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도들에게 허락된 빛나고 깨끗한 세마포 옷은 옳은 행실을 나타낸다

  • 입력 2021.01.19 0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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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희 목사의 CDN 성경연구】 (94) 세마포 옷(Fine linen)

 

NC. Cumberland University(Ph.D.), LA. Fuller Theological Seminary(D.Min.Cand.) , 총신대학교 일반대학원(Th.M.), 고려신학대학원(M.Div.), 고신대학교 신학과(B.A.), 고신대학교 외래교수(2004-2011년), 현)한국실천신학원 교수(4년제 대학기관), 현)총회신학교 서울캠퍼스 교수, 현)서울성서대학 교수 현)대광교회 담임목사(서울서부노회, 금천구
NC. Cumberland University(Ph.D.), LA. Fuller Theological Seminary(D.Min.Cand.) , 총신대학교 일반대학원(Th.M.), 고려신학대학원(M.Div.), 고신대학교 신학과(B.A.), 고신대학교 외래교수(2004-2011년), 현)한국실천신학원 교수(4년제 대학기관), 현)총회신학교 서울캠퍼스 교수, 현)서울성서대학 교수 현)대광교회 담임목사(서울서부노회, 금천구

우리 조상들은 먹고(食) 살기(住) 힘들 때도 의복(衣)은 신경 썼다고 한다. 의식주(衣食住)라는 말의 순서에서 알 수 있다. 남편이신 하나님은 자신의 신부에게 사랑과 관심을 준다. 하나님은 자신의 신부를 위해 ‘구원의 옷’과 ‘공의의 겉옷’을 입힌다(사 61:10). 그리고 신부가 필요로 하는 패물을 제공한다. 가장 먼저 물로 피를 씻기고 다양한 옷과 화려한 왕관을 씌운다. 황후의 지위에 올린다(겔 16:9-13).

에스겔서에 나오는 신부처럼(겔 16:8-10), 어린 양의 신부는 ‘성도들의 옳은 행실’을 상징하는 ‘빛나고 깨끗한 세마포 옷’을 입었다. 빛난다는 것은 영광을 묘사하기 위해 하얗고 빛나는 색을 말한다(참고. 마 13:43). 깨끗하다는 것은 새 예루살렘의 특성인 정결, 충성, 신실을 반영하는 것이다. 많은 연구는 세계 어디에나 신랑 쪽에서 신부의 가족에게 대가를 지불하는 이른바 신붓값 문화를 갖고 있다고 한다. 양가의 관계를 공고히 해두자는 취지다. 신부가 잘 대접받을 것이라는 약조다. 신부의 가족에게 생기는 손실에 대한 대가이기도 하다. 지참금이란 신부가 결혼할 때 살림 밑천으로 친정에서 시집으로 가지고 가는 돈을 말한다. 그런데 제주도에서는 반대로 신랑이 신부 측에 돈을 지불하는 것이 오랜 관습이다. 제주도가 아니지만 하나님 아버지는 어린 양의 신부에게 지참금 이상의 선물을 주신다.

혼인 의복은 보호 사상 이외에 하나님과의 친근한 교제로 해석된다. 퇴폐와 부의 상징인 바벨론, 즉 로마의 세마포와 일부러 대비하고 있다. 어린 양의 신부는 다니엘처럼 뜻을 정하여 정식으로 자신을 더럽히지 아니한 자들이다. 정치적인 입장의 호불호를 떠나 청와대 청원 게시판에 옛날 왕조 시대의 상소문 형식으로 올린 ‘시무 7조’가 민초들의 폭발적 호응을 얻었다. ‘인간의 본성은 본디 나약하나/ 이 땅의 백성들은 특히 고난 앞에서 결연했고/ 인간의 본성은 본디 추악하나/ 이 땅의 백성들은 특히 역경 앞에서 서로 돕고 의지하였나니...’ 다수가 고난 앞에 결연하고, 다수가 역경 앞에서 서로 돕고 의지하는 것이 아니다. 다니엘과 세 친구처럼 믿음의 사람만이 뜻을 세우고 불의에 타협하지 않을 수 있다.

