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수 때에…곡식은 모아 내 곳간에 넣으라.”(마 13:30)

마태복음 13장에 나오는 '알곡과 가라지'의 비유를 배경으로 농산물 추수에 인간 영혼의 추수를 비유하여 만든 추수감사절 찬송으로 1절에서는 추운 겨울 오기 전 먹을 걱정 없이 일용할 양식으로 가득 채워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주의 전에 모여서 기쁨으로 찬양하자 2절과 3절에서는 밭에 뿌려진 씨앗의 비유로 농부가 땀 흘려 밭에 씨앗을 뿌렸는데 알곡은 거의 없고 가라지가 대부분이라면 상당히 기분이 나쁠 것이다. 그래서 화풀이하듯 논이나 밭에 들어가서 가라지를 뽑다보면 뽑은 가라지 보다 더 많은 알곡이 다칠 위험이 있으므로 추수할 때까지 가만 내버려두듯이 .... 우리가 가라지의 형상을 드러내며 악한 행동을 하고 있음에도 하나님께서 가만히 내버려두시므로 회개하고 돌아올 기회를 주셨다. 이제라도 알곡 되어 천국의 기쁨과 영광을 누리는 주의 백성 되게 하소서....라는 간절함의 고백이 담겨있다. 4절에서는 농사꾼이 추수 때를 기쁨으로 기다리듯 우리도 죄와 슬픔과 고통이 없고 기쁨과 웃음과 감사 찬양만이 있는 영원한 하늘나라 천국을 소망하며 믿음 가운데 살아가는 참 성도 되게 해달라는 고백하고 있다.

 

작사자: 헨리. 알포드(H. Alford;1810~1871)

영국 런던 태생의 시인이자 음악가이며, 화가, 평론가, 언어학자, 설교자, 신학자로서 50여권의 저서를 남긴 헨리 알포드(H. Alford;1810~1871)목사가 1844년에 만들었다.

알포드(H. Alford)는 런던 베드포드 로()25 알프레드 플레이스에서 1810년에 태어났다. 알포드는 일민스터 문법하교 졸업 후, 케임브리지 대학을 우등으로 졸업하고 1833년에 목사 안수를 받았다. 여러 교회에서 18년 동안 목회를 한 그는 1853년에 런던에 있는 퀘벡교회로 갔다. 1857년에 캔터베리 대성당의 수석 사제가 되었다.

그는 신학자로서 <호머전집>을 출판하고, 영국 시집과 헬라어 성경을 출판하였다. 그중에서도 신약성경 주서는 불후의 명작이다. 알포드는 16살 때 자기 성경에 이런 글을 남겼다.

나는 오늘 하나님 앞에서 나의 영혼을 새롭게 하여, 내 몸과 영혼을 온전히 하나님께 바쳐, 이제부터 죽는 순간까지 오직 주의 일만을 하기로 맹세한다.”

 

작곡자: 죠지 죤 엘비(G. J. Elvey;1816~1893)

찬송 곡은 25'면류관 벗어서'를 만들었으며 영국 캔터베리 음악가 가정에서 태어나 왕실 아카데미에서 음악 교육을 받고 1835년경 영국 성윈조 교회의 어린이 찬양대 지휘자 겸 오르간 연주자로 50년 가까이 일하였던 죠지 죤 엘비(G. J. Elvey;1816-1893)1858년 만들었으며, 1861년 영국찬송가에 수록되었다. 그는 1871년 루이스 공주 결혼 행진곡을 연주하고 기사의 칭호를 받았다.

 

 

1절 감사하는 성도여 추수 찬송 부르세

추운 겨울 오기 전 염려 없게 거뒀네

하나님이 우리게 일용 양식 주시니

주의 전에 모여서 추수 찬송 부르세

 

