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과 교육, 사회와 선교를 아우르는 통합적 스승, 숭덕여고 박상익 교장

  • 입력 2021.05.27 12:13
  • 수정 2021.08.31 11:09
글자 크기
프린트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창조주 하나님은 네 안에서 모든 걸 가능케 하신단다.”

 

오월은 신앙인들에게 의미 있는 날이 많다. 어린이 날과 어버이 날, 부부의 날, 성년의 날 그리고 스승의 날까지 가정과 교육을 아울러 생각하게 한다. 동시에 기독교적으로는 요한웨슬리의 올더스게잇 회심일(1738.5.24.) 도 있다. 물론 사회적으로는 근로자의 날과 5.18민주화운동기념일도 중요하다. 오월을 마감하면서 가정과 교육 그리고 선교와 사회를 아우르는 신앙의 인물을 찾아 발굴하던 본헤럴드는 인천 숭덕여고 박상익 교장선생님의 삶의 발자취를 통해 통합적 스승의 롤모델로서 소개하고자 한다.

박상익 교장선생님이 근무하는 인천 숭덕여고는 인천뿐만 아니라 전국에서 일반 고등학교 중 사학 명문으로 인정을 받고 있다. 2021년 한 해만 서울대 6명 합격이라는 쾌거와 수시와 정시에서 서울권 주요 대학 입시율에 있어서도 인천시내 일반고 1위를 기록했다. 기독교학교이지만 뛰어난 진학률로 인천지역 중학교 졸업생들이 가장 선호하는 여고이기도 하다.

오늘날의 숭덕여고가 있기까지는 고 홍석련 장로님의 건학이념을 지켜온 김경숙 이사장님과 홍배식 학원장님의 교육에 대한 바른 가치관과 섬김의 리더십이 있었다. 또한 박상익 교장선생님의 투철한 기독교 정신과 교직원들의 헌신적인 학생 사랑이 밑거름 되었으며, 동시에 학생, 학부모들이 학교의 기독교교육을 바탕으로 한 숭덕여고만의 진로·진학 로드맵을 잘 믿고 따라준 결과물이다.

JOY정신(Jesus first, Others second, You third)으로 세워진 숭덕여고 교정에서 오늘도 박상익 교장선생님은 학생들에게 이렇게 말한다. 창조주 하나님은 네 안에서 모든 걸 가능케 하신단다.”(1:1, 4:13)

대담자 : 박상익 장로(인천 숭덕여고 교장) 최원영 대표(본헤럴드 대표, 본푸른교회 담임목사)

일시 및 장소 : 2021524일 낮 12, 숭덕여고 교장실 및 교정

동행취재 : 윤홍식 편집국장

▶본 기사의 사진 중 일부는 코로나 이전에 촬영한 사진입니다

우측 박상익 교장선생님, 좌측 최원영 본헤럴드 대표
우측 박상익 교장선생님, 좌측 최원영 본헤럴드 대표

Q1. 먼저 숭덕여고 교장 선생님으로 계시는데 숭덕여고는 어떤 학교인가요? 숭덕여고만의 자부심이나 자랑할 거리가 있다면 말씀해주세요.

A. 숭덕학원은 기독교 정신을 바탕으로 세워진 인재 양성의 요람입니다. 설립자 고 홍석련 장로님께서는 하나님 제일주의와 이웃 봉사의 정신을 삶의 우선순위로 삼으시고 자신의 자택 건축보다 우선하여, 1958년 서울 이문동에 동안교회를 개척하시고, 1966년 인천 숭덕학원을 설립하셨습니다. 숭덕학원은 매년 들어오는 신입생들에게 복음을 전하며, 삶의 우선순위를 하나님께 두고 이웃에 봉사하는 삶을 살아가는 온전한 그리스도인으로 양육하는 데 그 뜻을 두고 있습니다.

숭덕의 비전이 바로 숭덕여고만의 자부심이요 자랑거리라 할 수 있습니다.

첫째로 숭덕학원은 성경적 세계관으로 가르치는 학교로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창조하시고 구속하시며 통치하신다는 성경적 세계관에 근거하여 가르치려고 노력하는 학교입니다.

둘째로 숭덕학원은 누구나 오고 싶어 하는 학교로 최적의 교육 여건 속에서 하나님의 비전을 품은 열정 있는 교사들이 학생들의 목표와 비전을 이룰 수 있도록 헌신적으로 교육하는 학교입니다.

셋째로 숭덕학원은 한국 기독교 학교의 모델이 되는 학교로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 가르치고 하나님의 부르심을 드러내는 것을 비전으로 하는 한국의 기독교 학교의 모델이 되기 위해 노력하는 학교입니다.

위와 같은 비전을 실현하기 위하여 모든 교사들이 예수님의 사랑을 실천하고 인성지도를 바탕으로 학력 향상에 힘쓰고 있기에 해마다 최고의 진학 성적으로 두각(頭角)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이러한 결과로 인천 지역은 물론 전국에서도 자타(自他)가 인정하는 명문 고교로 자리매김을 하고 있습니다.

삶의 우선순위를 하나님께 두고

이웃에 봉사하는 삶을 살아가는

온전한 그리스도인으로 양육

Q2. 기독교 이념으로 세워져 성경적 세계관을 가르치는 것을 목표로 하는 학교라고 하셨는데, 학생들에게 어떻게 복음을 전하고 가르치시나요?

