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명의 윤슬은 희망이다

눈이 시린 오월의 숲은 물빛 미소가 번지고 블루바다는 아직도 사랑할 시간이 많이 남아 있다고 속삭이고 있었다. 하염없이 바다를 바라만 보던 한 여인이 기다림에 지쳐 한아름 가득 품고 있던 5월의 꽃 알리움을 바다에 흩뿌린 채 바람처럼 사라지고 없다. 온순한 썰물을 타고 이내 멀어져가던 알리움은 사방으로 하나씩 흩어지며 무료함을 달래던 페닌슐라 남쪽 모퉁이를 물들이고 있었다. 막 모습을 드러낸 손톱반달이 바다에 투영되자 금빛이었다가 금시 온 바다를 알리움의 상징 연분홍으로 채색해 놓은 그 환희를 당신은 본적이 있는가?

초승달이 뜨는 오월의 바다는 이별하는 커플이나 누군가를 막연히 기다리는 이들에게 위안과 맑은 슬픔을 동시에 주는 카타르시스의 밤을 연출하고 있었다. 금 비늘이었다가 연분홍으로 너울지며 일렁이던 윤슬은 마술쟁이가 되어 서천으로 흐르는 마지막 노을빛에 채색되어 오월의 일기를 그렇게 써 내려가고 있었다.

윤슬은 ‘맑은 물에 비추는 달빛이나 햇살에 반사되어 반짝이는 잔물결’이라는 고유의 우리말 이름이다. 그 고운 이름을 얻기까지 스스로는 불가능하다. 같은 빛이면서 전혀 상반된 두 개의 빛, 달빛과 햇빛 중 하나는 반드시 물과의 조화를 이뤘을 때 비로소 자신만의 이름 ‘윤슬’을 가질 수 있다.

 눈 뜨면 어디서든지 바다가 한 눈에 들어오는 해안가에서 8년이란 긴 시간을 보냈다. 밴쿠버 섬 남쪽 끝 삼각주에 있는 유서 깊은 RV리조트를 인수해 밴쿠버에서 그 곳 빅토리아로 이주했다. 평생을 사무직에서 일해 왔기에 못질 한 번 해 본적이 없는 내가 8년 동안 안 해본 일이 없었다. 하수구 파이프 교체는 물론 맨홀이나 화장실 청소는 눈 감고도 할 정도로 수없이 반복되었다. 직원들이 출근하지 않은 날은 이른 아침 화장실 청소를 했었다. 세제를 넣고 뽀득뽀득 변기를 닦으면 때가 낀 내 마음을 벗겨내듯 하얗게 모습을 드러내는 도기의 빛깔이 참 좋았다. 평소 흙을 만지며 육체적인 노동을 하며 일상을 보내는 것이 간절한 바람이었다. 정원을 가꾸고 건물들을 수리하고 직원들을 따라 일을 배우는 과정은 하루하루가 축복이었다. 진정으로 내가 원하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캐나다 건국보다 더 긴 역사를 지닌 사업장은 밴쿠버 섬에서 유일하게 넓은 백사장이 있었다.

5월이 되면 블루바다는 100미터도 훨씬 긴 광활한 모래밭으로 변신한다. 침실이나 거실, 차실 어디에서나 태평양 바다가 한 눈에 들어오는 그 곳은 천혜의 비경을 볼 수 있는 곳이었다. 무엇보다 감탄을 자아내게 해 주는 건 매일같이 다른 모습을 연출하는 윤슬은 그 어느 빛보다 오묘하고 섬세한 예술이 아닐 수 없다. 거긴 진정한 파라다이스였고 아름다운 사람들이 머무는 곳이었다.

 마이클과 로빈 부부는 유달리 윤슬을 사랑했다. 마이클은 작은 교회의 목사이면서 관공서에서 청소부로 일하고 있었다. 부모를 따라 어렸을 적 영국에서 캐나다로 이주한 그는 줄곧 동부 큰 도심에서 살다 아내 로빈을 위해 우리 리조트에 정착했다. 그의 아내는 루게릭병을 얻어 거동이 불편했다. 살아 있는 동안 원 없이 바다를 보며 살아보는 게 소원이라는 아내를 위해 모든 것을 포기하고 빅토리아로 이주한 것이다. 마이클 부부는 작은 트레일러에서 생활하며 직장과 목회활동을 병행하며 살고 있었다. 청소일이 끝나 RV에 도착하면 어김없이 아내를 휠체어에 태우고 바닷가로 왔다. 몇 시간이고 바다를 보며 도란도란 무슨 얘기를 그토록 하는지 저녁식사도 거른 채 바다를 바라보고 있던 때가 잦았다. “식사를 하고 다시 와도 되지 않느냐? 고 물으면 ”그 사이 노을이 만드는 윤슬을 볼 수 없을까봐 기다리고 있다“고 말했다.

