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화도 초기 기독교 순례 현장에서 한국기독교 문제의 답을 찾다”

임경묵 원장 (다바르 말씀 사역원)의 강의 현장
임경묵 원장 (다바르 말씀 사역원)의 강의 현장

대담자 : 임경묵 목사 (다바르말씀 사역원장)

 임경묵 목사는 연세대학교신학과를 졸업하고장로회신학대학교 신대원과 대학원에서 신약학(Th.M.)을 공부했다.

대담진행 : 임승훈 목사(감사운동본부, 위대한맘(한부모센터) 대표

서울신학대학교 신학박사

일시 및 장소 : 2021. 8. 11() 오후 4, 김포 구래동 르호봇 코워쉽

다바르 말씀학교는 2015년에 설립되었으며, 임경묵 원장은 정기적인 모임을 통해 말씀을 가르치는 사역에 몰두하고 있다. 둘째 주 화요일에는 줌(zoom)을 통해 비대면으로, 마지막 주에는 대면 모임을 갖는다. 그가 어떻게 해서 이런 사역을 시작했을까? 무엇이 그로 하여금 여러 목회자들을 섬기는 일에 매달리게 했을까? 16년 전 인천 가좌동에 주향교회를 개척하고, 다른 목회자들과 똑같이 목회에 매달렸다. 하지만 시간은 하염없이 가고, 시간은 많으니 성경연구, 성경읽기에 매달렸더니 성경의 구조가 보이더란다. 그것이 말씀학교의 시작이었다.

원장 임경묵 목사는 다바르 말씀학교를 통해서 성경 각권의 주제와 독특성을 밝히며 구조적인 이해를 바탕으로 메시지를 찾는다. ‘성경의 큰 숲을 먼저 살펴 개별적 말씀 본연의 메시지들을 밝혀낸다. 메시지를 한 폭의 그림으로 본다. 그래서 구조는 메시지다.’라고 가르친다. 현재 27권의 성경교재를 집필했으며, 매 달 한 번씩 다바르 말씀학교를 통해서 여러 목회자들과의 지속적인 만남을 가져왔다. 2020부터는 말씀학교를 다바르 말씀사역원이라 개칭하고, 성경교재 형식의 연구책자를 정식으로 출판해나가고 있으며, 강화도를 중심으로 기독교 유적과 역사현장을 순례하는 프로그램도 개발하여 진행하고 있다. 이를 더욱 발전시켜나가고자 최근에는 김포 구래동에 다바르 말씀학교 사역연구원(공유교회)을 마련하여 더욱더 부흥과 활성화를 모색하고 있다. 기자가 찾아간 날도 그는 연구원에 나와서 코로나19 시대에 더욱 치밀하고 구체적인 계획을 수립하고 있었다.

존스 선교사가 이승환의 어머니에게 베푼 선상 세례터, 좌측이 임승훈 목사 우측이 임경묵 목사
존스 선교사가 이승환의 어머니에게 베푼 선상 세례터, 좌측이 임승훈 목사 우측이 임경묵 목사

Q1. 2015년 다바르 말씀학교를 시작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

A. 장로회신학대학교 대학원에서 신약학을 공부했으나 애초에 교수가 될 생각은 하지 않았기에 개척을 하여 인천 가좌동에 둥지를 틀었습니다. 개척교회를 시작하는 입장이었기에 시간이 많이 나므로 성경을 연구하는 일에 몰두하였습니다. 하나 둘 연구 결과가 나옴과 동시에 이 귀한 것을 자연스럽게 여러 동료 목회자들과 나누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말씀학교의 출발이라 하겠습니다.

 

Q2. 다바르 말씀학교란 무엇인가?

