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장기하씨의 신곡이 나왔다. 제목이 ‘가만 있으면 되는데 자꾸만 뭘 그렇게 할라 그래’다.
평소 그의 노래를 들으면서, 독특한 음악 속에 담겨진 메시지가 있는 느낌이 좋았다. 그래서 그의 신곡이 내심 반가웠다. “어떤 음악일까?” 호기심 어린 마음으로 들었다.
‘가만있으면 되는데 자꾸만 뭘 그렇게 할라 그래’ 노래를 듣는데 솔직히 “무슨 노래가 이러지?”하는 생각을 했다. 노래 처음부터 끝까지 가사가 ‘가만있으면 되는데 자꾸만 뭘 그렇게 할라 그래’ 하나 였다. 내가 그의 음악세계를 잘 이해를 못해서 그런 것일수도 있었겠지만, 더 이상 듣지 말자고 생각했다. 그런데 나도 모르게 자꾸만 노래를 듣고 싶어지는 마음이 이어졌다. 몇 번을 반복해서 듣는 중에 마치 그 가사가 나 자신에게 질문하는 것 같았다.
“정말 가만히 있어도 되는데 자꾸 뭘 그렇게 하려고 그러니?”
혹시 가만히 있어도 되는데 자꾸만 뭐라도 해야 할 것 같은 생각이 가득해서 자신을 스스로 쉬지 못하게 하는 습관이 있는지 모르겠다. 그런 생각으로 지금까지 살아온 사람들이 현대인들에게 많다. 가만히 있지 못하고 마음에서 뭔가를 해야 한다는 강박적인 생각으로 살아가는 힘이 강하면 강할수록 겉으로 보기에는 열심히는 사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마음의 돌봄이 없는 상태에서 시간이 지나면 완전히 지쳐서 모든 것들이 소진될 수 있는 가능성이 매우 높다.
나 자신을 소진이 되는 것을 가리켜 ‘번아웃’(Burnout)이라고 한다. 의욕적으로 일에 몰두하던 사람이 극도의 신체적·정신적 피로감을 호소하는 것인데, 무기력해지는 현상이다. 자기 자신에 대해서 그리고 타인에 대해서 높은 기준을 세우고 그것을 채우기 위해서 나 자신을 혹사시키는 것이다. 그래서 ‘번아웃’은 자신이 갖고 있는 포부 수준이 지나치게 높고 전력을 다하는 성격의 사람에게서 주로 나타난다. 번아웃은 ‘번아웃 증후군’으로도 불리는데, ‘다 불타서 없어진다’(Burn out)고 해서 소진 증후군, 연소 증후군, 탈진 증후군이라고도 한다. 직무 스트레스와 피로에 장기간 노출되면 신체적·정신적 에너지 소모가 빨라지고, 결국 무기력과 삶의 의미 상실 등으로 이어진다.
마음에서 세워놓은 기준이 너무 높다면 어떤 심리적 경험이 될까? 아무리 열심히 해도 자신에게 만족을 느끼지 못한다. 노력한 것에 대해 항상 부족하다고만 생각한다. 그리고 그 부족한 영역을 이루지 못한 자신에 대해 부적절한 생각이 가득하다.
B씨는 서울에 있는 명문대학을 진학하기 위해 최선을 다 했다. 자신의 어머니는 S대가 아니면 대학이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런 어머니의 기준에 도달하기 위해 최선을 다 했던 학창시절이 있었다. 최선을 다해 결국 S대에 진학했다. 그런데 마음이 이상하게 공허한 것이다. 그토록 원했던 대학에 진학을 했건만, 도대체 내가 무엇 때문에 여기에 있는지 자신에 대한 본질적 가치가 흔들리는 것이다. 자신도 그런 마음이 혼란스러웠다.
여러 내면과정을 통해 알게 된 사실이 자신이 지금까지 대학 진학을 위해 공부했던 동기가 어머니를 위한 것임을 인식하게 되었다. 어떤 순간도 자기 자신을 위한 시간이 단 한 순간도 없었음을 알게 되었다. 어머니의 높은 기준을 채우기 최선이 삶이었고, 그렇게 되기 위해 지금까지 자신을 가혹할 만큼 쉬지 못하게 했다. 그렇게 해야만 어머니로부터 사랑과 인정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무의식적으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B씨는 지금까지 스스로 생각하고 선택해서 살아본 경험이 부족하다보니, 막상 자유가 주어진 시간을 주체성 있게 살 수 있는 내면의 힘이 부족했다. 그는 자신에게 가혹한 기준을 제시한 어머니에게 심리적인 화해를 시도했고, 동시에 그런 어머니로부터 굴복되어진 사랑받고 싶었던 내면아이에게 위로와 힘을 갖는 시간을 지속적으로 시도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조금씩 독립적인 마음이 자라기 시작했다. 그리고 실패를 하더라도 나의 생각과 감정으로 선택하고 행동하기 위한 마음의 도전심이 조금씩 자라기 시작했다.
개인적으로는 무언가를 위해 최선을 다하는 것은 결코 부정적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 최선이 자기 자신에게 쉼을 주지 못하고 오직 목표만을 이루기 위해 ‘자기파괴적’인 노력은 긍정적이지 않다고 생각한다.
노력을 하되 여백이 있는 노력은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든다. 스스로에게 100% 채우려고 하는 노력이 아닌 80% 정도로만 채우자 하는 생각으로 살아간다면 어떨까? 여백이 있어도 결코 나쁘지 않다. 여백이 있는 것이 꼭 실패감으로 느껴질 필요는 없기 때문이다.
인생은 0점 아니면 100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즉 ‘완벽’ 또는 ‘실패’만 있는 이분법적인 사고보다는 “그럴 수도 있다”는 여백을 갖고 살아보자는 것이다. 그러면 마음에 공간이 좀 더 확산되어지고 그동안 미쳐 생각하지 못 했던 것들이 생각되어지고, 보이지 않았던 것들을 보게 되는 여유로움이라는 것을 경험하게 될 것으로 생각되어진다.
무엇인가를 이루었기 때문에 나의 존재감이 증명되는 것은 아니다. 하나님이 나를 있는 그대로 사랑하시는 것은 무엇인가를 이루었기 때문에 더 크게 사랑하시는 것도 아니다. 그 사랑 안에 거하는 귀한 사랑의 신비로움을 경험했으면 하는 마음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