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 아직도 희망이 있는가?라는 질문보다는 힘들고 어려울때 반응을 잘해야 어둠에서 벗어나서 빛의 사람으로 나아갈 수 있다. 자신이 처한 상황에 대한 반응에 따라 더욱 어둠으로 몰고 갈 수도 있고, 어둠에서 빛으로 나오게 할 수 있다. 이것이 가지고 있는 언어의 이중적인 모습이다.
고난의 계절에 내 인생 아직도 희망이 있는가?라는 질문보다 질문의 방식을 긍정적이고 미래지향적으로 바꾸는 훈련이 필요하다.
예를들어 "나는 희망이 있습니다. 나는 성경을 믿고 나와 함께 하시고 동행하시고 나를 비전의 장으로 구체적으로 인도하시는 하나님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죽음과 사망과 절망과 후회와 낙담과 실망과 실패의 언어가 희망의 언어로 믿음의 언어로 소망의 언어로 부활해야 살아난다.
백세시대이다. MZ 세대는 120년 생존 가능하다고 한다. 너무 일찍 포기하지 말라. 인생의 몇 모작도 가능한 시대이다. 30년을 한 세대로 볼 때 4세대를 산다. 인생의 스케줄을 보면, 초등학교에서 고등학교까지 겨우 12년이다. 대학까지 포함해도 겨우 16년이다. 16년 공부한 것 가지고 평생 울겨 먹고 살 수 가 없는 세상이 되었다.
거꾸로 말하면 전반전에 실패했어도 후반전에 얼마든지 역전이 가능하다. 업그레이드가 가능하다. 30대에 실패했어도, 40대에 준비한 분들은 50대에 문이 열린다. 60대 이전에 실패했더라도 다시 준비하면 70대 이후 꽃을 피우게 된다.
인생에 아무런 기대도 희망도 없는 분들은 미래가 흑암이고 혼돈이고 공허뿐이다. 그러나 믿음의 언어, 창조적인 자기계발을 하면 반드시 인생에 빛이 비추게 된다.
30년전 내 인생은 흑암이었다
30년 이전에 제 인생은 흑암이었다. 한마디로 되는 것이 없었다. 인생의 낙오자가 되었다. 하나님의 은혜로 결혼하고 나서 아내가 말하기를 "당신이 30대에 준비하지 아니하면 우리 가정은 10년 후 더욱 비참해집니다. 세상일들 모두 내려놓고 공부를 하면 좋겠다고", 신대원에 입학 후 10년간 쉬지 않고 공부에 전념했다. 교회, 학교에 집중했다. 이렇게 인생의 어둠의 옷을 벗기 시작했다.
신대원을 졸업하고 36살에 구리시 변두리에서 지하 개척교회로 첫발을 내딛었다. 우리 공동체는 공부와는 거리가 먼 공동체였다. "제발 공부합시다. 최소한 대학교육을 받읍시다. 우리가 공부해서 대기업 취업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교육과정을 마치고 나면 최소한 열등감과 비교의식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라고 끊임없이 비전을 주었다. 교회 열심히 다녀라, 전도하라는 말을 거의 하지 않았다. 자신의 내면과 미래를 겸손하게 가꾸는 훈련을 시켰다.
저도 모범을 보이기 위해서 대학원 졸업후 6년을 더 공부해서 신학박사 학위를 받고 대학원 강의와 신학교 운영을 직접 했다.
저는 댓가를 철저히 지불했다. 제가 처한 환경에서 환경을 바꾸기 위해 말씀 붙들고 기도하며 노력해왔다. 내가 성장하지 아니하면 도움을 줄 수 없기 때문이다. 내가 성장해야 남도 도울 수 있다.
그리스도인들은 왜 배워야 하는가? 더 좋은 직장을 가려고 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사업을 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더 많이 돕기 위해서이다. 그래야 주님의 나라가 거룩하게 확장되기 때문이다.
나는 지금도 열심히 살고 있다. 지금 최선을 다하지 아니하면 60대는 얻을 열매가 없기 때문이다. 70-80대 인생의 황금기를 바라보며 지금 열심히 준비하고 씨를 뿌리고 있다.
