 참 믿음과 거짓 믿음이 있을 수 있다. 참 믿음을 증거 할 수 있는 3가지 요소는 무엇입니까? 

5. 위기 상황을 믿음으로 극복한 사람들의 독특한 면은 무엇이며 나 자신의 믿음의 삶과 비교하여 볼 때, 나 자신의 부족한 부분들을 나누어 봅시다.
  
6. 자기 나름대로 믿음의 정의를 내리고 믿음으로 결단해야 할 부분들을 정리하여 나누어 봅시다.


정준모 목사
정준모 목사

정준모 목사는 선교신학박사(D.Miss)와 철학박사(Ph. D)이다. 전 대한예수교 장로회 총회장, CTS 기독교 텔레비전 공동대표이사, GMS 총재, 총신대학교 개방, 교육 재단이사, 백석대학교대신대학교 교수 역임, GMS(세계선교이사회) 총재 등을 역임했다.

현재로는 현 GSM(선한목자 선교회) 고문, 콜로라도 말씀제일교회 담임, 국제개혁신학대학교 박사원 교수, 국제 성경통독아카데미 대표, 콜로라도 타임즈, 뉴스파워, 좋은신문, KCMUSA 칼럼리스트, 대표 저서, ≪칼빈의 교리교육론》, ≪개혁신학과 WCC 에큐메니즘》, 《장로교 정체성》 등 다수가 있다.


※상담 및 집회인도 연락처

●719) 2484647

● jmjc317@gmail.com.


 

저작권자 © 본헤럴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