김영수 목사│명지대학교 화학공학과 졸업, 침례신학대학교 신학대학원 졸업(M.Div), 호서대학교 일반대학원 목회상담학 수료, 호서대학교 연합신학대학원 목회신학 졸업 (Th.D), 나사렛대학교 음악목회학과 외래교수, 프레이즈 예술신학교 음악치료과 주임교수, 평택대학교 평생교육원 음악치료 외래교수, 아세아연합신학대학교 일반대학원, 상담대학원 외래교수로 그의 저서로는 [심방성구찬송집 (침신대 출판부)], [세메이온 기적강해 3권(갈릴리출판사)], [하늘나라 찬양강해 2권 (갈릴리 출판사)], [아가쏘스 늘찬양강해 전집 10권(기쁜날 출판사)], [성경말씀에 따른 관련 찬송 (기쁜날 출판사)], [찬양과 예배의 실제(기쁜날 출판사)], [야곱의 12아들과 그 지파(기쁜날 출판사)], [21세기 찬송가 해설강해 6권(기쁜날 출판사)], [52주 찬양예배핸드북(기쁜날 출판사)], [52주 찬송가큐티 (도서출판 누가)], [21세기 새찬송가 해설집(기쁜날 출판사)], [여성인물강해(기쁜날 출판사)], [목회종합자료백과 21세기 찬송가큐티3권(기쁜날출판사)], [월간교회성장 설교뱅크에 찬송설교 2년 6개월 정기 연재], [찬송가 강해 630편 완성]가 있다.
김영수 목사│명지대학교 화학공학과 졸업, 침례신학대학교 신학대학원 졸업(M.Div), 호서대학교 일반대학원 목회상담학 수료, 호서대학교 연합신학대학원 목회신학 졸업 (Th.D), 나사렛대학교 음악목회학과 외래교수, 프레이즈 예술신학교 음악치료과 주임교수, 평택대학교 평생교육원 음악치료 외래교수, 아세아연합신학대학교 일반대학원, 상담대학원 외래교수로 그의 저서로는 [심방성구찬송집 (침신대 출판부)], [세메이온 기적강해 3권(갈릴리출판사)], [하늘나라 찬양강해 2권 (갈릴리 출판사)], [아가쏘스 늘찬양강해 전집 10권(기쁜날 출판사)], [성경말씀에 따른 관련 찬송 (기쁜날 출판사)], [찬양과 예배의 실제(기쁜날 출판사)], [야곱의 12아들과 그 지파(기쁜날 출판사)], [21세기 찬송가 해설강해 6권(기쁜날 출판사)], [52주 찬양예배핸드북(기쁜날 출판사)], [52주 찬송가큐티 (도서출판 누가)], [21세기 새찬송가 해설집(기쁜날 출판사)], [여성인물강해(기쁜날 출판사)], [목회종합자료백과 21세기 찬송가큐티3권(기쁜날출판사)], [월간교회성장 설교뱅크에 찬송설교 2년 6개월 정기 연재], [찬송가 강해 630편 완성]가 있다.

많은 교회와 성도들이 강단에다 정말 화려한 추수감사절 꽃 장식을 하고 강단에 수확한 여러 과일과 채소 그리고 쌀 포대 등을 올려놓고 심지어 봉투까지 나누어 주면서 세상 사람들이 즐기는 추석 명절과 같은 분위기의 축제를 갖는 것을 봅니다. 이 같은 모습은 하나님이 기뻐하는 모습이 아닐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 중심에 하나님보다는 인간의 욕심과 자랑이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 십자가 없는 추수감사절은 그 의미가 없습니다.

첫 번째 추수감사절의 본질은 예수 십자가 복음을 놓치면 차라리 죽는 것이 나을 뻔 했다는 데에, 그래서 그런 신앙을 계속 지킬 수 있었음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현실적으로 아무리 풍요하고 형통해도 예수가 없다면 죽는 것보다 못하다는 뜻입니다. 역으로 말하면 지금 엄청난 고난 중에 있으며 전혀 호전될 기미가 없고 더 큰 고난이 겹쳐서 죽음과 방불할지라도 예수 십자가 안에 있기에 너무나 기쁘고 감사하다는 뜻입니다.

두 번째 추수감사절의 본질은 감사의 기쁨을 이웃과 함께 나누는 것이었습니다.

