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이 중요하다
무엇이든지 시작이 중요합니다. 누가 시작하는가가 인생의 성패를 좌우합니다. 우리는 당연히 내가 시작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내가 시작하면 그것은 아직 시작을 안 한 것입니다. 왜냐하면 내가 인생의 시작이 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내가 태어나기 전에 나를 만드신 분이 있습니다. 그 분이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인생의 주어는 하나님이 주어가 되고 하나님이 시작해야 합니다. 이것을 믿고 따르는 것이 신앙입니다. 내가 시작하면 그것은 종교입니다. 다른 종교는 신을 믿는다고 하지만 내가 만든 신입니다. 내 방식대로 신을 믿는 것입니다. 그것은 엄밀히 보면 신이 아닌 우상입니다. 내가 만든 신은 신이 아닙니다. 스스로 속이고 속임을 당하는 것입니다. 구원이 무엇인가요? 하나님이 시작하시는 사건입니다. 죄와 타락은 내가 시작하는 것입니다. 말씀이신 하나님이 인생의 주어는 그 자체가 창조하는 일입니다
창세기 1장 1절부터 마지막까지 나오는 단어는 “하나님”이라는 주어입니다. “하나님”이라는 말은 35회 사용됩니다.(동사가 주어로 언급된다) 세상의 모든 일은 인간이 한 것이 아닌 하나님이 모든 일을 시작하셨다는 것입니다. 창조는 하나님이 시작하시는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이 주어가 되면 능치 못할 일이 없습니다. 신앙은 모든 것을 하나님이 하셨다는 것을 믿고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그것을 감사하고 자랑하는 것이 찬양입니다. 그것을 구하는 것이 기도입니다.
세상을 움직이는 두 개의 패러다임은 무엇입니까?
세상을 움직이는 패러다임은 하나님이 시작인 것과 인간이 시작인 경우입니다. 종교도 두 가지가 있습니다
경전도 마찬가지입니다. 성경과 다른 종교의 경전(불경, 꾸란, 논어, 힌두교)과 차이점은 무엇일까? 책을 다 읽어 보지 않아도 그것을 간단하게 아는 방법이 있다. 그것은 첫 구절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무슨 책이든지 첫 구절은 그 책의 특징을 보여 줍니다. 첫 구절은 시작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불교의 경전인 불경의 첫 구절은 ‘나는 이와 같이 들었다(如是我聞 evaṃ mayā śrutam)’로 시작합니다.
◆힌두교의 경전의 시작은 다음과 같다. ‘고귀한 가네샤에게 경배하나이다(oṃśri ganeṣāya namaḥ)’입니다.
◆유교의 경전인 논어의 첫 구절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子曰 學而時習之 不亦說乎, 학이시습지 불역열호 (배우고 때로 익히면 또한 기쁘지 아니한가) 有朋 自遠方來 不亦樂乎, 유붕 자원방래 불역락호 (벗이 먼 곳에서 찾아오면 또한 즐겁지 아니한가) 人不知而不溫 不亦君子乎. 인부지이불온 불역군자호 (남이 나를 알아주지 않아도 노여워하지 않음이 또한 군자가 아니겠는가)”입니다.
◆이슬람 경전인 코란(꾸란)의 첫 구절은 이런 기도문으로 시작합니다. “참으로 자비롭고 자애로운 알라의 이름으로 찬양합니다. 온 세상의 주인이신 알라께. 참으로 자비롭고 자애로운 분 심판 날의 주재자여 우리가 섬기고 구할 분은 오직 당신뿐 저희를 바른 길로 인도하여 주소서”
불경의 첫 구절 ‘如是我聞’과 『논어』의 첫 구절인 ‘子曰’ 은 제자들에 의한 것입니다. 힌두교 경전과 이슬람의 경전 꾸란은 모두 인간의 기도문으로 시작합니다. 불교, 유교, 힌두교, 이슬람 등 모든 종교는 인간이 출발점입니다. 인간을 위해 신이 존재합니다. 우상 종교의 특징을 그대로 갖고 있습니다. 그런 이유로 인간을 위한 신을 계속 만들어 냅니다. 인도와 네팔 등을 가보면 그들이 믿는 신의 수는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습니다. 많게는 신이 3억 개 이상이 됩니다. 인간의 복과 즐거움과 평안을 위해 신들은 사라지고 또 만들어집니다. 그것은 신이 아닌 우상입니다. 세상의 모든 종교는 인간이 주체가 됩니다. 인간이 열심히 배우고 수양하고 기도함으로 신을 찾아가는 형태를 취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우리 힘으로 믿을 수 있거나 만날 수 있는 분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먼저 찾아와서 우리를 구원해주시고 모든 것을 다 이루십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행하신 일을 믿음으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믿는 방식입니다. 나는 오직 믿는 것 이외 다른 행위가 필요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복음입니다. 누구에게나 차별이 없는 은혜로 주시는 하나님의 구원입니다
창세기 1장 1절을 믿는가?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칭1:1) 성경의 첫 구절은 바로 이것을 분명히 보여줍니다. 창1:1절은 히브리어 7자로 구성되었습니다. 그것은 완전한 창조를 의미합니다. 성경은 하나님을 주어로 시작합니다. 이것은 다른 경전과 구별되는 근본적인 차이점입니다. 여기서 신앙의 출발점이 전혀 다릅니다. 이것이 다른 종교와 분명히 다른 구별점이 있습니다. 우리의 믿음은 성경은 창1:1을 어떻게 믿고 받아들이느냐에서 결정됩니다. 이후의 성경 이야기는 일종의 창1:1의 주석과도 같습니다. 하나님이 창조하신 것을 얼마나 내가 믿고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신약 계시록까지 이어지는 방대한 성경 이야기가 나의 이야기로 들어옵니다. 결국 창세기 1:1은 짧지만 성경의 놀라운 복선입니다. 비록 한 구절이지만 창세기 1:1은 성경 전체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습니다. 창세기 1:2부터 계시록까지 이어지는 이야기는 창1:1절 속에 들어 있는 이야기를 풀어가는 것이라 말할 수 있습니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창1:1)의 말씀은 인간이 태어나기 전에 주신 절대적인 하나님의 선언적 메시지입니다. 성경의 제목과 같은 구절입니다. 이것은 인간이 누구도 감히 말하거나 흉내 낼 수 없는 오직 하나님만이 할 수 있는 이야기입니다. 내가 어디서 왔으며 처음에 세상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가장 궁금한 이야기를 해주는 곳은 이 세상에 성경밖에 없습니다. 감히 누구도 그 이야기를 할 수 없습니다. 세상의 모든 종교는 한결같이 인간이 누구인지에 대해서는 침묵하고 있습니다. 인간이 과연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에 대해서 모르면서 새로운 시도를 한다는 것이 과연 의미가 있을까요? 내가 어디서 온 줄도 모르면 죽음 이후에도 어디로 가는지 알 수 없습니다. 뿌리 없는 나무는 시간이 지나면 말라죽는 법입니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어디에서 왔으며 무엇을 하다가 어디로 가는가?” 만약 이 질문에 답을 못한다면 지금 나의 삶을 점검해 보아야 합니다. 다른 종교의 경전은 이것을 분명하게 말해주지 못합니다. 하지만 성경은 이 질문에 대해 분명하게 말합니다. 우리가 성경을 읽을 때 이 질문을 갖고 읽으면 흥미가 있고 읽는 즐거움은 문제가 해결될 때마다 더해집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