A. 다바르(דבר, dabar)는 히브리어로 말씀을 뜻합니다. 말씀이란 칼 바르트에 의하면, 하나님의 생생한 언어요, 2천 년 전에 이 땅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요, 지금은 예배 때마다 선포되는 목자의 설교가 아니겠습니까. 성경말씀 본연의 메시지를 연구하는 학교라고 보면 되겠습니다. 특히 주석과 구별되는 것은 목회적인 메시지를 찾고 은혜를 나누는 것입니다. 제가 집필한 책을 교수 선배가 책을 읽고 하시는 말씀이 나도 박사지만 네 것이 최고다.’라고 하더군요. 더 용기를 가졌지요.

 

Q3. 다바르 말씀학교를 통해 얻어지는 가장 큰 보람은 무엇인가?

A. 저는 다바르 말씀학교를 통해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있는데, 성경을 보는 관점입니다. 숲을 알면 나무가 보이지요. 마찬가지로 성경말씀에서 숲을 보는 눈은 성경의 구조를 아는 것입니다. 성경의 구조(structure)를 알면 내용의 혼돈을 방지하며, 숲 속에서 헤매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 목회자들이 매주, 매일 다가오는 말씀선포의 중압감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길은 성경의 구조를 아는 것입니다. 그러면 성경 66(1189)31171절의 분량의 방대한 나무사이에서 길을 잃는 법은 없을 겁니다. 비록 미약하지만 여러 목사님들에게 작은 도움이 되는 것이 큰 보람입니다.

임경묵 원장 강의 현장
임경묵 원장 강의 현장

Q4. 다바르 말씀학교를 진행하면서 어려움이 많았을 것이다.

A. 아무래도 재정이라고 하겠지요. 현재까지 7년간 27권의 성경을 출간했는데요. 제본은 큰 돈이 들지 않지만 출판에는 많은 비용이 듭니다. 목회자들이 참여해 월 1회씩 공부해 주는 것만으로도 저는 뿌듯하고 보람이었지만, 정식으로 책을 출간하면서부터는 더욱더 어려움에 봉착했는데 그것 또한 해결책은 있더군요. 현재는 정회원제를 통해서 이러한 어려움들이 극복되고 있습니다. 정회원들은 정기적인 회비로 3개월 주기로 출판되는 교재를 받아보며, 또한 다바르 말씀 사역원의 출판과 사역을 지원합니다.

 

Q5. 책을 한권쓰기도 어려운데 이렇게 여러 권을 쓸 수 있는 비결()이 있을 법하다.

A. 아무래도 계속해서 성경말씀을 읽고 장절을 구분하고 구조분석을 통해 말씀의 깊이와 너비를 더해가니 연구서들이 계속해서 출간 가능하더군요. 해서 현재는 정식출간으로 7권을 세상에 내놓아 빛을 발하게 되었습니다.

 

Q6. 지금까지 정식 출간한 책들을 소개해 준다면 무엇 무엇이 있는가?

A. 1차본으로 66권 성경 전권을 준비했고요, 2차본으로는 지금까지 창세기로부터 모세오경과 역사서 그리고 사복음과 사도행전, 서신서 해서 모두 27권을 제본 형식으로 냈으며 마지막 3차본으로 정식출간은 7권입니다. 모세오경 시리즈 중에는 2권으로, 레위기(레위기를 알면 예배가 보인다), 민수기(민수기를 알면 인생의 승리가 보인다)가 출간됐고,

「레위기」(레위기를 알면 예배가 보인다)
「레위기」(레위기를 알면 예배가 보인다)

 

「마태복음」(상, 하)(교회를 세우기 위한 왕의 복음서),
「마태복음」(상, 하)(교회를 세우기 위한 왕의 복음서),

사복음 시리즈로는 5권으로사복음 시리즈로는 5권으로, 마태복음(, )(교회를 세우기 위한 왕의 복음서),   마가복음(환난 받는 자를 위한 고난의 복음서), 누가복음(신앙의 도약을 이루는 인자의 복음서)가 출간 되었습니다. 세밀하게 살펴보면 각권마다 이해를 돕는 부제가 붙어 있어 즐거움을 더합니다. 앞으로 66권을 전부 다 출간할 생각이며, 강화도와 서울 정동, 인천, 부산, 신안, 여수, 등 한국기독교의 역사현장을 순례기행하고 연구하여 각각 출판하고자 합니다.

