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의 핵심진리는 창조주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 십자가의 은혜를 믿는 것이다. 참 신앙은 살아계신 하나님과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에 대해 고백하는 것이다. 유심론자(唯心論者)들도 신의 존재를 부정하지 않는다. 
20세기 최고의 과학자인 아인슈타인은 “나는 신의 존재를 믿는다”고 했다. 그러나 그들이 믿는 신은 전지전능하신 존재일지는 몰라도 구원자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은 아니기에 기독교 신앙에 근거한 것이 아니다. ‘그래도 그게 어디냐’고 반문할지 모르지만, 기독교 신앙이 아니다. 

   그런데 더 큰 문제는 ‘십자가의 은혜를 왜곡시키거나 값싸게 여기는 것’이다. 히틀러의 나치정권 때 활동했던 본회퍼(Dietrich Bonhoeffer, 1906~1945, 루터교 목사)는 ‘제자도의 대가(The Cost of Discipleship)’에서 ‘값싼 은혜’에 대해 이렇게 정의한다. “값싼 은혜는 회개 없이 죄를 용서하는 설교요, 공동체 훈련 없이 베푸는 세례요, 죄의 고백 없이 참여하는 성만찬이요, 인격적인 참회 없는 면죄의 확인이다.”  
덧붙여서 “순종 없는 은혜, 십자가 없는 은혜, 도성인신하신 예수 그리스도가 없는 은혜도 값싼 은혜다. 각고의 훈련 없는 그리스도를 닮아감, 자기부인 없는 제자도, 사람들에게 인정받고 높임받기를 원하는 리더십, 직분을 계급으로 아는 자칭 ‘주의 종들’, 복 받기를 원하지만 희생을 거부하는 성도들, 이런 것들로 가득한 교회가 기독교를 ‘값싼 은혜’의 종교로 만들었다.”고 했다. 

   깊이 생각해볼만한 말이다. 그러나 자칫 공로주의에 빠져 내 공로로 은혜의 부족함을 채우는 것으로 생각하거나, 구원을 완성하는 것으로 여긴다면 더 심각한 오류에 빠진다. 하나님이 베푸시는 은혜를 인간이 손을 내밀어 받았기에 구원의 신인공동 사역으로 여기는 것은 ‘반(半)펠라기우스주의’ 사상이다.  
어느 누구도 자신이 십자가를 지고 죗값을 치를 수 없기에 하나님이 몸소 십자가의 형틀에서 죽으신 것이 십자가의 은혜다. 그러므로 구원의 기쁨은 값비싼 은혜를 받은 감동, 감격, 감사가 충만한 것, 자체다. 
금년 우리교회의 표어를 ‘감사를 넘어 감격으로’라고 정했다. 모든 일에 감격이 넘치는 감사가 있길 바란다. 피동적이고 형식주의에 빠져있는 신앙이 아닌, 십자가의 은혜로 역동적이고 감성이 충만한 삶이기를 바란다. 

임동헌 목사(광주첨단교회)
임동헌 목사(광주첨단교회)

 

저작권자 © 본헤럴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