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살로니가 교회는 환란과 핍박과 재정적으로 궁핍한 공동체였다. 그런데 바울의 마음에 항상 기억나는 공동체였다. 교회만 생각하면 하나님께 감사가 나오고, 기도할 때마다 늘 생각나는 교회였다. 데살로니가 교회의 영적 저력은 믿음의 역사, 사랑의 수고, 소망의 인내를 기꺼이 지불했기에 아가야 온 지역에 아름다운 소문이 퍼졌다. 교회는 대가를 지불할 때 존재감이 생긴다.


1. 데살로니가 교회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었다.(3).


(1)다윗은 낙심하거나 불안해하지 말고 하나님만 바라보라고 했다. 모든 소망은 하나님께로부터 나온다고 했다(62:5).

(2)부자들을 어떻게 가르쳐야 되는가? 사도바울은 정함이 없는 덧없는 재물에 소망을 두지 말고, 모든 것을 넉넉히 주시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고 가르치라고 했다(딤전6:17).

(3)소망의 하나님이 우리에게 모든 기쁨과 평강을 믿음 안에서 충만하게 하심을 기억하라. 성령의 능력으로 소망이 넘치게 하심을 믿고 구하라. 우리 하나님은 소망을 주시는 분이다(15:13).

때로는 삶의 무게로 인해 너무도 지쳐서 아무 희망도 없을 때, 주님 앞에 나아가 말씀과 찬송과 기도의 단을 쌓으면 다시 내안에 소망이 생긴다. 주님은 우리에게 소망을 주시는 분이다.

(4)선지자 예레미야는 이스라엘 공동체를 향한 하나님의 긍휼과 사랑의 마음을 전했다.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을 내가 아나니 평안이요 재앙이 아니니라 너희에게 미래와 희망을 주는 것이니라, 너희가 내게 부르짖으며 내게 와서 기도하면 내가 너희들의 기도를 들을 것이요. 너희가 온 마음으로 나를 구하면 나를 찾을 것이요 나를 만나리라“(29:11-13).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은 불안과 염려와 공포와 재앙이 아니라 평안이다. 미래에 대한 희망이다. 우리에 대한 하나님의 마음은 절망과 좌절이 아니다. 소망가운데 새날을 펼쳐가는 것이다.

(5)인생을 뒤돌아보면서 느끼는 것은 내 능력보다 하나님의 사랑이 더 크다는 것이다. 절망과 어둠이었는데 주님께서 그런 나날들을 희망과 비전과 소망과 꿈으로 바꾸어주셨다. 어둠의 나날들을 웃으며 감사하며 기뻐하며 잘 적응하도록 도우셨다.

30이 넘어 신대원에 입학할 때 대부분의 사역자들은 사회에서 두들겨 맞고 인생의 고난을 경험한 후 인생의 밑바닥에서 주님을 만나고 신학의 길을 걸어갔던 분들이 많을 것이다. 저도 그 범주에 속한다. 신대원을 졸업하고 구리에서 개척교회를 시작했다. 여전히 사회경제적으로 밑바닥인생이다. 그런데 하나님이 꿈을 주셨다. 쓰러진 지하실 교회이지만 하나님이 반드시 세워주시겠다는 믿음의 희망을 약속해주셨다. 내 손에 주어진 돈은 하나도 없었다. 누가 선교비를 보내주겠다는 분도 없었다. “아는 분들에게 제가 개척교회를 시작했습니다. 도와주십시오, 선교편지를 써보지 않았고 부탁하지도 않았다.” 가까운 사람들에게 말하면 대부분 인생의 낙오자처럼 쳐다보는 그 무시와 비웃음, 작은교회를 한다는 그 이유만으로 함부로 말하고 대하는 태도와 마주보기 싫었다. 그래서 오직 힘든 고난의 세월을 온 몸으로 막아냈다. 세월을 뒤돌아보면 하나님은 결코 실망시키지 않았다, 어려운 터널을 견딜 수 있었던 힘은 하나님이 소망을 주셨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큰 복을 주셨다. 그것은 만남의 복이다. 좋은 믿음의 사람들을 동역자로 많이 붙여주셨다. 그것이 인생의 큰 자산이 되었다.


2. 소망에는 인내가 필요하다.


