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소년소녀가정돕기〕 대표 새앎교회 박수진 집사 취재기

전국소년소녀가정돕기대표 새앎교회 박수진 집사 취재기

취재 : 임승훈 목사(본헤럴드 대기자)

일시 : 2022. 3. 17()

장소 : 인천 옥련동 사무실

박수진 대표(사단법인 전국소년소녀가정돕기 인천시민연합대표)는 무엇 하나 부럽지 않은 부자 집의 무남독녀 외동딸로 인천에서 태어났다. 그녀는 어린 시절(네댓 살 때), 인천의 중심 용동 큰 우물가에서 음식점을 경영하시던 증조할머니의 선행을 목격했다. 거의 매일같이 많은 걸인들에게 국밥을 말아 대접하는 모습을 보며 궁금증이 생겼다. 어느 날, 어린 수진은 할머니를 쳐다보며 물었다. “할머니, 할머니, 왜 거지들에게 밥을 먹이는 거야?” 할머니는 씽긋 웃으시며, “, 가족이 없는 저들에게 할머니가 할 수 있는 것은 따뜻한 아침 국밥으로 엄마가 되어주고 싶구나!”

70년대까지만 해도 인천에는 밥 얻으러 다니는 걸인들이 참 많았다. 필자도 인천에서 중고등학교를 다녔는데 걸인들을 많이 보았었다. 깡통 두드리는 소리, 밥 달라고 아우성치는 소리..., 수도국산 근처에는 늘 조용할 날이 없었던 기억이다. 이런 것들을 보고 자라던 박수진 씨는 전국 소년소녀가정돕기 인천시민연합에서 봉사활동을 하다가 이제는 그 기관의 리더로 음지에 사는 소년소녀가정을 이끄는 대표가 되었다. 그의 사무실은 송도로 들어가는 옥련동 산 언저리에 위치하며 늘 사람들이 북적거리고, 수많은 물품들이 들어오고 나가느라 분주하기만 하다. 필자가 찾아간 날도 대표가 앉을 책상을 제외하고는 빼곡하게 구호품들이 들어차 있었다.

싱글맘의 딸이던 그가 이혼의 아픔까지 겪었으나 오히려 소년소녀가정을 돕는 대표가 되었다는 것은 뭔가 사연이 많고, 또한 사명감 같은 책임감이 있어서인가. 사뭇 궁금하기 그지없다.

 

첫 질문은 좀 엉뚱하다. 왜 수진 대표는 운전에 서툰지 아이러니하다.

=소년소녀가정돕기라는 단체를 운영하려면 수많은 문제들과 맞닥뜨리며 해결해나가야 하는데 운전은 필수사항이죠. 그런데 제겐 사정이 있었어요. 오래전, 대학에 입학하자마자 큰 교통사고의 트라우마가 있어서 아직 초보입니다, 언제나 봉사자분들이 시시때때로 도와주고 계셔 고마울 따름입니다.

 

어린 시절의 꿈은 무엇인가?

=초등학교 3학년 때라고 생각되는데요, 우리 반 아이들 앞에서 자기 꿈을 발표하는 자리가 주어질 때 반장인 저는 발표를 해야만 했고 신중히 생각하고 난 뒤 나는 고아원이나 양로원을 설립하고 싶어요. 그 후에는 학교도 설립할 거예요.’라고 말했지요. 담임선생님은 너무나도 대견해서 반짝이는 눈으로 다시금 되물었어요.

"네가 고아원과 양로원을 만든다고? 더군다나 학교까지?"

아무런 아픔도 없고 아무런 부족함도 없이 넉넉한 집안의 외동딸로 자라면서 어떻게 그런 먼 나라 같은 이야기를 생각을 했을까? 그때 선생님은 아마도 자가용으로 통학하던 여제자의 철없는 보여주기 식의 발표라고 생각했을 수도 있다. 대통령, 소방관, 경찰관, 의사 등 명예로운 직업이 시대상의 대표적인 꿈이었기 때문이다. 수진이의 어린 시절의 남달랐던 꿈 이야기가 상상이 되고 생활이 되어 이제는 그러한 꿈들이 모아져 여기까지 온 모양이다.

봉사를 하다가 대표가 됐지만 또한 이혼의 아픔을 겪었는데요. 다른 사람들이 의아해할 정도로 저는 전 남편이랑 잘 지내고 있습니다. 저를 공주에서 가정부로 만든 사람이긴 하지만 축복하고 격려하고 있습니다.