인생 초반전에는 경쟁자가 너무 많았다. 질식할 것 같았다. 앞이 잘 안보인다. 너무도 잘 준비된 분들이 참 많다. 그러나 세월이 흘러가면 점점 경쟁자들이 줄어든다. 나이가 70이 넘으면 건강관리에 온 신경을 쏟고 자기 계발을 포기하는 분들이 많아 진다. 한마디로 경쟁자가 점점 줄어든다. 그 만큼 기회가 많이 생기게 된다.
전반전에 실패했다고 하더라도 실망하지 말라. 후반전에 신앙도 믿음도 인생도 더욱 활기차게 다시 세우면 된다. 그러기 위해서 지금 이 자리에서 믿음의 결단이 필요하다. 그리고 믿음의 행동으로 나아가야 한다. 눈물의 씨앗을 뿌려야지만 미래의 어느날이 찾아오는 것이다.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거두리로다. 울며 씨를 뿌리러 나가는 자는 반드시 기쁨으로 그 곡식 단을 가지고 돌아오리로다”(시126:5,6).
요행을 바라지 말라. 오늘 내 땀을 흘리라. 언젠가는 그 시간이 나의 것이 된다. 목회도 60이 되면, 은퇴 후 걱정을 한다. 점점 도전과 비전이 사그라든다. 내 나이에 무슨 일을 해. 적당하게 리스크 없이 마무리 하지. 그러면 절대로 변화를 만들어내지 못한다.
인생에 기본은 갖추라
젊은이들에게 인생의 선배로서 코치를 하는 것이 주제 넘을 수 있다. 그리 틱월한 인생의 업적을 남긴것이 별로 없는 목회자이다. 그럼에도불구하고 한 마디 한다면, 젊은 시절 인생의 기본을 갖추라. 실력과 인격과 영성이 준비되지 않으면 경쟁력이 없다.
●기본적인 실력을 갖추라.
언어의 산을 넘지 못하면 많은 기회를 잃어버린다. 영어는 국제 소통 언어이다. 반드시 그 산을 넘어야 한다.
미래사회를 열어가는 열쇠는 코딩이다. 인간과 기계를 연결해주는 언어. 미래 사회로 가는데 없어서는 안될 코딩. 컴퓨터없이 작업 자체가 불가능한 시대이다.
스마트폰 이후 내비서가 등장했습니다. 획기적인 기술이다. AI CHAT GPT(대화를 위한 최적화된 언어 모델)이란 의미이다. 명령하면 내 대신 문서를 작성해준다. 시대의 변화를 빠르게 읽으라.
기계가 지배하는 인공지능 시대에 영적 정신적으로 무너지지 않기 위해서 가장 필요한 기본중에 기본은 영성 관리이다. 신앙의 언어를 회복하기 위해 영적관리를 철저히 하라. 매일 쉬지 말고 준비할 것은 영성 관리이다. 영성관리가 흐트러지면 어느날 한 순간에 모든 것이 무너지는 쓰나미가 찾아온다.
●감사쓰기하라
내 마음을 보석처럼 가꾸는 것이다. 내 마음이 쓰레기면 세상이 쓰레기처럼 보인다. 그러나 내 마음이 부드럽고 따뜻하면 세상을 따뜻하게 본다.
●기도하라
말씀 붙들고 기도하라. 기도하지 아니하면 꿈이 죽는다. 그러나 기도하면 꿈이 자란다.
●성경읽으라
너무 부드러운 것, 남이 입에 넣어주는 것에만 익숙하게 살지 말고 직접 유기농천연재료인 성경 그 자체를 읽으며 그 속에서 영적 에너지를 얻으라.
●가족예배드리라
가족은 소중하다, 우리가 후손들에게 물려줄 가장 소중한 유산이다. 가족이 하나 되는 비결이 무엇일까? 가족예배를 드리라. 카톡방을 활용하라.
●신앙인의 언어을 날마다 재창조하라.
질문이 인생을 바꾼다는 사실을 잊지말라. 질문이 병들면 출구를 찾지 못한다. ‘정말 부활이 가능한가?’가 아니라 ‘죽은 자의 부활은 가능합니다’로 말해야 한다. ‘동정녀 탄생이 가능한가’가 아니라 ‘성령의 잉태하심을 믿어야 한다.' 천국이 있는가에서 천국에 대한 소망'으로 나아가야 한다. 우리의 모든 사고가 비판과 불신을 벗어던지고 믿음으로 전환되어야 한다.