1. 빛나고 깨끗한 세마포 옷을 입도록 허락되다

어린 양의 신부가 입은 ‘빛나고 깨끗한 세마포 옷’은 순교자들이 이 옷을 입었고, 천사들도 그러하다. 이 옷은 대나무 살에 종이를 바른 전통 접부채를 떠오르게 한다. 조선 전기의 문인인 김주(金澍)는 부채를 선물하면서 부채가 담고 있는 의미를 그 부채에 적어서 주었다. “대나무를 깎아 만든 것은 그 절개(節槪)를 취함이요. 종이를 바른 것은 그 깨끗함을 취함이다(削以竹 取其節也 塗以紙 取其潔也).” ‘우암유집(寓庵遺集)’에 나온다. 대나무를 절개와 의리, 즉 절의(節義)에 비유한다. 가장 큰 특징은 마디이다. ‘마디’를 의미하는 한자가 바로 ‘절’이다. 대나무의 줄기는 곧다. 마디와 마디 사이는 진공상태이다. 대나무의 정체성이다.

교회의 옷은 흰 세마포이다. 이것은 큰 음녀가 입은 자주 빛과 붉은 옷 그리고 세마포 옷과는 뚜렷한 대조를 이룬다. 깨끗한 세마포는 하나님의 신부에게 적합하다(겔 16:10). 이전에 언급된 흰옷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그 옷은 순결, 거룩, 그리고 명예를 의미한다. 세마포에 해당하는 ‘βυσσινοsbuvssino"’(뷔씨노스)는 제사장과 왕들의 옷을 만드는데 사용한 값진 천이었다. 그것은 빛나고 깨끗한 천이다. 지성소에 들어가는 대제사장이 반드시 입어야 하는 옷이었다(레 16:4). 성소에 들어가는 모든 사역자에게 확대되었다. 순결함과 의로운 행동을 상징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일 것이다. 세마포는 고대 세계에서 사치품이었다. 큰 성, 즉 로마가 ‘세마포 옷과 자주 옷과 붉은 옷을 입고 금과 보석과 진주’로 꾸민 것으로 묘사되고 있다. 바벨론의 사치스러운 세마포 옷과 어린 양의 신부가 입은 빛나고 깨끗한 세마포는 대비되고 있다.

로마는 최전성기인 ‘5현제(五賢帝) 시대’는 사치향락이 팽배했다. 로마시대 정치가이자 역사가인 타키투스는 향락에 빠진 로마인을 각성시키기 위해 로마 지배를 거부하고 자유를 위해 죽을 각오가 돼 있는 게르만족을 부각시켜 로마인의 나약함을 지적하기도 했다. ‘시경’ ‘소남(召南)’편의 ‘행로(行露)’는 송사에 걸려든 여인이 하소연하는 내용이다. “참새 뿔이 없다고 누가 말했나? 쥐 어금니 없다고 누가 말했나?”(誰謂雀無角? 誰謂鼠無牙?) 작각서아(雀角鼠牙)는 참새 뿔과 쥐 어금니다. 참새는 뿔이 없고, 쥐는 앞니뿐이다. 뿔 없는 참새가 지붕을 뚫고, 어금니 없는 쥐가 담을 갉아 구멍을 낸다. 이렇듯 터무니없는 짓을 해도 절개(節槪)를 굽히지 않겠다고 한 것이다.

요한계시록은 신부의 준비에 관한 사항은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예수님과의 관계로 확대한다. 이 상황에서 강조는 신부가 입게 될 빛나고 깨끗한 세마포 옷이다. 후에, 새 예루살렘의 환상에서는 신부의 예복에 있는 금과 보석들에 더 많은 관심이 주어질 것이다. 어린 양의 신부에게 빛나고 깨끗하고 세마포 옷을 입도록 허락이 되었다. ‘허락하였다’는 부정과거 수동태다. 신부의 의로움이나 장점 때문에 옷이 제공된 것이 아니다. 신적수동태다. 하나님의 선하심 때문에 이루어짐을 가리킨다. 깨끗한 세마포 또는 흰옷을 입는 것은 하나님께 예배하기 위한 정결의 과정이다. 또한 혼인식에서 신부에게 합당한 순결이다. 예배와 혼인의 장면들은 부활의 희망을 노래한다.

2. 옷은 성도들의 옳은 행실이다

신부의 옷만 언급하고 있지만 신부 단장을 가리킨다.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니 그 준비한 것이 신부가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 것 같더라”는 어구도 신부 단장을 가리킨다. 칭의는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원인적인 필요조건이다. 옳은 행실은 비원인적인 필요조건이다.

혼인의 이미지는 하나님이 그의 백성들이 그에게 충실할 것을 기대하신다는 의미이다. 신부가 자신의 남편에게 충실해야 하는 것처럼 말이다. 호세아는 하나님이 피조물과 맺었던 언약과 하나님이 이루실 평화를 연결시킨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에게 장가를 간다. “영원히 살되 공의와 정의와 은총과 긍휼히 여김으로 네게 장가들며 진실함으로 네게 장가들리니”라는 선포로 종결된다(호 2:19-20).

