곤한 잠을 깨운 건 천둥소리 같은 굉음이다. 벽시계는 새벽 2시를 가리킨다. 창문 사이에 크고 작은 빛들이 쉴 새 없이 번쩍인다. TV를 켜도 치익~ 치익~거리기만 할뿐 검정 화면에 수평의 기다란 백색 선들만 아래위로 움직인다. 전기는 들어오지만 뭔 일이 생긴 것 같다. 벽장 속에 버려졌던 자그마한 단파수신기를 켠다. 역시 먹통이다. 잠에서 깬 아이들의 겁에 질린 표정이 안쓰럽다. 등을 토닥여 안아주지만 어른의 놀란 가슴도 진정되지 않는다.
몇 시간을 그런 상황에서 지내다 어둠이 걷히는 여명과 함께 내다본 바깥세상은 온통 검은 연기와 아우성으로 왁자지껄하다. 부지런한 이웃들은 벌써 상황 파악에 나선 모양이다. 뛰쳐나가 아무나 잡고 어찌된 영문인지 묻지만 돌아오는 답변이 제각각이다. 누구도 정확히 사태를 파악한 사람이 없다는 뜻이다. 멀리서 들리는 앙칼진 소리는 비명 같다. 주위사방의 고함소리는 여전하고 간헐적으로 울리는 사이렌 소리가 불안감을 더욱 증폭시킨다.
조반을 먹는 둥 마는 둥 하고 정보통인 친구 집을 향했다. 초인종을 누르자 사람 좋은 인상의 친구가 문을 열고 손을 잡아끈다. 묻기도 전에 머리를 감싸 쥐며 “다 끝났어!”란 말만 중얼거린다. 양 어깨를 잡고 세차게 흔들어보지만 친구의 동공이 죄다 풀어진 게 큰 충격을 받은 것이 틀림없다. 매사에 적극적이고 웬만한 세계의 동향쯤은 정확히 간파해내던 그가 무작정 내뱉은 파국 메시지가 마음에 걸린다. 겨우 정신 차린 그의 대답이 놀랍다.
정확히 모르지만 전쟁이 일어났다는 말이다. 한반도만이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거의 동시다발적으로 격전상황이란 주장이다. 기존에 알고 있던 전쟁지역을 넘어선 전쟁이라면 귀가 따갑게 들어왔던 3차 세계대전 상황이 틀림없다. 한달음에 집에 돌아오자마자 랩탑을 꺼내 전원을 눌렀다. 평소 만들어 놓은 종말시간표에 현재의 상황을 요약해서 입력하자 경고음과 함께 지구 최후의 날(Doom's Day)을 알리는 음악이 흘러나온다. 끝이 시작되었다.
시끄러운 사이렌 소리와 거대한 폭발음들을 죽이며 지상의 교회를 소집하는 천사장의 나팔소리가 들려올 시간이 가깝다. 가까운 친구들에게 화급히 주님의 재림과 휴거에 대한 메시지를 간단히 전송했다. 준비해왔던 대로 성경 매뉴얼에 따라 경건한 일상을 유지함이 관건이다. 이제 와 호들갑을 떤다 한들 달라질 것은 아무 것도 없다. 다행히 성경적 믿음으로 주경야도의 삶을 이어온 것이 위안이 된다. 식구들을 다독이며 성도들을 위무시킨다.
숱한 밤과 낮을 눈물로 보내며 선하신 주님의 긍휼을 간구하던 마음들이 오버랩 되면서 눈시울이 뜨거워진다. 얼마나 다행한 일인가! 조롱과 멸시를 받으면서도, 시대에 뒤떨어진 신앙이라 무시당할 때도 다투지 않고 말씀의 토대 위에 자신을 세워왔던 것이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이다. 꿈에도 사무치게 그리웠던 주님 뵈올 날이 목전이다. 가족들을 사랑으로 보살피며 믿음의 동지들을 말씀으로 결집시켜 모두 신부 단장하여 주님을 맞으려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