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세아 선지자의 다섯 번째 설교는 북조 이스라엘 시조 여로보함의 배교적 신앙이 10지파 에 어떻게 영향을 미쳤으며 백성이 하나님을 떠난 생활에 대한 지적과 경고를 전하고 있다. 

농업이 주산업인 나라에서 가을 거지는 행복한 계절이다. 한해 농사를 추수하기 때문이다. 당시 이스라엘도 그러했다. 기뻐 뛰놀고, 타작마당에서 축제를 벌였다. 떡과 음식 그리고 술을 차려놓고 춤판이 벌어졌다. 그러나 그것은 음행의 현장이었다. 그들은 이방 신 바알에게 한해의 소출을 감사하는 제사를 드렸다. 바알신이 풍요와 번영의 신이기 때문이다.  이스라엘인 나라 시작부터 다윗이 섭겼던 여호와 하나님 신앙을 버리고 주변 이방민족의 바알과 아세라 신을 섬겼다. 바알은 풍요와 번영을 아세라는 다산의 신이다. 백성들은 제사를 드린 후 사제 즉 박수와 무당과 음란의 축제를 벌렸다. 그들은 전혀 죄의식을 갖지 않고 음란을 저지르며 다산과 풍요를 기원했다.


1. 추수 계절의 경고(1~3절)

호세아의 이 설교는 아마도 추수 때였던 것 같다. 호세아는 이 말씀으로 설교를  시작한다. 
* 호 9:1~3 이스라엘아 너는 이방 사람처럼 기뻐 뛰놀지 말라. 네가 음행하여 네 하나님을 떠나고 각 타작마당에서 음행의 값을 좋아하였느니라. 타작마당이나 술틀이 그들을 기르지 못할 것이며 새 포도주도 떨어질 것이요, 그들은 여호와의 땅에 거주하지 못하며 에브라임은 애급으로 다시 가고 앗수르에서 더러운 것을 먹을 것이니라.  

다윗의 신앙을 버리고 배교로 변질한 이스라엘의 신앙에 대하여 하나님은 많은 선지자를 보내서 강력하게 죄를 지적하고 심판을 경고하셨다. 이사야, 아모스, 호세아, 하박국과 같은 선지자들이 바로 그들이다. 하나님은 죄를 지적하시면서 그 죄에 대한 심판을 경고하셨다. 2절에 타작마당과 술틀이 언급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추수로 인해 흥겨워하고 있는 백성을 향한 강력한 경고임을 알 수 있다. 

호세아는 이스라엘에게 “이방 사람처럼 기뻐 뛰놀지 말라”고 하며 “음행하여 네 하나님을 떠나고 각 타작마당에서 음행의 값을 좋아했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그들의 축제가 단순히 풍년을 기뻐하는 축제가 아니라고 지적하셨다. 이들의 축제는 풍요의 신 바알에게 바치는 제사였고 그 후 사제와 문란한 관계를 맺는 광란의 축제였다. 그들은 타작마당에서 얻는 것으로 음행의 값을 지불하고 또 그 대가를 받으며 즐거워했다. 그것은 화대였다. 기름진 음식과 술 그리고 돈과 쾌락 생기고 기뻐하며 흥분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들은 광란의 도가니에 빠졌다. 
 
공의로우신 하나님께서 이를 묵과하실 리가 없다. 그들에게 반드시 대가가 따를 것을 경고하셨다. 하나님은 “타작마당이나 술틀이 그들을 기르지 못할 것이며 새 포도주도 떨어질 것이요, 그들은 여호와의 땅에 거주하지 못하며 에브라임은 애급으로 다시 가고 앗수르에서 더러운 것을 먹을 것이니라(2~3절).”라고 경고하셨다. 

하나님은 그들이 거둔 곡식과 그것으로 빚은 술이 백성을 먹여 살리지 못할 것이고, 화대로 받은 것들로 백성을 먹여 살리지 못할 것이라고 경고하셨다. 타락하여 무질서하고 방탕한 문화는 결국 그들에게 하나님께서 주신 가나안 땅에서 더는 살 수 없게 될 것이고 타국으로  도피하여 사는 상황에 이를 것이라고 경고하셨다. 

호세아는 이스라엘이 바알과 아세라를 숭배하는 일이 얼마나 허망한 일인지 깨닫게 하겠다고강하게 경고했다. 실제로 백성은 앗시리아에게 조공의 받치고 살다가 너무 힘이 들자, 임으로 애급에게 의지했다. 이스라엘의 양다리 걸치기 외교는 실패했다. 