신랑으로서 그리스도와 신부로서의 하나님의 백성, 즉 교회라는 은유는 초기 그리스도교에서 매우 널리 사용되었다. 흰옷은 하나님 앞에 선 사람의 신분을 가리키는 이미지다. 독자들은 죄는 그들의 옷을 더럽혀서 하나님 앞에 서기에 적합하지 않게 한다고 경고 받는다. 그러므로 그들은 그리스도의 죽음의 은혜를 입어 어린 양의 피로 그들의 옷을 씻어야 한다. 그와 같이 깨끗하게 하여 새 예루살렘에 들어가게 된다.

성도들의 옳은 행실을 상징하는 세마포 옷이 그리스도에 대한 순결의 표시다. 신부에게 옷이 제공된다. 그녀는 그리스도에 대한 진실됨과 충성으로 혼인을 위해 자기 자신을 준비해야 한다. 영화 ‘남한산성’에 인조가 청 태종 앞에 무릎 꿇고 삼배구고두례(三拜九叩頭禮)를 올리는 장면이 나온다. 그 때 입은 옷은 용포가 아니라 항복의 예가 끝나고 청이 준 의복(衣服)을 입었다. 의복 제도는 ‘천자’가 결정해 제후와 신하에게 내리는 것이었기에 상징성이 컸다.

벤저민 디즈레일리는 “사람이 인생에서 성공하는 비결은 기회가 다가올 때 그것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는가, 그렇지 않은가에 달려 있다”고 말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나라를 자기 아들을 위해 혼인 잔치를 준비한 왕으로 비유하셨다(마 22:1-14). 왕의 혼인 잔치에 참석하는 자는 예복을 입어야 했다. 한 사람이 예복을 입지 않았다. 두 가지 경우다. 주인에 의해 깨끗한 옷이 공급되었으나 거절한 경우다. 아니면 부주의로 더러워진 것이다. 아무튼 깨끗한 옷의 의미는 그리스도에 대한 회개와 순종을 의미한다. 그 사람은 아마도 ‘웨어러블 로봇 슈트(wearable robot suit)’ 같이 자신의 것으로 자랑하고 싶었는지 모른다. 이 옷은 옷을 입듯 몸에 장착하는 기기가 사람이 움직일 때 써야 하는 힘을 줄여준다

옷을 입는 방식은 구원의 과정에서 하나님의 행위와 인간의 행동 사이의 관계에 대한 논쟁으로 이끄는 옳은 행위(just deeds)와 연결되어 있다. ‘이 세마포는 성도들의 옳은 행실’이라는 것은 아마도 요한에 의해 덧붙여진 보충적인 해석일 것이다. ‘옳은 행실’은 복수형이다. 신부의 옷이 끝까지 인내한 자들의 셀 수 없는 신실한 순종의 행위들로 수놓아 있음을 보여 준다고 할 수 있다.

옳은 행실의 삶을 사는 것은 의롭다 함을 얻은 사람의 자연스러운 반응이다. 의인은 믿음으로 산다(롬 1:17). 어린 양과의 혼인식에 들어가기 전에 요구되는 필요한 외적 반응 또는 표시임을 암시한다. 바울의 칭의의 교리와 모순되지 않는다. 신랑의 요구에 합당한 반응이다. 변화된 삶이다. 요한의 관심사는 교회 안의 거룩함이다. 신부에게 허락된 것은 세마포가 아니라 의로운 행실들을 옷 입을 수 있는 특권이다. “우리는 그가 만드신 바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니”(엡 2:10). 그렇다. 믿는 자들은 하나님이 예비하신 옳은 행실을 위해 창조되었다. 옳은 행실은 믿음의 가시적 면과 관련이 있다. 요한계시록은 충성된 사람들의 행위들은 죽음 이후에도 그들을 따른다고 추론한다. 하나님이 그들의 행위를 인정하기고 기억하신다. 옳은 행실들로 부활 시에 그들을 단장하도록 허락하신다는 사상이다.

교회는 정혼한 처녀처럼 신랑이신 그리스도께 대한 순결과 지조를 지켜야 한다. “임 향한 일편단심이야 가실 줄이 있으랴” 고려 말 이방원의 하여가를 되받아친 정몽주의 단심가다. 단심은 붉은 마음이다. 충절과 사랑과 지조를 상징한다. 성도들의 옳은 행실은 혼인 예식을 위해 자신을 준비한 신부들의 행위들이다. 이것은 신자들이 어린 양의 피에 자신들이 예복을 씻는 이미지들과 관련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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