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제들아! 내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고 성령의 사랑으로 말미암아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기도에 나와 힘을 같이하여 나를 위하여 하나님께 빌어 나로 유대에 순종치 아니하는 자들에게서 구원을 받게 하고, 또 예루살렘에 대한 나의 섬기는 일을 성도들이 받음직하게 하고, 나로 하나님의 뜻을 좇아 기쁨으로 너희에게 나아가 너희와 함께 편히 쉬게 하라! 평강의 하나님께서 너희 모든 사 람과 함께 계실지어다!”(롬 15:30-33).
<로마서>는 <사도 바울>이 <로마 교회>의 <성도>들에게 보낸 서신입니다. 본 서신을 기록할 당시 사도 바울은 <에베소>에서의 3년간의 <목회사역>를 마무리한 후 항구도시 <고린도>로 가서 <복음사역>을 하는 중이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이때 <로마서>를 기록하여 고린도의 동쪽 항구인 <겐그레아>의 <뵈뵈(Phoebe)>로 하여금 <로마 교회>에 전달하게 했습니다. 그가 <로마교회>에 본 서신을 보낸 목적은 <로마교회>의 교인들에게 <로마인>들에 대한 자신의 <선교적 사명>을 알리고, 그들로 하여금 자신의 방문을 미리 준비하게 하려는데 있었습니다.
<로마서>는 일명 <바울의 복음서>로 불립니다. 무수히 많은 <교회사의 주역(主役)>들이 <로마서>를 통해 <영적 변화>를 체험했기 때문입니다.
북아프리카 <타가스테>에서 출생한 <어거스틴(Augustine, 354-430)>은 <칼타고 대학>에 유학하여 <수사학(修辭學)>을 공부한 <고등지식인>이었지만 그의 생활은 매우 방탕하였습니다. 그는 19세에 부모의 동의 없이 미천한 여자와 동거 생활을 하여 아들을 낳기까지 했습니다. 이처럼 방탕한 생활에 빠져있던 어거스틴이 <회심(悔心)>과 <거듭남>을 체험한 후 위대한 <헌신자>가 되었는데, 그가 정립한 <복음적 기독교>의 <신앙과 신학>은 <역사적 기독교회>가 수많은 비 진리의 역사(役事)와 도전에도 불구하고, <성경말씀>에 입각한 <복음적 신앙과 신학>을 능히 보수(保守)하고 계승해 나갈 수 있게 했습니다.
물론 그가 변화되기까지는 그의 어머니 <모니카>의 <신실한 기도>와 <사랑>이 있었습니다. 그로 하여금 방탕한 옛 생활을 청산하고, <거듭남>을 <체험>하게 한 것은 로마서 13장 13절과 14절 말씀이었습니다.
“낮에와 같이 단정히 행하고 방탕과 술 취하지 말며, 음란과 호색하지 말며, 쟁투와 시기하지 말고,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고,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라!“
그는 그의 <참회록>에서 당시의 심경을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내가 14절 마지막 부분을 읽는 순간, 밝은 빛이 물밀듯 내 마음속에 밀려들어왔고, 순간 모든 의혹과 근심의 그림자가 사라져버렸습니다!”
<독일>의 위대한 종교개혁자 <마르틴 루터(Martin Luther, 1483-1546)>는 1507년에 <신학공부>를 시작하였고, 1509년에는 <성경득업사(baccalaurees biblcus)>가 되어 <수도사(修道士)들에게 성경을 강의했습니다.
그가 거듭나 <복음주의>의 <개혁교회>가 탄생케 한 것은 로마서 1장 17절의 말씀이었습니다.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프랑스>의 종교개혁자요 신학자인 <칼빈(Jean Calvin, 1509-1564)>은 14세부터 19세까지 <파리 대학>에서 신학을 연구하였고, <오를레앙>과 <브르줴>에서 3년간 법학을 공부하였으며, <세네카 (Lucius Annaeus Seneca, BC 4-AD 65)>의 저서인 <관용론(De Clementia)>을 주석하여 약관 23세의 나이에 일류학자(一流學者)의 반열(班列)에 올랐습니다.
<칼빈>은 그가 <종교개혁사상>을 갖기 전 돌발적인 <회심>을 체험했는데, 역시 <로마서의 말씀>을 통해서였습니다. 그는 <로마서>를 가리켜 <신약성경의 핵심>이며, 특히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 한 로마서 1장 17절의 말씀은, <복음의 근본교리>이자 <가장 위대한 말씀>이라고 했습니다.
