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화 폭락이 금융시장에 미치는 영향"
일본의 돈 가치가 추락을 지속하면서 분분한 의견들이 많다. 특히 미국 투자자들과 대형 IB(투자은행)들도 큰 관심을 보이면서 예전과 다른 시각으로 바라보며 우려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지난 말 미 1달러당 120엔을 마지노선으로 보고 있던 딜러들도 연일 엔화하락을 경고했다. 지난해 말부터 공매도, 단기투자를 전문으로 하는 헤지펀드들은 이미 125엔을 염두에 두고 엔화를 던지기 시작하자 딜러들도 130엔을 터치는 시간문제라는 우려감을 감추지 않았다.
올 초까지만 해도 한국은 물론 해외의 딜러와 전문가들은 연말쯤엔 130엔까지도 도달할 것이라는 예측은 불과 한 달 만에 현실이 되고 말았다. 미국의 가파른 금리인상은 신흥국들이 가장 먼저 큰 충격을 받기 시작했고, 그 다음은 중국에서도 어떤 파열음이 나올 것으로 예상했던 필자도 놀라움을 금치 못하며 유심히 엔화의 흐름을 모니터링하고 있다.
일본의 2021회계연도(2021.4~2022.3)무역수지가 2년 만에 적자로 돌아서 7년 만에 최대 적자 폭을 기록했다. 일본 재무성이 20일 발표한 무역통계에서 2021회계연도 수출은 전년 대비 23.6% 늘어난 85조8786억엔, 수입은 33.3% 증가한 91조2534억 엔이다. 수출에서 수입을 뺀 무역수지는 5조 3749억 엔(약 51조6000억 원)적자를 기록했다. 코로나 이전 1조2936억 엔 적자를 기록한 이후 7년 만에 최대다.
지난해 수출동향을 파악해 보면 철강(+62.7%)과 자동차(+12.8%), 반도체 등 제조 장비(+33.9%) 등이 호조를 보였지만 원유(+97.6%)와 석탄(+113.4%), 액화천연가스(+58.8%) 등 에너지 가격 상승 여파로 수입이 수출보다 더 많이 늘어난 데서 적자폭이 커졌음을 알 수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한 급격한 물가상승 영향이 가장 큰 이유이기도 하지만 지난해 하반기부터 연속 적자를 이어오고 있다는 점은 예전의 엔화가치를 보는 시각이 바뀌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일부는 투자가들은 일본 엔화 폭락은 일본경제침체와 함께 금융위기 가능성도 언급하고 있다.
"금융시장의 재편성 시작"
금융시장이 불안하고 경기하락이 시작되면 항상 엔화가치는 강세로 돌아섰고 대표적인 안전자산으로 여겨졌다, 지난 10년 동안 일본은 경제 역사상 유례없는 천문학적인 돈을 찍어냈지만 엔화는 끄떡없이 강세를 유지했고, 미 달러와 함께 3대 자산(금, 미 채권, 엔화)으로 인식되어 왔다. 상식적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던 아베노믹스(일본 총리 아베 신조가 2012년부터 시행한 금융완화와 재정지출 확대)정책은 대체로 성공했다고 자평했으나 그 여파가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는 우려감도 불안감을 더해 주고 있다.
일본 엔화하락은 일본 기업들에게는 그만큼 수익성이 높아지고 경쟁력이 강화되는 점도 없지 않다. 특히 일본과 경쟁관계에 있는 한국기업들에게 가장 큰 피해가 예상되곤 했지만 면밀히 따져보면 예상보다 크지 않다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일본의 주력수출품이었던 전자, 소재, IT, 자동차 부분은 그 규모가 크게 줄어들었고, 한국 돈 가치 또한 절하되면서 그 갭을 메꿔주고 있다. 또한 한국 기업들은 대립관계에 있던 철강, 자동차 부분은 해외생산규모를 늘리면서 큰 차이를 느끼지 못했고, 대표적 앙숙관계였던 백색가전부분은 일본을 제친지 오래되었다. 실제 대형 전자제품시장을 가보면 일본제품들은 3류 제품으로 인식되어 싸게 팔리고 있다.
그렇다면 일부 경제학자, 전문투자가들이 말하는 일본발 금융위기가 올 수 있을까? 일본 자체적으로는 상당한 어려움에 처할 수 있겠지만 그 여파가 세계금융시장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을 것으로 필자는 예상하고 있다.
그 이유는 아직도 세계1위의 해외자산(투자자산 및 유동자산 등)이 견고하게 잘 분산되어 있고, 일시적 적자가 크게 증가했지만 우크라이나 전쟁종료 시 완만한 적자로 이어질 것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금융위기와 코로나 사태 속에서도 엔화가치가 굳건한 이유는 경상수지 이익과 함께 해외자산에서 벌어들이는 달러가 해년마다 늘어나 일본으로 유입되고, 엔화매입으로 이어져 일본 돈 가치를 떠받쳤고 국외에 있는 모든 자산은 미 달러를 베이스로 하고 있어서다.
현재 일본이 갖고 있는 해외자산은 대략 360조엔(3500조 원)정도로 세계1위이고, 독일이 약 3100조 정도로 2위를 고수하고 있다. 한국의 1년 총 예산이 600조 조금 넘는다는 것을 비교하면 일본이 얼마나 많은 자산을 해외에서 갖고 있는지 가늠해 볼 수 있다. 참고로 한국의 해외투자자산 규모는 대략 600조 정도로 세계기준 중상위권에 있다.
위에서 보여주듯 일본 엔화의 폭락은 상당한 우려감을 주는 것은 확실하지만 당장 세계금융질서에 충격을 주지 않을 것이라는 것이 필자의 견해다. 그러나 일본 국민들이 느끼는 경제적 고통은 훨씬 클 것이며 내수침체로 이어질 가능성이 매우 높다. 일본 침체가 시작된 30년 전이나 지금이나 임금소득은 크게 좋아지지 않았으며 가장 큰 문제는 급격한 인구감소다. 생산피크 인력들이 해마다 10%이상씩 줄어들고 전체 인구도 지난해 처음 64만 명 이상 줄어들었다. 생산인구 감소와 소비인구 하락은 내수경기에 치명적일 수 있기 때문이다.
일본 엔화하락에 따른 한국 기업들에게는 호재일 수 있다. 아직도 전자, 기계, 화학, 선박 등의 주요 부품과 소재는 일본에 의존하는 기업들이 대부분이어서 수입단가 하락으로 이득을 볼 수 있다. 한국과 일본의 교역에서 우리가 단 한 번도 이익을 내지 못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3년 전 일본의 주요부품과 소재 수출을 금지하면서 역설적이게도 국산화가 급속히 증가했고 수입처가 세계화로 다변화 되면서 향후 경상적자부분도 축소될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그러함에도 분명 엔화의 위치는 예전과 다르게 흐를 가능성이 높아졌고, 안전자산에 대한 의문점도 커질 수 밖에 없을 것이다.
1300엔 터치로 숨고르기에 들어가면서 공매도 그룹들의 숏커버링(short covering)과 딜러들도 매수에 가담할 확률이 높다고 보고 있다. 당장 세계금융시장에 충격으로 이어지지 않으리라는 것이 필자의 예측이다. 조금 더 지켜볼 필요가 있고 미국이 다음 달 금리인상을 예상보다 크게 올리는 기점이 어떤 방향성을 제시해 줄 것이다.
※ 숏커버링이란 주식시장에서 빌려서 판 주식을 되갚기 위해 주식을 다시 사는 환매수를 말한다. 단어 그대로 해석하자면, 매도 ( 숏, short)를 보완 (커버링, covering)하는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