A. 성경적 세계관으로 가르치려면 교사들이 먼저 성경적 세계관으로 무장되어 있어야 합니다. 우리의 교육이 인본주의 세계관을 중심으로 되어 있기에 기독 교사들 또한 무의식 속에 인본주의적 세계관을 가르치는 경우가 많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하기에 성경적 세계관에 대한 프로그램이나 연수가 있을 때마다 모든 교사들이 참여하여 배우기도 하고 전문적 학습 공동체를 구성하여 끊임없이 토론하고 협의하며 성경적 세계관을 바탕으로 한 융합수업을 실시하기도 합니다. 관리자들 또한 일주일에 한 번씩은 기독교적 세계관에 관한 책을 구입하여 발췌(拔萃)하여 발표하기도 합니다. 때로는 창조과학회 교수님들을 모시고 특강들을 들으며 성경적 세계관을 가르치기 위한 부단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이러한 노력을 바탕으로 학습 지도안을 작성하며 어떻게 성경적 세계관을 가르칠 것인가를 끊임없이 고민합니다. ‘인간은 만물의 척도라는 잘못된 인본주의적 세계관에서 벗어나 하나님의 말씀만이 만물의 기준점이며 모든 학문을 창조적 세계관을 바탕으로 가르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학생들은 학교에 등교하면 학교에서의 첫 시간인 조회시간에는 선생님들의 임장 지도하에 말씀과 찬양과 기도로 시작하는 아침경건회와 저녁 자율학습을 마치고 귀가할 때에는 기도로 하루를 마감하고, 정규 수업 교육과정에 종교학으로 일주일에 1시간씩 성경의 말씀을 가르치며 매주 화요일에는 전교생이 비전홀에 모여 채플 시간을 통하여 복음을 전하고 있습니다.

많은 학생들이 종교가 없거나 타종교를 믿고 있지만 학교생활 가운데 예배의 시간들이 가장 행복한 시간 중의 하나라고 할 정도로 축제와 같이 기쁨으로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신입생을 모집할 때면 재학생들이 학교생활 중 예배의 시간이 너무 행복하니 종교에 대한 부담감을 절대 갖지 말라고 소개하기도 하고 믿지 않는 학부형들도 숭덕여고의 기독교 교육에 호감을 갖고 지원하기도 합니다.

숭덕여고의 채플 및 모든 예배는 학생들의 자발적 참여와 기쁨이 넘치고 있다
숭덕여고의 채플 및 모든 예배는 학생들의 자발적 참여와 기쁨이 넘치고 있다

Q3. 기독교학교지만 학교에서 신앙교육에 많은 어려움이 있을 것으로 여겨집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학생들에게 기독교 정신을 가르칠 수 있는 대안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A. 세상의 교육은 학문적 지식이나 정보를 음성언어나 문자언어로 가르치거나 토론과 토의, 발표 등을 통하여 가르치지만 학교에서의 신앙 교육은 말에 앞서 행함이 전제되지 않는다면 결코 가르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non)크리스찬이 70% 정도나 되는 학생들에게 창조적 세계관을 바탕으로 성경 말씀을 가르치고 기독교 정신을 가르치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러나 투철한 사명감을 지닌 기독교사의 학생들을 향한 헌신적 사랑과 섬김의 모습이, 닫혀있는 학생들의 마음을 열게 하며 다양한 교육과정과 교육활동을 통하여 기독교 정신을 가르칠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매주 금요일 1학년 학생들을 대상으로 학급별로 실시하는 예지관 교육활동 중, 부모와 자녀들이 함께 하는 편지 읽기를 통하여 감사의 교육을 가르치기도 하며, 공동체 훈련을 통하여 배려와 섬김의 마음을 가르치기도 합니다. 추수감사절에는 독거노인을 찾아가 친구들과 함께 채운 감사나눔 상자를 만들어 전달하며 어르신들의 말벗이 되어드리기도 하고 성탄절에 드려진 헌금으로 양로원이나 고아원 찾아가 성금을 전달하며 이웃 사랑의 교육을 하기도 합니다. 에벤에셀이라는 봉사 동아리를 통하여 겨울방학에는 인도네시아 발리의 빈민지역을 방문하여 선교와 봉사 활동을 하며 하나님의 사랑을 가르치기도 합니다. 부활절에는 이틀간 수업을 대신한 교육과정으로 진로 진학 비전 페스티벌을 진행하며 독실한 믿음을 지닌 각 분야의 전문가 사십여 명을 초청하여 신앙을 중심으로 한 전문가 특강을 하며 기독교 정신을 고취하기도 합니다. 이처럼 교육과정과 교육활동을 통하여 자연스럽게 학생들의 삶 속에 녹아들 수 있도록 하는 것이 기독교 정신을 가르칠 수 있는 대안이라고 생각합니다.

투철한 사명감을 지닌 기독교사의

학생들을 향한 헌신적 사랑과

섬김의 모습이, 닫혀있는 학생들의

마음을 열게 해

부활절이나 추수감사절의 절기마다 기쁨나눔선물을 이웃과 나누고 있다
부활절이나 추수감사절의 절기마다 기쁨나눔선물을 이웃과 나누고 있다
인도네시아 발리 빈민지역 방문 봉사활동
인도네시아 발리 빈민지역 방문 봉사활동
인도네시아 발리 빈민지역 봉사활동
인도네시아 발리 빈민지역 봉사활동

Q4. 학생들을 가르치는 교단에 계시면서 교육을 통해 학생들의 변화나 인격적으로 성장하는 모습도 많이 보셨을 텐데 특별히 기독교교육이 아이들을 변화시켰던 에피소드가 있다면 무엇인가요?

A. 3 학생들이나 학부모님들이 고등학교를 선택할 때에는 입시 성적이나 통학 거리도 있지만 기독교 학교이다 보니 크리스천 교사들이 사랑과 섬김의 마음으로 아이들을 가르친다는 소문을 듣고 선택하는 학부모님들도 많이 있습니다. 특히 자녀들이 학교에 적응하지 못하고 일탈 행동을 하는 일명 문제 학생이라 불리는 부적응 학생의 경우는 더욱더 그렇습니다. 학급 담임을 할 때마다 우리 반에는 부적응 학생이 유독 많았습니다. 제 나름의 교육 철학은 문제의 학생은 없다는 것입니다. 사회의 구조적 모순과 문제의 가정과 문제의 부모와 문제의 교사가 문제의 학생을 만든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기에 부적응 학생들을 더욱더 사랑으로 가까이하며 섬겨 주었고 그들이 학교를 졸업한 후에는 다른 학생들보다도 더 감사의 마음을 전하며 사회에서도 인정받는 삶을 살고 있습니다.