지금 나의 이상형은 아빠라고 부르고 싶은 책임감이 가득한 남자예요. 어디 안 계신가요? ㅎㅎ  (호탕하게 웃는 모습이 왠지 짠했다…)

 

문제아 친구로 인해 예수를 접하다.

= 수진은 자기가 공부를 가르쳐주던 공부를 잘 못하는 친구로부터 어느 날 이런 소리를 들었다. “우리 교회에서 부흥회를 하는데 수진아, 우리 교회에 나가보자,”라는 친구에게 핀잔을 주며 너 연애하려고 교회에 다니나 본데 정신 좀 차려라.”로 일축했었다.

당시에는 공부가 처진 아이들을 선생님이 돌보는 게 아니라, 공부 좀 한다는 친구들을 붙여서 그 친구가 학습을 잘해 나가도록 하는 일종의 동행학습제도가 관행처럼 있었던 시절이다. 선생님의 일을 같은 반 아이들에게 떠넘겨진 경우라 하겠다. 수진이는 친구에게 내일의 과제를 다 마치도록 도와주고, 오늘의 공부 내용을 확인하고 숙지시켜주는 일로 인해, 늘 저녁 늦은 시간이 되어서야 귀가했다. 이런 일로 인해 할머니에게 오해를 받기도 했다. ‘무슨 일로 이렇게 늦게 귀가하는 거냐.’고 말이다. 하지만 수진은 이런 모든 것들을 설명하고 싶지 않았다. 지나가는 사춘기이기도 했었고... 할머니 말고 엄마에게 말하고 싶으니까..., 그냥 선생님의 말씀에 충실히 따르는 부지런한 우등생일 따름이었다.

그런데 그 친구가 자기가 다니는 교회에 오라는 것이었다. 주일 아침이 되고 수진은 친구의 교회에 가야만 할 것 같아, 시내버스를 타고 가좌동까지 가서 차를 내렸는데 조금 걷다 보니 아니 그 교회의 첨탑이 보이는 게 아닌가. 교회 마당을 들어서는데 교회는 1층만 있는(건축 중인) 교회였고, 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중인데, 이미 예배가 끝났는지 마당에서, 처마 밑에서, 승합차 안에서 뭔가를 먹고 있었다.

아 이런 교회라면 들어가나 마나다. 되돌아가야겠다.”라고 생각하고 있는데 친구의 부르는 소리가 들린다. “수진아!”

연이어 사모님이란 분이 네가 수진이로구나. 수제비 먹자꾸나.” 얼떨결에 붙들려 수제비를 먹었는데 수제비가 그렇게 맛있는 것인 줄 미처 몰랐다. 그 사건 이후로 그녀는 가좌동의 그 친구의 교회에서 신앙생활을 하며 청소년기를 보냈다. 그다음 주에 교회에 갔다가 갑작스럽게도 방언기도를 체험했다. 하지만 신앙생활은 결혼과 함께 끝이 나고 말았다.

 

난 괜찮지 못했음에도 입에서는 마음과 다르게 괜찮아요라는 말이 자꾸 나왔다.

= 결혼과 함께 다가온 그녀의 삶은 신앙적으로도 자유롭진 않았다.

나의 삶은 괜찮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늘 내 입에서는 난 괜찮아요라고 말하고 있었어요. 정직하게 마음의 표현을 할 수 있어야 하는데, 그런 때 오히려 자꾸 더 어려운 사람들의 모습이 보이는 거예요. 괜찮아요, 난 괜찮아요. 이것은 어쩌면 예수님이 내게 주신 명령 같았어요.”

 

그녀의 키는 171센티미터 준수한 외모의 박수진 대표에게 어떤 일들이....

