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혜의 샘물이 고여 분출하기를 기다리지만 간혹 천사가 내려와 물이 동할 때 일어나는 실로암의 기적처럼 솟구치는 물길 볼 수 없음은 천사의 내방 같은 기인의 나타남이 없기 때문이다. 어쩌면 38년 세월 동안 헛된 꿈결을 헤매던 병자처럼 고인 물이 동하기만 기다리는 낙오자들이 우리 시대를 암울하게 만든다. 말씀이신 주님이 하나님의 보내심 받아 실로암에 이르자 “보냄 받은 못”인 실로암은 실로암이 되었다. 말씀에 길들면 보냄 받는다.
말씀이신 주님께 보냄 받았다면 말씀을 떠나 생각할 수도, 행할 수도, 살 수도 없는 것이 바로 그 사람이다. 지난날을 탓할 수 없고 미래를 기약할 수 없지만 올해만은 말씀을 떠나 방황하는 일이 없도록 성막 사방으로 포진한 열두 지파처럼 그렇게 말씀을 중심점으로 해서 생각하고 행하며 살고 사역하라! 그대가 선 곳이 실로암이게 하라! 온갖 고질병과 난치병과 불치병이 예수의 이름으로 고침 받고 새로워지는 일이 일어날 진원지가 되게 하라!
어디서 불어왔는지 모를 바람의 방향을 바꾸는 것은 하늘에 속한 일일지라도 흐르는 물의 길을 바꾸는 것은 인간에게 속한 일이다. 모세가 갈파한 것처럼 오묘한 일은 하나님께 속했지만 나타난 일은 인간에게 속했다. 하나님이 말씀이 되어 이 땅에 오심은 하나님의 일이지만 말씀이신 주님을 알고 풀어 전하는 것은 우리의 일이다. 말씀 연구를 게을리하고 말씀 사역을 가볍게 여기는 자는 마땅히 할 일을 행하지 않는 불충을 저지름이니 명심하라!
가장 탁월하고 능하신 교사가 성령이심을 잊었는가! 이사야가 그토록 간구했던 학자의 영은 성령이 주신다. 그분은 기묘자이시기에 오묘하고 베일에 싸인 비밀의 계시를 유일하게 해독하여 알려주실 수 있다. “주 여호와께서 학자의 혀를 내게 주사 나로 곤핍한 자를 말로 어떻게 도와 줄 줄을 알게 하시고 아침마다 깨우치시되 나의 귀를 깨우치사 학자 같이 알아듣게 하시도다.”(사 50:4) 학자의 영이 없는 말씀 사역자들을 어찌 종이라 하겠는가?
종이면 어쭙잖게 주인 행세를 흉내 내지 말고 종답게 처신하라! 송곳으로 귀가 뚫린 주님의 영원한 종, 종중의 종인 말씀 사역자라면 더욱 그러하다. 누가의 일갈을 잊지 말라! “이와 같이 너희도 명령받은 것을 다 행한 후에 이르기를 우리는 무익한 종이라 우리의 하여야 할 일을 한 것뿐이라 할지니라.”(눅 17:10) ‘명령받은 것’과 ‘하여야 할 일’은 말씀을 말씀답게 전하는 바로 그 일이다. 조금이라도 소홀할 수 없는 왕의 지엄한 명령이다.
종의 길이 곧 왕의 길임을 아는가! 주님을 태운 어린 나귀 새끼는 종으로서 주님이 걷는 길을 함께 걸었다. 종은 모시는 주인에 따라 존귀한과 영광이 결정된다. 한갓 부자의 종과 총독의 종은 다르다. 왕의 종은 다른 종들에 비해 역할과 지닌 힘이 뛰어나다. 모든 신민이 왕의 종이면 최측근의 종을 누가 감히 업신여길 것인가! 만왕의 왕이요 만주의 주이신 주님의 종 된 자의 자화상은 철저히 종답게 종노릇할 때 확립된다. 영광스런 종 됨이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