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만이 공감능력이 있다. 동물들은 생존을 위한 애정 또는 욕구만 가지고 있을 뿐이다. 이기주의는 동물적 생존방식이다. 공감은 하나님의 성품을 가진 사람의 생존방식이다. 지금까지 인류는 이 문제로 다퉜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그러나 이 문제는 싸우고 논쟁을 벌인다고 해결되지 않는다. 

수천 년 동안 종교와 인문학에서는 이것을 해결하기 위해서 ‘인간애와 공감’을 가르쳤지만 해결되지 않고 있다. 왜냐면 타락한 인간은 공감하려고 하지 않기 때문이다. 다만 모든 사람이 자신을 이해해주기 바라는 이기적 사고로 가득 차 있다. 

   예일대학 월터스토프(Nicholas Wolterstorff, 1932~)교수는 기독교 철학자이지만 세상에서도 명성을 얻은 철학자다. 그는 25세의 촉망 받던 아들 에릭을 산악사고로 잃었다. 그는 아들의 장례식에서 ‘내 자신이 여기에 묻힌 것’이라고 했다. 그의 글 ‘나는 사랑하는 사람을 잃었습니다’에서 수많은 처절하고 몸서리치는 질문을 하나님께 한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사람은 고통을 당할 때 고통을 빨리 털어 내야 한다는 생각이 팽배하다. 그러나 고통을 떨쳐버리는 것은 불가능하다. 평생 안고 갈 수 밖에 없다. 남들이 보기엔 슬픔을 계속 갖고 있는 것이 비합리적이고 이상하게 보일 수 있지만 아니다. 화나면 때리고 두려우면 도망치면 되지만, 사랑하는 사람을 잃었을 때는 사랑하는 만큼 슬플 수밖에 없다.” 

   월터스토프 박사는 “자녀가 몇 명이냐?”는 질문을 받으면 가장 고통스럽다고 했다. 사고당한 아이를 빼고 4명이라고 답해야 할지, 5명이라고 답해야 할지 몰라서다. 그에게 “자식이 4명이나 남아있지 않느냐”고 하지만 위로가 아닌 더 큰 고통을 가져다준다고 하며 ‘자식은 아무 때나 구입할 수 있는 구슬이 아니라’고 했다.   

신앙생활은 하나님의 마음을 알아가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마음을 이해하려면 부모가 되어보라’고 한다. 아니면 ‘목회자가 되어보라’고도 한다. 그러나 그것으로 하나님을 이해할 수 없다. 자신의 입장에서만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해가 되지 않을 때에도 사실을 받아주고 당사자의 입장에서 해결해 주고자 하는 마음을 가지면 용서하고 용납할 수 있다. 품어 줄 수 있다. 그것이 공감이다. 주님의 마음으로 공감하여 아픔을 이해하는 공동체가 되기 바란다. 

임동헌 목사(광주첨단교회)

임동헌 목사(광주첨단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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