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신배 교수의 구약이야기 (311) - 구약성경과 선교이야기 (123)

박신배 교수 / 연세대 구약학 박사, 현 강서대 교수, 창조문학 편집위원, 한국 평화학회 전 부회장, 한국 구약학회 전 부회장, 강서대 전 총장
박신배 교수 / 연세대 구약학 박사, 현 강서대 교수, 창조문학 편집위원, 한국 평화학회 전 부회장, 한국 구약학회 전 부회장, 강서대 전 총장

 

감사로(토다) 제사를 드리는 자가(조베아흐) 나를 영화롭게 하나니(예카베다네니) 그의 행위를 옳게 하는 자에게 내가 하나님의 구원을(베에샤 엘로힘) 보이리라”(50:23).

인생을 살아간다는 것은 바로 인간과 사회, 국가와 민족, 공동체 관계 속에서 하나님을 인식하고 살아가느냐, 아니면 그렇지 못하느냐는 둘 중에 선택하는 삶이다. “하나님을 잊어버린 너희여(쇼케헤 엘로아흐) 이제 이를 생각하라(베누 나) 그렇지 아니하면 내가 너희를 찢으리니 건질 자 없으리라(에트로프 웨에인 마찔)”(50:22). 시편 기자는 하나님 망각증, 하나님 무인지(無認知)의 삶은 멸망의 삶이라고 말한다. 이런 삶은 죄와 심판의 삶이요, 또한 죄가 적나라하게 드러나게 되는 부끄러운 인생임을 말한다(50:21). 하나님을 떠난 삶은 악인의 삶이요 죄악의 삶인 것을 말한다. 율례와 언약이 입에 없는 삶이요, 교훈을 미워하고 도둑과 연합하고 간음하는 자들과 친구가 되고 입과 혀로 거짓을 꾸미고 형제를 비방하는 삶이다(50:16-20).

그러나 하나님을 섬기며 하나님께 예배하는 삶은 빛나는 삶이요 하나님이 빛을 비추는 인생이라고 말한다. “온전히 아름다운 시온에서(미찌온 미케랄 요피) 하나님이 빛을 비추셨도다(엘로힘 호피아)”(50:2). 하나님은 자기 백성을 판결하시며 성도들을 모으시고 예배로 언약하시는 분이심을 말한다(50:2-5). 시편 50편 기자는 하나님의 사람들은 천지를 주관하시며 다스리는 하나님의 세계에서 양식이 마르지 않고 풍요로운 삶을 누리며 예배드리는 축복된 생애를 누림을 말한다. “감사로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며(제바흐 레로힘 토다) 지존하신 이에게 네 서원을 갚으며(웨샤렘 레엘레온 네다레이카) 환난날에 나를 부르라(우케라에니 베욤 짜라) 내가 너를 건지리니 네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로다”(50:14-15). 감사시인 시편 50편은 하나님께 부르짖는 기도를 통해 감사의 제사를 드리게 됨을 말한다.

나는 네 제물 때문에 너를 책망하지는(오키헤카) 아니하리라(로 알 제바헤카) 네 번제가 항상 내 앞에 있음이로다(웨올로테이카 레네게디 타미드)”(50:8). 주의 자녀는 수소, 숫염소, 삼림의 짐승, 뭇 산의 가축, 산의 모든 새, 들의 짐승, 수소의 고기, 염소의 피 등은 풍족한 제물의 감사가 있음을 말한다(50:9-13). “내가 가령 주려도(임 에르아브) 네게 이르지 아니할 것은 세계와 거기에 충만한 것이 내 것임이로다(키 리 테벨 우메로아흐)”(50:12). 결국 시편기자는 해 돋는 데서부터 해지는 데까지하나님을 예배하고 그의 주권을 인정하게 되는 세계를 노래하고 있다. 아삽의 시 기자는 전능하신 이 여호와 하나님께서 말씀하사 해 돋는 데서부터 해지는 데까지(미미즈라흐 쉐메쉬 아드 메보오)’ 세상을 부르셨도다(와이크라 에레츠)”(50:1). 하나님의 자녀, 성도들은 감사의 제사를 드리며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게 한다고 말한다. “우리 하나님이 오사(야보 엘로헤누) 잠잠하지 아니하시니(웨알 예헤라쉬) 그 앞에는 삼키는 불이 있고 그 사방에는 광풍이 불리로다”(50:3). 공의를 선포하시고 심판장이 되시는 하나님은 엄위한 모습으로 이 땅에 오신다(50:6). 이는 온전한 아름다운 시온에서 축복의 빛이 발원되고 있음을 노래한다. 이것은 바로 선교 세계에서도 유사하게 선교사는 선교를 통해서 복음의 빛을 비추게 한다.