호세아의 설교대로 북조 이스라엘은 철저하게 망해 버렸다. 역사적으로 에브라임은 애급으로 도피했고 마침내 주전 722년에 앗시리아에 나라가 망해버렸다. 그들이 의지했던 애급도 돕기는커녕 이스라엘을 조롱했고 심지어 그들을 죽이기까지 했다. 앗시리아로 끌려간 백성 역시 먹을 수 없는 음식을 먹어야 하는 비참한 생활을 할 수 밖에 없었다. 하나님의 경고대로다. 당시 아모스 선지자도 호세아와 같은 메시지를 전했다. 이스라엘은 듣지 않았고 망했던 것이다. 
* 암 5:4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족속에게 이와 같이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나를 찾으라. 그리하면 살리라.

지금도 하나님은 말씀하신다. 그 말씀은 단순하게 겁을 주려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운명을 결정하는 말씀이며 살리고 죽이는 말씀이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려 들어야 한다. 


2. 비참함에 대한 경고(4~6절)

호세아는 계속하여 하나님을 떠난 이스라엘의 비참함에 대하여 구체적으로 지적하며 설교했다. 
* 호 9:4~6 그들은 여호와께 포도주를 부어 드리지 못하며 여호와께서 기뻐하시는 바도 되지 못할 것이라 그들의 제물은 애곡하는 자의 떡과 같아서 그것을 먹는 자는 더러워지나니 그들의 떡은 자기의 먹기에만 소용될 뿐이라. 여호와의 집에 드릴 것이 아님이니라. 너희는 명절날과 여호와의 절기의 날에 무엇을 하겠느냐. 보라. 그들이 멸망을 피하여 갈지라도 애급은 그들을 모으고 놉은 그들을 장사하리니 그들의 은은 귀한 것이나 찔레가 덮을 것이요, 그들의 장막 안에는 가시덩굴이 퍼지리라.

이스라엘 백성이 앗수르에 포로로 잡혀가고, 애급으로 도망가서 하나님께서 주신 가나안 땅에서 더는 거주할 수 없게 되자 그들은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고 싶어도 드릴 수 없는 상황을 맞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유는 그 때가 되면 그들의 음식은 “애곡하는 자의 떡과 같고 그것을 먹는 자는 더러워지기 때문’이다. 

무슨 의미인가? 포로로 잡혀가고 이방 땅에서 멸시와 천대를 받아 눈물의 떡을 먹을 수밖에 없는 비참한 삶을 살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명절인들 무엇을 할 수 있겠으며 여호와의 절기가 되어도 그들이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이 있겠는가! 하나님은 그들을 조롱하셨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이 얼마나 비참하게 될 것을 설명하셨다. 본문 6절 말씀이다. 
“보라! 그들이 앗시리아의 침략을 피하여 애굽으로 피난을 갈 지라도 애급은 환영하지 않고 게토그룹으로 모아 관리할 것이고, 놉(Mempis)은 피난 온 이스라엘 백성들 모두 죽여 장사를 치를 것이다(6절) “라고 지적하셨다. 그 결과 이스라엘은 피난을 오면서 숨겨온 은과 같은 귀중품은 폐로 변한 집안의 숨겨둔 곳에 찔래와 같은 엉겅퀴들이 덮을 것이고, 잠자리로 사용한 숙영지에는 가시덩쿨이 덮어 사람이 살수 없는 폐허가 될 것이라고 저주하셨다. 

새 번역 성경은 4~5절을 ‘그들이 먹는 것은 초상집에서 먹는 음식과 같아서, 그것을 먹는 사람들마다 부정을 타게 될 것이다.’라고 번역했다. 부정한 음식이기 때문에 하나님께 드릴 수 없다는 말이다. 이는 하나님께 나아가지 못하여 하나님과 관계가 단절된다는 의미다. 

여러분, 모든 인생은 창조주 하나님으로 온전히 채워질 수 있도록 지어졌다. 인간은 하나님과의 교제 속에서 인생의 참된 의미를 발견하여 살아갈 있다. 하나님은 북조 이스라엘의 영적 타락과 배교를 신랄하게 지적하며 강하게 경고하셨다. 그들은 하나님과 어떠한 관계도 맺을 수 없게 되었던 것이다. 이보다 더 무섭고 절망적인 비참한 경고는 없다. 

초대교회 교부, 어거스틴(St. Augustine)은 고백론에서 “하나님이며 제가 하나님을 발견하여 만나게 전에는 그 어떤 기쁨과 의미를 내 인생에서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주께서 저를 발견하신 후에 저는 주 안에서 참된 나란 존재의 의미를 찾았습니다.”라고 고백했다. 

