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신배 교수의 구약이야기 (307) - 구약성경과 선교이야기 (119)

박신배 교수 / 연세대 구약학 박사, 현 강서대 교수, 창조문학 편집위원, 한국 평화학회 전 부회장, 한국 구약학회 전 부회장, 강서대 전 총장
박신배 교수 / 연세대 구약학 박사, 현 강서대 교수, 창조문학 편집위원, 한국 평화학회 전 부회장, 한국 구약학회 전 부회장, 강서대 전 총장

주께서 주의 능력으로 바다를 나누시고 물 가운데 용들의 머리를 깨뜨리셨으며(쉬바르타 라쉐 타닌님)”(74:13).

이제 봄날이다. 어느덧 봄꽃이 시샘하듯이 서로 경쟁하며 꽃을 피우고 있다. 마스크한 사람들이 길거리에서 한 사람, 두 사람 마스크를 벗더니, 이제 얼굴을 보이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오랜 전염병의 위협은 이제 사라지고 있고 사람들의 희망의 빛도 더욱 밝아지는 듯하다. 그동안 코로나 19, 팬데믹 시대를 살아오면서 우리는 오늘의 시편 74편의 상황을 보는 듯하다. 시편 74편은 시편 73편과 함께 신앙의 회의를 보이며 성전이 파괴된 비참한 사실에 대하여 탄식한다. “주의 성소를 불사르며(쉴후 바에쉬 미크다쉐카) 주의 이름이 계신 곳을(미쉬칸 쉐메카) 더럽혀 땅에 엎었나이다 그들이 마음속으로 이르기를 우리가 그들을 진멸하자 하고(아메루 베리밤 니남 야하드) 이 땅에 있는 하나님의 모든 회당을 불살랐나이다(사르푸 콜 모아데 엘 바아레츠)”(74:7-8).

시편 3권은 시편 73-83편 아삽의 시편과 시편 84-89(고라, 다윗, 고라, 에단)편으로 나뉜다. 여기 시편 73, 74편에서는 하나님 말씀에 불순종한 것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으로서 나라가 멸망했다는 사실을 말하려 한다. 시편 74편은 아삽의 마스킬이라는 표제어로 시작하며 성소를 훼파하고 나라를 침범한 악인들의 교만함 때문에 탄식하는 상황을 말한다. “주의 대적이 주의 회중 가운데에서 떠들며(샤아구 쪼르레이카 베케레브 모아데카) 자기들의 깃발을 세워 표적으로 삼았으니(사무 오토탐 오토트)...이제 그들이 도끼와 철퇴로(베카쉴 웨케일라포트) 성소의 모든 조각품을 쳐서 부수고(야하로문)” (74:4, 6). 이는 이스라엘의 역사에서 남유다가 주전 587년 멸망하던 때에, 바벨론에 포로로 붙잡혀가는 처절한 상황을 보여준다. 이러한 비참한 역사의 고난 속에 있는 시인은 그 고난과 멸망의 이유를 묻고 있다.

하나님이여 주께서 어찌하여(라마 엘로힘) 우리를 영원히 버리시나이까(자나헤타 라네짜흐) 어찌하여 주께서 기르시는 양을 향하여(베쫀 마르이테카) 진노의 연기를 뿜으시나이까(웨에샨 아프카)”(74:1). 나라가 멸망되고, 공동체가 파괴되는 심각한 재난의 상황임을 보여준다. “하나님이여 대적이 언제까지 비방하겠으며(아드 마타이 엘로힘 예하레프) 원수가 주의 이름을 영원히 능욕하리이까(짜르 에나에츠 오에브 쉬메카 라네짜흐) 주께서 어찌하여 주의 손 곧 주의 오른손을 거두시나이까(라마 타쉬브 야드카 위미네카) 주의 품에서 손을 빼내시어 그들을 멸하소서(미퀘레브 헤케카 칼레)”(74:10-11). 이 국가적 재난에서 이스라엘은 묻기를 하나님은 살아계시는가? 하나님은 정의로우신가? 시인은 이렇게 질문하며 발생하지 말아야 할 사건인, 비참한 나라 없는 상태가 된 것에 탄식하고 있다. 결코 있어서는 안 되는 비운의 상태가 된 것이다. 그러나 나라가 사라지고 성소가 파괴되는 상태에서도 새로운 창조를 간구하는, 시인의 간절한 탄식의 노래를 듣게 된다. “리워야단의 머리를 부수시고(아타 리짜쯔타 라쉐 리웨야탄) 그것을 사막에 사는 자에게 음식물로 주셨으며(티네네누 마아칼 레암 레찌위임) 주께서 바위를 쪼개어 큰 물을 내시며(아타 바카에타 마에얀 와나할) 주께서 늘 흐르는 강들을 마르게 하셨나이다(앝 호바쉬타 나하로트 에이탄)”(74:14). 시인은 더 나아가 대적자의 조롱와 비방을 기억하고 이스라엘을 구원해달라고 탄식한다. “주의 대적들의 소리를 잊지 마소서(알 티쉬카흐 콜 조르레이카) 일어나 주께 항거하는 자의 떠드는 소리가 항상 주께 상달되나이다(쉐온 콰메이카 올레 타미드)”(74:23).

