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신배 교수의 구약이야기 (300) - 구약성경과 선교이야기 (112)

박신배 교수 / 연세대 구약학 박사, 현 강서대 교수, 창조문학 편집위원, 한국 평화학회 전 부회장, 한국 구약학회 전 부회장, 강서대 전 총장
박신배 교수 / 연세대 구약학 박사, 현 강서대 교수, 창조문학 편집위원, 한국 평화학회 전 부회장, 한국 구약학회 전 부회장, 강서대 전 총장

 

여호와여 주로부터(야흐) 징벌을 받으며(테야세레누) 주의 법으로(우미토라테카) 교훈하심을 받는 자(하게베르)가 복이 있나니(아쉐레)”(94:12).

입춘의 소식은 얼었던 우리 마음을 녹여준다. 정부가 실내 마스크도 해제한다고 하지만 한국민들은 감염될 것을 염려해서인지 좀처럼 마스크를 벗으려 하지 않는다. 마음의 봄이 실제 봄날로 이어지려 하는 소망과 우리들의 삶은 하나님의 말씀에서 힘을 얻고자 한다. 특히 시편 94편 말씀에서 위로를 받고 새로운 희망을 얻으려 한다. “여호와여 복수하시는(네콰모트) 하나님이여 복수하시는 하나님이여(엘 네콰모트) 빛을 비추어 주소서(호피아)”(94:1). 시편 94편은 하나님이 복수하시는 하나님이라는 무서운 소리로 시작한다. 우리들은 삶의 마지막 순간, 종말의 상황에서 하나님의 심판대에 설 것이다. 그 때 받을 죄과(罪科)에 대한 형벌을 말할 수 있겠지만 여기서는 하나님의 법정과 심판이 엄정함을 말한다.

세계를 심판하시는(쇼페트 하아레츠) 주여 일어나사 교만한 자들에게(게임) 마땅한 벌을 주소서(하쉐브 게물)”(94:2). 하나님이 심판하시는데 그 대상이 교만한 자, 악인, 오만하고 죄악을 행하는 자, 주의 백성을 짓밟으며 과부와 나그네, 고아들을 살해하는 자, 행악자, 악행하는 자, 악한 재판장, 의인의 영혼을 치며 무죄한 자를 정죄하며 피를 흘리는 자 등을 말한다. 시편 94편은 시편 4(90-106)의 모세 시대를 배경으로 하나님이 왕이심을 강조한다. 모세의 틀 속에서 시편 90-92편은 서론적 역할, 93-99편은 야웨 말라크(다스림)시편, 101-103편은 다윗 시편, 시편 105-106편은 제왕시편의 결론부 역할을 하며 모두 4권에 구성된다. 또 시편 4권은 민수기 시편의 역할을 하며 모세가 왕의 대언자로서 역할을 하며 하나님이 왕으로 통치하는 모습을 잘 보여준다. 여호와의 피난처 되심(90-94)과 여호와의 왕되심(93, 94, 95-99)이 조화를 이뤄서 의인과 악인을 심판하심을 이야기한다.

여호와는 나의 요새시오(레미쉬가브) 나의 하나님은 내가 피할(마흐시) 반석(레쭈르)이시라 그들의 죄악(오남)을 그들에게로 되돌리시며 그들의 악으로(베라아탐) 말미암아 그들을 끊으시리니(야쯔미템) 여호와 우리 하나님이 그들을 끊으시리로다(야쯔미템)”(94:22-23). 시인은 악인들의 개가(凱歌)와 오만, 자만, 떠들어됨을 하나님께 고발하며 탄식한다(94:3-5). “귀를 지으신 이가(하노타 오젠) 듣지 아니하시랴(할로 위쉐아) 눈을 만드신 이가(임 요쩨르 아인) 보지 아니하시랴(할로 야비트) 뭇 백성을 징벌하시는 이(하요세르 고임) 곧 지식으로 사람을 교훈하시는 이가(하메라메트 아담 다아트) 징벌하지 아니하시랴(할로 요키아흐)”(94:9-10). 보응하시는 하나님이 반드시 악인을 심판하신다고 말한다. 하나님의 보호하심과 통치하시는 하나님은 의인과 함께 하시며 평안함과 지키심, 인자하심, 붙드심과 영혼을 즐겁게 하심으로 함께 하신다. “내 속에 근심이(사르아파이 베크레비) 많을 때에(베로브) 주의 위안이(타네후메이카) 내 영혼을 즐겁게 하시나이다(예샤아쉐우 나프쉬)”(94:19). 오늘도 힘들게 살아가는 사람들은 이 시편 말씀에서 위로와 힘을 받고 또 당당하게 살아갈 용기를 가지게 된다.