로빈은 항상 뜨개질을 하거나 백사장에서 사람들이 모아 준 조개껍데기나 나무 판에 그림을 그렸다. 몇 달을 걸쳐 양각을 했다고 말하며 내가 지은 정원의 이름 ‘꿈의 가든’을 조각해 크리스마스 선물이라고 건네주었다. 그녀는 누구를 만나든 맑은 미소로 인사했고 그 환한 표정은 빛이었고 사랑이었다. 오월의 어느 꽃이 과연 그녀의 해맑음을 흉내 낼 수 있을까. 마이클이 빛이라면 그 빛을 투영하는 윤슬의 완성은 로빈이었다. 소외되고 외로운 사람들을 돕고 위로하는 것이 꼭 물질이나 물리적 도움이 아니라도 맑고 진정한 미소만으로도 남에게 위안이 될 수 있다고 말한 테레사 수녀의 말이 떠오른다. 그녀와 마주하고 난 뒤엔.

 세계 곳곳에서 찾아온 여행객들이 다 떠나고 난 후의 가을바다는 옅은 색채의 블루다. 햇살도 한결 부드러워진 밤이면 달이 떠오르다 가끔씩 바다에 풍덩 빠지고 만다. 그 모습을 지켜본 로빈은 감탄사를 연발하다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싼 채 눈물을 흘리면 마이클은 그녀를 가슴에 품어주며 함께 윤슬을 바라보곤 했었다.

여명의 윤슬은 희망이다. 살다보면 누구나 한번쯤 위기에 맞닥뜨렸을 때 순간순간 용기를 갖게 되듯 그 강렬히 떠오르는 붉은 빛은 점점 밝은 햇살에 녹아 금시 은비늘이 되고 만다. 아침의 그 물결은 기쁨이고 시작의 활력이 아닐 수 없다.

반면 저녁의 윤슬은 귀향과 안식의 빛이다. 노을의 이별이자 또 다른 만남의 약속이다. 아침의 노을이 사계절 변함없는 은비늘 색채라면 밤의 향연은 절기에 따라 예술의 극치를 보여준다. 긴 여름 볕에 그을린 고기떼들이 허공으로 방망이질을 해 대는가 싶으면 노을은 절정에 이르고 온 바다는 짙은 주황색 능소화로 만개하고 만다. 축시(丑時)쯤 무시로 쏟아지는 별 빛에 반사된 그 고요의 침묵은 못 다한 우주의 이야기고 차마 고백할 수 없었던 가슴속에 담아둔 언어다. 

윤슬은 혼자 노는 방법을 배우게 해줬다. 빅토리아 생활에 쉽게 적응하지 못하며 스스로 유배생활이라고 푸념했던 날들이 윤슬을 만나고부터 평화를 얻었고 새로운 관계의 눈뜸이었다. 수만 번 천연의 색으로 변신을 거듭한 노을이 아슴아슴 멀어지고 난 뒤 찾아오는 참 맑은 고독의 색채는 결국 윤슬로 표현되는 그리움이었다.


 "기억 저편에"    -자명의 시-

 

달빛을 풀어
물레를 돌리던 손끝에서
촉촉이 베어 나온 미완의 얼굴
가라앉은 목숨의 단추를
하나씩 여미고
초상 없는 하늘 한 구석에
한 가닥 신명나게 풀고 가던 춤사위

 아!
어느 노래였든가
해산을 기다리던 눈부신 꽃게의 잠을 보며
수평선 너머
외줄을 타고 가던


쓸쓸한 허기는
어느 별에서 꿈꾸고 있는가.


자명
자명

블루애플자산운용주식회사 
CEO & 투자총책임자

The CJ Holdings LTD CEO
M&A 전문가

한국문인협회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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