 

Q7. 인디자인(Adobe InDesign-레이아웃 디자인 소프트웨어)을 할 줄 안다했는데 그것을 배우기도 쉽지는 않았을 텐데....

A. , 출판을 하는데 있어 기본이 인디자인 프로그램이죠. 정식으로 배운 것은 아니고 그 방면에 뛰어난 한 목사님의 도움으로 접하게 되었고, 독학으로도 프로그램을 만지게 되었으나, 잘하는 것은 아니지만 책을 내는 데 필요한 정도의 능력은 있다 할 수 있겠습니다. 운용하면서 어려운 것은 그 때 그 때 물어서 사용해나가고 있습니다. 이것 또한 다바르 말씀 사역원의 소임이기에 즐겨 감당하고 있습니다.

 

Q8. 2020년 다바르 말씀학교를 다바르 말씀사역원으로 개칭한 계기는 무엇인가? 또 말씀학교와 사역원의 차이는 무엇인가?

A. 사실 큰 차이는 없습니다. 본래의 기능으로는 같다고 볼 수 있는데요, 말씀학교가 말씀사역원으로 확장한 것입니다. 다바르 말씀 사역원은 말씀학교에 없는 두 가지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이전의 말씀사역에 추가적으로 순례 사역을 통해서 정적인 말씀사역에 동적인 사역을 추가하였고, 출판 사역을 추가하여 다바르 말씀사역원의 사역을 지원하고, 여러 목회자들의 출판을 협력하거나 돕고 있습니다.

임경묵 원장 강의 현장
임경묵 원장 강의 현장

Q9. 그렇지요. 일단 책을 출간하려면 목돈이 필요하지요. 최소 출판에 필요한 300여 만 원은 조달돼야 하는 것 아닌가?

A. , 실은 제가 인디자인을 통해 편집하기 때문에 출판에서 가장 많이 소요되는 편집 교정교열 비용은 그만큼 세이브 되고요, 저에게 있어서 출판은 인쇄비용이라고 생각하면 되겠지요. 목사님이 생각한 것보다도 훨씬 적게 소요됩니다. 출판비에 대해서는 인쇄소 사장님의 배려와 정회원들의 협력이 절대적으로 도움이 됩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성경말씀 연구서가 계속 출간되어 인천은 물론 한국의 모든 목회자들에게 유용한 설교자료, 교육자료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Q9. 말씀사역, 출판사역, 순례사역 중에 순례 사역에 관하여 소개해 줄 수 있는가?

A. 여행이란 관광과 여행, 순례가 있다고 보는데요, 관광은 보고 먹고 즐김이 우선목적이겠고요, 여행이란 쉼과 배움을 위한 것이라 한다면, 순례는 무엇을 배우는 것을 넘어 나를 변화시키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주님께서는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라고 하셨듯이 사역원의 순례는 강화를 중심으로 이루어지며 말씀연구와 훈련사역에서 배운 내용의 현장체험이라 하겠습니다.

 

Q10. ! 하필 강화도 순례인가? 이유라도 있는가?

A. 강화도 순례는 제게 순례의 눈을 뜨게 해준 곳입니다. 순례의 가치와 특별함을 알게 해 주었죠. 순례는 과거를 걸으며 오늘에 필요한 지혜를 깨우치게 하는 것인데요. 초기 한국기독교 전파의 현장, 복음의 치열했던 현장이 인천에서 가까운 곳 강화에 보물같이 숨겨져 있었다는 사실이죠. 더욱이 강화순례는 사도행전적인 것과 동시에 성경적인 기독교역사의 현장을 보게 하지요. 터키의 소아시아 7교회는 현재 죽은 교회지만 강화의 초기교회들은 모두 살아 현재까지 빛나고 있습니다. 짧은 우리나라 선교역사 속에서 이러한 순례의 터를 볼 수 있다는 것은 큰 축복이라 생각합니다.

