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게는 20대 초반 30대 초반 아들 둘이 있어요. 중학교 1학년 때인지 이런 질문을 했어요. '엄마 왜 나이드신 분들이 우리 미래를 막 결정해? '라는 게예요. 그래서 자기가 생각할 때는 자기 나이로부터 여명까지, 엄마 나이로부터 여명까지로 해서 비례적으로 투표를 해야 한다는 거예요. 그 말이 되게 합리적이지요 그런데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11표기 때문에 현실적인 어려움이 있지만 그게 참 맞는 말이예요. 그래서 투표장에 청년들이 젊은 분들이 나와야 그 의사가 표시된다 라는 것으로 결론을 냈던 기억이 나요. “

이미지 출처 : 연합뉴스 T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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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자기 당대표의 입지를 강화시키기 위한 몇가지 혁신안 아닌 혁신안을 내놓고 해산된 전 혁신위원회 김 위원장이 지난 30일 서울 성동구에서 청년 유권자들과 좌담회를 하는 중에 발언한 내용이다. 소위 남은 수명에 비례한 투표권행사에 관한 논란이다. 나름 혁신적인 생각이라고 한 이 발언은 곧바로 상대 집권당에 의해 노인폄하 발언으로 문제제기 되었고 소속정당에 떠밀려 대한노인회에 방문사과 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이자리에서 노인회장은 김 위원장의 사진을 들고 정신차리라며 사진의 얼굴을 때리는 웃지못할 해프닝까지 연출되었다.

발언도 발언이지만 이런 문제를 고작 노인폄하문제로 귀착시키는 정치지도자들이나 내문제가 아닌양 팔짱끼고 구경하는 사회시각 역시 상당한 문제를 가지고 있다는 사회 윤리적 위기감을 떨칠 수 없다. 이런 근시안적이고 통찰력없는 정치인들에게 입법,사법,행정의 권한을 위임한채 대한민국 하늘 아래 숨쉬고 산다는 것에 극도의 자괴감을 느낀다.

수학에서 '비례(Proportion)'는 두 개 이상의 양이 서로 비례함을 ( a/b = c/d }나타내는 개념으로, 대응하는 부분들의 비율이 동일함을 의미한다. 그래서 이 비례는 비율, 변화율, 백분율, 크기변환 등과 관련된 문제를 해결하는 데 자주 사용된다. 뿐만 아니라 기하학, 대수학, 통계학 등 여러 수학 분야에서 기본적인 개념으로 활용되고 있음은 상식이다.

그런데 사람의 생애를 동일선상에 놓고 남은 생애를 비율로 따져 투표권의 퍼센티지를 준다는 발상은 암만 생각해도 이해가 가지 않는 기상천외한 발상이다. 이는 인간의 가치기준이나 윤리적 문제를 수학으로 풀어 보겠다는 그야말로 비합리적이며 말이 되지 않는 상식 밖의 논리이다.

투표를 단순히 수명비례로 하는 것이 합리적이라면 앞으로 가장 살날이 많은 갓 태어난 아이들이 기저귀 차고 투표장으로 가야 마땅하고 아직 성년이 되지않은 초,,고교 학생들이 투표권에 막강한 행사를 함은 물론 살날 많은 성년 18세 이상 청소년들이 국회에 진출하여 자신들이 당면한 국정을 논의하고 나라의 지도자가 되어 국가를 이끌어 가야 마땅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 위원장은 이 말을 해놓고 그 말이 되게 합리적이지요 라고 인정할 뿐만 아니라 그게 참 맞는 말이예요 하고 참자 까지 붙여가며 스스로 맞장구를 치고 있다그녀는 사람인가 아니면 그저 단순한 수학의 기호를 익힌 로봇인가?

조금만 깊이 생각해 본다면 이 문제는 결코 노인비하문제가 아니다. 이것은 우리 사회전체의 윤리문제이며 경색(梗塞)된 정치철학의 한 단면이다.

