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명철 목사】 시일야방성대곡(是日也放聲大哭) (16)

  • 입력 2024.06.04 11:40
  • 수정 2024.06.05 0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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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즈음 세대의 특징이 그래서인지 왠지 배우려 하지 않는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나만의 생각일까? 그렇다면 다행이지만 그런 경향이 강하다면 우려할 일이다. 물론 배움 자체를 거부하거나 외면한다는 뜻이 아니다. 다만 그 배움이 예전의 배움에 비해 현격한 차이를 보인다는 점이다. 시대와 문화적 배경이 달라진 이유도 있지만 배움의 결이 거칠다는 느낌이다. 신속하고 정확함은 돋보이나 깊은 맛이 없다. 진지함이나 열의와는 색다른 흐름이다.

성경 연구만 해도 워낙 보조 자료가 많아서 그렇겠지만 지혜와 계시의 영이라든지 마음눈의 밝음 같은 표현 자체가 끼어들 틈이 없다. 생각도 소위 QT식에 편중되어 깊고 너르지 못하다. 생각의 자유로운 바다를 유영하기보다 정해진 코스를 따르는 감이 더 강하다. 말씀 사역자들의 경우에 주석은 뒤적여도 기도는 뒷전이고 설교집을 훑어보아도 성경 자체를 파고듦은 건너뛰기 일쑤다. 성실한 학습자도 적지 않지만 그러한 강한 추세가 걱정스럽다.

본문을 많이 읽는다. 다독 후에 정독하고 핵심 구절을 암송하며 시간이 날 때마다 묵상을 이어간다. 아이디어나 영감은 기록한다. 본문을 전후한 내용들을 읽어 본문 이해를 보강하고 주제가 확보되는 대로 성경 자체에서 연결점을 찾으며 좋은 예를 발췌한다. 현실적 이슈와의 접점이 이루어지면 전체적으로 조망해서 프레임을 짠다. 그것을 문장화시켜 논리적으로 정돈하여 설득력을 높인다. 한 편의 설교로 모양이 갖춰지면 몸에 스며들게 한다.

시작 전에 기도의 군불을 때듯 마친 후에도 기도로 숙성시킨다. 한 편의 메시지가 피가 되고 살이 되어 생명력을 지니기까지 자신부터 동화시킨다. 정확하고 절제된 언어의 옷을 입혀 일렁거리는 마음의 불길과 함께 물 흐르듯 전한다. 연극배우나 오페라가수가 관객을 향해 온몸으로 연기하듯 사실을 사실답게 확신과 진정성 있는 태도로 전한다. 유언, 고백, 경고, 호소로 들리게끔 진심으로 접근한다. 진리와 사랑으로 직조된 메시지는 감동이다.

메신저는 메시지에 매일 뿐 어느 것에도 매이지 않는다. 사람의 눈을 살피지 않듯 듣는 이들의 귀를 즐겁게 하지 않는다. 메신저의 이런 본질적 자유는 특정 청중과 이해 충돌이 생겼을 때 부작용을 낳지만 포기하거나 양보할 수 없는 메신저의 올곧음이다. 이 까닭에 예레미야는 감옥에 갇히고 세례요한은 참수 당했다. 오늘 우리의 메시지는 청중과 좋은 관계를 유지한다. 지적 감흥도 있고 영적인 호소력도 있지만 영혼을 전율시키는 임팩트가 없다.

땅만 아니라 하늘까지 진동시키는 것이 성령의 가격 능력(임팩트)인데 이 핵심이 미약하기 짝이 없다. 결정적인 타격력의 회복이야말로 현대 강단의 현안 중 최대 현안이다. 한방을 위해 이 땅의 모든 메신저가 고민하지 않는가! 땅의 기세에서 벗어나 하늘의 기운에 닿고 인간의 벽을 뚫고 진리 안에서 자유로움을 익혀야 한다. 그럴듯한 표현으로 다양하게 표현해도 성경은 이를 성령충만이란 한마디로 정리한다. 불 받으면 뜨겁게 역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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