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그런지 나는 몰라 온 세상이 아름다워 내 마음은 풍성처럼 부풀어. 왜 그런지 나는 몰라 웃는 여잔 다 이뻐 아마 나도 사랑할 때가 됐나봐. 언제부터 그랬는지 복잡한 거리가 좋아지네 지나가는 사람들을 자꾸 쳐다보네. 친절하게 웃음짓는 귀여운 소녀와 눈 마주치면 나는 어쩔 줄을 모르고 가슴만 두근거려” (2절 생략)
김성호 씨의 ‘왜 그런지 나도 몰라 웃는 여자 다 예뻐’라는 곡의 1절 가사다. 초등학생 때 들었던 곡이라서 기억에서 흐릿한 곡이었는데, 지난주에 운전을 하다가 라디오에서 듣고는 찾아서 다시 들었다. 노래 가사를 읽어보는데, “웃는 여자 다 예뻐”를 “웃는 엄마 다 예뻐”로 바꾸어서 생각해보았다.
아이를 보고 웃는 엄마의 미소는 아이에게는 자기 자신뿐만 아니라 자기를 둘러싼 온 세상이 아름답게 느껴지게 하는 내면의 밑거름이 된다. 인간은 태어나자마자 자기 스스로 자신이 얼마나 가치 있고, 의미 있으며 사랑스러운 존재인지 알 수 있는 ‘자기-이미지’(self-image) 형성을 할 수 없다.
인간은 누군가에 의해서 따뜻하게 눈 맞춤을 해주고, 이름을 불러주고, 스킨십을 해주면서 자신의 이미지가 마음에서 만들어가는 것이다. 만약 그런 경험이 부족하면 자기이미지가 부정적으로 형성되어 있기 때문에, 주변에 있는 사람들이 경쟁자로만 느껴지고, 혹여 길거리를 지나가다가 눈이 마주치는 사람이 있으면 괜히 기분이 나빠지기도 한다. 게다가 주변 사람들에 대해선 전혀 관심이 없는 상태로만 살아간다. 뿐만 아니라 누군가를 사랑할 수 있을 만큼 마음이 준비가 없는 상태다. 그래서 자기가 사랑을 하는 방식은 타인이 자신을 사랑해줘야 하는 사람을 찾는 것이다.
서로 희생하고 양보하면서 사랑의 관계를 유지하는 것보다는 일방적으로 사랑을 받으려고 하다 보니 상대방은 지치게 되고, 자신은 상대방으로부터 기대했던 만큼 사랑이 채워지지 않아 마음에 분노감이 높아진다.
내가 어릴 때 보았던 어머니는 항상 우울하셨다. 아버지로부터 그리고 할머니로부터 마음이 편하실 날이 없으셨기 때문에, 우리를 보면서 웃으실 수 있을 만큼 마음의 여유가 없으셨을 것이다. 가만히 어릴 때 기억을 떠올려 보면 어머니가 웃으시는 얼굴보다는 언제나 슬프고 근심이 가득한 표정을 주로 보고 자랐다. 그런 어머니를 웃게 할 수 있는 방법은 공부 열심히 하고 큰 어머니의 근심이 되지 않는 행동을 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힘겹고 슬퍼 보이는 어머니인데 나마저 어머니를 슬프게 할 수는 없다고 생각을 했었다. 그래서 내가 선택한 방법은 힘들어도 힘들지 않은 척했던 것이다.
내가 경험하고 있는 힘든 마음을 속으로 혼자 삭히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라고 생각했었지만, 그랬던 나만의 방식이 힘든 일이 있으면 어떻게 해야 될지 몰라서 혼자 고민하는 방식으로 굳어져 가고 있었다는 사실을 몰랐었다.
어머니의 표정은 자녀에게는 세상을 살아가는 방식이 만들어지는 법이다. 성인이 되어 결혼을 해서도 그런 어머니를 마음에서 분리하지 못하고 어머니의 걱정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사람들도 많이 있다. 그만큼 어머니가 웃을 수 있는 마음의 건강은 자녀에게는 세상의 전부인 것은 확실하다.
김성호 씨의 ‘왜 그런지 나는 몰라 웃는 여자 다 예뻐’ 2절 가사를 보면 “비가 오는 날이면 더욱 쓸쓸하게 꽃다발을 보내주는 여인도 나는 없지만 왠지 따뜻한 미소가 자꾸만 그리워져” 내용으로 끝이 난다.
사람이 살면서 우울하고 울적해지는 기분이 느껴질 때 나를 보고 방긋 웃어주는 대상에 대한 그리움이 경험되는 것은 당연하다. 심리적으로 생각해보면 어릴 때 나를 있는 그대로 수용해주고 안아주면서 웃어주는 엄마의 얼굴을 그리워하는 마음이다. 즉 대상 갈망적 상태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가정이 회복되고 새로워지기 위해서는 내가 웃을 수 있는 마음의 상태로 회복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렇지 않더라도 서로 웃어주면서 마음의 즐거움을 경험하면 자기이미지가 새로워지는 법인 것 같다.
요즘 사회적으로 웃을 거리가 점점 없어지는 것 같다. 코로나로 인한 경제적인 위기 그리고 서로 단절되어가고 있는 이웃과의 관계,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 등 현실적인 어려움이 우리의 마음을 즐겁게 해주지 못하는 조건이다.
그래서 나를 보고 웃어주는 누군가를 그리워하면서 지내고 있는 상태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을 것 같은 생각이다. 그러나 이런 상황에서 잠시라도 서로 웃어줄 수 있는 시간이 필요한 것 같다. 왜냐하면 서로 웃다보면 웃을 수 있는 일들이 생겨지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