학교를 다니던 3년 내내 말썽을 부리던 어떤 제자는 정경 뉴스라는 월간지의 기자가 되어 좋은 학교, 좋은 선생님이라는 제목으로 저의 교육 철학을 소개하기도 하였고, 정서적으로 심약하여 어려움에 처해 있는 제자를 전도하였는데 자녀의 생활 태도의 변화를 보고 남묘호렌게쿄를 다니는 부모님이 개종하여 제가 다니는 교회에 등록하고 세례를 받고 집사의 직분을 받은 후 여선교회 회장으로 활동하기도 하였습니다. 숭덕여고에서 예수님을 만나 몽골의 복음화를 위해 몽골인과 결혼하여 몽골에서 선교사로 사역하는 제자, 가정의 문제와 성적의 문제로 비관하여 자살을 생각하던 제자가 선교사로 사역을 감당하기도 하고, 심한 우울증으로 힘들어하던 제자가 이제는 건강한 가정을 이루어 행복한 삶을 사는 모습을 보며 세상의 교육으로 학생들의 삶을 변화시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지만 아이들의 삶 속에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면 물이 변하여 포도주가 되는 것과 같은 삶의 변화가 일어남을 교육의 현장에서 자주 접하곤 합니다.

3학년 담임으로 입시를 지도하며 홍해가 갈라지며, 여리고성이 무너지는 기적과 같은 은혜가 있었습니다. 19943학년(숭덕여고 7) 이과반 담임을 처음 맡고 반 아이들과 진로, 진학 상담을 하며 놀랐던 것은 아이들이 미래에 대한 꿈을 상실했다는 것입니다. 그 이유 중의 하나는 모두가 성적이 좋지 않아서 아이들이 꿈꾸고 바라는 대학과 학과를 감히 입시를 앞 둔 학생들이 담임교사인 저에게 말할 수 없었습니다. 49명의 아이들과 예배를 드리며 전지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지혜를 주시고 우리가 1년 동안 열심히 하면 너희들 모두 꿈을 이룰 수 있다고 말하고 49명 모든 학생들이 아침 일찍 등교하여 먼저 학급 예배를 드리고 공부를 했고 점심시간에도 모여 예배하고 오후 수업을, 모두가 밤 10시까지 저녁 자율학습에 참여하고 자율학습이 끝나면 또 종례 후 마침 귀가 예배를 드렸습니다.

지금과 마찬가지로 그 당시에도 우리 반에 교회에 다니는 학생들이 많지 않았지만 당시에 선교부장이었던 김지영 학생이 교실에 키보드를 준비하여 즐겁게 찬양을 인도하고 말씀으로 예배를 잘 인도하였습니다. 때로는 아이들이 귀가해야 하는 시간임에도 밤늦게까지 찬양하여 담임인 제가 강제로 귀가시키기도 하였습니다. 일반계 고등학교에서 있을 수 없는 하루에 세 번 아침, 점심, 저녁에 예배하고 기도하면서 공부하였더니 놀라운 일들이 생기기 시작하였습니다. 당시 반장이었던 문세희(현재 문세희 산부인과 원장)를 중심으로 사랑으로 하나가 되었고 모든 학생들이 꿈을 갖게 되었으며 그 꿈을 이루기 위하여 공부를 잘하는 학생들이 성적이 부진한 학생들을 도와주며 학급의 모든 학생들이 멘토, 멘티가 되어 학업에 열중하였습니다.

일반계 고등학교에서

있을 수 없는 하루에 세 번

아침, 점심, 저녁에

예배하고 기도하면서 공부하였더니

놀라운 일들이 생기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리고 1년 후에 입시의 결과는 하나님께서 함께 하셔서 이룬 기적과 같은 일이었지만 저도 믿겨지지 않았고 지금 이렇게 인터뷰를 하며 말하고 있지만 이 말을 듣고 그리고 이 기사를 읽는 누구도 믿을 수 없는 결과로 나타났습니다. 당시 숭덕여고는 지극히 평범한 일반계 고등학교였고 지금도 그렇지만 어느 학교나 일반고에서 전교 1등을 의대를 보내는 것이 쉽지 않은 데 의대를 꿈꾸던 5명의 우리 반 모든 학생들이 의대를 진학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3학년에서 처음 만나 상담을 할 때는 지난 6년간 선배들이 1명도 의대를 진학한 일이 없었기에 감히 꿈꿀 수 없는 일이었는데 먼저 하나님을 의지하고 하나님이 주신 지혜로 공부한 결과 수도권 명문 의대(문세희-연세대, 정해선-이화여대, 김윤경-이화여대, 이지연-인하대, 윤혜련-한양대)에 모두 합격하였습니다. 그리고 6년 동안 서울대를 한 명도 보내지 못했었는데 반에서 16등 하던 이선우 학생을 서울대를 합격하였고 49명 학생 대부분이 4년제 대학에 진학하게 되었습니다. 우리 숭덕여고는 특목고나 자사고도 아니었고 우리 반은 2개의 이과반 중 성적이 좀 좋지 않은 학급이었지만 믿어지지 않는 믿을 수 없는 놀라운 결과였습니다. 지금 숭덕여고에 근무하는 교사들이나 학생들도 이러한 기적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이러한 기적과 같은 일을 말하는 것이 자칫 나 자신의 자랑이 될 것 같아 그동안 잘 말하지 아니하였는데 인터뷰를 하며 내가 아닌 하나님을 높이며 제 인터뷰 기사를 읽을 많은 분들이 먼저 하나님 나라와 의를 구할 때 주시는 하나님의 축복을 전하기 위해 간증합니다.