누구나 숨 쉬고 산다고 하지만, 하나님과의 관계가 단절된 사람은 실상은 죽은 것과 다름이 없다.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유지하지 못하며 사는 것보다 더 큰 비극은 없다. 호세아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이것을 알려주고 싶었던 것이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성도에겐 하나님과의 관계 단절은 치명적이다. 예배드릴 생각이 없어지고, 말씀을 볼 생각이 없고 기도를 드릴 생각이 들지 않는 그에게 그 어떤 위로와 기쁨 그리고 소망이 있겠는가! 심각하게 생각해야 한다. 자신의 영이 황폐한 상태가 되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러한 인생에게 무슨 위로가 주어지겠으며 치유와 회복이 있겠는가? 성도에게 있어서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기쁨이 없고, 말씀이 은혜가 되지 않는다면 가장 불행한 인생임을 알아야 한다.  

교회의 머리되시는 주께서는 사대교회에 경고하셨다. 성도는 이 말씀을 심각하게 들어야 한다. 
* 계 3:1~3 사데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라 하나님의 일곱 영과 일곱별을 가지신 이가 이르시되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살았다 하는 이름은 가졌으나 죽은 자로다. 너는 일깨어 그 남은 바 죽게 된 것을 굳건하게 하라. 내 하나님 앞에 네 행위의 온전한 것을 찾지 못하였노니, 그러므로 네가 어떻게 받았으며 어떻게 들었는지 생각하고 지켜 회개하라 만일 일깨지 아니하면 내가 도둑 같이 이르리니 어느 때에 네게 이를는지 네가 알지 못하리라.  
스스로 이 말씀을 경청하고 일깨어 남아 있는 것이라도 일깨워서 믿음으로 일어서자, 그리고 살아계신 하나님을 알고 주께로 나아가자. 지난 날 예수를 만나고 고백했던 것을 다시금 일깨워서 초심으로 돌아가자. 말씀으로 일어서서 주께로 나아가자. 그래야 살고 주 앞에 설수 있다


3. 파수꾼으로서의 사명 망각(7~9절)

호세아는 당시 북조 이스라엘의 영적 사회상을 이렇게 설명했다. 
* 호 9:7~9 형벌의 날이 이르렀고 보응의 날이 온 것을 이스라엘이 알지라. 선지자가 어리석었고 신에 감동하는 자가 미쳤나니, 이는 네 죄악이 많고 네 원한이 큼이니라. 에브라임은 나의 하나님과 함께 한 파수꾼이며 선지자는 모든 길에 친 새 잡는 자의 그물과 같고 그의 하나님의 전에는 원한이 있도다. 그들은 기브아의 시대와 같이 심히 부패한지라. 여호와께서 그 악을 기억하시고 그 죄를 벌하시리라. 

호세아는 이제 북조 이스라엘의 시대는 형벌의 날이 다가오는 때고, 보응의 날이 도래한 시대라고 경고했다. 죄에 대한 심판과 처벌을 피할 수 없는 때가 되었다는 것이다. 원인은 선지자와 제사장과 같은 하나님의 종들의 타락과 영적 무감각 그리고 무책임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백성의 파수꾼으로 세운 선지자들이 무식하고 어리석어서 제대로 하나님의 성전을 지키지 못했으며, 하나님의 영을 받아 백성과 하나님 사이에 가교 역할을 하는 제사장이 타락하여 세속의 영에 미쳐 제대로 하나님의 말씀과 영을 분멸하지 못하는 자들이 되었다. 

백성은 말씀을 무시하고 영안이 어두워져 옳고 그름을 판단할 수 없었다. 분별력을 잃어버린 것이다. 그들에게 하나님은 수차례 선지자를 파수꾼으로 보내셨다. 하나님은 그들을 파수 대에 세우셔서 시시각각 다가오는 위험을 성 내부에 전하며 대비할 수 있게 경고했지만, 백성은 선지자가 전하는 하나님의 경고를 듣기 싫어하고 배척했다. 그것도 모자라 참 선지자들을 미친 사람 취급했다. 그들의 생계를 책임지지 않았다. 그러자 연약한 레위인과 선지자 역시 소명을 저버리고 타락하였다. 결국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기회는 없어지고 영적으로 음풍이 횡행하는 어둠의 세상이 되어버렸다. 호세아는 당시 사회상을 탄식하며, 말하기를 마치 “기브아 시대”와 같다고 했다. 

기브아 시대란 무슨 말인가? 호세아가 당시 시대상을 “기브아 시대”와 같다고 할 때의 그 의미가 무엇인가? 사사기 시대에 벌어진 한 사건을 가리킨다. 즉 12 토막 살인사건이 발생한 때를 지킹하는 표현이다. 이 사건은 사사기 19~21장 3 장에 걸쳐 기록되어 있다. 

