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이 없다면 나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바울은 서신의 서두에 인사말을 남겼다. “하나님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안에서 은혜와 평강이 있을지어다. 은혜와 평강은 사도바울의 신앙의 고백이고 기초이다. 또한 데살로니가 교회는 바울의 마음에 좋은 기억만 있는 교회이다. 교회만 생각하면 하나님께 감사하고 기도할 때마다 생각나는 교회였다.

데살로니가 교회는 영적 자산이 풍성한 교회이다. 믿음의 역사가 있는 교회이다. 예수그리스도를 나의 구원자로 믿었다. 그리고 경제적으로 어렵고 핍박을 받지만 산을 옮길만한 큰 믿음을 소유한 교회였다. 믿음에 있어서는 작은 산이 아니라 큰 산이었다. 믿음의 저력이 있고 믿음의 역사가 일어난 교회였다. 믿음에 역사가 일어난 교회들을 보라. 믿음으로 인생을 세운 흙수저들을 보라. 믿음으로 일터를 세운 멋진 그리스도인들을 보라. 믿음의 차이가 열매의 차이로 나타난다. 30배 축복을 받을 것인가? 60, 100, 1000, 무한대의 축복을 받을 것인가? 그 이상 받을 것인가? 그것은 믿음과 비전의 차이이다.

데살로니가 교회의 영적 자산은 사랑의 수고가 있는 교회다. 사랑한다는 말만 있고 행동이 없는 교회가 아니다. 사랑에 수고를 아낌없이 헌신하는 교회다. 믿음도 사랑으로 역사하지 않으면 그 믿음은 실체가 없는 것과 같다. 하나님을 믿으면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수고를 힘써 하게 된다. 누구를 얼마나 사랑하는가는 그를 믿는 믿음과 비례한다. 믿음과 사랑은 한 쌍이다.

 

1)사랑이 왜 이리 중요한가?

(1)사랑의 수고가 없으면 나는 아무것도 아니다.

고전13:1-3을 읽으면 앞과 뒤를 연결해는 문장이 있다. “...사랑이 없다면...”

방언과 천사의 말을 할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소리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가 된다.”

사랑이 없다면 나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이다.

내가 예언하는 능력이 있어 모든 비밀과 모든 지식을 알고 산을 옮길만한 모든 믿음이 있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가 아무것도 아니요내가 내게 있는 모든 것으로 구제하고 또 내 몸을 불사르게 내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게 아무것도 유익이 없느니라

(2)사랑에는 수고가 따를 때 아름다운 열매을 얻는다.

사랑은 오래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시기하지 아니하며 사랑은 자랑하지 아니하며 교만하지 아니하며. 무례히 행하지 아니하며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아니하며 성내지 아니하며 악한 것을 생각하지 아니하며, 불의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진리와 함께 기뻐하고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고전13:4-7).

데살로니가 교회는 사랑의 수고를 아낌없이 드리는 교회였다. 교회부흥을 위해서 한국교회 목사님들과 성도들의 열심은 타의추종을 불허할 정도로 열정이 존경스럽다. 오늘날 한국교회의 부흥에는 목회자들과 성도들의 헌신으로 세워진 것이다. 오직 하나님 사랑, 오직 교회사랑, 오직 민족사랑, 오직 땅 끝까지 복음의 증인으로 헌신했기에 가능한 것이다.

성장은 거저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사랑의 수고를 드릴 때 얻어지는 열매이다.성장하는 교회는 많은 사랑의 수고를 드린 교회이다. 사랑의 수고 없이 교회성장은 불가능하다. 인간관계도 사랑의 수고가 있어야지만 관계의 회복과 열매가 일어난다.