오늘날 세상 사람들의 언어는 비판적이며 부정적이다. 울리는 꽝과리와 같이 시끄럽다. 이유는 그 속에 사랑이 없는 소리이기 때문이다. 이런곳에는 역사가 일어나지 못한다. 변화를 만들어내는 능력이 없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능력은 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리는 곳에,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 곳에 나타난다. 믿음의 언어가 깨어나기를 바란다.
대한민국 해군의 아버지 손원일 제독
대한민국 해군의 아버지 손원일 제독에 관한 기록이다. 모델이 되는 신앙인이다.
∎대양으로의 꿈
손원일은 1909년 평안남도 강서 출신으로, 손정도 목사와 박신일 여사 사이에서 2남 3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부친인 손정도 목사는 대한민국 임시정부 임시의정원 의장과 임시국무원 교통총장으로 활동하였다.
손원일은 중국 길림에서 중학교 과정을 마치고, 상하이에 들어와 있던 각국 열강들의 군함을 보고 감명을 받아, 해방된 조국에도 그러한 해군을 건설하고자 하는 마음을 먹게 되었다. 2급 항해사 자격증도 취득하고 상선을 타고 마드로스 생활도 했다.
∎해군 창설
해방과 동시에 조국에 돌아온 손원일은 해군 창설을 결심하고 뜻이 맞는 동지들을 규합한다. 각고의 노력 끝에 1945년 8월에 해군 건설의 초석인 해사대를 결성하게 된다. 이어서 미군정(美軍政) 당국과의 협의 끝에 1945년 11월 ‘해방병단’을 창설한 후 초대 단장에 취임하였다. 바로 이 해방병단이 후에 한국 해군의 모체가 되었다.
손원일 제독이 한국해군을 시작할때 배 한척의 군함도 없는 해군이었다. “사랑하는 조국이여, 우리에게 배를 주소서! 배가 없이는 바다에서 일을 할 수가 없습니다.”
∎백두산함
1948년 12월 25일 대한민국 초대 해군참모총장으로 임명이 되었다. 해군 창설 초기에 우리에겐 단 한 척의 군함도 존재하지 않았다. 이에 손 제독은 미국과의 협상을 통해 1948년까지 총 37척의 함정을 인수하지만, 대부분 비전투함이었던 까닭에, ‘함정건조기금각출위원회’를 결성하고 본인의 월급 일부를 기금으로 냈으며, 부인 홍은혜 여사는 해군 장병 부인들과 삯바느질로 자금을 모으는데 앞장섰다. 이후 일반 국민들의 성금과 대통령의 하사금을 합쳐, 총 6만 달러의 성금을 모을 수 있었다.
그는 직접 미국으로 건너가 미군의 퇴역 함정을 사겠다고 하였지만, 미국 의회가 판매를 금지하는 바람에 이미 함포도 다 철거되고 민간에 판매된 중고 함정을 구입하는 수밖에 없었다. 하와이에서 3인치 함포를 사서 붙이고, 괌에 들러 포탄 100발을 구입하여 진해항으로 입항했다. 6∙25전쟁이 발발하기 겨우 2달 전인 1950년 4월 10일의 일이었다. 이때 도입한 배 이름이 ‘White Head’호였다. 이를 그대로 한글로 직역한 것이 ‘백두’였기 때문에 ‘백두산함’으로 명명되었다.
백두산함은 도입 후 3개월 만에 부산 해상에서 특수부대 600여 명을 태우고 침투하던 1,000톤급 북한 해군 무장 수송선을 격침해 대한민국 해군 역사상 최초의 해상 전투 승전 기록을 세웠다. 이는 6∙25전쟁 초기 북한군의 후방교란을 미연에 방지하였고, 유엔군의 전쟁 물자를 무사히 수송할 수 있게 하였다.
대한민국 해군을 창설한 손원일 제독은 목사의 자녀였고, 참신한 신앙인이었다. 하나님을 경외한 예배자였다. 손원일 제독은 믿음의 군대를 만들기 위해 1945년 처음으로 군종제도를 도입했으며 국군 최초의 교회를 설립했다.
나에게 아직도 희망이 있는가?라는 질문은 기독인들에게 맞는 질문이 아니다. 나에게는 아직도 희망이 있습니다. 나는 주님을 믿기 때문입니다. 나는 성경을 믿기 때문입니다. 라고 언어의 발상을 바꿔야 한다. 그래야 어둠에서 빛으로 나아갈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