인디언들이 볼 때는 백인들은 모든 면에서 자기들보다 문명이 월등하게 발달된 줄 알았을 것입니다. 집을 짓는 것이나 가구나 도구를 봐도 그렇고, 입고 있는 옷만 해도 달랐을 것입니다. 간단히 그들이 타고 온 큰 배만 봐도 쉽게 인정이 되었을 것입니다. 거기다 그들이 고향을 등지고 대양을 건너와 생면부지의 땅에서 사서 고생하는 이유가 무척 궁금했을 것입니다. 한 가지 더 이해가 안 되는 것은 항상 새까만 색의 작은 책을 펼쳐서 읽고 기도하며 예배를 드리는 것이었습니다. 배 안에서 월동(越冬)할 때도 종일 기도와 말씀과 찬양으로 지냈다고 합니다. 이렇듯 도무지 기뻐할 수 없는 그 고달프고 어려운 가운데서도 진정으로 감사하며 찬양했습니다. 최소한 어떤 어려움에도 평강을 잃지 않았습니다.

세 번째 추수감사절은 십자가 복음을 전했습니다.

인디언들의 도움으로 첫 수확을 거둔 후 너무 감사한 나머지 씨앗을 나누어준 인디언들을 초청하여 같이 식사를 하였습니다. 이때 서로 말이 안 통하지만 손짓발짓으로 십자가 복음을 전했을 것입니다. 자기들이 이렇게 살아서 함께 감사의 제사를 드릴 수 있는 것은 예수님이 자신들을 대신해서 죽은 은혜와 사랑 그리고 돌보심 때문이었다고 자랑했을 것입니다. 그러면서 이 땅에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는 것이 자신들의 소명임을 더욱 확신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들은 주의 전에 모여서 어떤 자세로 추수감사절을 지키고 있습니까? 오히려 경제위기를 만나 아무것도 드리지 못한 채 예배에 참석하였다가 너무나 호화스럽게 차려진 강대상의 꽃 장식들을 바라보며 나는 하나님의 축복에서 제외된 사람 같구나! 하는 이질감과 열등감을 느끼게 해서 교회를 멀리 떠나게 하는 우리의 모습은 아닙니까?

과연 우리의 추수감사절은 인디언들이 의아해하며 궁금증 속에 저들이 죽음과 고생을 자처하면서 까지도 이곳까지 와서도 감사하는 모습을 바라보며 저들이 믿는 하나님은 어떤 하나님일까?에 대한 경외심을 갖게할 정도로 없는 가운데서도 함께 감사와 복음의 기쁨을 나누려는 섬김과 나눔과 격려의 자리가 되고 있습니까?

그렇지 않다면 우리는 잘못된 추수감사절을 보내고 있는 것입니다. 그저 먹고 마시고 나누는 즐거움의 인본적인 추수감사절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이 힘들고 어려운 글로벌 경제위기가 다하는 그 날까지 여호와 하나님께서 일용할 양식과 아울러 오순절 성령 충만의 역사로 한국교회를 세워주실 것을 소망하며 어려운 이웃들을 돌아보는 추수감사절이 되어야 합니다.

 

없는 중에도 하나님께 감사하고

복음의 기쁨을 이웃과 나누는 삶

 

2절 이 세상은 밭이요 주는 씨를 뿌리네

좋은 곡식 싹 날 때 가라지도 나도다

싹과 잎이 자라서 열매 맺게 되나니

우리들을 온전한 알곡 되게 합소서

 

