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신배 교수의 구약이야기 (306) - 구약성경과 선교이야기 (118)

박신배 교수 / 연세대 구약학 박사, 현 강서대 교수, 창조문학 편집위원, 한국 평화학회 전 부회장, 한국 구약학회 전 부회장, 강서대 전 총장
박신배 교수 / 연세대 구약학 박사, 현 강서대 교수, 창조문학 편집위원, 한국 평화학회 전 부회장, 한국 구약학회 전 부회장, 강서대 전 총장

찬송하라 하나님을 찬송하라 찬송하라 우리 왕을 찬송하라”(47:7).

봄기운이 완연(完然)하다. 겨울의 한파와 추위가 아무리 심해도 결국 만물이 다시 살아나는 봄의 소생(蘇生)은 반드시 옴을 보게 된다. 자연의 법칙과 원리를 보고 우리도 삶의 질곡(桎梏)과 고난이 오래 지속된다고 해도 실망하지 말아야 한다. 이는 자연뿐만 아니라 말씀을 보면서도 희망을 잃지 않아야 할 것은 바로 살아계신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믿기 때문이다. 시편 47편은 찬양 시편으로서 찬양을 맡은 레위 지파인 고라(42-49)와 아삽의 시편(50)중에 위치하고 있다. 고라 자손은 이스라엘 가운데 찬양하라고 백성들을 인도한다. 구원의 승리로 인도하며, 감사의 상황 가운데 승리의 노래를 외칠 수 있는 형편을 선포한다. “하나님은 온 땅의 왕이심이라 지혜의 시(마스킬)로 찬송할지어다”(47:7).

이 찬양 시편 47편은 이스라엘이 만국을 다스리는 하나님을 모시는 나라와 민족임을 보여준다. “여호와께서 만민(아밈)을 우리에게, 나라들을(우레우밈) 우리 발 아래에(타하트 라겔레누) 복종하게 하시며”(47:3). 역사를 주관하시고, 역사를 이끌어가시는 하나님은 우리의 삶 속에서 행동하시며 구원의 사건을 이끄신다. 그래서 구약학자인 라이트(G. E. Wright)행동하시는 하나님’(God who acts)이라는 책에서 하나님의 구원 활동을 구체적으로 말하며 이스라엘 역사 속에서 출애굽의 사건으로 이끄셨던 것을 말하고 있다. 그는 역사의 재현과 현실화를 말한다. 곧 이스라엘 백성이 출애굽의 역사를 고백함을 통해 오늘 이 삶의 자리에서 그 구원을 재현할 수 있음을 이야기한다. “우리를 위하여 기업을(나할라테누) 택하시나니 곧 사랑하신 야곱의 영화(게온 야아콥)로다(셀라)”(47:4).

하나님이 유독 당신을 사랑하는 이스라엘만을 선택하시는가. 하나님은 그들을 거룩한 백성으로 삼아 성민과 선민으로 택하신다. 이는 선택된 백성을 통해 하나님이 살아계심과 하나님이 다스림을 만민 중에 알리며 찬양을 받으시려 하신다. “너희 만민들아(콜 하아밈) 손바닥을 치고 즐거운 소리로 하나님께 외칠지어다(하리우 레로힘)”(47:1). 결국 하나님이 온 땅을 다스리시는 분임을 알린다. “지존하신 여호와는 두려우시고 온 땅에 큰 왕이(멜렉 가돌) 되심이로다”(47:2). 여호와 하나님이 만국의 왕이심이며, 온 세계를 다스리는 분임을 알리는 야웨의 왕 시편으로서 메시아 왕 시편이며 찬양시편 임을 알게 한다. 우리는 오늘 우리 사이에 일어나는 일들과 지금 우리 앞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이 바로 하나님 통치의 사건임을 보여준다.

하나님께서 즐거운 함성(비트루아) 중에 올라가심이여 여호와께서 나팔 소리 중에 올라가시도다(알라)”(47:5). 성전 찬양대의 나팔 소리와 찬양 소리를 통해 야웨 즉위 시편의 노래를 부르고 있다. “하나님이 뭇 백성을 다스리시며 하나님이 그의 거룩한 보좌에(키세 카드쇼) 앉으셨도다 뭇 나라의 고관들이(네디베 아밈) 모임이여 아브라함의 하나님의 백성이 되도다 세상의 모든 방패는(마기네 에레츠) 하나님의 것임이여 그는 높임을 받으시리로다(메오드 나아라)”(47:8-9). 찬양은 이스라엘만의 전유물이 아니라 모든 피조물과 모든 백성들, 그리고 만민들이 즐겁게 찬양할 것임을 선포한다. “너희 만민들아 손바닥을 치고(티크우) 즐거운 소리로(베콜 리나, 나팔) 하나님께 외칠지어다”(47:1).