= “혼자 사는 싱글맘이라는 것을 알고는 남자들이 관심을 갖고 정식으로 프러포즈를 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한 달에 한 번씩 잠자리를 하자느니, 외국으로 골프여행을 가자.’느니 하면서 1년에 1억씩 을 주겠다느니. 또는 몇 억짜리 아파트를 사 줄 테니 연애하는 사이로만 지내자느니.’ 등등. 아마도 내가 돈을 좋아했다면 지금쯤 꽤 부자가 됐을 거예요 ㅎㅎ~”

 

= 여성으로서 인기가 있는 것은 때로는 기분 좋은 일이기도 하지만 저는 그럴 때마다 조금도 주저하지 않고, 이렇게 대답합니다. ‘생각은 고맙지만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이상하리만큼 남자들과 거리를 두게 하는 것, 이렇게 대답할 수 있음은 모두가 하나님의 은혜인 것 같아요. 앞에서는 최선을 다하지만 정중하게 거리를 두게 하심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라고 생각해요. 남편과 헤어질 때도 나의 진심을 알게 된 그가 못한 표현을 여러 번 전했지만, ‘그거면 됐다.’는 말로 끝내고 돌아섰지요.”

 

시댁에서의 삶이 어땠기에 쉽지 않은 이혼을 결심했나?

= “누구에게나 이혼은 반드시 이유가 있지만 그걸 견디지 못한 것도 저의 부족함입니다.

모셨던 시부모님과 시조모님 생각이 납니다. 기도 해야지요... 제가 배운 건 기도와 말씀뿐... 감사하고 괜찮으니까요. “

 

그녀의 삶에 드리워진 수많은 삶의 무게감과 그늘, 고통과 형언할 수 없는 아픔들이 그녀의 입을 통해 나올 때마다 필자는 깜짝깜짝 놀라울 뿐이었다. 요즘 세대의 사람이라 여겨지지 않을 만큼 큰 아픔들이 그녀의 가슴 한복판에 서려있고, 또한 그 아픔을 한(Han, 트마우마)으로 만든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십자가 흔적(스티그마)처럼 그것을 잘 씻어내었구나. 상처는 상처로되 그 아픔을 잘 아우르고 씻어내었다. ‘그런 과정이 있었기에 이 기관의 대표를 할 수 있는 것이로구나.’라는 생각을 해 본다.

 

어떤 마음으로 이 기관을 이끌고 있는가.

= 누군가에게 베풀 때는 최선(最先)을 다하고 있습니다. 음식이 되었든 물건이 되었든 뭐가 되었든 남아돌아가는 것을 주기보다는 내게 최고의 것으로 드리고 최선으로 섬기며 돕고 친구가 되고자 합니다. 제게 소중한 것을 줄 수 있어야 한다는 게 기관 대표로서 분명한 저의 소신입니다. 소년소녀란 우리 겨레의 꽃이요 나라의 소망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들이 잘 자라나 행복한 가정을 이루고 올바른 시민이 돼야만 우리나라가 잘 되는 것 아닌가요? 내 아들 딸처럼 저들을 돌보기를 소원합니다.

 

소년소녀가정을 발굴하고 회원들을 늘려가는 게 쉽지 않았을 텐데.

= 처음에는 교회의 노숙인들을 돌보며 웃음치료로 강의하고 간증하고 찬양하고 말씀을 전하는 가운데 봉사의 맛을 보게 하셨고요. 언젠가는 지역아동센터에서 봉사를 하고 있었는데 아이들 가정을 방문하면서 소년소녀 가장들을 접하게 되었어요. 그래서 지역아동센터 대표들과의 관계를 통해서 회원들을 소개받고 점차 확장해나가고 있습니다.

 

가장 어려운 점들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 아름다운 마음이 오해를 받을 때이지요..., 이사 봉사를 해드리고 나오는데 귀금속이 없어졌다고 증명하라셔서... 다시 두 시간을 짐 속에서 찾은 적도 있고요..

제가 밥을 잘 먹게 생겨서 그런지 어르신 밥 제가 다 먹었다.’ㅋㅋㅋㅋ 이런 건 웃자고 드리는 말씀입니다... 너무 당연히 받으실 때도...수도 없죠,,,ㅎㅎ

 

최근에 큰 상을 받으셨던데 소개 좀 해주세요.

= 생각지도 못한 한국을 빛낸 100 인상을 언론인협회에서 받게 되었습니다..

과분하고 더욱 잘해야겠다는 생각밖에는 없었지요,,. 서울 프레스센터에 제가 처음으로 운전하고 갔습니다. ㅎㅎ

호탕한 웃음과 애교 섞인 표현력은 혹 오은영 박사와 비슷했다. 아마도 그는 마음까지도 더욱 따뜻이 감싸주고 해결하는 인천의 오박사가 되지 않을까 믿음의 동행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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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 락 처 : 박수진 010-4858-6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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