<감리교>의 창설자인 <요한 웨슬레(John Wesley, 1703-1791)>가 오랜 <신앙적 방황>끝에 <회심>을 체험한 것은 <모라비안 형제단(Herrnhuter Brüdergemeine)>의 집회에 참석하여 <마르틴 루터>의 <로마서 주석 강해>를 들으면서였습니다.
갑자기 그의 마음이 뜨거워지면서 <예수 그리스도>만을 <구원의 주>로 신뢰하는 <믿음>을 갖게 되었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서만 의롭게 되고, <거룩한 생활>에 도달할 수 있음을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본문에 보면 <사도 바울>은 <로마 교회>에 세 가지 내용의 <기도 부탁>을 하고 있습니다.
첫째로 그가 <예루살렘>에 갈 때, 그를 <박해>하는 <유대인>들에게 해를 당하지 않도록 <기도 부탁>을 하고 있습니다.
둘째로 <예루살렘 교회>의 가난한 <유대인 성도>들을 위한 <이방교회>의 <구제헌금>을 유대인들이 기꺼이 받아들이도록 <기도 부탁>을 하고 있습니다.
셋째로 <사도 바울>이 <기쁨>으로 <로마 교회>를 <방문>하여 그곳 성도들과 <영적 교제>를 나눌 수 있도록 <기도 부탁>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또한 내가 너희에게 가려 하던 것이 여러 번 막혔더니, 이제는 이 지방에 일할 것이 없고, 또 여러 해 전부터 언제든지 서바나로 갈 때에 너희에게 가려는 원이 있었으니, 이는 지나가는 길에 너희를 보고, 먼저 너희와 교제하여 약간 만족을 받은 후에, 너희의 그리로 보내 줌을 바람이라!”(롬 15:22-24).
<성도>가 <주의 이름>으로 <기도>하는 이유는 주님께서 기도한대로 이루어주시겠다고 <약속>하셨기 때문입니다.
2차 대전이 끝나고 얼마 되지 않았을 때의 일입니다. 보기에 아주 남루한 옷을 입은 한 부인이 식료품 가게에 와서 성탄절 만찬에 아이들을 먹을 수 있을 만큼의 식료품을 달라고 했습니다. 그만큼의 돈이 있느냐고 주인이 묻자, 그녀는 남편이 전쟁에 나가 죽었기에 <기도> 밖에는 아무 것도 드릴 것이 없다고 대답했습니다. 그러자 가게 주인이 놀리듯 말했습니다.
“당신의 기도를 종이에 써주십시오! 그러면 그 무게만큼 식료품을 주겠습니다!” 그러자 부인은 놀랍게도 접힌 노트 장을 주머니에서 꺼내 가게 주인에게 건네주며 '지난 밤 우리 애 옆에서 병간호를 하며 적어둔 <기도>입니다'라고 했습니다.
가게주인은 구식 저울의 추를 놓은 곳에 기도가 적힌 종이를 올려놓고는 '자 이 기도가 얼마 치의 식료품 무게가 되는지 달아봅시다'고 중얼거리듯 말했습니다. 그런데 빵 한 덩어리를 저울 위에 올려놓았는데도 저울이 꿈쩍을 않는 것입니다. 다른 식료품을 더 올려 놓아보았습니다. 그런대도 여전히 저울이 움직이지 않자 주인은 당황했습니다. 다른 식료품들을 계속해서 올려놓았습니다. 그럼에도 여전히 저울은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마침내 가게주인은 퉁명스럽게 말했습니다. “더 이상 올려놓을 수 없으니 당신이 알아서 봉지에 담아 가시요! 나는 바쁘니까!”
부인은 눈물을 흘리며 감사하는 마음으로 돌아갔습니다. 그녀가 돌아간 후 주인은 이내 저울이 고장 났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 후 몇 년 동안 가게주인은 가끔 그때 일을 생각하며 의아해 했습니다. “그때 일이 우연의 일치였을까? 왜 그때 그 부인은 미리 기도를 써 가지고 왔을까? 왜 하필 저울이 고장 났을 때 그 부인이 왔을까?”
그때 그 부인이 적어온 기도문은 단 한 문장 “주여 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소서!”였습니다. 이처럼 사랑의 하나님께서는 항상 성도의 기도에 귀 기울이시고, 그 소원하는 기도를 이루어주십니다.
“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무엇이든지 기도(祈禱)하고 구(求)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 (막 11:24).
성도가 어떤 문제를 가지고 누군가에게 <기도 부탁>을 하거나, 또 성도가 서로를 위해 <중보기도>의 수고를 하는 것은 매우 선하고 지혜로운 일입니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하시는 사랑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롬 8:28).
