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신배 박사】 미오라 고아원과 일신여학교를 세운 베렐 멘지스 선교사

  • 입력 2023.05.11 14: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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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신배 교수의 구약이야기 (313) - 구약성경과 선교이야기 (125)

박신배 교수 / 연세대 구약학 박사, 현 강서대 교수, 창조문학 편집위원, 한국 평화학회 전 부회장, 한국 구약학회 전 부회장, 강서대 전 총장
박신배 교수 / 연세대 구약학 박사, 현 강서대 교수, 창조문학 편집위원, 한국 평화학회 전 부회장, 한국 구약학회 전 부회장, 강서대 전 총장

 

하나님이 한두 번 하신 말씀을(아하트 디베르 엘로힘) 내가 들었나니 권능(오즈)은 하나님께 속하였다(레로힘) 하셨도다”(62:11).

포스트 팬데믹 시대가 열렸다. 코로나 19의 전염병이 여전히 우리를 위협하지만 세계는 이제는 포스트 전염병 시대를 준비하며 새로운 패러다임이 발맞추어 살아가고 있다. 역사는 준비하는 자의 것이기에 우리는 새로운 시대에 맞는 틀에 맞게 적응해야한다. 세상은 여전히 우리는 넘어뜨리려고 한다. “넘어지는 담(케퀴르 나투이)과 흔들리는 울타리 같이(가데르 하데후야) 사람을 죽이려고 너희가 일제히 공격하기를 언제까지 하려느냐”(62:3). 이런 대적자와 원수와 포악자들의 공격을 대비하며 하나님을 의지하며 나가야 한다. “오직 그만이(아크 후) 나의 반석이시오(쭈리) 나의 구원이시오(위슈아티) 나의 요새이시니(미스가비) 내가 크게 흔들리지 아니하리로다”(62:2).

시편 62편은 지혜와 토라 시편으로서 확신의 시편, 역사 시편, 성전 입장 순례 시편이라 한다(존 데이). 이 시편 62편은 시11, 16, 2327.1-6; 131, 129편과 더불어 확신의 공동시편으로서 공동체 감사시편에 해당한다. “나의 영혼이 잠잠히 하나님만 바람이여(아크 엘 엘로힘 두미야 나프쉬) 나의 구원이 그에게서 나오는도다(미메누 예수아티)”(62:1). 시인은 인생의 출애굽지혜를 알려주며 하나님이 믿을 수 있는 분이시며 그 분이 반석, 구원, 요새이기에 흔들림이 없는 인생의 지혜를 알려준다고 한다. “나의 영혼아 잠잠히 하나님만 바라라 무릇 나의 소망이 그로부터 나오는도다(키 미메누 티크와티)”(62:5). 두 번을 반복하며 그분이 반석과 구원, 요새이시니 일인칭 화자 시점에서 나는 흔들리지 아니한다고 고백한다(6).

나의 구원과 영광이 하나님께 있음이여 내 힘의 반석과 피난처도(쭈르 우지 마흐시) 하나님께 있도다(베로힘)”(62:7). 인생의 출애굽기를 보듯이 시편 기자는 62편에서 노래하고 있다. 대적자들의 공격이 아무리 힘 있고 교활하고 거짓되게 있을지라도 하나님에 대한 신뢰가 강하면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을 강조한다(3-5). “그들이 그를 그의 높은 자리에서(미스에토) 떨어뜨리기만 꾀하고(야아쭈 레하디아흐) 거짓을 즐겨(야르쭈 카자브) 하니 입으로는 축복이요 속으로는 저주로다(셀라)”(62:4). “포악을 의지하지 말며 탈취한 것으로 허망하여 지지 말며 재물이 늘어도(테헤바루 하일 키 야누브) 거기에 마음에 두지 말지어다(알 타쉬투 레브)”(62:10). 시편 62편의 기자는 대적자 관계 뿐 만 아니라 인생의 삶에 대한 지혜를 가르쳐 준다. 곧 부와 재물에 마음을 두지 말고 살아가라 한다. 권능이 하나님께 있다는 사실과 하나님의 사랑과 인자(헤세드)가 하나님께 있다는 사실, 그리고 하나님의 인과응보(因果應報)로서, 자녀에게 은혜로 갚으심을 결론적으로 선포하고 있다. 그래서 지혜롭게 사는 방법은 먼저 인생의 허무를 인정하고 매사에 그의 주권을 인정하고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이 지혜자임을 알려준다. “백성들아 시시로(베콜 에트) 그를 의지하고 그의 앞에 마음을 토하라(쉬프쿠 레파나이오)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시로다(셀라) , 슬프도다(허무하다, 아크 헤벨) 사람은 입김이며(베네 아담 카자브) 인생도 속임수 이니(베네 이쉬 베모제나임) 저울에 달면 그들은 입김보다 가벼우리로다(메헤벨 야하드)”(62:8,9).

