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신배 교수의 구약이야기 (314) - 구약성경과 선교이야기 (126)

박신배 교수 / 연세대 구약학 박사, 현 강서대 교수, 창조문학 편집위원, 한국 평화학회 전 부회장, 한국 구약학회 전 부회장, 강서대 전 총장
박신배 교수 / 연세대 구약학 박사, 현 강서대 교수, 창조문학 편집위원, 한국 평화학회 전 부회장, 한국 구약학회 전 부회장, 강서대 전 총장

주의 은택으로 한 해를 관 씌우시니(이타르타) 주의 길에는 기름 방울(이르아푼 다쉔)이 떨어지며”(65:11).

우리가 인생은 산다는 것은 하나님을 인식하고 살 때만이 그 참된 의미가 있다. 세상은 점점 알 수 없는 미로로 빠져들게 될 것 같다. 첨단 지식이나 인공지능(AI), GPT , 새 기술로 사회는 날로 발전하는 듯 하지만, 사람의 기능이 점점 적어들면서 일자리가 사라지게 된다. 이러한 때에 우리는 하나님을 소망하고 하나님에게 지혜를 구하며 나갈 수 밖에 없다. “하나님이여 찬송이 시온에서 주를 기다리오며 사람이 서원을 주께 이행하리이다(우레카 예슈람 네데르)”(65:1). 시편 65편은 감사와 찬양이 주께 있다는 사실을 가르쳐 준다. “우리 구원의 하나님이시여 땅의 모든 끝과 먼 바다(콜 콰츠 웨 에레츠 웨암 레호킴)에 있는 자가 의지할 주께서 의를 따라 엄위하신 일로(노라오트) 우리에게 응답하시리이다”(65:5).

시편 65편은 찬양시편으로서 테힐림(찬양) 시편은 8, 19, 29, 33, 46-48, 65, 66, 68, 76, 84, 87, 93, 95-100, 103-104(105), 111, 113-114, 117, 122, 134-136, 145-150편 등이다. 이 시편은 야웨 즉위시편으로써 6-7절에는 주의 힘으로 산을 세우며 능력으로 띠를 띠시며 바다와 물결의 흔들림과 만민의 소요까지 진정시키는 하나님의 창조를 보여준다. 이 시편은 야웨가 왕이 되어서 홍수를 잔잔케 하고 추수의 축제를 기리며 야웨가 혼돈을 이기고 승리하는 것을 찬양하고 감사하는 시편의 모습을 보인다. “땅을 돌보사(파콰드타 하아레츠) 물을 대어 심히 윤택하게 하시며 하나님의 강에 물이 가득하게 하시고 이같이 땅을 예비하신 후에(타킨 데가남) 그들에게 곡식을 주시나이다(키 켄 테키네하)”(65:9).

65편은 다윗의 시, 인도자를 따라 부르는 노래라는 표제어를 통해 시편의 세계가 다윗의 노래와 시임(창세기-출애굽기)을 알려준다. 야웨 창조주의 창조세계가 6-7절을 통해 창조의 주가 세계를 창조할 때 산을 세우고 권능으로 띠를 띠는 것을 보이며 혼돈의 세력을 넘어서 잔잔하게 하는 세계를 보여준다. “바다의 설렘(쉐온 야밈)과 물결의 흔들림(쉐온 갈레헴)과 만민의 소요까지(와하몬 레우밈) 진정하시나이다”(65:7). 하나님은 창조를 통해 리워야단(옛뱀)을 무찌르며 창조의 세계를 만들며 비신화화하는 것을 보여준다. 세상의 창조와 이스라엘 역사 속에 은혜의 행동을 보이며 계약을 통한 감사를 보이며 희생 제사(네다림)와 감사(토다)가 이어짐을 보여준다. “들의 초장에도 떨어지니(야레아푸 네오트 미드바르) 작은 산들이 기쁨으로 띠를 띠었나이다 초장은 양 떼로 옷 입었고 골짜기는 곡식으로 덮였으매(와아마큄 야아테푸 바르) 그들이 다 즐거이 외치고 또 노래하나이다(이트로아우 아프 야쉬루)”(65:12-13).

시편 기자는 죄악과 허물을 넘어서서 하나님이 기도를 받으시며(2-3) 성전과 그 뜰에서 감사하는 예배자에게 복이 있다고 선포한다. “주께서 택하시고(티브하르) 가까이 오게 하사 주의 뜰에 살게 하신 사람(이쉬콘 하쩨레이카)은 복이 있나이다(아쉐레) 우리가 주의 집 곧 주의 성전의 아름다움으로 만족하리이다(니쉬베아 베투브)”(65:4).