당시에 의대에 진학한 제자들을 만날 때마다 그들의 고백 중의 하나는 선생님의 기도가 우리의 꿈을 이루게 하였다는 말입니다. 당시 심장병으로 출산을 앞 둔 아내와 태중의 아이(박기준), 모두 위험한 상태였을 때 저 또한 아이들의 기도의 응답으로 어려움 없이 자녀의 축복을 받았습니다. 제자들 모두 이제는 의사가 되어 의료현장에서 환우들을 사랑으로 돌보며 어렵고 소외된 이웃들을 위해 헌신하는 모습에 제자들을 생각할 때마다 가슴이 먹먹해집니다.

그리고 모교에 대한 감사함과 담임교사인 저에 대한 고마움을 생각하며 몇 년 동안 정기적으로 후원을 하고 있어 보내준 성금으로 멘토-멘티 프로그램 후원이나 어려운 학생들 장학금으로, 또 이 곳 저 곳에 귀하게 사용할 때마다 귀한 제자들의 따스한 마음에 감사할 뿐입니다. 장학회를 이끌어가고 있는 문세희 산부인과 원장과 서울 삼성병원 소화기 내과 정해선 교수, 영상의학과 김윤경 교수, 가천길병원 마취과 이지연 교수의 미담(美談)이 어둡고 정이 박한 세상에 훈훈하게 전해졌으면 하는 바람도 가져봅니다. 의대에 진학한 선배들의 영향으로 그 이후에 선배들을 롤모델로 삼고 공부하여 서울대 의대(이미랑)에 진학하는 등 해마다 의대에 진학하는 학생들이 생겨나게 되었습니다.

 

아이스크림이 가득한 교장실 냉장고

"애들아, 누구든지 또 언제든지 오렴"

교장실 냉장고에는 학생들을 맞이할 항상 아이스크림이 가득하다
교장실 냉장고에는 학생들을 맞이할 항상 아이스크림이 가득하다
인터뷰 중에도 학생들이 자유롭게 들어와 진로 및 신앙상담을 한다
인터뷰 중에도 학생들이 자유롭게 들어와 진로 및 신앙상담을 한다

Q5. 교장으로 학원을 경영하면서 학생과 학부모와 교직원의 조화와 협력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데, 교장선생님이 보시는 숭덕여고 학생과 학부형과 교직원을 간략하게 소개한다면 어떻게 말하실 수 있나요?

A. 예전에 학교 교육은 학교가 중심이 되고 교사가 주체가 되어 학부형의 도움을 받아 학생들을 지도하는 형태이었지만 현재의 교육은 학생을 중심으로 학부형과 교사가 협력하여 교육과정과 교육활동을 펼쳐나가는 학생 선택 중심의 교육으로 변화하고 있습니다. 그러하기에 학생과 학부모와 교사가 삼위일체가 되지 않는다면 정상적인 교육과정이 이루어질 수 없으며 그럴 경우 모든 피해는 학생에게 돌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인천 지역 사회에서 숭덕여고는 누구나 오고 싶어 하는 명문 여고로 그 배경에는 학생들을 자녀들처럼 사랑하는 교직원들의 헌신적인 사랑과 희생이 있고 학교와 교사들을 절대적으로 신뢰하는 학생들과 학부모님들이 있었기에 명문으로 성장할 수 있었고 현재도 그 전통을 이어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학교마다 많은 민원과 학교폭력의 문제로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숭덕여고는 학교폭력 문제와 민원의 문제가 거의 없는 학교가 될 수 있었던 것 또한 학생과 학부모와 교직원들의 조화와 협력의 결과입니다.

사학명문 숭덕여고
사학명문 숭덕여고
숭덕여고 예지관은 바른 사회인과 신앙인을 키우는 산실이다
숭덕여고 예지관은 바른 사회인과 신앙인을 키우는 산실이다
학생들을 향한 교사들의 열정이 명문 숭덕의 밑거름이다
학생들을 향한 교사들의 열정이 명문 숭덕의 밑거름이다
학생들을 향한 교사들의 열정이 명문 숭덕의 밑거름이다
학생들을 향한 교사들의 열정이 명문 숭덕의 밑거름이다

Q6. 교장선생님은 인천여명교회 장로로도 섬기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장로님이 예수 믿게 된 동기와 신앙의 배경을 설명한다면요?

A. 모태 신앙이다 보니 예수님을 믿게 된 동기나 자율적 선택권은 없었습니다. 신앙의 배경은 어린 시절 초가지붕의 단칸방에 살면서 부모님과 5남매가 한방에서 생활하며 잠자리에 들기 전 모든 가족이 이불에 누워 기도하며 찬송을 부르다가 잠에 들고, 아침에 일어날 때면 지난밤에 보호하사 잠 잘 자게 하시고 감사하신 천부 은총 일심 감사합니다.’는 찬송을 부르며 일어나고, 가난하여 반찬 없는 보리밥을 먹거나, 곡식이 떨어져 밀가루를 반죽하여 수제비를 먹어도 날마다 우리에게 양식을 주시는 고마우신 하나님 참 감사합니다.’라는 찬송을 부르며 신앙을 바탕으로 한 행복한 어린 시절을 보낸 것 같습니다.

