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신배 교수의 구약이야기 (298) - 구약성경과 선교이야기 (110)

박신배 교수 / 연세대 구약학 박사, 현 강서대 교수, 창조문학 편집위원, 한국 평화학회 전 부회장, 한국 구약학회 전 부회장, 강서대 전 총장
박신배 교수 / 연세대 구약학 박사, 현 강서대 교수, 창조문학 편집위원, 한국 평화학회 전 부회장, 한국 구약학회 전 부회장, 강서대 전 총장

이러므로 나의 마음이(리비) 기쁘고(사마흐) 나의 영도(케보디, 영광) 즐거워하며(와야겔) 내 육체도(베사리) 안전히 살리니(이쉬콘 라베타흐, 신뢰하며)”(16:9).

설날 명절을 지내고 나니 강풍과 더불어 한파가 또 불어온다. 입춘을 바라보며 따뜻한 봄날이 곧 오리라는 기대로 우리는 이 추위를 이길 수 있다. 우리의 삶도 좀 더 좋아질 날을 기대하며 하나님 신앙을 가지고 시편기자처럼 기도하며 신뢰하여야 할 것이다. “하나님이여 나를 지켜 주소서(샤메레니) 내가 주께(바크) 피하나이다(하시티, 신뢰하다)”(16:1). 시편 16편은 시편 23편과 같이 신뢰시편에 속한다. 시편 15-24편은 토라 시편19편을 중심으로 찬양시편(15, 24)과 신뢰시편(16,23), 개인시편 (17, 22), 제왕시편(18, 20, 21) 등이 짝을 이루며 지혜 토라 시편을 강조하고 있다. 시편 16편은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이 인생의 문제를 푸는 중요한 요소임을 말하고 있다.

내가 여호와께 아뢰되(아마르티) 주는 나의 주님이시오니 주밖에는 나의 복이 없다(토바티 발 알레이카) 하였나이다”(16:2). 시편 기자는 하나님의 말씀(토라)에 의지하여 살아가면서 위로를 받고, 하나님을 의지하며 살아갈 때 힘을 얻는다고 말한다. 우리는 어려운 인생의 문제와 핍박과 공격을 받을 때 말씀에서 이를 이겨낼 힘을 얻게 된다. “나를 훈계하신 여호와를 송축할지라 밤마다 내 양심이 나를 교훈하도다”(16:7). 주님의 말씀이 생명의 길로 인도하며 충만한 기쁨과 영원한 즐거움을 준다(16:11). 오늘날 어려운 팬데믹 시대의 경제적인 어려움에 힘들어하는 사람이 많이 본다. 모두가 어렵게 살아가는 동안에도 우리는 심리적으로 위축되지 않고 살아가는 것은 너무나도 중요하다. “내가 여호와를 항상 내 앞에 모심이여 그가 나의 오른쪽에 계시므로 내가 흔들리지 아니하리로다”(16:8).

우리가 여행을 하다보면 경치 좋은 곳에는 산사(山寺)나 절이 있다. 부처상이 있고 많은 불교의 상들이 있어서 사람들이 그곳에 가서 불공을 드리거나 정성을 드리는 모습을 본다. “다른 신에게 예물을 드리는 자(아헤르 마하루 발 아시크)는 괴로움이(아쯔보탐) 더할 것이라(이르부) 나는 그들이 드리는 피의 전제를 드리지 아니하며(니스페헴 미담) 내 입술로 그 이름도 부르지 아니하리로다(우발 에사 에트 쉐모탐 알 세파타이)”(16:4). 시편 기자는 그 이름을 부르지도 않고 예물을 드리지 않을 것이라 고백한다. 오늘날 사람들은 불안하고 두려운 나머지 세상 우상에게 절하고 마음을 뺏기고 살아가는 모습이다. 우리는 하나님만 믿고 의지하며 신앙 공동체에서 성도들과 같이 믿음의 생활을 하며 간증을 나누며 함께 하며 나누는 삶을 살아간다. “땅에 있는 성도들은 존귀한 자들이니(리퀘도쉼 아세르 바아레츠 헴마 웨아디레) 나의 모든 즐거움이(콜 헤페찌) 그들에게 있도다”(16:3). “내게 줄로 재어 준 구역은(하바림 나페루 리) 아름다운 곳에 있음이여(바네이임) 나의 기업이(나하라트) 실로 아름답도다(샤페라)”(16:6). 시편기자는 성도들과 함께 하는 삶과 자신의 주어진 일상의 일터에 아름다움을 고백하고 있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산업이며 소득이며 분깃을 지키는 길이며 그것이 바로 주의 안전함과 영혼을 지키는 길임을 고백한다(16:5, 10). “이는 주께서 내 영혼을(나프쉬) 스올에(리쉐올) 버리지 아니하시며(로 타아조브) 주의 거룩한 자를(하시데카) 멸망시키지(샤하트) 않으실 것임이니이다”(16:10).