 

이러한 지혜의 인생을 산 분들이 선교사였다. 호주 선교부의 어머니, 대모(代母,大母)이며 고아들의 엄마 벨레 멘지스(Belle Menzies, 민지사, 1856.7.30.-1935.9.10.)1856730일 호주 빅토리아 주 벨러렛에서 로버트 멘지스의 73녀 중 장녀로 태어났다. 그는 엘다드스트릿 공립학교를 수학하고 신학교에서 공부하였다. 민지사는 여전도회 연합회 에벤에셀 지부 총무로 사역하면서 한국에 선교사가 필요하다는 광고를 보고 자원한다. 그는 빅토리아 주 여전도회 연합회에서 파송받아 189110월에 선교사로 온다. 민지사 선교사는 부산 동구 좌천동에 정착하여 지역 선교를 한다. 그는 여성과 아동교육을 하며 구제사역을 수행한다. 1924년까지 부산에서 줄 곧 사역을 하는데 성경 공부와 순회 활동을 하며 고아들을 위한 사역을 하게 된다. 1893년 부산 지방 최초의 고아원을 시작하였는데 이것이 미오라 고아원이었다.

벨레 멘지스(Belle Menzies, 민지사, 1856.7.30.-1935.9.10.)와 딸로 입양한 민신복
벨레 멘지스(Belle Menzies, 민지사, 1856.7.30.-1935.9.10.)와 딸로 입양한 민신복

미오라(Myoora)라는 말은 호주 원주민어로 휴양지, 야영지, 안식처란 뜻이었는데 이곳 사역을 위해 크게 지원해주었던 호주 멜버른의 하퍼(Mrs Harper)의 저택 이름과도 같았다. 그녀는 엄마처럼 고아들을 돌보았다. 그래서 그들로부터 엄마라고 불렸다. 고아들의 엄마로서 사랑과 존경을 받게 되었다. 1895년에는 다른 선교사들의 도움으로 한강 이남의 최초의 여학교를 시작하게 된다. 이것이 일신여학교였는데 이는 1893년 고아원을 설립한 결과 이어진 사역이었다. ‘날로 새롭다는 뜻의 일신여학교는 여성이 무시되고 경시되던 때, 여성교육이 전무하던 시절에 여성도 교육받아야 할 대상이라는 확신에서 시작되었고, 이는 조선 땅에 여성 교육이 시작되는 첫 거보가 되었다. 일신여학교에서는 성경과 기독교 신앙을 가르쳤고 수신(修身)과 한글, 산수, 체조 등을 가르치기도 하였다. 나중에는 고등과를 세웠고 이 고등과는 동래로 이전되어 동래 일신학교로 불리었다.

이 학교는 부산 항일 운동의 본거지가 되었고 19193.1운동을 주도하였다. 교사 주경애와 박신연과 학생 11(김반수, 심순의, 김응수 등)이 태극기를 손에 들고 대한독립 만세를 외치며 거리로 났다. 시민들과 함께 대대적으로 일어나게 된다. 이 일로 학교는 20일간 휴교령이 내려졌고 또 학생들은 졸업식 거부로 이어져 나중 주선생과 박선생이 출옥한 후 졸업식을 다시 거행하기도 하였다. 이 운동은 부산과 경남 지역의 근대 여성 교육의 시작을 알리며 광복의 밑거름이 되었다. 1941년 선교사들이 한국을 떠날 때 구산재단으로 인계되었고 지금은 동래여자중학교와 동래 여자고등학교로 이어졌다. 멘지스는 한국 여성 교육의 길을 열었고 한국의 어머니가 되었다. 그녀는 호주 빅토리아 주 밸러랫의 가족들 곁에서 다나가(Dana Street)의 옛집에서 살다가 1935년 소천하게 된다. 한국에서 한 알의 밑알이 된 그녀를 기리기 위해 2010년 부산진 교회 뜰에 멘지스 부인의 공로비가 세워지게 되었다. 이처럼 한 여인의 빛된 선교는 한 나라의 여성 교육의 씨앗이 되어 전국으로 퍼지게 하는 확산을 가져오게 하였다. 오늘도 이와 같은 거룩한 손길을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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