찬송을 부르며 잠들고 찬송을 부르며

눈을 뜨던 어린 시절의 가정교육

선친(先親)은 교사였지만 당시 교사의 월급이 박봉(薄俸)이었기에 어머니께서 행상을 하셔서 이른 아침 장사를 나가시면 밤늦은 시간에 돌아오셨고 어머니의 수입으로 자녀들의 학비와 생활비를 부담하셨지만 두 분의 수입으로도 매우 가난한 삶을 살던 어린 시절이 기억이 납니다. 비가 오면 초가지붕에서 물이 떨어져 단칸방 이 곳 저곳에 물 받을 그릇을 받쳐놓고 생활해야 했고, 부엌에 나가면 물이 역류되어 모든 그릇이 둥둥 떠다니고, 날이 맑은 날에는 천장에서 쥐들이 왔다 갔다 하는 소리를 들으며 생활하고, 먹을 양식이 떨어지고 학비를 내지 못하는 상황에서도, 월급날이 되면 부모님께서는 자녀들 앞에서 십일조와 감사헌금을 먼저 준비하셨고 주일을 온전히 거룩한 날로 지키시며 다리미로 헌금을 다려 정성껏 드리셨습니다.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말씀을 말로서가 아니라 삶으로, 행함으로, 자녀들에게 가르치셨기에 지금도 모든 자녀들이 주일을 온전히 지키며 헌금 생활에 최선을 다하게 된 것 같습니다. 어린 시절 어머니의 손을 잡고 멀기만 하던 교회로 새벽 예배를 드리러 다니기도 하고 사경회와 부흥회를 쫓아다니며 믿음이 성장했던 것 같습니다. 부모님들께서는 주로 개척 교회를 섬기셨기에 초, , 고 시절에는 동인천감리교회와 제물포감리교회의 창립 멤버로 임원도 맡고 어린 나이에 교사도 하다가 사십 년 전 여명교회 개척 초기에 여명교회로 옮기게 되어 여명교회에서 시무장로로 섬기고 있습니다. 선친께서도 여명교회에서 장로로 임직을 맡으셨기에 대를 이어 장로로 섬기고 있습니다.

 

Q7. 믿음의 가문에서 자라긴 했지만, 학창 시절에는 성적이 좋지 않아 지방대학에도 진학하지 못한 학생이었기에 성적문제로 고민하는 숭덕여고 학생들에게 교장선생님의 고등학교 성적표를 보여주며 꿈과 희망을 준다고 하던데 어떻게 교사가 되었으며 오늘의 교장선생님까지 될 수 있었나요?

A. 5남매 중 수재(秀才)였던 큰 형을 제외하면, 4남매의 성적은 모두 중, 하위권의 성적을 받으며 학교를 다녔습니다. 옛날에는 중학교와 고등학교 모두 시험을 보고 입학하는 시기였기에 우리 형제들은 인천에서 그리 좋지 못한 중, 고등학교를 다녔으며 그런 가운데서도 성적은 중, 하위권이었으니까 공부를 참으로 못했던 것 같습니다. 신앙교육을 성적으로 치면 최우수 성적이었고 형제들 모두 교회에서는 교회의 임원으로 중책을 맡았지만 학교 성적은 바닥이었고 그러하기에 줄 반장도 해본 형제들이 없었던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협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8;28절의 말씀처럼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들에게는 하나님께서 사람을 세울 실 때가 있는 것 같습니다. 공부를 못했기에 모두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곧바로 대학에 입학하지 못했지만 5남매 모두 4년제 대학을 졸업했습니다. 지방대학이지만 말입니다. 형들 세 명은 모두 공과대학 기계공학과를 졸업하고 우리나라 최고의 기업에서 주요 임원으로 근무하다가 이제는 사업을 하고 있고 동생과 저는 교사로 쓰임 받고 있으니 은혜가 아닐 수 없습니다.

저의 경우는 더 그렇습니다. 대학에 갈 성적이 되지 않았기에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공장에 다니기도 하고 밤에는 찹쌀떡을 팔러 다니기도 하였고 때로는 길가에서 과일을 팔기도 하였지요. 그러다가 군대에 갔다 제대를 하며 하나님에게 매달려 지혜를 달라 기도하며, 큐티를 하며 하루를 시작하고 큐티를 하고 잠자리에 들곤 했었는데 놀랍게도 학창 시절에는 그렇게 공부하려 해도 이해가지 않고 낙제점수를 받아 지방 대학도 갈 수 없었던 저에게 놀라운 일이 벌어졌습니다. 80년대 초에 입대하여 3년간 최전방 휴전선에서 군 복무를 마치고 제대하니 정권이 바뀌고 입시제도가 바뀌어서 국, , 수 외에 많은 과목들이 입시 과목으로 바뀌었는데 고등학교 시절 공부를 지질이도 못해 감히 쳐다볼 수 없었던 인하대학 국어교육과를 제대한 지 63일 동안 공부하여 장학생으로 입학하게 되었으니 말입니다. 남들은 믿지 못하겠지만 저에게는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능치 못함이 없음을 알기에 하나님께서 주신 지혜의 축복에 감사할 뿐입니다. 저의 기도는 하나님, 저에게 지혜를 주셔서 교사로 세워주시면 하나님 나라를 위하여, 학원 복음화를 위하여 힘쓰겠다고 간절히 기도하였고 그 기도의 응답으로 사범대학을 졸업하고 숭덕여고에서 34년간 교사로 근무하게 되었습니다.

 

Q8. 지방대학도 갈 수 없던 학생이 주님의 은혜로 장학생으로 대학을 가고 숭덕여교의 교사를 거쳐 교장까지 하나님의 개입이 아니면 불가능했던 일들이 벌어졌군요.

A. . 맞아요. 교사가 된 것도 은혜지만 교감을 거쳐 교장이 된 것도 모두 기적이며, 믿음의 선조들의 기도의 응답이라 생각합니다. 저는 국어교사로 탁월한 실력이나 티칭의 기술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업무를 잘하는 교사도 아니었습니다. 나름 잘하는 것이 있다면 아침 일찍 출근하여 아이들을 위해 기도하고 밤늦게까지 야간 자율학습하는 아이들과 함께 생활하며 아이들을 상담하며 아이들의 고민을 들어주고 기도하는 것이었습니다. 새벽기도에 가는 마음으로 아침 일찍 출근하였고 저녁 예배나 철야 예배를 드리는 마음으로 학교에 남아 아이들과 함께하며 학원복음화를 위해 최선을 다했는데 이러한 노력들이 제가 담당한 학급의 학생들에게 좋은 입시의 결과로 이어졌습니다. 이런 결과를 인정받아 십여 년 동안 3학년 부장으로 근무할 때도 인천에서 입시 명문으로 소문날 정도로 좋은 진학의 결과들이 나왔습니다. 관리자가 되고 싶다는 생각은 해 본 적이 없었는데 재단으로부터 교감과 교장으로 세움을 받으며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임을 고백하지 아니할 수 없습니다. 1906년 할아버지께서 영생학교를 세우시고 이십여 년 교장을 하시며 하셨던 기도가 후손들이 교사로 세워지며 교육의 현장에서 복음을 전하기를 기도하시지 않으셨을까를 생각해 봅니다. 그리고 그 기도의 응답으로 선친(先親)께서도 사십여 년 교직에 계시면서 20여 년 교장을 하셨고 선친의 소망도 4명의 아들 가운데 한 명은 교사가 되기를 기도하셨는데 하나님께서 저를 택하셔서 교사로 세워주시고 3대째 교장으로 세워주심에 감사할 뿐입니다.

