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교회력, 문철영목사, "마중물이 되는 믿음"

  • 입력 2021.07.20 15:05
  • 수정 2021.07.27 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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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도 성령강림절 열 번째 주간

문철영 목사, 연세대학교 신과대(B.A), 본대학원 Th.M, 및 신학전공 Ph.D 취득, 연세대 연합신학대학원 겸임교수 역임, 호서대학원 강사역임, 노량진교회 부교역자 역임, 대한예수교장로회(통합) 인천노회 제 37대 노회장역임, 수정교회 담임목사(1989. 6. 20~ 현재까지)
문철영 목사, 연세대학교 신과대(B.A), 본대학원 Th.M, 및 신학전공 Ph.D 취득, 연세대 연합신학대학원 겸임교수 역임, 호서대학원 강사역임, 노량진교회 부교역자 역임, 대한예수교장로회(통합) 인천노회 제 37대 노회장역임, 수정교회 담임목사(1989. 6. 20~ 현재까지)

1. 기적의 마중물 믿음의 행동(6:5-13)

2019년 태국에서 소년12명과 축구코치 1명이 동굴에서 길을 잃었던 적이 있습니다. 무려 17일 동안 실종된 채로 동굴 안에서 식량도 없이 버틴 끝에 구조되었습니다. 그들이 17일 동안 어떻게 굶주림을 잘 이겨내었는가? 17일 동안 자칫 잘못하면 허기로 인해서 쓰러질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첫째 그들은 도움이 올 것이라는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습니다. 둘째 그들의 마음에 평정심을 유지할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두려움과 공포를 극복하기 위해 명상을 했다는 것입니다. 셋째 그들은 종유석에서 떨어지는 맑은 물만 마시고 대소변이 섞여있는 고인 물은 먹지 말라는 코치의 말을 들었습니다.

희망 명상 코치의 가르침 그리고 코치에 대한 믿음과 순종 이런 단어가 상당히 희망적인 말입니다. 그들을 살릴 수 있는 희망의 말입니다. 여기에 절망의 말 불평의 말 낙심의 말이 없습니다. 여기에 긍정의 말만 있었다는 것입니다. 부정적 이미지의 말과 긍정적 이미지의 말은 상황에 따라 큰 차이가 없게 들릴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극한 상황에서 이 둘의 차이는 사느냐 죽느냐의 결정하는 문제가 되었습니다. 나아가 긍정의 말은 구조대가 오기까지 생명을 지탱하는 마중물이 되었던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장년 남성들만 5000명이 넘는 무리들이 예수님에게 몰려왔습니다. 마가복음에서는 빈들에서 날이 저물어 저녁 무렵이 되었다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빌립에게 이 많은 사람들을 어디서 사서 먹일 수 있을까? 나중에 나오는 문장에서 보면 빌립을 시험하기 위한 것이었다고 했습니다. 이 질문을 하였을 때 빌립의 대답은 이렇다. 6개월분의 품삯(200 데니 리온)으로도 그 많은 음식을 사기에 부족하겠습니다. 그러나 잠시 후에 그 이야기를 옆에서 듣고 있던 안드레는 즉시 일을 하였습니다. 안드레가 한 일은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진 소년을 찾아내는 것이었습니다. 안드레는 즉시 예수님에게 보고 합니다. 여기에 한 소년이 있습니다. 그 소년은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 소년이 가진 작은 것이 그 많은 사람들을 먹이는 데 얼마나 도움이 되겠습니까? 하나는 부정적인 말과 한 사람은 전혀 다른 새로운 아이디어 긍정의 말을 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우리들이 살아가는 모습의 단면입니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문제가 생길 수 있습니다. 문제가 생기면 먼저 현실 파악을 하는 사람이 있어야 합니다. 그다음에 해결을 위해 서로 머리를 짜 내게 됩니다. 부정적인 생각 긍정적인 생각이 나오게 됩니다. 모두가 다 해결을 위해 나름 최선의 아이디어를 내고 있는 것입니다. 어느 누구도 거기에는 다른 생각은 없습니다. 도움을 주겠다고 생각을 낸 것입니다. 그러나 인간들만이 모인 곳에서는 그 같은 논의가 제자리걸음 곧 공회전을 할 가능성이 많습니다. 그런데 해결이 가능하다고 하는 희망을 가지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렇다면 무엇이 절망의 상황에서 해결에 대한 희망을 가져다주는 것인가요? 현실만 보면 희망이 안 생깁니다. 빌립은 지금 계산으로는 200 데나리온의 떡이 필요하다고 합니다. 빌립의 상상으로는 이 많은 사람을 먹이려고 하기보다 돌려보내는 것이 타당한 것입니다. 그러나 큰 숙제는 예수님이 그냥 돌려보내지 말고 너희가 먹일 수 있는 길을 알아보라고 한 명령을 철회하지 않고 있기 때문입니다. 침묵하는 많은 제자들은 빌립의 입장에 동의했을 것입니다. 오늘날처럼 투표로 결정하는 여론의 분위기라면 아마도 돌려보내자고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들 가운데 계셨습니다. 그들을 지켜보고 계십니다. 예수님은 모두가 반대하는 데도 무리들을 돌려보내지 말고 너희가 먹일 방도를 찾아보라는 명령을 철회하지 않습니다. 왜 예수님은 그 많은 사람들의 여론에 편승하여 돌려보내는 편에 서지 않고 그들을 먹일 방도를 만들어 내라고 했는가요?

