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절이 하 수상하니 어떤 사람이 되어야 마땅한가? 등잔에 기름 준비하여 어둠의 터널을 지나야 하지 않을까? 재앙의 쓰나미가 기지개를 켤 때면 이미 늦다. 개미는 추운 겨울을 위해 여름부터 양식을 준비한다. 깨고 깨어 지킬 것은 자신의 영혼과 교회의 순수함이다. 메네 메네 데겔 우바르신은 다름 아닌 우리 자신의 영적 토대이다. 자로 척량하니 길이가 짧고 저울로 다니 가볍다. 성령의 도우심으로 기도의 길이를 더하고 말씀의 무게를 늘려야 한다.
세월이 새 단장을 하고 얼굴을 내밀 때마다 세상은 당찬 포부와 알찬 계획으로 들뜬다. 금년도 예외는 아니어서 개인이나 교회, 사회나 나라 할 것 없이 좋은 날의 도래를 희망하며 밝은 모습이다. 전망은 부정적이다. 여러 수치와 통계 자료가 암시하는 것은 잔뜩 흐리고 잠깐 갠 날씨였다가 이내 천둥을 동반한 폭우다. 최악의 경우를 염두에 두고 대비책을 강구하는 것은 경험이 가르쳐주는 팁이다. 치료부터 중요한 것은 예방이다. 정신을 차리자!
엘리야가 승천하기 전에 엘리사는 스승보다 갑절의 영감을 구했다. 엘리야의 겉옷은 엘리사의 수중에 있었고 그가 부른 것은 엘리야의 하나님이었다. 거룩한 전통을 무시하지 않고 존중하면 새로운 종족의 씨를 퍼뜨린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갑절의 영감이다. 믿음 위에 믿음, 은혜 위에 은혜, 능력 위에 능력이다. 갑절의 영감을 얻기 위해 보인 엘리사의 행보를 눈여겨보라! 길갈, 벧엘, 여리고, 요단까지 선생을 좇는 엘리사의 걸음은 질겼다.
불수레와 불말이 두 사람을 갈랐지만 그들의 섬기던 하나님은 갈리지 않았다. 가를 수 없는 요단강물을 이리저리 가르고 전진한 엘리사에게는 갑절의 영감이 임했다. 그때에 비해 더 패역한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갑절의 영감이 아니라 칠갑절의 능력이다. 별빛은 달빛 같고 달빛은 햇빛 같고 햇빛은 일곱 날의 빛과 같은 칠갑절의 역사다. 갑절이 아니라 칠갑절의 은혜를 힘입으려면 죽을 각오로 임해야 한다. 반드시 그래야 한다.
한량없는 주님의 은혜를 접하려면 우리의 기도가 한량없어야 한다. 한량없는 말씀의 역사를 보려면 우리의 말씀 사랑이 한량없어야 한다. 한량없음은 제한이 없고 경계가 허물어진 무제한의 상태를 일컬음이다. 제한속도가 없는 곳에서의 질주는 모든 드라이버들의 로망일 것이다. 진리 안에서 누리는 성도의 자유란 한량없음의 다른 말이다. 눈물도 한량없이 쏟고 한량없이 외치고 한량없이 찬양하고 싶다. 한량없는 성령을 충만히 받아라!(요 3:34)
사람이 제대로 변하면 역사도 제대로 일어난다. 제대로란 말은 바르게, 충분하게의 뜻을 지녔다. 함량이 미달되지 않은 정품은 예상 기능이 100% 작용한다. 성경에서 보여주는 위대한 삶은 한결같이 정품 인간을 통한 정품 사역으로 일관되어 있다. 이것을 본뜨면 삶과 사역 역시 결핍 없는 충만함 속에 거한다. 올해를 만사가 제대로 작동하는 원년이 되게 하라! 진리와 사랑의 충만함으로 존재의 넉넉함을 이루어서 완인(完人), 정인(正人)에 머물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