우리 5남매의 자녀들 11명 대부분도 공부를 좀 못했습니다. 우리들이 부모님에게 신앙의 유산을 물려받은 것처럼 자녀들도 신앙으로 키우려고 모두 노력했던 것 같습니다. 학교는 아파서 결석을 하더라도 주일에는 아무리 아파도 교회학교는 보냈으며, 주일에 프로그램을 진행하였던 보이스카웃이나 걸스카웃 같은 동아리는 절대 들지 못하게 하였으며, 태권도 승단 시험에 주일에 실시하면 가지 못하게 하였습니다. 하물며 주일에 학원에 보낸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이지요. 돈이 없어 수학여행은 가지 못하더라도, 해마다 여름과 겨울에 실시되는 신앙수련회는 반드시 참여하며 온전히 주일을 지킬 수 있도록 교육하였습니다.

우리 가족들은 자녀들에게 공부 때문에 그리 스트레스를 주지 않고 키웠던 것 같습니다. 우리도 공부를 못했으니 말입니다. 가족들이 모일 때면 자녀들에게 항상 하는 이야기 중의 하나는 공부 못해서 대학을 못가거나 지방대학 간다고 걱정하지 말라는 것이었습니다. 고모도, 큰 아빠도, 작은 아빠도, 삼촌도 공부 못했지만 하나님을 섬기며, 최선을 다하면 부모님들처럼 너희들의 길을 인도하여 주실 것이라고 위로하고 격려해 주기만 하였습니다. 감사한 것은 우리 5남매는 물론이요 11명의 자녀들 모두 경제적 위기와 청년 실업난이 심각한 시대에 살면서도 주일을 온전히 지키면서도 나름 좋은 여건 하에서 직장생활을 하고 있음에 더욱 감사할 뿐입니다.

숭덕여고 사제동행 농촌체험 활동
숭덕여고 사제동행 농촌체험 활동

Q9. 신앙의 가문으로 4대가 모두 다 신앙생활을 하면서 특별히 매년 여름만 되면 특별한 가족수련회를 갖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소개한다면요?

A. 많은 사람들은 존경하는 인물들을 이야기할 때 각 분야에서 시대를 이끌어 간, 위인들을 이야기 하지만 우리 형제들은 가족들을 존경하는 인물로 이야기하곤 합니다. 동생들은 형들을, 형들은 동생들을 존경하는 인물로 말입니다. 저 또한 제 삶에 가장 영향을 많이 준 인물은 역사 속의 인물들이 아니라 어려운 가정환경 가운데서도 부모님에게 효도하고 동생들을 사랑으로 섬겨주시며 믿음의 본이 되었던 형제들입니다. 가난한 어린 시절을 보냈을 때 형들은 신문을 돌리기도 하고 아르바이트를 하며 동생들을 지극 정성으로 돌보아 주었습니다. 형제들이 성년이 되어 결혼을 했어도, 토요일에는 모든 가족들이 함께 모여 생활하였으며 주일에는 부모님을 따라 모든 가족이 함께 예배를 드렸습니다. 이 모든 일이 가능했던 것은 큰 형님(박상량 장로)의 헌신과 희생이 있었기에 가능하였고 큰 형님께서 삶으로 본을 보이시는 모습을 둘째 형이, 둘째 형의 모습을 셋째 형이, 그리고 저와 제 동생이 배우게 되었습니다. 큰 형님께서는 어린 시절부터 지금까지 동생들과 가족들을 위해서라면 모든 것을 희생하시는 분이셨습니다.

삼십여 년 전부터 거의 매년 실시하는 가족 수련회도 부모님과 동생들을 잘 섬기려는 큰 형님의 사랑의 마음과 헌신으로부터 시작되었고, 이제는 부모 세대의 모습을 보고 자란 삼, 사십 대의 18명의 조카들과 며느리들이 23일간의 가족 수련회를 기획하며 모든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12 가정 41명이 모이는 것이 그리 쉬운 일은 아니지만 모두가 가족 모임을 우선순위에 두고 있기에 가능한 일이고 모임 가운데 은혜가 있고 즐거움과 행복함이 가득하기에 모두가 기다리는 가족 휴가가 되었습니다.

가족 휴가라기보다는 가족 신앙 수련회라고 표현하는 것이 옳을 수 있습니다. 큰 형님께서 이 모임을 추진한 배경에는 가족들을 잘 섬기려는 마음도 있었지만 그에 앞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의 길을 걸을 때에 구름 기둥으로 불기둥으로, 만나와 메추라기로 인도하셨던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기 위하여 장막절을 지내는 것처럼, 가족 휴가를 통하여 우리 가족들을 인도하여 주신 에벤에셀 하나님의 한량없는 은혜를 기억하고, 지금도 우리와 동행하여 주시는 임마누엘의 하나님을 자녀들에게 매년 가르치기 위하여 가족 휴가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가족 휴가는 단순히 놀고 즐기는 모임이 아니라, 예배가 중심이 되어 지난 일 년의 삶 가운데 은혜로 함께 하신 일들을 고백하고 간증하는 시간들이 있어 더욱 은혜가 됩니다.

매 년 가족수련회를 통해 신앙의 유산을 확인한다
매 년 가족수련회를 통해 신앙의 유산을 확인한다

Q10. 41명의 대가족이 모두 다 신앙 안에서 든든한 믿음의 뿌리를 내리는 원동력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요?