그리고 <중보기도(中保祈禱)의 효용성>은 참으로 놀랍습니다.
<우주왕복선>을 타고 인류역사상 최초로 <달나라>에 다녀온 <어윈 대령>이 한국에도 와서 간증한 내용입니다. 그는 달나라에서 지구를 볼 때의 광경은 우리가 지구에서 달을 볼 때의 그것과는 판이하다고 말합니다.
우리가 지구에서 달을 보면 아주 작아 보이고 또 흑백으로 보이지만, 달에서 지구를 보면 엄청나게 커 보이고 또 총천연색이라고 합니다. 심지어 육안으로 만리장성까지도 보인다고 합니다. 그러니 그 광경 이 얼마나 장관이겠습니까!
이런저런 놀라운 이야기를 많이 한 그는, 그러나 그 모든 것보다도 더욱 중요한 내용이 있다면서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들려줬습니다.
“우주에서 일을 마치고 지구로 귀환할 때는 <우주선 캡슐>을 타고 지상을 향하여 낙하하는데, 착륙하기 직전에 낙하산이 둘 펼쳐져야 합니다. 두 개의 큰 낙하산이 펼쳐져 공기 저항을 받게 함으로써 <우주선 캡슐>이 사뿐히 안착하게 되어 있는데, 낙하산이 하나만 펼쳐지고 하나는 펼쳐지지 않는 예기치 않은 사고가 발생했습니다. 나머지 낙하산이 마져 펼쳐지도록 비상 수단을 써 보았지만 끝내 다른 하나의 낙하산은 펼쳐지지 않았습니다. <휴스턴 사령탑>에도 비상이 걸렸습니다.
<우주선 캡슐>이 그대로 땅에 떨어지는 날에는 박살이 날텐데도 모두들 속수무책이었습니다. 그런데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우주선 캡슐> 안에서, 그리고 <휴스턴 사령탑> 안에서 ‘기도합시다!’고 큰 소리로 말했습니다. 사실 이 같은 위급상황에서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은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 밖에 달리 방도가 없었습니다.
<우주선 캡슐>을 타고 지구를 향해 무서운 속도로 낙하하고 있는 <어윈 대령>도, 그리고 <휴스턴 사령탑>에 있는 모든 사람들도 다 같이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를 드렸습니다. 그리고는 믿기지 않는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느닷없이 땅에서부터 강한 회오리바람이 일어나 빠른 속도로 낙하하고 있는 <우주선 캡슐>을 향하여 치솟아 오른것입니다.
그 바람을 맞으면서 <우주선 캡슐>은 낙하산 둘이 펴진 것과 같은 느린 속도로 안전하게 지상에 착륙할 수 있었습니다. 그것은 분명히 기적이었고, 그것은 분명히 하나님의 <기도 응답>이었습니다!“
오래 전 미국 LA에서 개인병원을 하고 계시는 한 집사님의 간증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이 분이 기도를 많이 하고 싶은데 실제로는 별로 할 말이 없더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집사님은 <기도명단>을 작성해서 <중보기도(中保祈禱)>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이 <중보기도>를 위해서 매일처럼 긴 시간 동안 기도에 열중했습니다. 그랬더니 뜻밖에도 그에게서 <신유의 역사>가 나타나기 시작하더라는 것입니다. 그는 오랫동안 무릎관절통을 앓고 있었는데, 어느 날 그가 기도에 열중하고 있는데 갑자기 그의 손바닥이 뜨거워지더라는 것입니다. 그는 엉겁결에 그의 뜨거워진 손바닥을 아픈 무릎 위에 대고 기도를 했습니다. 그런 후 무릎의 통증은 깨끗이 나았습니다.
이 같은 체험이 있은 후 그는 그의 진료실을 찾아온 환자들의 병을 <안수기도(按手祈禱)>로 치료했다고 합니다.
그렇습니다. 기도에는 하나님의 능력이 함께합니다. 그래서 <사람>을 위한 <중보기도>와 <세상>을 위한 <중보기도>가 <사람>을 <변화>시키고, <세상>을 <변화>시킵니다.
<사도 바울>은 본문 말씀에서 <로마교회의 성도들>에게 “너희 기도에 나와 힘을 같이 하여 나를 위하여 하나님께 빌라!”고 합니다(로마서 15:30).