에브라임 산지 구석에 한 레위 사람이 살고 있었는데, 그에게는 첩이 있었다. 어느 날 그 첩이 집을 나가 친정으로 갔는데 남편 레위 사람이 여인을 데리러 처갓집에 갔다. 첩을 데리고 돌아오는 길에 베냐민 지파의 기브아라는 곳에서 하루를 묵게 되었다. 그 곳에 기브아의 불량배들이 몰려와 집 주인에게 레위 사람을 내 놓으라고 강요했다. 실랑이 끝에 레위사람은 자신의 첩을 대신 내어주었다. 베냐민 지파 불량배들은 밤새 첩을 윤간했고 새벽녘에 남편이 있는 집 문턱에서 죽었다. 아침에 레위 사람은 그녀의 시체를 메고 집에 돌아와 열두 토막 내어 이스라엘 12 지파에 보냈다. 이 사건은 온 이스라엘을 뒤집어 놓아 결국 전 이스라엘은 베냐민 지파를 상대로 전쟁을 벌려 남자를 5 만 명이나 되는 남자를 죽였다. 베냐민 지파가 거의 전멸할 지경에까지 이르게 되었던 사건이다. 그리고 사사기 저자는 사사기를 마감하며 당시 영적으로 암울한 상태를 이렇게 표현한다. 
* 삿 21:25 그 때에 이스라엘에 왕이 없으므로 사람이 각기 자기의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였더라.

당시는 이스라엘의 왕이신 하나님이 엄연히 살아계심에도 불구하고, 백성은 마치 그들에게 왕이 없는 양 각자 소견대로 행했던 시대였다. 호세아 시대가 그러했다는 말이다. 이스라엘의 왕이신 여호와 하나님이 살아 계셔서 선지자들을 보내시며 통치하셨으나 그들은 하나님을 배척했다. 그리고 백성 모두가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쾌락을 추구하고 극도의 음란을 살았던 것이다. 그 결과가 처참한 기브아 12 토막살인 사건과 같은 일어 벌어졌던 것이다. 부법과 탈법 그리고 무질서와 탈종교의 시대가 바로 호세아 시대의 북조 이스라엘이었다.  

 

결론

이 시대를 보기 바란다. 사회 어느 구석에서 음란과 광란이 없는 곳이 없다. 무고한 시민이 공권력에 의하며 처참하게 죽어가고, 증오심이 극에 달한 사람은 무작위로 총을 쏘는 일이 하루가 멀다고 하고 벌어지고 있다. 교회와 성도가 그 어떤 영향력도 미치지 못하여 그저 죽으면 애도하며 어메이징 그레이스(Amazing grace)를 부를 뿐이다. 

기억하자. 하나님은 지금도 우리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부르셔서 선지자와 왕과 같은 제사장으로 불러 세우신다. 사도 베드로는 성도의 영적 신분을 이렇게 규정해 주었다.  
* 벧전 2:5, 9 너희도 산 돌 같이 신령한 집으로 세워지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기쁘게 받으실 신령한 제사를 드릴 거룩한 제사장이 될지니라. --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 

이 시대에 얼마나 개인주의와 쾌락주의 그리고 물질만능주의가 팽배한가! 돈이 우상이고 돈이 신이 다. 암흑의 시대 속에서 촛불은 더 밝게 마련이다. 이런 시대 속에서 하나님은 저와 여러분을  불러주셨다.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우리자, 힘써 하나님을 알자. 하나님은 지금 우리를 이 시대의 선지자와 파수꾼으로 그리고 제사장으로 부르신다. 이것이 왕의 소명이며 명령이다. 왕의 부르심과 명령에 순종해야지 내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해서야 되겠는가? 하나님께로 돌아가 하나님의 말씀에 주의하여 마음에 담고 삶 속에서 말씀대로 살아가는 자가 되자. 영적으로 늘 깨어있어 주의 말씀에 민감하게 반응하며 살아야 할 것이다. 

<기도> 
살아계신 하나님 아버지 감사드립니다. 강력하신 주의 경고를 귀담아 듣게 하옵소서. 진리의 말씀이 생명이요 구원임을 알게 하옵소서. 패역한 시대에 의인 10명이 없어서 망해 버린 소돔과 고모라와 같은 이 세상에 우리를 부르셔서 의인 삼아 주신 그 크신 은혜를 생각하고 더욱 하나님을 알기를 힘쓰고 주의 말씀을 사모하며 순종하게 하옵소서. 거룩하신 주 예수의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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