여명 비례투표는 결과적으로 노인만 비례제외되는 것이 아니라 각 개인 모두가 자기 산 만큼 비례제외 되어야 하는 모두의 문제이며 심각한 가치관의 문제를 동반하고 있다.

다시 말하자면 이는 극단적인 유물론으로 인간을 물리적인 물질로 계산하겠다는 말이나 다름 없다. 사람을 단순히 육체적 기능으로 판단하여 효용성이 있느냐 없느냐를 따져 인간의 가치를 저울질 하겠다는 끔찍한 논리이다. 이런 사회가 진정 사회인가? 이런 문제를 단순히 노인폄하문제로 치부하는 사회가 제정신을 가진 건강한 공동체인가? 대한민국, 정말 우려스럽다.

양당제도에서 상원의원의 Senate 라는 명칭은 라틴어 Senatus 라는 말에서 왔다. 이 말은 곧 원로원으로서 나이가 많은 사람들의 모임과 같은 뜻이다. 고대사회의 의회 또는 상원 등에 해당하는 회의체로서 나이가 많고 경험이 많으며 그래서 통찰력이 뛰어난 사람들의 모임을 통해 국가운영의 자문역할을 하게 한 것이다. 그 후 이런 구성의 로마 상원은 기원전 8세기에 설립되었으며 기원전 509년에 로마 공화국이 선포되면서 국가를 지배하고, 법률을 제정하며, 전쟁과 외교 등 주요한 결정을 내리는 데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 것이다.

꼭 이런 역사적 정치제도를 들먹일 필요없이 오늘 우리가 누리는 모든 문명과 정신세계는 남은 수명이 얼마 남지 않은 사람들 뿐만 아니라 벌써 수세기를 걸쳐 이땅에 자기 수명을 다하고 그 어떤 비례조차 배당받을 수 없는 사람들의 유산으로 살아가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

나는 오늘 , 지금부터 2200년전 로마사람들이 세우기 시작했던 주거용 아파트 인술라(Insulae)의 개발된 형태의 아파트에서 잠을 자고 나와 162년 전에 돌아가신 미국의 제작자 엘리샤 ( Elisha Graves Otis 1811 1861)1853년 뉴욕박람회에 출품했던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와 주차장에 세워둔 차의 시동을 부르릉 걸었다. 이 차는 119년전에 돌아가신 프랑스의 니콜라 조제프 퀴뇨 (Nicolas Joseph Cugnot 1725~1804 )가 차에 내연기관을 탑재하지 않았다면 들을 수 없는 자동차의 시동소리이다.

이어 나는 코넬대학(Cornell Univ. 1865- )의 공학도 출신인 뉴욕커( Newyoker ), 캐리어가 ( Willis Haviland Carrier 1876 1950) 지금부터 100여년전 그의 나이 고작 30세 어간에 발명한 에어컨을 켜 차안을 금새 쾌적한 공간으로 만든다.

그리고 나서 나는 알텍 랜싱 ( Altec Lensing_ James Bullough Lansing 19021949) 스피커를 통해 흘러나오는 모차르트의 피아노 소나타 8번의 멜로디를 들으며 깊은 심호흡을 한다. 232년 전 젊은 나이에 유명을 달리한 모차르트( Wolfgang Amadeus Mozart, 1756~1791 )의 피아노 소나타는 들을수록 복잡했던 나의 삶들을 투명하게 정화하고 건반 위에 정제되고 절제된 한음 한음은 삶의 의미를 좀더 단순하고 명료하게 나열해 주는 느낌이다. 그러나 이 또한 지금부터 146년 토마스 에디슨( Thomas Alva Edison, 1847~1931 )이 발명한 음향기록장치가 시작되지 않았다면 이렇게 생명력있는 음의 풍요한 감동을 절대 누릴 수 없었을 것이다.

이제는 방금 신선하게 드립( Drip )으로 내려온 텀블러( Tumbler )의 두껑을 열어 자그마치 2700여년전 에디오피아 목동 카르디( Caldi )가 처음 발견했던 진하고 묵직하고 매력적인 커피향을 차안에 가득해진 피아노의 선율속에 부어 블랜딩( Blending )하듯 한모금 음미하면서 의미있고 좋은 하루의 가속 페달을 천천히 밟으며 아파트 숲을 빠져나온다.

