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신배 교수의 구약이야기 (302) - 구약성경과 선교이야기 (114)

박신배 교수 / 연세대 구약학 박사, 현 강서대 교수, 창조문학 편집위원, 한국 평화학회 전 부회장, 한국 구약학회 전 부회장, 강서대 전 총장
박신배 교수 / 연세대 구약학 박사, 현 강서대 교수, 창조문학 편집위원, 한국 평화학회 전 부회장, 한국 구약학회 전 부회장, 강서대 전 총장

여호와여 우리가 주께 바라는 대로(카아세르 야하레누 라크) 주의 인자하심을(하세데카 아도나이) 우리에게 베푸소서”(33:22).

이제 추웠던 겨울날이 가고 새 봄을 알리는 계절이 돌아왔다. 봄비가 내려 대동강물도 녹는다는 우수(雨水)의 시기이다. 우리의 움츠렸던 일들이 이제 봄비와 더불어 눈 녹듯이 사라지기를 바라며 주위의 어려운 사정을 살필 수 있는 여유를 갖기를 바란다. “온 땅은 여호와를 두려워하며(위레우 메아도나이) 세상의 모든 거민들은 그를 경외할지어다(야구루)”(33:8). 시편 한 편이 갖는 노래와 시는 한 인생의 노래를 대표하고 있고, 또 한 시편의 노래는 한 사람의 우주를 말하는 듯하다. 그래서 하나님의 창조를 찬양하듯 하다. 처음에는 탄식에서 시작하는 인생이, 고난과 불행을 거치면서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풀리는 놀라운 역사를 보게 된다.

여호와의 말씀으로 하늘이 지음이 되었으며(샤마임 나아수) 그 만상을 그의 입 기운으로 이루었도다(우베루아흐 피우 콜 쩨바암) 그가 바닷물을 모아(메 하얌) 무더기 같이 쌓으시며(코네스 카네드) 깊은 물을 곳간에 두시도다(베오짜로트 테호모트)”(33:6-7). 창세기 창조의 이야기처럼 시편 33편은 천지창조의 삼라만상 창조를 노래한다. 시편 1권이 창세기 시편으로 볼 수 있듯이 말씀의 창조세계를 보여준다. “그가 말씀하시매(키 후 아마르) 이루어졌으며 명령하시매 견고히 섰도다(와야아모드)”(33:9). 이 시편 33편은 창조사건에서부터 더 나아가 민족과 나라, 한 개인의 인생까지도 창조하시는 분이심을 밝힌다(10, 12, 13, 16, 17). “그는 그들 모두의 마음을 지으시며(하요쩨르 야하드 리밤) 그들이 하는 일을 굽어살피시는 이로다(하메빈)”(33:15).

시편 33편은 시편 1권의 세 번째 단락(시편25-34)으로서 탄식시(25-28), 찬양시(29), 감사시(30), 탄식시(31), 지혜시(32), 찬양시(33), 감사시(34) 등 순으로 구성된다. 여호와의 도와 구원자와 피난처 되시는 여호와를 나타내려 구성한다. 시편 30-34편은 한 단위로 다윗의 시, 성전 낙성가(30)에서 시작하여 탄식시(31), 참회시(32)를 거쳐 시편 33편은 하나님은 창조자와 역사의 주관자이심이며 그로 인해 찬양받으시는 분임을 말한다. 이 세 번째 단락은 감사시(34)로 연결되어 끝나는 구조를 보인다. 이처럼 의인들이 바로 하나님을 찬송할 수 있는 존재임을 말한다. “너희 의인들아 여호와를 즐거워하라(라네누 짜디큄) 찬송은 정직한 자들이(라에샤림 나와 테힐라) 마땅히 할 바로다”(33:1).