이런 신앙의 삶을 살아간 분이 있다. 전킨(William M. Junkin, 1865-1908, 전위렴) 선교사는 짧은 인생을 살았지만 선교의 밀알이 되어 전라도 선교의 씨앗이자 뿌리가 되었다. 그는 미남장로가 최초로 파송한 7인 선교사(레이놀즈, 부인 팻시 볼링, 전킨과 부일 메리 레이번, 테이트와 그의 여동생 메티, 그리고 린니 데이비스)중에 한명이었다. 189110월 내쉬빌 SVM(세계 선교를 위한 학생자원운동)집회에 유니온 신학교의 레이놀즈와 카메론 존슨, 맥코믹 신학교의 루이스 테이트가 참석한다. 거기서 주강사인 호러스 언더우드와 유학생 윤치호의 선교를 보고와 호소를 듣고 일행들은 선교사로 가기로 자원한다. 전킨은 그 자리에 참석하지 않았지만 7인 선교사 팀에 합류되어 한국으로 가게 된다.

전킨 선교사는 군산 선교부를 개척하는 중에 두 아들을 잃고 편도선 절제 수술을 받는 등 인간적인 말할 수 없는 고통을 받으면서도 복음을 전하다가 급성폐렴으로 사망한다. 그는 1904년 전주 선교부에서 발령을 받아 서문밖 교회를 건축하고 나서 과로로 소천하게 되지만 호남 선교의 밀알이 되었다.

좌, 전킨 선교사 우, 소천 30년 후 1934년 평양 서문밖교회에서 열린 조선예수교장로회 제23회 총회
좌, 전킨 선교사 우, 소천 30년 후 1934년 평양 서문밖교회에서 열린 조선예수교장로회 제23회 총회

애너벨 메이저 니스벳의 저서 <호남선교 초기 역사>(경건, 1998)에 보듯 108명의 선교사들이 호남의 선교지형을 형성하게 된다. 선교사의 희생과 헌신이 호남지역, 전주, 군산, 목포, 광주, 순천 선교부가 형성되게 한다.

초기 선교에서 땅에 떨어져 일찍 소천한 밀알은 아홉분으로서 전주의 린니 데이비스(해리슨 부인)선교사, 전주의 전킨 선교사, 오웬 선교사, 유진벨 부인 선교사, 마가렛(유진벨의 두 번째 부인)선교사, 존 커티스 선교사, 폴 사케트 선교사, 피츠 선교사, 랭킨 선교사 등이다. 이들은 거룩하지 않고 고고하지 않고 권위적이지 않고 신비하지도 않은, 점잖아하지 않는 방식으로 조선인들에게 다가갔고 그렇게 양반과 다른 평범하게 길거리에서 소리치며 노래부르며 노방전도를 하며 장날 장터에서 전도지를 나누어 주며 복음서와 달력을 판매하였다. 거지처럼 집집 대문을 두드리며 환영받지도 못하면서도 축호 전도를 하였다. 전킨 선교사는 43세의 인생을 살았지만 짧지않는 인생의 가치를 보이며, 복음의 능력을 전하다가 아름다운 별이 되었다. 우리도 이 복음의 별을 전하며 살아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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