이 뿐일까? 한시도 떼어 놓고 살 수 없는 스마트폰, 컴퓨터 ,인터넷, 돌아보면 내가 누리는 일상의 모든 문명의 이기들, 그리고 사상의 원천은 거의 다 지금 이 땅에 계시지 않는 선조들의 유물이다.

특히, 오늘 우리가 누리는 대한민국의 자유와 평화 그리고 사회,경제, 문화의 초석 역시, 대부분 여명이 얼마 남지 않은 이들, 또는 지금 유명을 달리한 분들의 피와 땀과 눈물의 결정체임을 부인할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혁신(革新, innovation)은 어떤 영역에서 급진적인 변화를 일컫는 말이다. 그리고 흔히 그 결과물은 이전의 상태보다 확연히 다른 것이어야 했다. 때문에 한국은 다분히 외적혁신, 눈에 보이는 혁신에 치우친 경주를 해왔다고 볼 수 있다.

그래서 세계 60여개국의 경제혁신분야를 평가하는 2021년 불룸버그 혁신지수( Bloomberg Innovation Index )에서 한국은 90.491위를 차지하고 있다. 그러나 좀더 광범위한 면에서의 진정한 혁신 ( Innovation Indicator )지수에서는 아직 갈길이 먼 형편에 있다.

이번 민주당 전 혁신위원장의 비례투표 발언과 이를 단순히 노인폄하로 몰고가는 집권정당, 그리고 이를 앵무새처럼 되내이는 언론을 보면서 우리사회 혁신의 부끄러운 민낯, 우리사회가 추구하는 혁신의 불편한 진실을 보는 것 같아 낯이 뜨겁다무엇이 진정한 혁신인가?

차라리 AI 인공지능 Chat GPT 에게 혁신에 대한 의견은 물었더니 AI는 인간이 추구하는 혁신에 대한 부작용에 대해 다음과 같이 지적하고 나섯다.

첫째, 무분별한 기술 혁신이나 자동화로 인해 인간에게 고용 기회가 줄어들 수 있다.

둘째, 혁신을 앞세워 새로운 체제나 정치적 구조가 세워질 때, 권력남용이 발생 부패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으며 체제 변화는 사회 내부에서 의견 분화와 갈등을 초래하므로 결과적으로 사회적 단결을 약화시킬 수 있다.

셋째, 일부 산업혁명과 같은 생산혁신은 환경오염이나 환경파괴로 이어져 결국 인간사회 에 막대한 손실로 돌아올 수 있다.

넷째, 정치적 혁신은 국제적인 영향을 받을 수 있다. 외부 국가나 단체가 이를 이용하여 자국의 이익을 추구하거나 혁신을 방해할 수 있다.

다섯째, 인터넷과 소셜 미디어 같은 새로운 기술의 발달이나 문화적 혁신은 인간의 전통적인 가치나 문화를 퇴색시켜 오히려 인간과 인간사이의 친밀한 상호작용을 더 감소시킬 수 있다.

그야말로 소름돋는 지적이다. 인공지능이라지만 솔직히 인간의 생각보다 더 넓고 깊어 보인다. 잘못된 개념으로 말미암은 무분별한 혁신의 결과는 우리 미래에 감당할 수 없는 부작용을 초래할 수 있다는 점에서 혁신을 좀 더 역사적이고 윤리적이며 통합적인 관점에서 보고 접근하고 통제해야 할 필요성을 절감하게 한다.

그래서 성경은 인간에게 진정한 혁신을 논하지 말라고 권고했는지 모른다.

전도서 7:9 “ 이미 있던 일이 후에 다시 있겠고 이미 한 일을 후에 다시 할찌라 해 아래는 새것이 없나니 무엇을 가리켜 이르기를 보라 이것이 새것이라 할 것이 있으랴


Azusa Pacific Univ. Calvin Theological Sem.

yeesaak7@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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