2023년 세계스카우트 잼버리대회가 새만금에서 시작되었지만 시작부터 참사가 시작되었다. 역대급 폭염과 강력한 태풍 예고로 인해 큰 위기에 빠졌다. 국제행사가 세계인들의 조롱거리가 되었고, 미국. 영국 등 대회를 포기하는 나라가 늘어났다. 우리 국민들은 위기를 기회로 만들었다. 정부와 기업과 종교단체가 함께 세계스카우트 잼버리대회 숙식과 관광과 교통을 지원했다. 한국교회도 사랑의 저력을 보여주었다. 교회도 본당문을 열고 다양한 문화행사와 숙식및 의료제공을 하였고, 성도들의 봉사로 세계인들의 마음을 얻었다. 사랑의 수고를 통해서 한국교회와 한국의 저력을 보여주었다. 비난으로 시작된 대회가 대한민국을 자랑하는 계기로 국면이 전환되었다. 데살로니가 교회의 심장에 예수의 피가 흘렀고 그 피는 사랑의 수고를 아낌없이 내어주는 교회였다.

 

2)하나님의 사랑은 어떤 사랑인가?

(1)하나님의 사랑은 죄인을 먼저 사랑하셨다.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5:8).

하나님의 사랑은 우리가 죄인이었을 때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죽게 하심으로 자신의 사랑을 보여주셨다. 죄인인 우리를 너무 사랑해서 예수그리스도를 우리에게 보내주셨다. 이것이 하나님의 사랑이다.

호세아에게 하나님은 음란한 여자 고멜을 아내로 맞이하라고 하셨다. 결혼은 정결한 여자와 하는 것이다. 그런데 하나님은 호세아에게 음란한 여자 고멜과 결혼하라고 한다. 호세아에게 하나님이 말씀하시고자 하는 의도가 무엇인가? 고멜은 북이스라엘의 영적 간음, 우상숭배를 지적한 말씀이다. 호세아를 통해서 하나님은 고멜과 같은 음란한 이스라엘 백성들을 여전히 사랑한다는 메시지를 보내고 있는 것이다.

죄악으로 오염된 사람들로 인해 땅이 더렵혀졌다. 그럼에도불구하고 하나님은 여전히 심판의 방망이를 내리치지 않고 계신다. 이것이 하나님의 사랑이다.

그 이유는 아무도 멸망하지 않고 다 구원받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의 긍휼한 마음이다.” “주의 약속은 어떤 이들이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주께서는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하지 아니하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시를 원하시느니라”(벧후3:9).

하나님이 심판을 오래 참으시는 것은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이다. 아무도 멸망하지 않고 모두 다 회개하여 천국백성되기를 원하신다. 이것이 하나님의 사랑이고 마음이다.

하나님이 영원히 참는 것은 아니다. 하나님의 때, 심판의 날이 도적같이 올 것이다. 그날에는 하늘이 큰 소리로 떠나가고 물질이 뜨거운 불에 풀어지고 땅과 그 중에 있는 모든 일이 드러나리로다(벧후3:10).

심판의 날 징조를 보면, 하늘이 큰소리를 내며 떠나간다. 우리가 하늘을 보면 구름이 보인다. 구름으로 덮어주기에 안정감을 느낀다. 심판 날에는 구름이 사라지고 끊 없는 하늘이 펼쳐진다. 두려움과 공포 그 자체이다. 심판날에 물질이 뜨거운 불에 풀어진다. 용광로에 쇠와 나무와 돌과 흙등, 모든 것을 집어넣으면 고체가 액체로 바뀐다. 이처럼 마지막 심판 날에는 지구가 뜨거운 불에 녹아 액체가 되어버린다. 뜨거운 불덩어리 액체가 온 지구를 덮는다. 공포 영화를 보는 것 같다.

우리는 고멜과 같은 죄인들이다. 그럼에도불구하고 하나님의 우리를 먼저 사랑하셨다. 우리가 주님 앞에 돌아올 때까지 참고 견디고 기다리고 계신다.

심판의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 제발 주님의 손을 붙들라고, 마음의 문을 열고 주님을 영접하라고 하신다. 그 간절한 주님의 소리가 들리기를 원한다.

 

(2)하나님의 사랑은 생명까지 받친 헌신적인 사랑이다.

사랑을 희랍인들은 네 가지로 구분한다. 아가페agape_이기심이 없이 주는 사랑, 거룩하고 무조건적인 사랑, 인류를 위한 하나님 자신이 희생한 사랑. 에로스eros_이성간의 사랑, 연인과의 사랑. 에로스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사랑의 신으로 로마신화의 큐피트 또는 아모르에 해당한다. 스토리지 storge_부모자식 사이에 피로 얽힌 사랑, 부모가 주는 애정 같은 사랑. 필리아 philia_친구나 동료간의 사랑, 즉 우정적 사랑을 의미한다. 단순히 좋아하는 것.

