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빠떼루(parterre)

  • 입력 2020.10.24 2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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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슬링경기에서 공격에 소극적인 선수를 땅바닥에 엎드리게 하여 상대방에게 공격할 기회를 주는 벌칙을 ‘파테르(parterre)’라고 한다. 1996년 아틀란타 올림픽 레슬링 경기에서 김영준 해설위원의 “빠떼루를 줘야 합니다!” 이 한 마디로 레슬링이 인기가 올라갔고 김영준 씨는 ‘빠떼루 아저씨’로 유명해졌다.
'파테르'를 일본식 발음으로 ‘빠떼루’라고 했던 것이다. 그 후 일상생활에서 소극적인 자세로 자신의 일을 감당하지 않으면 ‘빠떼루를 줘야 해’라는 말을 한다. 요즘 코로나 핑계를 대고 매사를 소극적인 자세로 일관하는 사람들이 많다. 교회생활에서까지 코로나 핑계로 예배와 기도와 섬김에 대해 소극적인 목회자와 성도들이 많아졌다. 이것은 분명 하나님이 주시는 빠떼루감이다. 

인생살이에 하나님께 빠떼루를 받지 않는 사람이 있겠는가? 여유와 실력이 있는데도 안일하게 살다가 안타깝게 빠떼루를 받고 상대(사탄)의 공격에 뒤집히는 경우가 있는 것처럼 안일하게 대처하다가 낭패를 본 적이 부지기수다. 
본인도 지난날들을 되돌아보면 빠떼루를 받은 적이 있다. 똑똑한 척 잔꾀를 부리다가 하나님께로부터 빠떼루 벌칙을 받고 허우적대던 때도 있었다. 
그런데 더 안타까운 것은 그것이 하나님이 주시는 빠떼루임을 전혀 알지 못하고 사는 것이다. 이런 삶은 고생은 고생대로 하면서 허송세월을 보내는 것이요, 이것만큼 억울한 일이 또 어디에 있겠는가? 

그러므로 인생 빠떼루를 받을 때 빨리 깨달아야한다. 깨닫지 못하고 정신 차리지 않으면 거듭되는 빠떼루로 인생의 싸움에서 일어설 수 없는 난관에 부딪히게 된다. “너희가 어찌하여 매를 더 맞으려고 패역을 거듭하느냐 온 머리는 병들었고 온 마음은 피곤하였으며 발바닥에서 머리까지 성한 곳이 없이 상한 것과 터진 것과 새로 맞은 흔적뿐이거늘 그것을 짜며 싸매며 기름으로 부드럽게 함을 받지 못하였도다”(이사야 1:5~6). 
이 말씀은 하나님의 빠떼루를 외면하고 정신 차리지 않은 이스라엘 백성을 향한 선지자의 외침이다. 이번 주일은 종교개혁 503주년 기념주일이다. 당시 개혁의 대상이었던 캐톨릭교회의 모습이 지금 우리의 모습이 아닌가? 진지하게 생각해보자. 
하나님의 징계로 성한 곳이 없는 우리의 모습, 교회의 모습, 총회와 노회와 교계의 모습을…

임동헌 목사(광주 첨단교회, 광주신학교 이사장)
임동헌 목사(광주 첨단교회, 광주신학교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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