하늘 소망을 두고 늘 하나님의 힘으로 살아간 분들이 계시다. 그 중에 새무얼 오스틴 모펫(S. A. Moffett, 1864-1939, 마포삼열)은 한국 초기 선교의 아버지였다. 그는 인디애나 매디슨 카운티에서 태어나 1890년 한국에 와서 46년간 선교사 생활을 하였다. 평양에서 22명의 신학생을 가르친 것이 조선 신학교의 시작이었고 장로회 신학교의 모체가 되었다. 1911년 조선 독립 운동가를 체포한 105인 사건 때에 그는 매균(윤산온)과 에비슨 선교사와 함께 미국에 보고하여 국제적인 여론을 일으키기도 하였다. 1934년 일제의 탄압이 심해져서 더 이상 선교 활동이 힘들게 되자 고향으로 돌아가서 1939년 캘리포니아 몬로비아에서 소천한다.

마포삼열은 평안도에 많은 학교와 교회를 세우고 한국 근대교육의 산실이 되게 한다. 그는 1918-1928년 숭실중학교와 숭실전문학교의 교장을 역임하기도 한다. 마포삼열(마삼열) 선교사는 평양을 동방의 예루살렘으로 변화시킨 주역이었다.

왼쪽, 사무엘 오스틴 마펫 (Samuel Austin Moffett, 1864. 1. 25 ~ 1939. 10. 24)오른쪽, 평양 장대현교회 앞에서 가운데 왼쪽부터 사무엘 마펫 선교사, 길선주 목사, 그레이엄 리 선교사
왼쪽, 사무엘 오스틴 마펫 (Samuel Austin Moffett, 1864. 1. 25 ~ 1939. 10. 24)오른쪽, 평양 장대현교회 앞에서 가운데 왼쪽부터 사무엘 마펫 선교사, 길선주 목사, 그레이엄 리 선교사

모펫의 한국 컬렉션 사진 4460장은 한국 선교의 귀한 자료가 되었다. 그는 26세에 한국 인천 제물포에 첫 발을 내딛고 처음 6개월간은 한국어를 공부하였고 언더우드로부터 경신학교의 전신인 <예수교 학당>을 인수받아 교육 사업을 하였다. 그는 1893년부터 평양을 중심으로 평안 남북도, 황해도 일대를 순회하며 복음 전도를 하였다.

1901년 평양신학교를 시작하여 평양신학교 교장(1904-1924)에 취임하여 한국의 독립과 신사참배 거부의 신앙교육을 가르쳐 주었다. 장대현 교회 장로 김종섭, 방기창 등과 같이 신학교를 시작하였고 1907년 최초의 졸업생 7(한석진, 방기창, 길선주, 이기풍, 양진백)은 한국 교회의 중심인물이 되었다. 토마스 선교사가 순교한 평양을 선교 사역지로 정하였고 그 대동강에 뿌려진 성서로 도배한 박영식, 최치량은 예수를 믿고 마삼열의 돈독한 동역자가 되었다. 선교사는 장대현 교회, 남대현 교회, 사창골 교회, 산정현 교회 등을 개척하였다. 하늘의 씨앗은 어김없이 전해지고 그 다음 복음 전도자에 의해 또 연이여 뿌려지는 것을 본다. 오늘도 우리는 이 천국 씨앗을 가지고 선진들의 뒤를 따라가자! 주여 생명의 복음을 전하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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