하나님의 사랑은 어떤 사랑인가? 바로 아가페 사랑이다. 아가페 사랑의 결정체는 요3:16이다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하심이라

하나님의 아가페 사랑은 죄악으로 죽어가는 이 세상에 독생자를 주신 사랑이다. 독생자의 사랑은 십자가의 사랑이다. 십자가는 하나님의 인류를 향한 구원의 계획이며 선물이다. 십자가는 예수님이 자신의 생명을 던져 인류의 모든 죄악을 씻어 주신 사랑이다. 그 결과 사망에서 생명으로 우리의 삶의 자리가 옮겨졌다. 이것이 하나님의 사랑이다.

하나님의 사랑에는 아버지 하나님의 고통이 있다. 아들을 죽음의 고통과 저주 아래 내버려두신 것이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운명하실 때에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리외쳤다.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십니까? 죽음의 극심한 십자가의 고통가운데 울부짖었다.

예수님은 자신의 생명을 십자가에 던지는 그런 죽음의 사랑으로 우리를 구원하신 것이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사랑은 생명을 드린 사랑이다. 십자가의 사랑은 싸구려 사랑이 아니라 가장 고귀한 값비싼 댓가를 지불한 사랑이다.

너희가 알거니와 너희 조상이 물려준 헛된 행실에서 대속함을 받은 것은 은이나 금같이 없어질 것으로 된 것이 아니요. 오직 흠 없고 점 없는 어린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된 것이니라”(벧전1:18,19).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보배로운 피로 말미암아 우리의 모든 죄를 용서해주셨다. 예수님의 이름만 믿으면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다. 우리는 예수님의 사랑의 수고로 인해서 구원받은 것이다. 사랑에는 수고가 있을 때 기쁨이 충만해지고, 회복과 치유가 일어난다.

사랑의 수고를 아끼지 않는 사람에 대한 좋은 예이다.소에게 무엇을 먹일까 하는 토론하는 세월을 보내다가 소를 굶겨 죽였습니다백의 이론보다, 천의 웅변보다, 만의 회의보다. 풀 한 짐 베어다가 쇠죽 쑤어준 사람 누구입니까? 그 사람이 바로 일꾼입니다.“

이런 사람이 사랑의 수고를 아끼지 않는 사람이다. 사랑에 수고가 있을 때 관계는 살아난다.

도산 안창호 선생님은 개신교인이며 일제강점기의 독립운동가, 교육자, 정치가이다. 원대한 이상을 제시하며 우리민족이 나아갈 길을 밝힌 사상가이다말만하는 이상적인 정치가가 아니였다. 몸소 실천하는 행동하는 그리스도인이었다. 1905년 항일운동단체인 공립협회를 창설. 1907년 비밀결사단체인 신민회를 조직하여 다음세대교육, 계몽강연, 언론, 산업, 문맹타파, 문자교육, 농촌계몽 운동을 펼쳤다. 평양에 대성학교를 설립했다. 교육방침이 정직하게 살자였다. 1913년 독립된 조국의 인재를 양성하는 흥사단을 설립했다. 흥사단은 민족운동의 간부를 양성하려는 목적으로 설립한 훈련단체이다. 1919년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수립했다. 우리의 믿음의 선배들은 사랑의 수고를 기꺼이 지불한 귀한 분들이다. 그 헌신 아래 오늘의 대한민국이 존재하는 것이다. 그 사랑의 수고 아래 오늘의 한국교회가 열매를 따먹고 있는 것이다.

 

(3)하나님의 사랑은 끝까지 책임지는 사랑이다.

13:1“유월절 전에 예수께서 자기가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로 돌아가실 때가 이른 줄 아시고 세상에 있는 자기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시니라

하나님은 우리를 자녀 삼으시고 끝까지 지켜주시고 보호하여 주시고 인도하여 주신다. 하나님은 우리를 버리지 않는다. 왜냐하면 우리 하나님은 선한 목자이다.