Q11. 쇄국의 역사적 배경 속에서 어떻게 강화도가 한국 복음의 요람이 될 수 있었는가. 당시는 서양인들에 대한 반감이 극심하던 강화였지 않나?

A. 물론입니다. 지금은 인천이 수도의 관문역할을 하지만 140여 년 전 조선의 관문은 강화였습니다. 쇄국정책을 고수하는 조선에 개국을 요구하던 사건으로 병인양요(1866, 프랑스)와 신미양요(1871, 미국)가 모두 강화를 침입하여 군인과 민간인을 무참히 학살한 사건입니다. 때문에 강화인들의 외국인에 대한 반감은 극심했습니다. 이러한 강화가 어떻게 복음화가 될 수 있었는가 하는 것이 놀라운 스토리입니다.

 

Q12. 그러한 강화에 현재 200여 교회가 있다는 것은 기적같이 놀라운 일인데, 아무래도 무슨 숨겨진 이야기가 있다고 보여진다.

A. 네 바로 그 점입니다. 초기 역사를 살펴보면 놀라운 점들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1892년 내리교회를 담임하던 23세의 존스선교사는 갑곶나루터를 통해 강화도에 들어가지만 강화 남문에서 강화유수에 의해 입성을 거부당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섭리는 다른 방향에서 역사하시고 있었습니다. 서북지역(서사면 시루미 마을)에 사는 이승환이란 사람이 제물포에 나와 주막을 열고 장사하던 중 내리교회에서 복음을 듣고 양육교육을 받았으나 존스선교사에게 세례는 받을 수 없다 하였습니다. 이유를 물으니 첫째는 자기 직업이 술장사이기 때문이며, 둘째는 복음이 얼마나 귀한 줄은 알지만 이 좋은 것을 결코 어머니보다 먼저 받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에 주막을 정리하고 강화에 내려온 이승환은 어머니를 간곡히 설득하여 예수 복음을 전하였습니다. 이에 어머니는 아들이 믿는 예수 내가 믿겠다.’고 하여 이 소식을 존스에게 알리니 때는 바로 존스가 강화 유수에게 입성을 거부당한 이후였습니다.

하나님의 복음은 꼭 정식 통로로만 들어가는 것은 아닙니다. 강화 남문이 막히니 바닷길을 뚫어주신 것이죠. 헌데 존스의 도착 소식을 들은 당시의 지주이며 훈장이던 초시 김상임(다리목마을 일대 전답의 지주)이 막아섰습니다. ‘만일 서양 오랑캐가 내 땅을 밟고 지나간다면 네 집을 불살라버리겠다.’고 협박하니, 육로와 바닷길이 모두 막힌 형국입니다. 존스의 지시를 받은 이승환은 한밤중에 어머니를 엎고는 마을 지나고, 다리를 건너, 산을 넘고 갯벌을 지나 나룻배까지 이르렀습니다. 이름하여 강화의 첫 신자에게 선상세례가 주어진 것입니다.

강화의 첫 신자에게 준 ‘선상세례’ 존스 선교사와 이승환의 어머니
강화의 첫 신자에게 준 ‘선상세례’ 존스 선교사와 이승환의 어머니

Q13. 훈장인 초시 김상임으로서는 어안이 벙벙했을 법하다.

A. 주도면밀한 서양선교사에게 허와 실을 따지고자 김상임은 존스를 만나보고자 합니다. 이승환은 존스에게 연락하여 둘이 만나기 전까지,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몰라 두려웠습니다. 하지만...존스는 약속한 날 조선의 갓을 쓰고 두루마기를 입고는 나타나 40대의 김상임에게 예를 갖추어 인사합니다.

안녕하십니까? 형님!”