제자들을 곤란하게 하려고 그랬을까요? 가능한 길을 보여준 다음에 명령을 해야 하는데 전혀 불가능해 보이는 일을 하라고 합니다. 예수님에게 무슨 해결 안이 있을까요?

오늘 예수님은 누군가를 찾고 기다리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이 함께 일하실 마중물을 가지고 올 사람을 찾고 기다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때에 보리떡 다섯 개 물고기 두 마리 그것을 가진 소년을 데리고 오는 제자가 있었습니다. 그가 안드레였습니다.

오늘 이 안드레는 마중물을 제공하는 사람입니다. 우리가 어릴 때에 시골 학교 우물을 펌프로 올렸던 기억이 납니다. 그 펌프에 물을 한 바가지 부어 넣으면 펌프를 저을 때에 물이 펑펑 나오게 된 것을 알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안드레가 가지고 온 보리떡 5개 물고기 두 마리를 접수합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명하여 자리에 앉히라고 합니다. 제자들은 5000명을 100명씩 50명씩 자리에 앉혔습니다. 예수님은 왜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들고 사람들을 자리에 앉혔을까요? 그것을 예수님은 마중물로 사용하여 그들을 먹일 확신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그것을 들고 하나님을 향하여 감사기도를 드립니다. 그리고 그것을 제자들에게 나누어 주시고 제자들이 그것을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었습니다. 그 결과 놀라운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모두가 배불리 먹고 남은 조각이 12광주리가 되었다고 합니다. 마중물이 되는 생각 마중물이 되는 사람 마중물이 되는 물건이 이렇게 유익한 양식이 될 줄은 미처 몰랐을 것입니다.

이 마중물은 인간들에게는 별로 중요하지 않을 수 있으나 예수님의 손에 들어오면 많은 생명을 살리는 데 사용됩니다. 보통 때는 부정의 말과 긍정의 말이 별 차이가 없게 보이는 것이지만 생사가 좌우되는 중요한 시기에 긍정의 말 생명의 마중물이 되는 말이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동굴에 13명의 사람들이 안전하게 구조되어 나올 수 있었던 것은 긍정의 생각과 말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의 생각은 생명을 구조 받을 수 있는 마중물이었습니다. 우리가 이것도 저것도 다 가능하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이지만 긍정의 말로 긍정의 생각으로 생명의 마중물로 쓰임 받은 사람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개인과 가정과 교회와 국가가 우리의 작은 것들이 예수님 앞에 바쳐져 마중물로 사용될 때에 놀라운 기적을 가져올 것입니다.

 

2. 에베소 교회를 위한 기도(3:14-21)

저자가 에베소 교회를 위하여 기도하고 있는 목적이 무엇인가? 13너희를 위한 나의 환란에 대하여 낙심하지 말라 이는 너희의 영광이니라.” 에베소 교회 신자들이 지도자가 당하는 환란 때문에 낙심하지 말 것을 당부하고 있다. 그 이유는 지도자가 당하는 고난이 도리어 에베소 교회의 영광이 되기 때문이다. 교회가 고난을 당할 때 신자들이 흩어지기 쉽다. 그러나 오늘 본문에서 에베소 교회 신자들은 더욱 서로 사랑으로 견고해질 것 같다. 그 이유는 지도자의 영적 가르침과 영적 자세 때문이다.

지도자의 영적 가르침을 담고 있는 에베소 교회를 위한 기도의 내용은 무엇인가? 첫째 성령으로 말미암아 속사람이 강건하게 되는 것이다. 두 번째로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께서 각 사람 마음 가운데 거주하고 계시는 것이다. 세 번째 그리스도의 사랑의 깊이와 폭을 이해하는 것이다. 네 번째로 하나님으로 충만히 채워지는 것이다.