그는 공의와 정의를 사랑하심이여(오헤브 쩨다콰 우미세파트) 세상에는 여호와의 인자하심이(헤세드) 충만하도다”(33:5). 하나님과 하나님 말씀의 속성이 정직과 진실이라 말한다(33:4). 따라서 우리는 정직하고 공의와 정의를 사랑하며 하나님의 계획을 따라 살아가야 한다(33:4,5, 11, 12). “우리의 마음이 그를 즐거워함이여 우리가 그의 성호를 의지하였기 때문이로다”(21). 결국 찬양과 감사의 주체는 하나님이지만 그를 바라는 것은 사람임을 결론적으로 노래한다. “많은 군대로(베라브 하일) 구원을 얻은 왕이 없으며(에인 하멜렉 노샤) 용사가(기보르) 힘이 세어도 스스로 구원하지 못하는도다(로 이나젤)”(16). 그 분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을 살피시고 그들의 영혼을 구원하시고 굶주릴 때에 살리신다고 한다(18,19). 이렇게 하나님을 경외하는 인생을 살아간 분들이다.

에비슨 선교사 아들 고든 에비슨(Gordon W. Avison, 1891-1967)1925-1938년 사이에 전라도 광주를 중심으로 선교 활동을 한다. 그는 아버지의 선교 뜻을 이어받아 YMCA 지도자와 농업학교 교장직을 맡아 봉사하며 한국 농부들의 환경을 개선하는 일을 한다. 고든 에비슨은 농촌 재건 운동을 하며 말라리아 퇴치와 농촌 교육을 선도한다. YMCA의 농촌 프로그램을 농촌 마을에서 시행한다. 고든 에비슨이 세운 학교, 농업실수학교에서 한국의 프란시스라 불리는 호남의 성자 이현필 전도자가 1913-1964년에 수학하기도 했다.

광주시 남구 양림동에 위치한 어비슨기념관, 어비슨은 광주, 전남지역 농촌 계몽의 아버지로 알려져 있다.
광주시 남구 양림동에 위치한 어비슨기념관, 어비슨은 광주, 전남지역 농촌 계몽의 아버지로 알려져 있다.

에비슨의 아들, 더글라스(Douglas B. Avison, 1893-1951)는 토론토 대학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1920년 북장로교 의료선교사로 내한하여 1920-1923년까지 선천 선교부에서 활동한다. 그 후에 더글라스는 서울 선교부로 이전 전임하여 세브란스 의학전문학교에서 교수와 병원장으로 봉직한다. 이처럼 두 아들이 에비슨의 선교 뜻을 이어 한국 땅에서 거룩한 하나님 나라를 만들어간 것은 숭고한 삶의 여정이었다. 이 에비슨의 3대에 걸쳐 한국을 사랑하였고 선교가 무엇이라는 하는 것을 보여준 아름다운 선교가문이 되었다.

고든 에비슨은 파란 눈의 쌀박사라는 칭호를 받을 정도로 광주, 전남 농촌의 아버지가 되었다. 그는 전남과 광주의 근대사를 쓰는데 주도적 인물이 되었다. 그는 광주 YMCA와 광주 양림교회를 세웠고 그로 인해 지금은 그의 어비슨 기념관이 세워졌다. 고든 에비슨은 세브란스 설립자 올리버 에비슨의 아들로서 한국 농촌을 돕기 위해 미국 YMCA가 고든 에비슨과 농업전문 간사 7명을 파견할 때 오게 되었다. 인도 선교사의 딸인 간호사 출신 프렌세스 부인과 두 아이를 데리고 광주 YMCA 최영균과 함께 호남지역을 맡아 선교를 하였다. 그는 농업전문가로서 농업활동을 벌이며 야학을 열어 문맹퇴치에도 힘썼다. 그는 각처에서 신용협동조합과 농우회를 결성하여 생활개선과 문화를 보급하는데 앞장섰다. 통조림 기술을 보급하였고 캔제품 개발로 어린이 사망률을 낮추고 축구, 유도, 권투 등 사회 체육 활동을 보급하여 사회공헌 활동을 하였다. 고든 에비슨의 외아들 부드 에비슨은 한국인 2세와 결혼 한 후에 보병으로 한국전에 참여하였고, 그 부인도 간호부대 고문으로 간호인력을 양성하였다. 이처럼 선교는 한 가문이 어떻게 한 나라의 삶의 자리에 깊이 들어가서 함께 하는 것임을 보여준다. 우리도 빛으로 이끄는 삶에 동참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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