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나의 완전함에(베투미) 행하오리니(엘레크) 나를 속량하시고(페데니) 내게 은혜를 베푸소서(웨하네니)”(시26:11).
새해가 밝아왔다. 여전히 코로나 19, 변형 오미크론이 생성되어, 이전보다 강력한 전염병이 우리를 위협하고 있다. 날씨는 한파로 움추려들게 하고 여러 어려움으로 인해 위축되어 살아가는 나날이다. 미사일 시험 북풍은 한반도의 안보와 평화를 흔들고 있다. 이러한 때에 우리는 시편 26편의 개인 탄원시에서 새 소망의 메시지를 얻고자 한다. “내가 나의 완전함에(베투미) 행하였사오며 흔들리지 아니하고(로 에메아드) 여호와를 의지하였사오니(바타흐티) 여호와여 나를 판단하소서(샤페테니)”(시26:1). 시인은 하나님의 말씀과 하나님을 의지하는 말씀의 완전함에 행하며 오직 하나님을 의지한다고 고백한다. 더 나아가 신앙의 연단을 말하며 어떠한 환경의 어려움에도 좌절하지 않고 주님만을 좇겠다고 말한다. “여호와여 나를 살피시고(베하네니 아도나이) 시험하사(웨나세니) 내 뜻과 내 양심을(짜르파 킬레오타이 왜리비) 단련하소서”(시26:2).
다윗은 하나님을 좇는 신앙의 인물이다. 이 시편은 다윗의 시이지만 또 하나님의 뜻과 말씀을 좇아 살아가려는 신앙인을 대표하는 시이기도 하다. “주의 인자하심이(하세데카) 내 목전에 있나이다 내가 주의 진리 중에(바암미테카) 행하여 허망한 사람(메테 샤웨)과 같이 앉지 아니하였사오니(로 야샤브티) 간사한 자와 동행하지도(나아라밈 로 아보) 아니하리이다”(시26:3-4).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다 보면 까닭모를 어려움을 당하게 되는데 그 나중 이유는 신앙의 연단을 갖고, 보다 완벽한 하나님의 품성과 인격을 닮게 하는 계기가 된다. 우리는 삶의 고난을 바라보기를 세상과 구조적 악에 대하여 탓하면서 허망한 사람과 간사한 사람들과 행악자들의 집회에서 정치적으로 문제를 풀려고 하는 때가 있다. 이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문제해결을 더 늦추고 어렵게 하는 경우가 될 수 있다. “내가 행악자의 집회를 미워하오니(사네티 퀘할 메레임) 악한 자와 같이 앉지 아니하리이다(웨임 레샤임 로 에세브)”(5절).
이 시편은 억울한 사람의 탄식과 간구 시편으로서 간절한 하나님의 도우심과 성전에서 도움이 온다는 확신을 하고 있다. “여호와여 내가 무죄하므로(베니카욘) 손을 씻고(에레하츠) 주의 제단에 두루 다니며(와아소브바 에트 미즈바하카 아도나이) 감사의 소리를 들려주고(라쉐미아 베콜 토다) 주의 기이한 모든 일을(콜 니프레오테이카) 말하리이다(우레사페를) 여호와여 내가 주께서 계신 집과 주의 영광이 머무는 곳을(우메콤 미쉬칸 케보데카) 사랑하오니(아하브티)”(26:6-8). 사람들은 고난의 원인이 세상에 있다고 보며 세상을 향해 원망과 불평과 구조적 모순을 이야기한다. 우리는 하나님께 시편 기자처럼 기도하며 하나님이 풀어주는 놀라운 하나님 경영을 바래야 한다. “내 영혼을 죄인과 함께, 내 생명을 살인자와 함께 거두지 마소서 그들의 손에 사악함이 있고(아쉐를 비데헴 지마) 그들의 오른손에 뇌물이 가득하오나(위미남 마레아 쇼하드)”(26:9-10). 세상 사람들은 정직과 공의보다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목표한 일을 이루려고 단순한 시각으로 일을 처리한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람은 어렵더라도 정도(正道)를 가면서 하나님의 도우심을 바란다. “나는 나의 완전함에(베투미) 행하오리니 나를 속량하시고(페데니) 내게 은혜를 베푸소서(웨하네니) 내 발이 평탄한 데에 섰사오니(라겔리 아메다 베이쇼르) 무리 가운데에서(베마케헤림) 여호와를 송축하리이다(아바레크 아도나이)”(26:11-12).
이러한 시편 기자의 삶을 살았던 인물이 있다. 추양 한경직 목사는 이미 부모로 부터 모태 신앙을 가지게 된다. 아버지 한도풍과 어머니가 마펫 선교사를 만나고 한석진 조사에게 복음을 전해 들으면서 복음을 받아들였다. 그래서 추양은 한문서당에서 공부하지 않고 바로 신학문 학교인 진광학교에서 8세에 입학하여 공부하고, 정주 오산학교로 진학하였다. 그는 오산학교에서 공부하면서 민족의식과 애국심을 배우게 된다. 그는 오산학교를 졸업하고 가정 형편이 어려워서 평양의 남산교회에서 경영하는 영성학교 교사로 근무하며 그곳에서 선교하는 방위량 선교사(William N. Blair, 1876-1979)를 만나게 된다. 방선교사는 한경직을 비서로 채용하였고 이 인연으로 숭실대학에 입학하는 기회를 가진다.
방위량 선교사는 1920년 초반에 황해도 구미포를 여행 갔다가 거기서 민족 복음화를 위한 결단과 기도를 한다. “주님, 우리나라가 절망적 상황에 처해 있습니다. 모세와 같은 일군이 필요합니다. 일꾼을 세워 주옵소서, 간절한 기도 중에 네가 그 일을 하라. 네가 나라를 위하여 일을 하거라” 여기서 한경직은 조국을 위해 헌신하겠다고 다짐을 하게 된다. 이후 한경직은 1925년 숭실대학을 졸업하고 미국 유학의 길을 떠나게 된다. 방위량은 1907년 평양 대부흥 운동을 주도하였고, 민족 복음화의 지도자인 한경직 목사를 인도하였으니 하나님 선교에 크게 사용된 인물이 되었다. 오늘도 영적 황무지와 같은 시대에 다시 하나님의 종을 부르고 있다. “주여, 제가 여기 있나이다.” 응답하는 여러분이 되시길 바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