A. 이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들의 믿음의 열매라기보다는 100여 년 전 믿음의 선조들의 기도의 응답이며, 축복이라고 생각합니다. 친가와 외가 모두 구한말 19세기 말에 믿음을 받아들이고 개화기 초에 교회를 세우며 전도사로 사역을 하셨습니다. 친가는 강화도 서도중앙교회 전도사로 외가는 강화도 교동감리교회 초대 전도사로 말입니다. 구한말에 외가와 친가 모두 종 3품의 벼슬을 한 집안으로 마을에서 가장 높은 벼슬을 한 분들이 믿음을 받아들였기 때문에 마을 전체가 쉽게 복음화될 수 있었다고 합니다. 외가(外家)1865년 토마스 선교사가 교동도 앞에 배가 좌초되었을 때 종 3품 벼슬을 하던 외고조부(박동엽 옹) 토머스 선교사 일행을 극진히 대접하고 배를 수리해 주었고 토머스 선교사님이 다녀간 이후에 복음이 전해져 사랑방 형태로 교회가 형성되었고 외증조부(박성대 감리교 1호 전도사)와 외조부(박형남 목사)에 의해 교동교회가 세워졌으며 지금은 교동면 전체에 12개의 교회가 세워졌다 합니다. 외가댁은 7대째 믿음의 계보를 이어가며 5대째 목회자로 사역을 담당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외가의 자손들 중에는 박영재 목사, 예수소망교회 곽선희 목사, 맹인점자를 만드신 박두성 등, 목사와 장로가 60여 명이 배출되었습니다.

친가(親家) 또한 무반 출신으로 종 3품 벼슬을 하던 고조부(박승형)께서 구한말에 믿음을 받아들이면서 마을 모든 사람들이 상투를 없애고 굿도 하지 않으며 교회를 다니기 시작하여 마음 전체가 교회에 출석하게 되었고 증조부(박순병)께서는 서도중앙교회 전도사로 시무(始務)하셨고, 조부(박용세)께서는 개화기 초 일제의 침략에 맞서 교육만이 나라를 굳건하게 세울 수 있다는 믿음 하에 교회 옆에 1906년 영생학교(현 서도초등학교)를 세우시고 기독교 정신을 바탕으로 한 교육을 하셨습니다. 외가는 5대째 목회자의 사역을 감당하고 있다면 친가는 1906년부터 2021년 지금까지 115년 간 4대째 교육자로서 또 장로로서 사명을 감당하고 있습니다. 감사한 것은 할아버지와 아버지에 이어 제가 3대째 교장의 직임을 감당하고 있고 딸 또한 기독 교사로 사명을 감당하고 있어 감사한 마음뿐입니다.

외가(外家)나 친가(親家) 선조들의 간절한 기도 중의 하나는 후손들이 선교와 봉사에 앞장서며 믿음의 계보를 이어가는 것이었으며 현재의 모든 가족들이 믿음을 지키며 후손들에게 믿음으로 다음 세대를 양육하고 있기에 어느 누구도 믿음의 자리를 떠나지 않고 7대째 믿음의 대를 이어가고 있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외가는 5대째 목회자의 사역을 감당하고 있다면

친가는 1906년부터 2021년 지금까지

115년 간 4대째 교육자로서

또 장로로서 사명을 감당하고 있어

Q11. 전 가족이 선교를 위해서도 한 뜻으로 헌신하고 있는데, 그 이야기를 해주신다면요?

A. 12 가정 41명이 모두 축복된 삶을 살아가는 것은 믿음의 선조들의 기도의 응답이라는 것에는 모든 가족들이 공감하고 있기에 우리들도 우리의 다음 세대를 위해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를 자문자답(自問自答) 하기도 한다. 선조들이 교회를 세우고 학교를 세우며 어려운 이웃들을 위해 구휼(救恤)에 앞장서 고향마다 영세불망비가 세워지고 기독교 설교 예화집에 할아버지들께서 선행을 베푼 미담들이 소개되기도 한 것들을 이야기하며 우리들도 선조들처럼 선교와 봉사의 사명을 감당하려고 노력하고 있지만 할아버지들에 비하면 부끄럽기만 합니다. 그래도 사업을 하는 형제들이 수입의 일부분을 선교비로 드리려고 힘쓰고 있고 자녀들도 기회가 있을 때마다 선교지에 교회를 세우는 일에 협력하고 우물을 파기도 하고 아이패드를 보내기도 하며 선교에 앞장서는 모습이 대견스럽기만 합니다. 가족 휴가나 명절에 모여 예배를 드릴 때에 드려지는 헌금은 선교비로 사용하기도 하고 가족 중 누군가 선교사님들이나 비전교회에 어려움을 이야기하면 십시일반 마음을 모으기도 하는데 모든 가족들이 이렇게 베풀고 섬길 수 있는 물질적 축복 주심에 감사하기만 합니다.

저와 같이 교사 생활을 하고 있는 동생 박미연 권사(서울공연예술고)의 미담을 소개하고 싶습니다. 많은 선교사님들께서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당하고 있지만 마음처럼 쉽게 도와 드리지 못하는 안타까운 마음을 갖고 있었던 차에 해마다 신일학원에서 해마다 스승의 날이 있는 5월이 되면 전국의 교사들을 대상으로 각 분야에서 모범이 되는 교사들을 한명씩 선발하고 수상자에게는 상금으로 천만 원이 수여된다는 기사를 읽게 되었고 그 상금으로 선교사님들을 돕고 싶다는 마음을 동료교사들과 나누었더니 평소에 동생을 따르던 교사들이 앞장서서 추천하였고 2012올해의 스승상수상자로 선정되었습니다.

