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로움은 내면의 공허함, 고독은 내면의 충만함

하나님은 아담을 보시고 ‘사람이 혼자 사는 것이 좋지 않다’고 하시며 하와를 돕는 배필로 지으셨다. 어떤 이유에서든지 사람이 혼자 사는 것은 좋지 않다. 돕고 사는 것이 창조의 섭리다. 혼자 산다는 것은 외로움이요, 고독이다. 
그런데 외로움과 고독은 그 성격이 다르다. 외로움(loneliness)은 ‘홀로되어 쓸쓸함’이고 고독(solitude)은 ‘타인과 접촉하지 않은 혼자의 상태’다. 외로움은 감정적이고 고독은 존재방식이다. 외로움은 의존감이고 고독은 자존감이다. 외로움은 단절과 고립된 상태이고 고독은 홀로 존재하는 방식이다. 리처드 포스트(Richard J. Foster)는 ‘외로움은 내면의 공허함이며, 고독은 내면의 충만함’이라고 했다.  

그런 의미에서 외로우면 사람이 곁에 있어도 쓸쓸하다. 성공한 사람들 곁에는 많은 사람들이 몰려든다. 무리에 둘러싸여 겉으로는 화려하지만, 내면의 쓸쓸함은 사람들이 몰려듦으로 면할 수 없다. 알코올과 마약 등에 중독되는 이유는 그 공허함을 달래기 위해서다. 

내적 자존감이 있는 사람들은 외로움을 타지 않는다. 혼자 있어도 쓸쓸하지 않다. 친구가 떠나가면 자신이 스스로 친구가 되어준다. 사색하며 자문자답하는 친구 말이다. 자신의 가치관이 자신의 친구다. 이것은 성격과 무관하다. 친구가 있어주면 좋고 떠나가도 배신감을 느끼지 않으며, 관계중독에 빠지지 않는다. 

오히려 사람들에게 시달리는 것보다 자신과 대화하며, 자신의 일에 몰두하는 것이 유익하다. 이것이 고독을 즐기는 것이다. 그래서 고독은 외로움의 감정이 아니고 타인을 의존하지 않는 독립적 존재의식이다. 주님은 얼싸절싸 군중에게 자신을 의탁하지 않으셨다. 오히려 군중을 떠나 한적한 곳에 있는 시간을 많이 가지셨다. 
군중심리에 빠져드는 것은 자신을 군중 속에 내 던지는 무모함이다. 대부분의 예술가, 발명가, 과학자, 철학자, 사상가, 작가 등은 고독과 친해진 사람들이다. 공자는 나이 마흔을 불혹(不惑)이라고 했는데, 고독을 아는 나이라고 해석하고 싶다. 
현대인들은 고독의 기회를 상실하고 있다. 잡다한 미디어에 노출되어 타인에게 조종당하여 자신을 잃고 있다. 인터넷에서 시키는 대로 사는 것이 자신의 정체성인가? 그것의 진위도 모른 채 휘둘려 살고 있어 안타깝다. 주님의 고독을 본받자. 수다의 즐거움보다 고독의 기쁨을 누리자. 

임동헌 목사(광주첨단교회)
임동헌 목사(광주첨단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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