 

오늘 이 공동체의 탄식은 구한말 조선 땅에도 아주 심하였다. 이 때에 빛을 들고 오신 선교사들 3000여 명은 빛의 사자(使者)들이었다. 존로스와 맥킨타이어의 성경 번역 사역과 백정들의 신분을 해방하는데 막역한 역할을 하며 복음의 빛을 전했던 사무엘 무어 선교사는 복음의 문을 열고 사회에 큰 빛을 주는데 뛰어났다. 무어는 고종에게도 복음을 전하려 했고 크게 한국이 복음화 되기를 원했던 것으로서 복음의 열정이 대단하였던 것을 본다. 그 외에 대대로 복음을 전하며 선교는 적어도 신앙 4대를 이어져야 하는 거룩한 일임을 여러 선교사들이 보여주었다.

안두화(Edward Adams, 1895-1965)선교사는 안의와 선교사 부부의 장남으로서 차남 벤자민 아담스, 장녀 도로시 아담스, 3남 조오지 아담스인데 부인 안의와 선교사 부인은 막내를 낳은지 2년 후에 세상은 떠난다.

1907년 북장로교 대구 선교부 소속 선교사 사진 / 가운데 맨 위가 안의와 선교사 오른쪽이 아내인 넬리 선교사, 앞줄 강아지 앞이 안두화 선교사(12살 때)
1907년 북장로교 대구 선교부 소속 선교사 사진 / 가운데 맨 위가 안의와 선교사 오른쪽이 아내인 넬리 선교사, 앞줄 강아지 앞이 안두화 선교사(12살 때)

안두화 선교사는 1895년 미국 캔사스 주에서 출생해 15세 때 1910년 중국 산동성에 있는 지푸 내지 선교회에서 운영하는 학교를 졸업한 후 미국 맥코믹 신학교를 졸업한다. 그 후에 아버지를 따라 황해도 재령 선교부에서 선교하다가 대구로 옮겨갔고, 그는 농어촌 선교에 집중하였다.

그는 대구성경학교 교장으로 취임하여 1940년 퇴임하기까지 후진을 양성하였다. 그는 1950년 전후해서 경북 경산과 의성, 군위, 영천 등지를 순회 전도한다. 그 때에 구입한 2만여 평의 땅을 주민들에게 1백 평씩 분배, 10년 상환 조건으로 나눠주고 농촌 교회 설립 및 농민들의 자립책을 마련해주었다. 그는 미연합장로회의 선교부 총무로 있으며 아동복지회 위원, 대구 계성 중고교 이사, 연세대 세브란스 병원 이사, 기독교 세계 봉사회 한국 지부 책임자 등 중요요직을 맡으며 19542월에 계명대학교를 설립하여 초대 이사장으로 취임한다. 1958년 계명대학교 2대 학장으로 봉직하다가 19619월 정년퇴임했다. 6.25전쟁 당시에 피난민을 제주도로 피난시키는 데 큰 활약을 하여 대통령 표창을 받기도 하였다. 19637월 미국으로 돌아가서 19659월 오레곤주 로스버그에서 별세하였다. 하나님은 폐허와 같은 한국 땅에 빛의 선교사 가문을 통해 복음을 전하게 하며 찬송하게 하신다. “학대받은 자가 부끄러이 돌아가게 하지 마시고 가난한 자와 궁핍한 자가 주의 이름을 찬송하게 하소서(예할레루 쉐메카)”(7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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