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승연 목사】 사회적인 소외감을 느끼는 마음의 덫

  • 입력 2022.02.15 11:49
  • 수정 2022.02.15 1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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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을 구분 짓고 받아들이는 용기가 필요해

 

*나는 그저 어울리기 위해 함께 있는 사람들과 똑같은 것처럼 행동한다. 그러면서 그 생각을 숨긴다.

*사람들에게 내 전부(가족, 취향 등)를 보여주진 않는다.

*내가 좋아하는 것보다 보수적으로 옷을 입는다.

*내가 인기가 있다는 인상을 사람들에게 심어주려고 노력한다.

*인기 있는 친구를 사귀려고 노력한다.

이렇게 노력하면서 살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면, 사회적인 소외감에 대한 열등감을 감추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주변 사람에 비해 열등하거나 다르다고 느꼈던 경험. 그래서 사람들과 함께 있을 때도 언제나 외롭게 지냈던 기억. 자신이 속해 있는 그룹에 스스로 적합하지 못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어떤 계획에도 참여하지 않으려는 태도. 사람들의 눈에 자신이 어떻게 비칠지 타인에 시선에 과한 의식을 하는 마음. 사람들이 자신의 가족을 만나거나 가족에 대해 많은 것을 알고 있다면 당황한다거나, 외모에 지나치게 의식하는 것들은 이런 사회적 소외감에 대한 마음에서 비롯된 행동특징이다.

사회적인 소외감은 어느 한 가지 원인으로만 말할 수는 없다. 그러나 확실한 것은 집단적인 괴롭힘을 당했거나, 조기 유학으로 속해 있는 집단으로부터 자신이 이질감과 열등감을 경험했을 때를 대표적으로 생각할 수 있다. 사회적인 소외감에 대해선 개인적으로도 생각해 볼만 내용이었다.

군대를 제대하고는 잠시 미국 뉴욕에서 공부를 했을 기회가 있었다. 뉴욕에 대한 막연한 기대감을 갖고 떠났던 유학 생활이었다. 그런데 막상 미국 사람들과 생활을 마음에서 불편함은 이루 말 할 수 없었다. 더 솔직히 말을 하면 피부색이나 눈동자가 다르고 언어와 문화도 완전히 다른 미국 사람들과 함께 어울리면서 좋은 관계를 할 수 있을 만큼의 내면의 힘이 약했던 그때였다. 왠지 그 사람들은 나와 다를 것 같았고, 그래서 나는 외국 사람들과 어울리면 안 될 것 같은 생각이 지배적이었다. 그래서 때로는 혼자 있는 것을 선택하기까지 했었다. 내게 허락되어 있는 환경은 너무 좋은 것들이 많았지만, 정작 그들과 나는 다르다는 열등감이 지배하는 이상 좋은 것들을 좋은 경험이 될 수 있게끔 누릴 수 없었다. 그때를 가만히 생각해보면 너무 아쉬운 점이 많은 것이 사실이다.

만약 타임머신을 타고 그때로 돌아간다면, 내가 바꿀 수 있는 영역과 바꿀 수 없는 영역에 대해서 생각하고 정리를 할 것이다.

미국 사람들은 내가 바꿀 수 없다. 그러나 그들을 바라보는 나의 마음에 잡혀 있는 열등감은 바꿔야 될 부분이다. 그런데 그때는 그것을 생각하지 못 했다. 물론 유학을 가기 전 외국 사람들과 어울릴 수 있을만한 기회가 없어서 모든 것이 낯설기도 했었지만, 마음에 잡혀 있는 관계능력에 대한 깊은 고민을 하지 못 했던 것이 사실이다. 그래서 함께 어울리지 못하고 주변에서 서성거릴 때도 많았다. 그래서 언젠가 생각하고 결단했다. 적극적으로 내가 갖고 있는 열등감을 고쳐보기로 말이다. 나의 삶을 기꺼이 바꾸려 하는가는 궁극적으로 나의 선택이다. 그러나 선택의 결과에 대해 책임도 나의 것임을 생각했었다.

어느 날 외국 친구들이 노래를 부르면서 서로 어울리고 있었다. 그때 용기를 냈었다. 그리고 용기를 내어 그들에게 다가가 함께 어울리기를 도전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내가 생각했던 것과는 완전히 달리 그들은 나를 환영해 주었다. 환영해주었던 그때의 그 느낌은 지금도 기억하고 있는 새로운 기분이다. 그동안 내가 갖고 있던 열등감이나 이질감이 그들과 어울릴 수 있었던 기회를 놓치게 했던 원인이었다. 그런데 만약 열등감으로 새롭게 도전을 하지 않았다면 그들과 함께하며 느낄 수 있을 새로운 기분은 경험하지 못 했을 것이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열등감은 나를 새롭게 할 수 있는 에너지다. 그래서 나의 부족함을 새롭게 정리해볼 필요가 있는 것이다. 바뀌어야 되는 것과 바뀔 수 없는 것이 있음을 알고 거기에 대한 용기 있는 결단이 매우 필요하다. 매순간 말이다.

기도도 그렇다. “하나님, 내게 바꿀 수 없는 것을 받아들이는 평온함과 바꿀 수 있는 것을 바꿀 용기와 구분할 수 있는 지혜를 주소서

결혼을 해서 지내게 되는 새로운 가족들과 내가 뭔가 다르게 느껴진다면. 학교나 직장에서 새롭게 지내게 되는 친구들이나 직장동료와 내가 뭔가 다르다고 느끼고 있다면. 새로 이사 간 동네 사람들과 뭔가 다르다고 느끼고 있다면. 그래서 열등감과 이질감으로 소외감으로 결핍 중심으로만 생각을 하게 된다면, 결국 괴로워지는 것은 나 자신일 뿐이다. 그래서 내가 바꿔야 되는 영역과 받아들여야 되는 영역을 구분 짓고 새롭게 살아가야 되는 용기가 필요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일단 나의 결점에 대해서 부끄러워하지 말자.

변화와 회복은 눈에 보이는 결과가 있을 때 완성된 것이 아니다. 변화의 시작은 그렇게 해보자고 결단했을 때부터다. 그래서 자신의 결점을 부끄러워만 하지 말자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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