하나님을 예배하는 인생을 살아가는 분들이 있다. 그 분들 중에 선교사들은 평생 예배자로 하나님을 경외하며 찬양하는 인생을 산다. 레이놀즈(W. D. Reynolds, 1867-1951)는 호남 지방의 복음의 아버지로서 한국 성경 번역에 큰 역할을 하였다. 그는 호주 장로교 선교부에서 파송 받아 호남지방 복음화에 큰 족적을 남기게 된다. 그는 남장로교 개척 선교사 7인 중 한 사람으로서 호남지역 선교에 헌신한다. 레이놀즈는 18671211일 미국 버지니아 노포크의 기독교 집안에서 자라 5남매 중 넷째로 태어난다. 그는 18876월 햄든시드니 대학을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한다. 그는 언어에 대한 뛰어난 재능을 가지고 고전 언어 분야에 교수가 되기위해 볼티모어의 존스 홉킨스 대학 라틴, 그리스, 산스크리트어 등을 전공하는 박사 과정에 진학한다. 그러나 가세가 기울어 더 이상 학업을 할 수 없어서 고향으로 내려왔다. 그리고 유니언 신학교에서 신학 공부를 하면서 목회자의 길을 선택하게 된다.

그는 18925월 선교사로 부름을 받고 선교 비전을 가진 볼링과 결혼하고 한국에 들어온다. 189110월 열린 해외 선교를 위한 신학교 연합에서 선교사 언더우드와 윤치호를 만나면서 선교사로 자원을 하게 된다. ‘한국에 선교사가 절실하다는 말에 그는 한국을 품고 선교를 지원하게 된다. 그는 선교단체의 예산이 없어서 갈 수 없었지만 언더우드 가의 재정 지원으로 한국에 가게 된다. 189211월 레이놀즈 부부를 포함 전킨과 부인 레이번, 테이트 선교사와 그의 여동생 메티, 데이비스 등 7인 선교사가 한국에 들어오게 된다. 이는 호남 선교의 문이 열리는 계기가 된다. 레이놀즈는 18943월부터 의료선교사 드류와 함께 호남 지역을 순회하며 복음을 전하기 시작한다.

미국남장로교회 7인 선교사 사진. 레놀즈 부부(가운데 줄 오른쪽에서 두 번째), 전킨 부부, 테이트 부부, 린나 데이비스와 장인택 조사(맨 왼쪽)
미국남장로교회 7인 선교사 사진. 레놀즈 부부(가운데 줄 오른쪽에서 두 번째), 전킨 부부, 테이트 부부, 린나 데이비스와 장인택 조사(맨 왼쪽)

그는 군산, 전주, 김제, 영광, 함평, 무안, 남해, 순천 등 전라도 남부지방을 순회하며 고흥에서 첫 신자 신우구(한의사)에게 세례를 주었고 1906년 교회를 설립한다. 후에 신우구 아들 신상휴와 서서평 선교사의 수양 딸 곽애례가 혼인하여 기독교 가정이 탄생한다. 레이놀즈는 성경 번역을 위해 한글을 열정적으로 배운다. 국영문 혼용체를 기록했고 전주로 이사하여 18976월 전주 서문교회 담임 목사로 시무하면서 호남 지역 최초 교회로 세워지게 된다. 정해원은 레이놀즈의 조사로서 예배 장소를 마련하고 교회가 시작하게 한다. 레이놀즈는 교회 내 사경회 반을 만들어 성경을 가르치고 성도들이 자체적으로 전도하게 한다.

그는 1900년에 전주 신흥학교를 세운다. 그는 1901년 안식년을 다녀온 후 목포 지역을 선교하였고 아펜젤러 소천 후 1902년 구약 성경번역을 전담하여 맡게 된다. 서울 승동교회에서 4년 사역과 연동교회에서 담임 목회를 하며 성서 번역과 호남 지역 복음화를 위해 애쓰며 19081월에는 군산에 영명학교를 설립한다.

레이놀즈 선교사와 성경번역위원회(1910) 왼쪽 김정삼, 가운데 이승두
레이놀즈 선교사와 성경번역위원회(1910) 왼쪽 김정삼, 가운데 이승두

이처럼 활발하게 한국에서 45년을 사역을 하다가 193770세에 본국으로 돌아갔다가 1951년 소천하게 된다. 아름다운 그의 사역으로 말미암아 그는 호남 선교의 아버지가 된다. 오늘도 우리는 이러한 선교의 부름을 받고 있다. 2의 레이놀즈로서 우리는 그 부름에 응답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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