요한복음 10장에는 선한목사와 삯군목자를 비교하고 있다. 우리 예수님은 선한 목자이다.

선한목자는 양들을 구원으로 인도한다. 내가 문이니 누구든지 나로 말미암아 들어가면 구원을 받고 또는 들어가며 나오며 꼴을 얻으리라”(9).

선한목자는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한다. 도둑이 오는 것은 도둑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뿐이요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

선한목자는 양들을 위해 목숨을 버린다”. 나는 선한 목자라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거니와”(11). 예수님은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 십자가에 자신의 생명을 드렸다. 우리가 위험에 처해있으면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린다. 이것이 하나님의 사랑이다.

선한 목자는 양들을 아신다. 선한목자는 양들의 형편을 잘 아신다. 나는 선한 목자라 나는 내 양을 알고 양도 나를 아는 것이”(14).

선한목자 되신 예수님은 "우리를 절대로 버리지 않는다". 내가 하늘로 가면 내 대신에 보혜사를 보내주시겠다고 약속하셨다. 보혜사란 헬라어로 파라클레토스이다. ‘다른 사람을 돕거나 변호하기 위해 부름을 받은자란 뜻이다. 바로 성령하나님을 보내주셨다.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리. 그는 진리의 영이라 세상은 능히 그를 받지 못하나니 이는 그를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함이라 그러나 너희는 그를 아나니 그는 너희와 함께 거하심이요 또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 내가 너희를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아니하고 너희에게로 오리라”(14:16-18)

성령하나님은 우리를 부모가 없는 고아처럼 내버리지 않았다. 성령하나님께서 우리를 늘 지켜주셨다.

 

그러나 삯군목자는 어떠한가?

삯군 목자는 양들을 도둑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킨다. 이리가 오면 양을 버리고 달아난다. 양을 돌보지도 않는다”. 삯군목자로 인해서 가정이 파괴되고, 재정이 부도나고, 인생을 도둑질 당하는 분들이 얼마나 많은가? 이단 유혹에 빠져서 인생이 망가지는 분들이 너무도 많다. 삯군목자의 끝자락에는 파괴밖에 없다. 인생도 가문도 세워지지 않는다. 끝자락에는 후회와 낙담과 절망과 회한의 눈물밖에 없다.

우리 하나님은 끝까지 자녀를 고아로 버려두지 않고 사랑하신다. 우리가 이 땅에서 나그네 인생을 마치고 나면 하나님이 직접 지으신 영원한 천국으로 우리의 거처를 옮겨주신다. 그곳에서 영원히 주님을 찬양하며 천국을 누리게 된다. 그러나 삯군목자는 책임지지 않는다. 달콤한 것만 빼먹는다. 그리고 용도가 끝나면 과감하게 버린다. 무엇보다 죽음이후에 삶이 없다. 영원한 지옥불만 기다린다.

 

(4)하나님의 사랑은 우리를 위해 친히 간구하시는 사랑이다.

이와같이 성령도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의 마땅히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8:26).

하나님은 우리의 연약함과 나약함을 아신다. 병들어 지쳐 어찌할 바를 몰라 낙망하고 있을 때, 삶이 너무도 무겁고 때로는 견디기 어려운 순간에 무엇을 기도해야할지 잘 모를 정도로 지쳐있을 때, 가까운 사람들의 죽음 앞에, 자연재해로 인해 살아갈 소망이 사라 젓을 때, 성령 하나님은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대신 친히 간구하신다. 이것이 하나님의 사랑이다.

자녀가 너무도 지쳐 낙망하고 절망하고 있을 때, 부모님이 말없이 눈물로 기도해주는 것과 같이 하나님의 사랑은 우리를 향해 친히 간구하신다.

데살로니가 교회가 궁핍과 환란가운데서도 신앙을 지켰던 영적인 내공은 하나님의 사랑을 실천했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사랑은 영원하다. 하나님의 사랑은 변하지 않는다. 하나님의 사랑은 끝까지 책임지는 사랑이다. 교회는 하나님의 사랑을 실천하는 이땅의 구별된 천국기관이다. 

최원영목사, 본푸른교회, 본헤럴드대표, 서울신학대학교신학박사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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