(1)현실과 이상 사이에는 엄청난 간격이 있다. 그 간격을 채워가는 것은 소망의 인내이다. 오직 꿈꾸는 자만이 버틴다는 말이 있다. 아무나 견딜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바로 소망이 있는자 만이 버티고 견딜 수 있다. 소망이 있는 분들은 눈물 젖은 빵을 먹으면서도 감사를 이야기하고 기쁨을 잃지 않는다. 소망이 있는 자는 언제나 언어에 확신이 있다.

비즈니스의 중요한 포인트가 있다. 큰 장사꾼은 꿈을 팔고, 작은 장사꾼은 물건을 판다. 사람들은 물건을 파는 사람에게는 관심이 없다. 그 사람의 가지고 있는 미래에 대한 자산(꿈)에 흥분하고, 그 꿈에 큰돈을 투자한다.

소망을 이루기 위해서는 인내의 세월을 견뎌내야 비로소 그 꿈을 이룰 수 있다. 인생에서 중요한 것 대부분은 지루한 시간을 버텨낸 후에야 비로소 퀀텀 점프“(Quantum Jump, 급격한 성장)한다. 비약적인 발전 없이 스스로 만족할 수 있는 성공을 거두기는 쉽지 않지만 많은 사람들이 지루한 시간을 버텨내지 못하고 도약직전에 좌절한다. 누가 지루한 시간을 버틸 수 있는가? 오직 꿈꾸는 자만이 버틸 수 있다.

하나님이 복주실 때까지 하나님이 내 삶의 자리를 형통하게 할 때까지 그 자리를 소망의 인내로 버틸 수 있어야 한다.

(2)모세는 이스라엘의 지도자로 세움 받을 때까지 왕궁에서 40, 광야에서 40, 지도자로 40년의 세월을 보냈다.

(3)요셉은 17세에 애굽에 노예로 팔려갔다. 모진 고난의 세월을 보내고 성공했다. 고난의 세월 13년을 광야에서 보냈다. 상처의 크기가 일반인들의 고난보다 그 무게가 더 크다. 형제들로부터 버림받고 노예로 팔려갔고, 보디발의 집에서 누명쓰고 감옥에 갇혔다. 출구가 없는 어두운 감옥에 갇혔다. 그가 그 세월을 이겨낸 것은 오직 소망의 하나님을 붙들었기 때문이다.

(4)아브라함은 75세에 고향을 떠나 하나님이 지시하는 땅으로 믿음의 거룩한 출발을 했다.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 이름을 창대하게하고, 너를 복의 통로로 쓰시겠다는 말씀을 믿고 출발했다, 그리고 아브라함이 100세에 아들 이삭을 주셨다. 아브라함의 인생을 살펴보면 대단한 성공을 거둔 것이 없다. 종 하갈로부터 얻은 이스마엘과 100세에 주신 약속의 아들 이삭뿐이다. 한명의 언약의 자식을 얻은 것이 아브라함이 한 일이다. 아브라함은 약속의 말씀을 믿고 고향을 떠나서 그가 자신의 생애에 한 일은 아들 이삭을 세운 것이다. 그것이 전부이다. 그 당대에 얻은 것은 약속의 땅도 얻지 못했다. 열 왕이 그의 허리에서 나온다고 했지만 언약의 아들 이삭 밖에 없었다, 후손들이 바닷가의 모래처럼 하늘의 별처럼 생육할 것을 말씀하셨지만 아들 이삭 밖에 없었다. 가나안땅을 주시겠다고 말씀하셨지만 아브라함 당대에는 자신의 땅을 갖지 못했다. 그 세월을 아브라함은 인내로 이겨냈다.

(5)노아의 시대는 어떻했는가?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가득하고 마음으로 생각하는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한 것을 보시고 하나님이 사람을 지은 것을 한탄하셨다, 악한 사람들로 인해서 하나님의 마음에 근심이 생겼다(6:5,6). 하나님이 이 세상을 보니 땅이 부패했고, 포악함이 땅에 가득했다. 이 땅을 홍수로 심판하기로 작정하셨다. 하나님은 노아에게 물로 세상을 심판할 것을 말씀하셨다. 그리고 방주를 짓는데 100년이 걸렸다. 세상 사람들이 노아를 비웃었고 어리석은 사람이라고 말했다. 그 세월이 무려 100년이다. 노아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산위에서 3아들과 함께 100년간 방주를 지었다, 그리고 하나님이 땅을 물로 심판할 것을 전했다. 회개하고 돌아오라고 강권했다. 아무도 노아의 말을 듣지 않았다. 그 긴긴 세월을 인내로 채운 것이다. 노아 가족만이 홍수심판에서 살아남는 유일한 가족이 되었다.

