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을 자기 계발의 수단 삼아야

 

우리는 여행을 할 때 환상적인 모습에 감동한다. 그리고 그곳에서 평생을 살면 그 환상이 그대로 유지될 것이라 생각하기도 한다. 그러나 금방 여기서 살면 이 환상이 유지되지 않을 것도 안다. 그런데 그 패턴을 반복하고 있다. 결국 내가 살고 있는 일상에 대한 불만을 표현하는 것이다.

내가 현재 살고 있는 일상을 아름답고 환상적이게 볼 수 있는 방법이 있을까?

일상을 병적으로 아름답게 보는 사람은 나르시스트(narcissist)이다. 즉 사람이 한쪽으로 지나치게 편향되면 병적이다. 사람은 항상 중용(中庸)을 해야 하는데, 사람은 흔들리는 갈대이기 때문이다. 사람은 만족을 모르는 존재이고, 욕심이 끝이 없는 존재이다. 그래서 항상 불안하고 초초하다. 그래서 그 일상을 떠나면 환상, 만족을 잠시 느낄 수 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via media를 동양에서 ‘중용’으로 번역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개념이 동양의 중용 개념과 유사하기 때문일 것이다. 즉 동양과 서양 윤리의 공통분모 중 하나가 ‘중용’이다. 공자의 손자인 자사가 쓴 중용(中庸)은 편향을 지양하는 것에서 ‘자기계발’까지 포함한다고 한다.

일상에서 아름다움을 발견하기 위해서는 자기 계발이 필요한 것이다. 여행은 현재 불만의 탈출과 위로의 수단이 아니라, 자기 계발의 수단이 되어야 한다. 여행의 가장 쉬운 목적은 현재에서 탈출하는 수단이 될 때가 많다. 그럴 때 탈출에서 간 곳이 환상이 아니면 자기 프로젝트가 실패하기 때문에, 자연스럽고 필연적으로 그곳은 환상이라는 답을 표출할 수 밖에 없다. 즉 여행지가 아름답기 때문에 아름다운 것이 아니고, 현재 자기 안에 답이 이미 정해졌기 때문에 그 답에 따라서 아름답다고 놀라는 것이다. 그것은 자기 계발에 막힌 현재에서 분위기 전환을 갖는 잠시이다. 그러나 만약 현재에서 자기 계발이 진행된다면 굳이 여행을 갈 필요가 없다. 여행하는 시간은 낭비가 된다.

세계사에서 여행을 하지 않은 위인을 임마누엘 칸트(Immanuel Kant, 1724-1804)이다. 칸트는 쾨니히스베르크(Königsberg, 현재 러시아 땅 칼리니그라드)에서 태어나 살고 죽을 때까지 그 도시 안에 있었다. 어떤 사람은 여행을 하지 않은 칸트의 식견에 의심을 갖기도 한다. 고대 철학자 탈레스는 알렉산드리아를 여행했다고 한다. 칸트의 탁월성은 여행하지 않았음에도 세계의 모든 상황을 파악한 것이다(간접정보만을 가지고서). 칸트가 여행을 하지 않은 것은 빈약한 건강상태라고도 한다. 그러나 자기계발에 집중하면 많은 것들을 희생해야 한다. 칸트는 도시 밖에는 대학의 초청, 여행 등을 거부했다.

사람은 자기 계발에 대해서 깊이 관심을 가져야 한다. 자기 계발을 위한 여행을 추천한다. 자기 계발을 위한 선택을 추천한다. 사람은 죽을 것을 알고 있다. 그래서 자기 계발의 동력이 상실된다. 죽으면 끝일 인생에 힘들게 자기 계발을 할 필요를 느끼지 못하기도 한다. 그러나 인간의 자기 계발은 당위성이고 자연이고 특권이다. 자기 계발을 하지 않으면 인간성의 부재가 발생해서 탈인간적인 모습이 나오게 되고, 현재를 만족하지 못하게 된다. 결국 일탈, 일상생활에서 탈출을 해야 환상을 볼 수 있다. 그러나 자기 계발 속에서 환상을 본다면 일상에 환상은 가득하다.

여행은 탈출의 통로가 아닌

자기 계발의 수단

자기 계발! 신이 인간을 원석으로 제공하셨다. 금강석은 가공되지 않으면 돌맹이이고, 가공되면 다이아몬드 보석이 되기도 하고, 가장 강력한 톱, 절단 도구가 되기도 한다. 그러나 가공되지 않은 원석은 가공될 가치만 있다. 원석에서 다이아몬드 결정체를 얻기 위해서 거의 모든 부분을 절제해야 한다(1캐럿을 얻기 위해서 2톤의 원석이 필요하다고 한다). 우리는 나에게서 절제되어야 할 돌덩이를 사랑하면서 환상을 추구한다. 그 인생이 어떻게 아름다울 수 있을까? 나에게 있는 돌덩이들을 제거하자! 그러면 다이몬드처럼 영롱한 보석이 될 것이고, 그 과정은 자기에게 아름다울 것이고, 그 결과는 모두에게 아름다움이 될 것이다. 결과를 원하는 것이 아니라 그 과정의 아름다움을 즐길 수 있기를 기대한다. 결과까지 이른 위인들은 많지 않다. 뛰어난 철학자, 영웅들은 당시에 결코 평탄한 삶을 살지 않았다. 가장 대표적인 인물은 우리의 영웅 충무공 이순신 장군이다. 그럼에도 그가 끝까지 유지할 수 있었던 동력은 무엇이었을까? 인생은 알 것같지만 전혀 모를 일이다. 생명을 걸고 일할 수 있는 어떤 계기를 갖는 것이 인간의 탁월성의 한 부분이라고 말할 수 밖에 없다.

형람서원 고경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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