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음과 미세먼지 속에서 얻는 평안

  • 입력 2020.12.28 23:49
  • 수정 2020.12.29 0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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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세먼지(fine dust), 우리시대에 극혐하는 소재입니다. 그런데 미세먼지가 가장 많을 공간에 극혐하는 사람이 가장 많이 살고 있습니다. 사람은 어디에서 살아야 할까요? 소음(騷音, noise)은 사람이 싫어하는 소리입니다. 사람은 소리가 없을 때 평온하고, 맑은 공기에서 건강하게 살 수 있습니다. 그래서 사람은 평온하고 청정한 환경을 추구합니다. 그런데 생존터전은 소음과 미세먼지가 가득한 환경에서 거주합니다.

평온과 청정을 추구하는 사람이 소음과 미세먼지가 없는 환경을 만났을 때에 너무나 큰 기쁨을 갖습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살기를 갈구합니다. 그리고 그곳에 집을 짓기도 합니다. 저 푸른 초원 위에 집을 짓고 살려고 합니다. 저 푸른 초원 위에 사랑하는 님과 함께 살아나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사람이 청정한 자연 환경에서 잘 살 수 있을 것 같지만 그 속에서 살아나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사람이 그렇게 원했던 평온과 청정한 환경에서 평안을 얻지 못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많은 사람이 전원생활에 실패하는 이유는 고독 때문입니다. 자연의 평온과 자연 속에서 가진 고독에서 고독의 압력을 이길 수 없는 것으로 보입니다. 고독의 압력은 전원 속에서 동물과 식물로 조화를 이루며 생존하지 못합니다. 오히려 도시 콘크리트 속에서 식물과 동물과 공존하며 자연의 평온을 소유하려고 합니다.

친구들과 함께 공동생활을 이루려고 하여도 너무나 깊은 산중에서는 공동생활이 가능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전원생활도 도시 근교에서 살아야 합니다. 도시 근교는 소음과 미세먼지의 범위 밖이지만 콘크리트와 아스팔트를 벗어나지 않은 적합한 공간일 것입니다. 저는 도시 근교에서 살고 있으면서 최근에 들어선 농협 하나로마트 때문에 문명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도 아직까지 음식 배달이 되지 않은 청정 지역입니다. 그런데도 밤에 산보를 하면 고속도로의 굉음이 너무나 잘 들립니다. 그 굉음에는 미세먼지들도 함께 묻어 있을 것입니다. 밤을 깨는 소음이 귀에 거슬립니다. 그 소움이 없으면 과연 평온할까요? 소음과 미세먼지를 떠나서 사는 어떤 분도 밤에 멀리보이는 고속도로의 불빛에서 안정감을 얻는다고 했습니다. 도시 냄새를 떠나서 인간이 평온을 얻을 수 있을까요? 칠흑 같은 어둠은 평온이 아니라 두려움을 줄 것입니다. 미세먼지 없는 청정지역은 카타르시스(Catharsis)가 아니라 고독을 줄 것입니다. 카타르시스는 잠시 느끼는 것이지 항상 느끼는 것이 아닙니다.

도시에서 떠나 산 속에서 혼자 사는 사람의 모습을 방영하는 프로그램은 인기 프로그램입니다. 왜 아무 재미없는 것처럼 보이는 프로그램이 인기일까요? 자연 속에서 사는 것이 누구도 할 수 없는 로망이기 때문에 꾸준한 시청률을 유지할 것입니다. 텔레비전에서는 도시의 화려한 삶과 극한 자연 속에서 홀로 사는 프로그램이 자주 등장합니다. 둘의 상황이 사람이 다다르기 어려운 조건이기 때문에 프로그램으로 운용될 것입니다.

우리가 사는 도시 속에서 미세먼지가 위험하다고, 소음 문제, 층간 소음 때문에 힘들다고 생각하지 않아도 될 것입니다. 그것은 미세먼지와 소음이 없는 공간에서도 살 수 없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자기에게 적합된 조건에서 살고 있습니다. 미세먼지와 소음 속에서 평온을 얻지 못한다면, 자연 속에서 평온을 얻지 못할 것입니다. 현재 자리를 만족하지 못할 때에, 이 자리를 떠나 다른 자리에서도 만족을 얻지 못할 것을 생각해도 될 것입니다. 현재 자기 자리에서 평온을 얻을 수 있는 겸손을 가져야 합니다. 원효대사는 현재 자기 자리에서 만족할 수 있도록 결단(決斷)을 추구하였지만(一切唯心造, everything depends on the mind), 우리는 겸손(謙遜)을 추구합니다(with God nothing is impossible). 우리는 소음 속에서도 미세먼지 속에서도 합당한 생존 공간으로 생각하고 최선을 다해서 생을 기뻐합니다.

우리시대처럼 풍성한 시대가 언제였을까요? 1950년대보다 500배 더 부요한 삶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이 풍요로운 세상에서 수 많은 사람들이 자살을 한다고 합니다. 배고픈 보리고개에서 배만 부르면 아무 걱정이 없을 것 같아, 문화재도 삼키고 생명도 삼키면서 풍성한 시대를 이뤘습니다. 그래서 미세먼지와 소음이 가득한 공간도 이뤘습니다. 그런데 이 공간이 싫다고 합니다. 이 공간을 떠나 살 수 없는데, 이 공간이 싫다고 합니다. 우리는 배가 고파서 슬픈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배가 부를 때에 기쁘지 않기 때문에 알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럼 왜 슬펐고 만족하지 못하였을까요? 미세먼지와 소음 속에서 잠깐만 정지(停止), 중지(中止)해 봅시다.

광주 주님의교회(고경태목사)
광주 주님의교회(고경태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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