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아버지의 목회지를 따라 논산에서 고등학교를 다녔다. 그 당시 그곳의 유일한 기도원은 논산 가야곡면에 있는 영암기도원이었는데 시설이 매우 안 좋았다. 비가 올 때를 대비하여 천막으로 천장만 만들어 놓은 상태였고, 전기는 자가발전이었는데 소리가 요란하였다. 여름이면 인근의 성도들이 교파를 초월하여 이곳에 모여 은혜를 받았고, 각 교파의 유명한 부흥사들이 강사로 오셨다. 부흥회가 시작되기 전에는 마음의 문을 열기 위하여 찬송을 하였는데, 아버지는 수년간 맡아 놓고 찬송을 인도하셨다. 아버지의 히트곡은 단연 '천당가'였다.
이후 신학교에 입학하기 전에 은혜를 사모하는 마음으로 기도원을 찾았다. 처음에는 기도원에서 북을 쳤는데 그 당시 찬송 인도가 어쩐지 내 마음에 차지 않았다. 그래서 내가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시작하게 된 나는 아버지의 뒤를 이어 몇 년간 찬송 인도를 하였다.
어느 날 고(故) 신현균 목사님이 강사로 오셨다. 집회 중간에 신목사님은 나를 나오라고 하시더니 '우리는 이기리라'는 찬송을 인도하라고 하셨다. 그리고 많은 사람 앞에서 내가 세계적인 부흥강사가 되게 해 달라며 안수기도를 하셨다. 그 기억이 몇 십 년이 지난 오늘까지도 새롭게 솟아난다. 이러한 내가 어느덧 부흥강사가 되어 복음을 전하고 있으니 분명 하나님의 섭리가 있었던 것 같다.
오래전 지방회에서 내게 '치하위원‘을 맡겨 주셔서 처음으로 하게 되었다. 남들이 볼 때는 쉬운 것 같지만 결코 쉬운 일은 아니었다. 이것을 준비하느라 지방회가 어떻게 지나가는지 모를 정도였다. 나름대로 지혜를 모아 보고를 하였더니 모두 잘했다고 칭찬을 해 주셨다. 이것 또한 아버지가 생전에 도맡아 하셨던 일이다.
어느덧 한 세대는 가고 한 세대가 온 느낌이다. 벌써 내 뒤를 이어 두 아들이 이 길을 걸어가고 있다. 장남은 코타키나발루 선교사로 차남은 내 뒤를 이어 목사로 충성하고 있으니, 흐르는 세월 누가 막을 것인가!
얼마 전 청량리 사창가를 변화시킨 청량리 노숙자의 대부 김도진 목사님의 간증집인 <낮은 곳에는 경쟁자가 없다>는 제목이 새롭게 와 닿는다. 내가 싫다고 하기 전에는 계속 치하위원을 맡길 것으로 여겨진다. 큰 경쟁자가 없기 때문이다. 비록 남들이 알아주지 않는 낮은 자리일지라도 아버지가 그토록 긍지를 가지고 사랑하시던 감리교회를 위해 한 알의 밀알로 봉사하고 싶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