그렇다면 에베소 교회를 위한 영적 기도는 어떤 동기에서 나온 것인가? 오직 사랑의 동기에서 곧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나온 것이다. 그리스도의 사랑만이 교회와 신자들의 존재 기초가 되기 때문이다.

 

3. 어리석은 자(14)

본 시는 탄식시에 속한다. 개인적인 위험이나 고난에 대한 탄식보다는 하나님을 부인하는 사람들의 공동체에서 파괴적인 성향을 가진 자들에 대하여 탄식하고 있다. “어리석은 자는 그의 마음에 이르기를 하나님이 없다 하는도다”. 여기서 어리석은 사람은 우둔하거나 경박한 사람이라기보다 인격적으로 부패하고 행실이 가증한 사람들이다. “하나님이 없다고 하는 표현은 시편에 공통적으로 등장하는말이다.(Howard Wallace). 이 표현은 신앙이 부족하거나 무신론에 대한 표현이라기보다 그들의 행동과 생각에 대해 하나님이 무관심하다는 데 사용하는 표현이다. 그래서 그들은 하나님을 신뢰하거나 의지하지 않고 자신의 힘으로 살아간다.

그러나 시편 저자는 의인의 세대에 하나님이 계시므로 그들에게 두려워할 날이 찾아온다고 한다. “그러나 거기서 그들은 두려워하고 두려워하였으니 하나님이 의인의 세대에 계심이로다.” 하나님이 계신 의인의 세대란? 가난 한 자들이다. 그들은 하나님의 구원을 받고 하나님이 그들에게 피난처가 되신다. 그들은 하나님이 포로에서 해방시킬 때 즐거움과 기쁨을 입에 가득 품은 자들이다. “너희가 가난한 자의 계획을 부끄럽게 하나 오직 여호와는 그의 피난처가 되시도다 이스라엘의 구원이 시온에서 나오기를 원하도다 여호와께서 그의 백성을 포로된 곳에서 돌이키실 때에 야곱이 즐거워하고 이스라엘이 기뻐하리로다”.

 

4. 다윗의 죄악(삼하 11:1-15)

다윗은 하나님이 기뻐하는 종이라고 했다. 다윗의 신앙은 이스라엘 역사에서 열왕들의 평가 기준이 되었다. 이스라엘이 예배 시에 사용했던 시편서 150편의 대부분은 다윗의 저작이다. 유대교에서나 기독교에서 다윗만큼 존경받고 설교 시에 많이 회자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서 권력 남용과 간음과 살인죄의 장본인이 다윗으로 기록되어 있다. 너무나 충격적이다. 다윗 같은 위인이 어떻게 그 같은 완전 범죄를 할 수 있었는가?

그 시점이 중요하다. 출전하여 암몬 자손과 전쟁하여 그 자손을 멸하고 승리한 후에 다윗은 모든 권력을 손에 쥐게 되었다. 그가 군사력 정치력을 완전 장악했을 때 그는 권력 남용을 하게 되었다. 그가 자신의 침상에서 일어나 산책을 하던 왕궁 옥상에서 그의 눈앞에 들어온 목욕하는 아름다운 여인의 매혹에 빠졌다. 그리고 그가 사용할 수 있는 권력으로 사람을 보내어 그 여인의 신분을 알아보게 하였고 결국 그녀는 최전방에서 충성스럽게 복무하고 있던 장수의 부인이었다. 다윗은 자신의 쾌락을 위해서 할 수 있는 권력을 사용하여 그 여인을 데려다가 동침하였다. 그리고는 그 사실을 숨기기 위해 또한 근무 중에 있는 그 남편 우리아를 데려오게 하였다가 다시금 최전방 전장 터에 보내어 죽게 한다.

다윗 같은 위대한 신앙인이라고 할지라도 순간 쾌락이 인생의 목적이 될 때 하나님 앞에서 죄를 범하게 된다.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을 인생의 최고 목적으로 삼았던 다윗이라고 할지라도 자신의 쾌락이 최고의 가치가 되는 순간에 그 마음속에는 쾌락을 위해서 하나님조차도 몰아내는 사람이 된다. 왜 쾌락이 마음속에 하나님을 몰아내는 것인가? 그 쾌락이 우상이 될 때에 그 마음속에 우상신이 참 하나님을 보지 못하게 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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