여기에서 ‚나와 힘을 같이 하여‘라는 말을 <헬라어 성경>에서는 <쉬나나파우소마이(συνανσπαύσω μσι)로 표기하고 있는데, 이 말은 ‘을 힘을 다하여’로 번역됩니다. ‘죽을 힘을 다하여 기도하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기도>는 <수고>요, <씨름>입니다. 예수님이 그렇게 기도하셨고, 선지자들이 그렇게 기도했고, 사도들 역시 그렇게 기도했습니다. 그렇게 기도했기 때문에 수많은 이적(異蹟)의 역사(役事)들이 나타났습니다.
1. <기도부탁>은 <신앙의 겸손>입니다.
영국이 낳은 위대한 성경주석가 <바클레이 박사(William Barclay, 1907.12.5-1978.1.24)>가 병상 (病床)에 누워있을 때입니다. 교인들이 문병을 왔습니다. 방문자들 중에는 직분 자들도 있었고 일반 평신도들도 있습니다.
그런데 <바클레이 박사>는 교인들이 문병을 올 때 마다 그들에게 아주 겸손하고 진지하게 ‘내 몸에 손을 얹고 기도해 주세요!’라고 부탁을 했습니다. 그 가운데는 어린 주일학교 아이들도 있었습니다. 그는 문병을 온 주일학교 아이들에게도 ‘애야, 내 몸에 손을 얹어 기도해다오!’라고 진지하게 부탁을 했습니다.
그는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진 유명한 <신학자>요, <성경주석가>요, <설교자>였지만 어린아이 들에게까지도 <안수기도(按手祈禱)>를 부탁할 정도로 한없이 겸손한 사람이었습니다.
2. <기도부탁>은 <신앙의 지혜>입니다.
<독일>이 통일되기 전 한 <동독교회 지도자>가 <서독교회>를 <방문>했습니다. <서독교회 지도자들>은 그를 위해 집회를 열고 그를 따뜻이 환영해주었습니다. 집회 말미에 <서독교회의 지도자>들이 그와 <동독교회>를 위해 돌아가며 기도를 해주었습니다.
하나 같이 <동독교회의 지도자>들과 <성도>들이 <고난>을 잘 이겨낼 수 있게 해달라고 기도했습니다. 그러자 <동독교회의 지도자>가 일어나 말했습니다. “여러분! 이제는 기도를 바꾸십시오! 동독교회가 고난을 잘 이겨내게 해달라는 기도 대신, 어서 속히 통일이 되어 동서독 교회가 다시 하나되게 해달라고 기도해 주십시오!”
결국 그들은 <기도>를 바꾸었고, 그 후 얼마 안가 <독일의 시민>들은 그들이 그토록 갈망하던 <통일의 대업>을 이루었습니다.
동서독 정부의 대표들이 <독일 통일>을 선포하던 그 날, 그들은 <라이프찌히>의 한 교회당에 들어가 <감사예배>를 드린 후, 교회당 앞에 모여든 시민들과 세계 언론을 향해 <독일통일>을 선포했습니다.
3. <기도부탁>은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드리는 <신앙의 능력>입니다.
<성도>는 남을 위해 기도해줄 수 있고, <기도 부탁>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한 가지 주목해야 할 점은 그 기도가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이어야 하고, 선을 이루는 것이어야 하고, 궁극적으로 <하나님의 영광>위한 것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를 위하여 기도하라! 우리가 모든 일에 선하게 행하려 하므로, 우리에게 선한 양심이 있는 줄을 확신하노니, 내가 더 속히 너희에게 돌아가기를 위하여 너희 기도함을 더욱 원하노라! 양의 큰 목자이신 우리 주 예수를 죽은자 가운데서 이끌어 내신 평강의 하나님이 모든 선한 일에 너희를 온전케 하사 자기 뜻을 행하게 하시고, 그 앞에 즐거운 것을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 속에 이루시기를 원하노라! 영광이 세세 무궁토록 그에게 있을지어다! 아멘!”(히 13:18-21).
<사도 바울>의 <기도 부탁>대로 <로마 교회>는 그를 위해 간절히 기도했고, 그 결과 그는 예루살렘 에서 그를 대적하는 유대인들에게 붙들렸지만 죽지 않고 로마로 이송되어, 그곳에서 2년간의 시간을 가지고 그의 <복음사역>을 완수할 수 있었습니다.
“바울이 온 이태를 자기 셋집에 유하며, 자기에게 오는 사람을 다 영접하고, 담대히 하나님 나라를 전파하며, 주 예수 그리스도께 관한 것을 가르치되 금하는 사람이 없었도다!” (행 28:30-31).
[사진: 김정효목사페북, 스위스전경]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