 

데이비스(J. H. Davis)선교사는 누이와 함께 1889년 한국 선교를 시작하게 된다. 그러나 호주 빅토리아 주 출신 데이비스 선교사가 갑자기 질병으로 별세하자 선교부는 어려움에 봉착하게 된다. 하지만 이 일이 전화위복이 되어 한국 선교에 관심이 증폭되고 선교 열정이 생기게 되었다.

호주 장로교회 선교부에서 한국에 파송한 첫번째 선교사 조셉 헨리 데이비스 목사와 그의 누이 메리 데이비스.
호주 장로교회 선교부에서 한국에 파송한 첫번째 선교사 조셉 헨리 데이비스 목사와 그의 누이 메리 데이비스.

1891년 맥케이 부부, 여선교사 멘지스, 포세트, 페리 등이 파송되어 왔다. 이들 선교사들은 부산, 마산, 통영, 거창 등지에서 본격적인 선교사역을 수행하였다. 이들은 전도와 교회 설립을 열심히 하면서 부산에 일신여학교, 마산의 창신학교, 의신여학교 등 교육 사업을 하였고, 진주에서는 의료 선교가 활발하게 이뤄지게 하였다. 엥겔 선교사는 평양신학교에서 교역자 양성을 주력했고 호주 선교부의 선교사는 강한 보수적 신학 경향을 가지고 있어서 신사참배를 거부하다가 일제로부터 강제로 추방당하게 된다.

일신여학교 제1회 졸업사진 속 호주 선교사들과 여학생들 , 일신여학교는 부산 지역 3.1운동의 거점
일신여학교 제1회 졸업사진 속 호주 선교사들과 여학생들 , 일신여학교는 부산 지역 3.1운동의 거점

벨레 멘지스 선교사는 부산진교회에서 사역을 하였다. 호주 선교부는 1900년대 초 부산진성 좌천동에 위치해 있었다. 부산진교회 왕길지 기념관에는 그 때의 선교활동 사진이 있고 그 때의 풍광을 볼 수 있다. 1890년대 좌천동에, 최초의 부산진교회 전경이 보인다. 부산진성, 영가대 근처 부산포구, 부산진성 옆의 동천 하류, 개운지, 두모진, 구관, 신초량, 객사, 초량왜관, 구초량 절영도, 초량 위치 그림이 나온다. 호주 선교사 2진의 5명 중 맥케이 선교사 부인 사라(Sara)32세의 나이에 폐렴으로 사망하게 된다. 6주간 병상에서 고생하다가 소천하게 된다. 그 후에 맥케이 선교사는 고향으로 갔다가 다시 네 번째 선교사인 무어(Bessie S. Moore)를 데리고 돌아온다. 그 후에 맥케이 선교사는 일본 나가사끼에 사역을 하는 선교사와, 성공회교회당에서 동료 선교사 퍼셋(Mary Fawcett)과 재혼을 하게 되고 초량 지역에 600평의 땅을 매입하고 선교를 하다가 건강상 다시 고국 멜버른으로 돌아가게 된다.

결국 호주 선교부 5인 선교사가 이어서 선교를 하게 된다. 하나님의 선교는 하나님께 허락된 선교사들에 의해 땅끝 갈릴리에서 복음의 씨앗이 떨어지게 하고 있었다. 오늘도 이 선교의 씨알들은 성령에 감동받은 사람들과 더불어 이뤄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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