(6)소망을 이루기 위해서는 인내의 세월을 드려야 한다. 인내가 없이는 꿈과 비전을 이루지 못한다.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은 소망을 인내로 채웠다. 2000년 교회를 개척할 때 하나님께서 분명히 말씀해주셨다. 반드시 교회를 세우시겠다는 소망의 말씀을 주셨다. 23년이란 세월을 이곳에 버텨왔다. 이제 지나온 세월이 너무 아까워서 뒤로 돌아갈 수 없다. 인내하며 주님이 복을 주실 때까지 달려갈 것이다. 여기서 멈추기에는 너무도 세월이 아깝다. 본푸른교회에 헌신한 땀방울과 시간과 정성이 아까워서 멈추지 못한다. 주님이 복을 주실 때까지 소망을 붙들고 더욱 인내하며 달려가야겠다고 날마다 내 자신을 채찍질한다.


3. 부활과 재림과 천국에 대한 소망을 가져라


(1)믿음의 선배들이 현실의 고난을 이겨낼 수 있었던 힘의 원동력은 어디에서 왔는가? 바로 부활에 대한 확신과 천국에 대한 소망이다. 기독교의 역사는 순환역사가 아니다. 일직선 역사관이다. 창조에서 천국까지 일직선이다. 불교처럼 인간 죽고 다시 환생한다는 윤회설을 말하지 않는다.

(2)예수님은 부활 승천하셨다. 주님은 분명히 재림을 말씀하셨다. “....갈릴리 사람들아 어찌하여 서서 하늘을 쳐다보느냐 너희 가운데서 하늘로 올려지신 이 예수는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오시리라 하였느니라“(1:9-11; 살전4:13-18)

(3)우리가 구원받고 주의 사역을 믿음으로 감당하다가 하나님의 때에 죽는다. 죽음은 모든 사람들에게 찾아온다. 죽음 후에는 어떻게 되는가? 믿음생활 하다가 죽으면 낙원에 들어간다. 그리고 주님이 천사장의 나팔소리와 함께 재림하실 때에 첫 번째 부활이 있다. 믿는 자의 부활이다. 천상에서 천년왕국을 보내다가 마지막 악인까지 부활하는 두 번째 부활을 한 후 재판장 되시는 주님 앞에서 심판을 받는다. 예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은 영원한 지옥형벌을 받고,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영원한 천국으로 인도된다. 재판장 되시는 예수님 앞에는 생명책과 행위책이 있다. 우리들의 모든 삶이 행위책에 다 기록되어있다. 이 땅에 살면서 십자가의 사랑과 용서를 실천하며 복음의 증인으로서 충성한 일꾼들은 더 큰 의의 면류관 상급을 받을 것이다. 그러나 어떤 분들은 부끄러운 구원만 받을 것이다. 이런 믿음이 분명했기에 믿음의 선배들은 고난을 이겨낼 수 있었던 것이다. 부활과 주님의 재림과 천국에 대한 분명한 믿음이 있다면 얼마든지 세상에서 당하는 환난을 이겨낼 수 있다.

(4)히브리서11장은 믿음의 장이다. 믿음의 거인들의 이름이 나열되어 있다. 이름도 없이 죽어간 수많은 사람들의 믿음의 이야기는 숭고하다.