2, 농부가 씨를 뿌릴 때 가라지도 있지만 추수 때에는 알곡 되게 하소서

본문 마태복음 1310절부터 23절의 말씀을 보면 '길가 밭' '돌짝 밭' '가시떨기 밭' '좋은 땅' 4가지 밭의 비유가 나옵니다. 그리고 이 4가지 밭에다 씨를 뿌렸는데 오로지 좋은 땅에 떨어진 씨앗만이 결실 하여 "혹 백 배, 혹 육십 배, 혹 삼십 배가되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제가 울릉도를 방문하고 와서 느끼는 것은 거기는 평지가 거의 없고 모두가 가파르고 척박한 땅이기 때문에 씨를 심을 수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지 씨앗을 심어서 갖가지 작물을 생산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살고 있는 땅은 얼마나 기름지고 좋은 땅입니까? 그런데도 감사가 없습니다. 불평, 원망, 낙심, 염려가 저들을 장악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더불어 말합니다. 좋은 땅이다 보니 알곡과 쭉정이도 함께 자란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농부에게는 알곡과 쭉정이 모두가 다 필요한 것이 아닙니다. 오로지 알곡만 필요로 한데, 씨 자체만 가지고서는 알곡과 가라지가 잘 분간이 안 되기 때문에 땅에다 심어 그 나오는 싹을 보고서야 알곡과 가라지를 분명히 구별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막상 알곡과 가라지를 구분할 정도가 되면 이미 곡식이 다 성장되어 있어 자칫 가라지를 뽑다가는 알곡도 다칠 위험이 더 많기 때문에 가만 두었다가 마지막 추수 때에 알곡은 모아 곡간 안에 드리우고, 가라지는 모아다 불에 태워버리듯 마지막 하나님의 나라가 임할 때에도 참 성도(알곡)와 거짓 성도(가라지)를 분별하여 천국과 지옥으로 보낸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 2023년을 마감하면서 올해는 이렇게 힘들었지만 내년에는 하나님 앞에 다섯 달란트, 두 달란트 받은 종처럼 더 많은 알곡을 주님께 드릴 수 있게 하옵소서. 기도하며 맞이하는 추수감사절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3절 우리 주님 오셔서 곡식 거둬들이고

밭에 있는 나쁜 것 모두 소멸하실 때

가라지는 골라서 불에 던져 태우고

알곡들은 곳간에 길이 쌓아 두시리

 

2절이 알곡에 대한 내용이라면 3절은 가라지에 대한 내용입니다. 가라지라는 단어가 마태복음 13장에 여덟 번이나 나옵니다. 이것은 가라지가 우리 곁에 상당히 많다는 것과 또한 가라지의 영향을 받지 않도록 경각심을 가지고 깨어 믿음 안에 살라는 것입니다.

가라지는 여러 종류가 있는데 그 중에 흔히 볼 수 있었던 가라지는 밀과 아주 흡사한 가라지로서 그 이름을 깜부기라 했습니다. 이 깜부기는 일종의 독초로서 가라지를 먹으면 구토가 나고 심하면 생명을 잃을 위험성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위험성이 있는 가라지는 초기 단계에서는 밀이나 보리와 잘 분간하기가 어렵습니다. 수확기가 되면 밀과 쌀은 고개를 숙이는데 깜부기 나 피 같은 가라지는 꼿꼿하게 서 있어서 쉽게 구별이 됩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 같은 가라지를 뽑으려 밭이나 논에 들어갔다가는 알곡까지 밟아 수확을 망치는 위험을 가져오기 때문에 수확기까지 그냥 방치해 두었다가 수확할 때 가라지를 뽑는 것입니다.

요사이 저는 한 가지 궁금증이 있답니다

추수감사절이 다가오면서 교회들이 노인들을 초청하면서 선물+1만원을 봉투에 담아서 준다고 합니다. 저는 돈 봉투에 대한 정당성을 어디서도 찾을 수가 없어서 고민입니다. 그냥 전도지+선물로는 안 되는지. 왜 돈을 뿌리는지 정말 이해가 안 됩니다. 교회들이 왜 이렇게 하는지 슬프기도 합니다. 코로나 19로 떨어진 교인들을 일확천금 노리듯이 돈으로 교인수를 채우려고 합니다. 그 돈 가지고 선교비나 어려운 이웃 찾아가서 왼손이 모르게 도움을 주면 좋지 않을까요? 지금 겨울이 다가와서 무료연탄 나눔도 한창인데...거기다 선교나 하지...'돈 놓고 돈 먹으려는 것 같아서...'기분이 썩 좋지 않습니다.

사도 베드로는 베드로전서 47절부터 8절에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웠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여 기도하라, 무엇보다도 열심으로 서로 사랑할지니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느니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글로벌 경제위기에 사단이 물질을 가지고 믿는 사람들을 더욱 조롱하며 시험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정말 힘들고 어려워도 좋은 알곡이 되기 위해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는 믿음으로 이 모든 유혹을 뿌리치며 추수감사절의 기쁨과 영광을 통해 더 멋지고 아름다운 결심을 맺어가는 하나님의 사람들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10:25).