같은 교사이지만 저는 동생처럼 헌신적으로 불우하고 어려우며 소외되거나 일탈 행동을 하는 학생들을 섬기지 못했지만 당시 구로동에 거주하는 어려운 학생들을 예수님의 사랑과 섬김의 마음으로 잘 돌본 공로가 인정되고 동료교사들과 학부모들, 졸업한 동문들과 재학생들이 이구동성으로 동생을 추천하여 수상자가 되었고 상금을 받자마자 모든 상금을 저에게 주며 선교사님을 위해 써달라고 말한 그 일을 저는 잊을 수가 없습니다. 삼십여 년을 교사 생활을 한 저이지만 제 주변에 올해의 스승상 추천을 받았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없는데 제 동생이 올해의 스승상을 받았다는 것이 자랑스럽기만 합니다. 가끔은 제가 사명감을 잃고 교사 생활을 할 때면 인터넷으로 들어가 동생의 기사를 읽으며 마음을 다잡고 합니다.

신일스승상은 수도권 지역 전 교사를 대상으로 2002년부터 수상 , 5남매 부부의 기념사진
신일스승상은 수도권 지역 전 교사를 대상으로 2002년부터 수상 , 5남매 부부의 기념사진

Q12. 요즘 시대는 은퇴 이후의 삶에 대해서도 깊이 고민하고 준비해야 하는데, 장로님의 은퇴 이후의 계획은 무엇인가요?

A. 학원 복음화를 위하여 힘쓰며 살아가는 지금의 삶도 행복하지만 가끔은 퇴직 이후의 삶을 생각할 때면 설레는 마음이 듭니다. Retire라는 말처럼 다시 타이어를 갈아 끼우고 제2의 인생을 시작한다는 설레는 마음 때문입니다. 지난 34년간은 숭덕여고라는 한 울타리에서만 학원 복음화를 위해 힘썼다면 이제는 그동안 배운 교육 경험을 가지고 인천의 모든 학교를 찾아다니면서 학교마다 기독 동아리를 세우는 일에 협력하여 모든 학교에서 기도와 찬송 소리가 들려오는 school church 만드는 사역을 생각하기도 하고 그동안 학교의 일정 때문에 협력하지 못했던 해외 이주 노동자들과 다문화 가정을 섬기며 그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일을 계획하고 있습니다. 교회의 장로로 평일에는 성도들을 섬기는 일을 최선을 다하지 못했는데 평일에도 성도들과 함께 봉사하며 성경 공부를 꿈꾸기도 하고 기회가 된다면 선교지에 나가 MK사역을 감당하며 선교사님들과 동역하는 일들을 계획하고 있습니다.

숭덕학원이 사학명문으로 바로 세워지는데는 한 사람의 꿈이 있었기 때문이다
숭덕학원이 사학명문으로 바로 세워지는데는 한 사람의 꿈이 있었기 때문이다

 

인천지역의 모든 학교에 기독동아리를 세우고, 해외 이주 노동자들과 다문화 가정을 섬기며 선교지에 나가 선교사님들과 동역하는 것이 은퇴 후 나의 꿈

Q13. 장로님이 개인적으로 좋아하시는 성경말씀과 찬송가는 무엇이며? 장로님의 인생의 모토는 무엇인가요?

A. 좋아하는 성경 말씀은 삼십여 년을 기독교사로 살다 보니 학생들에게 가장 많이 전하며 외우게 하는 말씀이 창세기 11절 말씀과 빌립보서 413절 말씀입니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내게 능력 주시는 자안에서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 학생들에게 창조론을 바탕으로 성경적 세계관을 가르치면서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신다면 우리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다고 가르칩니다. 그러하기에 숭덕인들에게는 남과 다른 무한 능력을 가지고 생생하게 꿈꾸며 그 꿈을 이루기 위하여 힘쓰기에 입시와 진학에 있어서 인천의 최고 명문으로 자리매김을 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찬송가는 559사철에 봄바람 불어있고입니다. 아무래도 어려서부터 가정 예배를 드릴 때마다 부모님과 형제들이 함께 부르던 찬송이며 지금도 자녀들과 가정예배를 드릴 때마다 부르는 찬송이기에 더욱더 은혜가 됩니다. 선친께서 생전에 계실 때에 새롭게 하소서에 우리 가정이 출연하여 불렀던 찬양이고 찬송의 가사마다 우리 가정에 베풀어주신 은혜의 내용들이 담겨 있어 가장 많이 애창하는 찬송입니다.

저의 인생의 모토는 오직 예수이며 나와 내 집은 오직 여호와만을 섬기겠노라.’(24:15)는 여호수아의 고백이 나의 고백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Q14. 한국교회의 미래가 많이 불투명한 안타까운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데, 교육학자로서 한국교회와 가정에서 각각 미래세대를 위해 가장 중요하고 시급한 일들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A. 다시 여호와께로 돌아가는 믿음의 회복이 가장 중요하고 시급한 일이라 생각합니다. 130여 년 전 복음을 들고 이 땅을 밟았던 언더우드 선교사님의 기도문처럼 지금은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불투명한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모든 것을 포기한 N포 세대 -사회경제적 상황으로 인해 연애, 결혼, 출산, 내 집 마련, 인간관계, , 희망, 건강, 외모를 포기한 세대-를 살아가는 젊은 세대들이 삶의 지향점과 방향성을 상실하여 생명의 존엄성까지 상실하고 있는 시대에 가장 시급한 것은 서로를 경쟁의 상대로 보는 입시와 진학 위주의 교육에서 벗어나 생명을 살리고 영혼을 살리는 교육이 가정과 교회에서 먼저 회복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모든 교회마다 믿음의 다음 세대를 세워야 한다는 구호는 거창하게 내걸고 있지만 믿음의 다음 세대를 세우기 위한 노력과 투자가 없음이 안타깝고, 입시와 진학 위주의 교육이 우리 아이들의 영혼을 죽이며 꿈을 상실하게 만들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녀들의 성적 향상에만 지대한 관심을 갖고, 교회학교에 보내지 않으며, 가정에서도 신앙교육을 않는 신앙적 위기의 시대를 살아가며 다시 복음으로 여호와께로 돌아가는 믿음의 회복만이 자녀를 살리며, 가정을 살리고 한국교회를 살리는 유일무이(唯一無二)한 방법이라고 단언(斷言)합니다.

저작권자 © 본헤럴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모바일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