이 낯선 만남은 야곱과 에서의 만남처럼 한순간에 김상임의 마음을 녹였고, 둘의 만남은 그 시간 이후, 문화도, 언어도, 생김새가 다름에도 하나가 돼 버렸습니다. 헤어지며 김상임은 젊은 20대 초반의 선교사에게 먼저 인사를 합니다.

다음에 또 봅시다.” 존스가 대답합니다.

당연하지요. 형님!” 그리고는 서책을 선물로 드립니다. 한학자에게 있어서 서책이란 최고의 선물이 아니던가요? 그 서책은 쪽 복음서였는데요. 거기서 김상임은 진리를 발견합니다. 결국 시루미 마을 천민들과 다리목 마을 양반들이 한 교회를 이루니 그것이 오늘의 교산교회입니다. 강화의 예루살렘교회라 불리는 곳이랍니다.

 

Q14. 그렇다 해도 강화가 기독교선교 10여년 만에 전 지역에 교회가 세워졌다는 게 믿어지지 않는다. 무슨 비밀작전이라도 있을 법하다.

A. 강화의 두 번째 교회가 홍의교회인데요. 교산이 강화의 예루살렘교회라면 홍의교회는 강화의 안디옥교회입니다. 박능일은 젊은 훈장이었는데 인근 김상임 어른이 예수쟁이가 되었다는 말을 듣고는 따지러 갔다가 오히려 복음을 받아들이게 됩니다.

형님, 미쳤다면서요?”

김상임은 그 말에는 대답도 하지 않은 채 박능일에게 그간의 일을 상세히 설명하니 그 마저 예수쟁이가 되었습니다. 1896년 선교사 도움 없이 토담집 예배당을 짓고는 1년 만에 80여명이 이르렀습니다. 홍의교회의 일자돌림은 유명한데, 한 날 한 시에 한 형제와 자매가 된 그들은 성은 조상에게 받고, 끝 자는 일자로 통일하고, 가운데 이름은 제비를 뽑았습니다. 박능일, 권신일, 권인일, 권문일, 권혜일, 김경일, 김부일, 권청일, 종순일, 주광일, 장양일, 김봉일, 정천일 등등. 그리고는 교회당을 지키는 김경일을 제외한 모두가 흩어져 복음을 전하여 10년 만에 강화 전 지역에 교회를 세워나갔습니다...(중략)

 

Q15. 오늘 인터뷰에 응해줘서 감사하다. 또한 다바르 말씀 사역원이 강화에 심겨진 복음의 씨앗이 오늘날의 선교 한국을 이룬 것처럼 대한민국과 한국교회에 말씀의 좋은 씨앗이 되길 바란다.

A. 저 역시 목사님께서 이곳까지 찾아와주시고 부족한 사역을 취재해주심을 깊이 감사드립니다. 목사님의 사역에도 복음의 역사가 일어나며 아울러 본헤럴드와 독자들도 축복합니다.

 

인터뷰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 내내 다바르 말씀사역원이 강화도를 순례하는 이유를 깨달았다. 임경묵 원장이 말씀사역원을 일구고, 목회자들에게 말씀의 책을 보급하고, 그것이 교회현장에서 교재로 채택돼 사용되며, 기독교역사 순례프로그램을 통해 보다 더 확장, 성장해 나가길 소망한다. 또한 지역에 안주하는 정적인 교회가 아니라 역동적인 교회들이 되기를 바란다. 그를 만난 후 보름 뒤 필자는 임원장과 함께 강화순례에 나섰다. 차안에서 들려주는 강화도 복음전파의 역사는 그야말로 감동 그 자체였다. 60대 중반의 필자를 청년으로 만들어버렸다. 눈물의 감동과 함께 가슴이 얼마나 두근거리든지. 짐작은 하고 있었지만 이렇게 놀라운 비사들이 있었다는 게 한국인으로서 목사로서 자랑스럽다. 임경묵목사의 다바르말씀 사역원의 사역을 응원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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