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원영목사]요단강 도하(수3:1-17)

  • 입력 2024.06.24 15:09
  • 수정 2024.06.24 1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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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6.9. 주일설교_24주년창립주일

[들어가는 글]

(1)하나님의 세계선교전략을 위한 시작은 한 명, 아브라함이다. 이것이 이스라엘 공동체의 시작이다. 한명으로 시작한 하나님의 꿈은 요셉을 통해서 애굽으로 이주하며, 430년 지내면서 엄청난 인구로 성장한다.

(2)하나님의 때에 지도자 모세를 세우신 후 이스라엘 민족을 출애굽 시킨다. 출애굽을 위한 10가지 재앙은 하나님의 작품이었다. 인간이 의지하는 신은 죽은 신이요, 진짜 신은 하나님이라는 것을 온 세상에 선포한 사건이다.

(3)이스라엘 백성들은 출애굽 후 처음 맞이한 난관이 홍해바다이다. 앞에는 바다가 가로막고, 뒤에서는 애굽의 군대가 추격한다. 그런 위기 상황에서 백성들은 지도자를 원망했지만 모세는 오늘 하나님의 구원하심을 보라고 외쳤다. 하나님이 홍해바다를 갈라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건너게 했고, 애굽 군대는 수장시켰다.

(4)가데스바네아 사건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땅을 치고 후회할만한 사건이다. 12명의 정탐군이 40일 동안 가나안땅을 돌아보고 보고했다. 10명의 부정적인 보고로 인해서 공동체는 쑥대밭이 됐다. 그 땅은 우리는 차지하지 못한다. 갈렙과 여호수아가 옷을 찢으며 백성들에게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고 그 땅을 우리에게 주실 것이라 외쳤지만 백성들은 오히려 2명을 돌로 쳐 죽이려했다.

이 사건으로 이스라엘 공동체는 40년동안 광야에서 방황하며 20세 이상은 다 죽었다. 오직 창조적 소수 갈렙과 여호수아만 가나안 땅을 밟았다.

[본문강해]

요단강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 위해서 반드시 거쳐야할 첫 번째 난관이다. 난관을 기적적으로 통과한 믿음의 이야기이다.

 

1.언약궤를 따르라!(3)

(1)언약궤를 따르라!

언약궤는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상징한다. 이 말은 내가 앞장서겠다. 나를 따르라는 말이다. 언약궤와 진 사이 거리를 이천규빗(912미터) 정도 된다. 제사장들이 언약궤를 메는 것을 보고 백성들은 따라가면 된다. 요단강을 도하 하는데 하나님이 앞장섰다. 언약궤는 하나님의 인도하심의 증거이다.

(2)언제나 앞서가시는 하나님의 모습을 볼 수가 있다.

왜 하나님이 앞서가실까? 그 이유는 너희들이 한 번도 가보지 못한 길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사랑이다. 우리에게 펼쳐질 미래는 한 번도 가보지 못한 길이다. 어디서 돌출변수가 생겨날지 아무도 모른다. 우리의 영원한 나침반이신 하나님을 따라가는 것이 축복입이다. 속도보다 방향이 중요하다. 우리의 방향을 결정하는 것은 나침반이다. 예수님은 우리의 나침반이다. 인생에서 예수님을 놓치면 전부를 잃어버린다.

(3)언약궤는 하나님을 상징한다. 이것은 곧 말씀을 상징하고, 말씀은 곧 하나님이다. 언약궤를 따르라.

(4)아브라함은 어느날 찾아오신 하나님의 말씀에 큰 감동을 받고 고향친척아비집을 떠나 하나님이 지시하는 미지의 땅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이 옮김이 믿음의 조상이 되는 갈림길이었다.아브라함은 여호와의 말씀을 따라갔고, 그때 나이가 75세이다. 동방박사는 하늘의 변화를 연구하는 학자였다. 어느날 하늘에 유난히 빛나는 그 한별을 보았다. 그 별을 따라 강과 언덕과 사막을 건너 예루살렘까지 왔다. 그 별이 베들레헴 아기 예수님이 탄생하는 그 자리에 머물렀다. 동방박사는 아기 예수님에게 무릎 끊고 경배를 드리며, 보배함을 열고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드렸다.

