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 씨는 중년 여성이다. 어릴 때 아버지가 지병으로 일찍 세상을 떠나게 되었다. 소중한 사람과 준비 없는 이별을 하는 심리적 상실을 경험한 것이다. 어릴 때 버림을 경험하게 된 H 씨는 자신에게 소중한 사람이 또다시 내 곁을 떠날 것에 대한 두려움이 자라고 있었다. 현재 남편과의 관계에서 그렇다. 가정적인 남편이지만 H 씨는 언제나 불안하다. 남편이 출근을 하고 혼자 집에 있을 때면 자신의 불안함을 견딜 수 없을 정도다. 그렇게 지낸 지 10년이 되었다. 10년 동안 남편이 자기 곁을 떠날 것 같은 불안함이 느껴질 때면 도대체 왜 이러는지 자신도 모르겠지만 너무 고통스러운 심정을 견딜 수 없을 정도다.
지난 연재 글에서 인간은 누구에게나 나를 성장시키지 못하게 하는 ‘인생의 덫’이 있다고 했다. 제프리 영(Jeffrey E. Young) 박사는 유년기 시절 욕구가 결핍되었을 때, 혹은 어떤 경험이 감당이 안 될 만큼 상실된 경험이 되면 부적응적인 삶을 살아가게 되는 생각이 만들어지게 되는데, 이를 가리켜서 ‘도식’이라고 했다. 누구나 예외가 없다. 인간은 형성된 도식에 의해서 살아가게 되고, 그 도식은 계속해서 반복된다는 특징이 있다. 그 도식을 ‘인생의 덫’이라고 제프리 영 박사는 표현을 했다.
H 씨는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는 부러워할만한 조건들을 갖고 있다. 출중한 외모와 좋은 학력 그리고 좋은 직장을 다니고 있다. 그러나 정작 마음에서는 ‘버림받음’이란 인생의 덫이 있었다. 남편이 마치 자신의 아버지처럼 자신 곁을 갑자기 떠날 것이 두려웠다. 그래서 남편에게 더욱 매달리게 된다. 이상하게도 소유하려는 마음이 강할수록 상대는 내 곁을 떠나게 된다. 아내의 강한 소유욕으로 인해 남편의 마음은 점점 지쳐가게 되었고, 남편이 그럴수록 아내는 더욱 남편에게 매달리고 그래도 남편이 자기 뜻대로 행동하지 않으면 협박까지 할 정도다.
J라는 청년은 언제나 마음이 공허하다. 누군가와 같이 있지만, 혼자 있는 느낌으로 살고 있다. 그래서 그런 공허한 마음을 수많은 여성들과 함께 하면서 채우려는 생활 패턴을 갖고 있다. 상대 여성이 자신과 정서적으로 가까워지려고 하면, 두려움을 느끼고 멀어지려고 한다. 지금까지 만나왔던 모든 여성에게 그런 관계를 계속해서 반복되었다. 자신도 그렇게 하고 싶지 않지만, 왜 그런지 모른다. 그래서 더 답답함을 호소한다.
J청년의 어머니는 직장여성이었다. 아침에 육아시설에 맡겨진 채로 성장이 되었다. 어머니는 저녁 늦게 찾아오셔서 집에서 함께 하는 시간 동안 온전히 J청년에게 집중해주지 못하는 어머니였다. J청년은 그런 어머니가 혼란스러웠다. 하루 종일 같이 있지 않은 어머니다. 그런데 잠깐 있는 동안 자신에게 집중해주지 못하고 집중을 해주더라도 그 시간이 길지 않다. 게다가 어머니는 감정 기복이 심하셔서 편안한 관계를 경험해주지 못했다. 즉 어머니로부터 일관성 있는 사랑 경험이 부족했다. J청년은 그런 어머니로부터 매번 정서적인 버림을 경험했다. 자신에게 가장 소중한 어머니이지만, 자신을 버리는 것과 같은 경험을 날마다 해오면서 마음에서는 친근한 관계에 대한 두려움이 함께 자라고 있었다. 그런 경험만 계속되다 보니 어머니에게 채우지 못했던 공허한 마음을 많은 여성들로부터 채우고 싶었지만, 정작 여성이 정서적으로 가깝게 느껴지면 친근한 관계에 대한 거부감이 있었다. 마치 자신의 어머니처럼 자신에게 다가오는 여성이 또다시 자신을 버릴 것 같은 두려움으로 가까이 가고 싶지만 가까이 가지를 못하는 것이다. 그래서 언제나 가까워질 듯하면 또다시 심리적인 도망을 가는 것이다.
인간은 친근감을 통해서 마음이 새로워질 수 있다. 그러나 친근감을 두려워하는 사람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는 추세로 보인다. 그래서 혼자 있는 것이 차라리 편하다고 생각하고 혼자 지내려고 삶의 방식을 결정한 사람들이 많이 있다. 그러나 정작 그 마음에 버림받음에 대한 두려움이 있는지 당사자들은 전혀 모른 채로 살아간다. 그렇게 자신의 도식에 대해 외면하게 되면, 또다시 외로워지고 또다시 버림을 경험하는 패턴은 반복된다.
“두려워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니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니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 (이사야 41:10)
버림받은 것에 대한 두려움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 하나님은 그런 두려움 안에서 도와주시기를 원하고 계신다. 그러나 그런 두려움을 스스로 인식하지 못하고 반복된 삶의 방식을 고수하게 되면, 하나님의 의로운 오른손을 경험하기 어렵다.
참 묘하다. 소중한 누군가로부터 버림을 강하게 경험된 사람은 “하나님 나를 버리지 말라”는 고백을 자주 한다. 하나님은 결코 우리를 버리지 않으신데도 말이다. 버림받고 싶지 않은 소망에는 버림받았던 아픔도 함께 있다. 그런 아픔에 대한 인식이 없으면 생활에서는 관계적인 갈등이 깊어질 뿐이다. 그래서 고통 가운데 함께 계시는 하나님이 계시는 것이다. 그런 하나님을 신뢰하자. 나의 아픔을 감싸주시는 하나님이 계시는 한, 우리는 버림받을 것 같은 두려움에서 다시 일어설 수 있는 부활의 은혜를 경험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