이러한 찬양을 잘 하는 분들이 선교사들이었다. 만민이 모두 찬양할 때를 고대하며 타 문화권에 가서 선교를 하던 분이다.

윌리암 베어드(W. M. Baird, 1862-1931, 배위량)18911월 한국에 와서 호주 장로교 선교사들과 함께 부산과 경남 지방에 선교를 한다. 그는 부산을 중심으로 선교를 하며 1896년까지 경상도 지역을 순회하며 대구에 선교지부를 개척하였고 서울을 거쳐 1897년 평양으로 선교지를 옮겨 숭실학당을 세우고 교육 선교를 하였다. 그는 첫 북장로교 선교사로서 18901118일 애니 라우리 아담스와 결혼하고, 바로 그 날 부인과 함께 한국으로 선교하러 간다. 그는 배를 타고 1891129일 부산에 도착한다.

맨 뒷 줄 왼쪽이 배위량 선교사, 맨 앞 줄 왼쪽이 부인 안애리 선교사, 1895년 초 한문서당의 학동과 선생
맨 뒷 줄 왼쪽이 배위량 선교사, 맨 앞 줄 왼쪽이 부인 안애리 선교사, 1895년 초 한문서당의 학동과 선생

베어드 선교사는 선교 방향을 4가지(신자 가정을 심방, 보호, 후원함. 사랑방을 통한 주민 접촉. 성경과 문서 보급-문서 선교. 순회 전도사역)로 정하고 특히 순회 전도에 초점을 맞추었다. 베어드 선교사는 서상륜의 동생 서경조와 함께 부산을 출발해 하루에 16-32km의 거리를 걸으며 밀양, 대구, 상주, 안동, 경주를 돌아 울산을 거쳐 부산에 돌아오는 496km의 긴 전도 여행을 다녔다. 그는 순회하다가 회심자를 얻어 세례를 주는 일을 하였다.

베어드 선교사는 부산과 경상남도 일대 수많은 교회를 세운다. 최초의 장로교회인 부산진 교회를 1892415일경에 영주동에서 교회를 시작한다. 호주 장로교 선교부와 미북장로교회의 선교 협정으로 인해 영주동 교회가 통합되어 지금의 초량 교회로 발전한다. 그는 순회 선교를 하며 동안 양산 물금교회, 밀양 유천교회, 청도 화양교회, 영천 조곡 교회를 세운다.

베어드 선교사는 사도행전의 교회 개척과 같은 선교를 한국의 영남을 중심으로 이뤄간다. 1895년 말 대구 지부 선교부를 형성한 후, 11월 서울에 선교지부를 맡으면서 처남 제임스 아담스에게 대구를 인계하고 서울로 간다. 언더우드가 설립한 서울의 경신학당에 초대받아 그 학교를 맡아 교육 선교를 하고, 평양에서는 마펫의 첫 휴가를 떠난 빈자리를 채우러 가서 교육 사역을 맡는다. 베어드는 한국의 갈릴리 지역인 의주 지역을 순회하며 교회를 세우고 평양과 이북 지역의 선교 사역을 위해 교육의 필요를 절감하고 숭실학당을 세운다.

배위량 선교사와 숭실학당
배위량 선교사와 숭실학당

189710월 베어드의 사택에서 13명의 학생을 모아 시작한 학교가 숭실대학의 전신이 된 것이다. 장로교와 감리교의 합동으로 1906915일 학교경영을 하여서 숭실학당은 정규대학 교육의 효시가 된다. 베어드 선교사는 한국 선교 40주년 맞은 1931년 장티푸스에 걸려 소천하게 된다. 숭실대 구내에 화장해서 뿌려져 오늘도 북녘 땅에 있어 그 묘지가 복원될 날을 기다리고 있다. 아름다운 발자취를 이어 오늘도 사도행전의 복음전도자를 부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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