1135-40 “여자들은 자기의 죽은 자들을 부활로 받아들이기도 하며 또 어떤 이들은 더 좋은 부활을 얻고자 하여 심한 고문을 받되 구차히 풀려나기를 원하지 아니하였으며, 또 어떤 이들은 조롱과 채찍질뿐 아니라 결박과 옥에 갇히는 시련도 받았으며, 돌로 치는 것과 톱으로 켜는 것과 시험과 칼로 죽임을 당하고 양과 염소의 가죽을 입고 유리하여 궁핍과 환난과 학대를 받았으니, 이런 사람은 세상이 감당하지 못하느니라그들이 광야와 산과 동굴과 토굴에 유리하였느니라, 이 사람들은 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증거를 받았으나 약속된 것을 받지 못하였으니, 이는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여 더 좋은 것을 예비하셨은즉 우리가 아니면 그들로 온전함을 이루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

(5)폴리갑(Polycarpus, 69 ~ 156)><사도 요한>의 제자이다. 초대 <그리스도교 신학자>이며, 1~2세기 <교회의 감독> 중에 <로마 감독, 클레멘트><안디옥 감독, 이그나티우스>와 함께 3명의 위대한 감독으로 불린다.

<폴리갑>은 주 후115년부터156년까지 40년간 <서머나 교회의 감독>으로 그 직무를 수행했는데, 주 후156<서머나>에 대대적인 <기독교 박해>가 닥쳤을 때, 체포되어 화형에 처해졌다.

총독이 처형장 앞에서 폴리갑에게 그리스도를 부인하고, 가이사가 수호신(守護神)이라고 맹세하라! 그리스도를 욕하라!” 그러나 <폴리갑>은 이렇게 대답했다. “나는 86년간 하나님을 섬겼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그 동안 나에게 그 어떤 것도 틀린 것을 주신 일이 없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내가 나의 하나님이시요, 나의 구원자이신 그리스도를 모독할 수 있단 말입니까?“

폴리갑은 화형장앞에서 후세대에 길이 남기는 믿음의 말을 남겼다. “당신은 오직 잠깐 태우고 잠시 후에 소멸되는 불로 나를 위협합니다! 그런데 당신은 악한 죄인들을 위하여 예비된 다가오는 심판과 영원한 형벌의 불을 모르고 있습니다! 당신이 원하는 것을 하십시오!”

<폴리갑>은 장작 단 말뚝 위에 결박되었고, 그는 두 손을 말뚝 뒤로 묶인 채 마지막 기도를 드렸다. “! 전능하신 주 하나님이시여! 당신께서는 오늘 이 시간 나로 하여금 성령 안에서 영과 육의 영생과 부활로 순교자들의 수에 포함되는 영광을 주셨습니다! 당신의 소중한 아들을 인하여 나는 당신을 찬양합니다! 당신에게 영광을 돌립니다!“

즉시 강한 불꽃이 폴리갑의 몸을 둘러쌌고, 이어 사형 집행인의 칼이 이 거룩한 교회 지도자를 찔렀을 때 많은 피가 쏟아져 나왔다. <폴리갑>은 그날 <빌라델비아><그리스도인> 11명과 함께 순교했다.

주님께서 <사도 요한>에게 주신 <계시>를 통하여 <서머나 교회>에 주신 말씀이 있다. “

서머나 교회의 사자(使者)에게 편지하기를, '처음이요 나중이요, 죽었다가 살아나신 이가 가라사대, '내가 네 환난과 궁핍을 아노니, 실상은 네가 부요한 자니라! 자칭 유대인이라 하는 자들의 훼방도 아노니, 실상은 유대인이 아니요 사단의 회라, 네가 장차 받을 고난을 두려워 말라! 볼지어다! 마귀가 장차 너희 가운데서 몇 사람을 옥에 던져 시험을 받게 하리니, 너희가 십일 동안 환난을 받으리라!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면류관>을 네게 주리라!' (요한계시록 2:8-10)“

(16)기독교의 특징이자 핵심 요소는 믿음, 소망, 사랑이라 할 수 있다. 고전 13, 사랑장은 이렇게 결론짓는다.“그런즉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 중의 제일은 사랑이라”(13). 그리스도인은 믿음과 소망과 사랑으로 산다고도 할 수 있다. 어느 하나라도 빠지면 신앙생활은 흔들리게 된다. 믿음은 역사해야 하고 사랑은 수고가 따르고 소망은 인내해야 한다. 그런 살아있는 교회가 이 땅의 희망이다.

최원영목사. 본푸른교회, 본헤럴드대표, 서울신학대학교신학박사, 등
최원영목사. 본푸른교회, 본헤럴드대표, 서울신학대학교신학박사,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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