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태는 원래 동식물의 성장 과정에서 탈바꿈 현상을 지칭하는 말이었으나 성적 욕구와 연관하여 비정상적이란 면에서 변태(sexual perversion)의 의미를 지니게 되었다. 성욕이란 관점에서 정상과 비정상을 구분 짓는 잣대는 동서양이 다르며 변태는 성 도착(paraphilia)의 의미와도 상통한다. 충동적이고 중독성 강한 변태는 가정 파괴의 한 원인으로도 작용한다. 교회가 성을 타부시하는 사이에 사탄은 매우 공격적으로 존귀한 성을 무기화했다.

 

음란은 음탕함과 난잡함이 뒤섞여 불결감과 수치감을 불러일으킨다. 음란을 버리지 않으면 성적 본능을 숙주 삼아 힘을 기르는데 포르노 영상을 기웃거리거나 관음증으로 표출되면 음란기가 있다는 증거이다. 음란을 버리지 못하면 영과 몸이 더러워진다. 음란의 천적은 거룩함이다. 약함은 능력의 하나님을 등짐으로 마주치는 당연한 결과이다. 항상 죄의 가능성에 열려 있는 존재로 본성적 약함을 극복하려면 강한 하나님을 철저히 의지해야 한다.

 

예고 없이 찾아든 권태는 안정된 삶의 기반을 송두리째 흔들어놓는다. 갑자기 사람이 싫고 일이 손에 잡히지 않는다. 영혼이 생기를 잃고 매사에 싫증을 느낀다. 권태감을 다잡지 못하면 회복하는데 애를 먹는다. 권태를 가져오는 요인들은 의외로 다양해서 대처하기가 쉽지 않다. 영원할 것 같던 결혼과 신앙에도 권태기란 것이 있다. 삶의 첫 자리로의 회귀, 일상의 과감한 탈피, 침묵과 안식을 위한 짧은 여행으로 돌파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무기력은 영혼과 육신이 활기를 잃어버려 느끼는 허전함이다. 자신의 영혼이 속 빈 강정처럼 텅 비어있음을 체감하면 삶의 동력이 끊긴 삶은 아무런 추력도 없이 제자리를 무의미하게 맴돌 뿐이다. 의욕 상실, 회의감, 무관심 같은 심적이고 영적인 조짐만이 아니라 피로감을 지나 중근육무력 같은 몸의 이상 증세를 느끼면 삶의 균형이 죄다 깨져버린다. 영육간에 활력을 되찾기 위한 노력을 해야 한다. 이 경우에도 기도와 말씀은 최선의 해법이다.

 

회개를 위한 상한 마음이 아닌 모든 상한 마음은 삶을 지치게 만든다. 잔인한 말(15:4)이나 과격한 행동으로 마음이 상할 때도 있지만 소원이 제대로 성취되지 못해도 상심에 젖는다(13:12). 심장이 터져버릴 듯한 아픈 환경에 놓일 때 가장 많이 상하는 것은 마음이다. 가시 돋친 비판과 뒤틀린 관계도 상심의 원인이다. 상한 마음을 아물게 하려면 마음이 상한 자를 고치시는 하나님을 철저하게 의지하는 것이다. 달리 길은 어디에도 없다.

 

영도 찢어진다. 마음도 찢어지는데 영이 찢어지지 않을 리 없다. 구부러지지 않은 영이 죄로 인해 구부러졌듯 원래 찢어져선 안 될 영이 찢어진다. 인간의 수다한 죄가 영을 갈기갈기 찢어버린다. 허나 영은 찢어져도 죽지 않는다. 죽음보다 질긴 것이 영혼의 생명력이다. 찢어진 영을 밖에서 살피면 곧 상처 난 영혼이다. 아담의 후손인 모든 인간에게는 영혼의 상처 자국이 있다. 죄로 인한 것이다. 죄를 버려야 상처도 아물고 찢어진 영도 온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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