 

4절 주여 어서 오셔서 우리 거둬 줍소서

죄와 슬픔 중에서 우리 건져 줍소서

모든 성도 영원히 하늘 집에 이르러

천군 천사 어울려 추수 찬송 부르리

 

4절에서는 성도들 영원한 하늘 집에 이르러 천군천사 어울려 추수찬송 부르게 하소서 노래하고 있습니다.

감사하는 생활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신앙생활입니다. 성경은 감사가 신앙의 본질이며, 감사하는 삶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계시하고 있습니다. 반대로 불평하고 원망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는 것입니다. 성도의 삶 속에 항상 감사와 찬양이 쉬지 아니할 때 그 삶은 항상 즐거움과 기쁨으로 가득 차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언제부터인가 성도의 삶 속에 감사의 삶은 사라지고 축복과 기적만 바라보는 이기적인 인본주의 신앙이 샤머니즘의 신앙이 자리를 잡아가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 간절한 기원은 있으나 감사가 없고 축복은 바라나 희생과 고난은 회피하는 그런 이기적인 신앙형태의 모습이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런 모습을 타파하고 범사에 감사하는 성도의 모습이 되기를 원합니다.

오늘 메일에 사랑하고 사랑받고란 제목으로 따뜻한 하루에서 글을 보내왔습니다.

어느 한 농부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농부는 집 밖에서 일할 때면 수시로 휘파람을 불면서 일을 하였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이웃에 새로 이사 온 남자가 내내 휘파람을 불며 일을 하는 그 농부를 보고는 궁금하여 물었습니다. "선생님은 일하실 때 즐겁게 휘파람을 불던데..혹시 무슨 일이 그렇게 즐거우신지요?" 그러자 농부는 그를 집으로 안내했습니다. 집에 들어가 보니 농부의 부인이 앞을 전혀 보지 못하는 장애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농부는 남자를 밖으로 데리고 나와서는 조용히 말했습니다. "제가 항상 휘파람을 불면서 일하는 이유는 시각장애가 있는 아내가 저를 볼 수 없기 때문입니다. 아내는 제가 휘파람을 불어야만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있고 안도감을 느낄 수 있다고 합니다. 휘파람은 제가 아내 곁에 있다는 것을 알려주기 위함이지요."

2023년 전쟁과 천재지변의 공포와 글로벌 경제위기 속에서도 믿는 형제들이 서로의 가정에서 또는 교회에서 함께 이런 고백을 함으로 추수감사절의 기쁨이 두 배가 되기를 희망합니다. “당신의 사랑과 격려와 인정으로 인해 아무리 힘들고 고된 일이 있어도 감사함으로 이겨낼 수 있었습니다. 당신과 함께 믿음의 여정을 마지막까지 가는 것이 나의 가장 큰 기쁨이요!” “어려운 가운데서도 범사에 감사하는 당신을 보면서 나도 예수님을 믿고 싶습니다.”

이런 복음의 소리 행복의 소리가 가정과 교회에 충만할 때 분명 천군천사도 함께 어울려 우리가정과 교회를 축복해 줄 것입니다. 이런 복된 아름다움이 가득 넘쳐나는 추수감사절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말씀 관주

1

감사하는 생활 *23:16-17,16:16-17,2:7,3:15,살전 5:18

일용양식 주시는 주 *111:5,136:25,6:11,31-33,고후 9:8,11

추수 찬송 부르세 *144:13-15,2:24-26,4:35-36,14:17

2

이 세상은 밭 *13:18-23,38,고전 9:10,6:7-8

씨 부리는 주 *65:9,13:3,37,15:1

알곡과 가라지 *13:25,30,39-40

3

가라지는 불에 태움 *13:30,40,15:6

알곡 거둬들임 *3:12,13:30,3:17

4

주여 어서 오소서 *벧전 4:7-8,5:7-8,22:20

죄와 슬픔에서 건지심 *1:21,딤후 4:18,19:9

하늘 집에서 영원히 *22:2,14,25:46,살전 4:17,22:5

 

 

관련 찬송

공중 나는 새를 보라 588

넓은 들에 익은 곡식 589

논밭에 오곡백과 590

저 밭에 농부 나가 591

감사하세 찬양하세 5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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