교회가 미래를 열어갈 때 방향을 잃지 않기 위해서는 우리의 나침반이요 언약궤인 하나님을 앞에 세워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인도하신다.

 

2.스스로 성결하게 하라(5)

(1)문제 앞에서 문제를 푸는 것은 방법이 아니다. 스스로를 성결케 하는 것이다.

"얼마나 거룩한가? 얼마나 쓰시기에 합당한 것인가?" 하나님이 정말 쓰시는 그릇은 깨끗한 그릇이다. 우리나라가 성결하게 될 때, 하나님은 세계속에 쓰신다. 우리 교회가 성결할 때 하나님이 우리를 존중히 여기신다.

(2)교회가 세상에 보여줄 무기가 무엇인가? 성결이다. 거룩함이다. 세상보다 더럽다. 나보다 신앙생활을 하는 저 사람이 더 더럽다. 그러면 누가 예수님을 믿겠는가? 교회는 세상과 달라야 한다. 근본적으로 세상이 요구하는 교회의 모습은 수준높은 깨끗함이다.

(3)신앙인들은 세상에서 주의 나라와 뜻을 세워가는 거룩한 인재들이다. 어떻게 처신해야 하는가? 주님께서 제자들을 세상에 복음전도자로 보내면서 하신 말씀이다. “뱀같이 지혜롭고 비둘기 같이 순결하라고 하셨다.(10:16)

뱀은 지혜를 상징한다. 지혜의 원어 의미는 사려깊고, 슬기롭고, 신중함을 의미한다. 지혜는 옳고 그름을 따져보는 것이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인지 아닌지를 말씀과 기도속에서 분별하며 판단하는 지혜를 말한다. 묻지도 않고 따지지도 않고서가 아니라. 기도로 묻고 말씀으로 따지면서 판단하는 지혜를 말합니다. 성도는 사람과의 관계에서 지혜로워야 한다.

뱀은 지혜로움 민첩함을 상징한다. 비둘기는 양같이 순결하고 거룩한 신앙을 말한다. 성도가 살아갈 삶의 무대는 늑대무리 같이 대적들이 있는 곳이기에 순박한 신앙으로는 힘들다는 말이다. 비둘기처럼 순결하고 뱀같이 지혜로워야 함을 가르치고 있다.

사람들의 캐릭터를 네가지 유형으로 분석할 수 있다

(1)비둘기처럼 순결하고 뱀처럼 지혜롭다. 인간관계를 가장 이상적으로 하는 신앙인이다.

(2)비둘기처럼 순결한데 지혜롭지 못하다. 사람은 좋은데 행동이나 처신이 미련하다. 열심히는 하지만 인정을 받지 못한다. 신앙인들은 무조건 착해야 돼. 당연하다. 그러나 지혜롭지를 못해서 당하는 것은 미련함이다. 이것은 하나님의 정의가 아니다. 지혜롭지 못해서 피해를 보고서 하나님이 왜 나를 힘들게 하십니까? 하는 분들이 많다.

(3)뱀처럼 지혜로운데 비둘기처럼 순결하지 않다. 속이 검고 흑심도 많으면서 지혜롭다. 약삭빠른 사람이다. 자신의 이익만 추구하는 케릭터이다. 이런 류의 사람은 사람을 이용의 대상으로 본다. 사기꾼이다.

(4)순결하지도 않고 지혜롭지도 않다. 욕심은 많고 지혜도 없다. 대책이 없는 사람이다. 무지한 자. 어리석은 자이다..

 

3.요단에 들어서라_완전한 믿음과 순종이다(8-9)

물속으로 들어가라는 말씀이다. 철저한 순종의 믿음을 말하고 있다. "증거만 보여주시면 내가 믿겠습니다.'가 아니라," 말씀을 믿으면 볼 것이다'는 사실이다. “네가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 신앙은 믿음을 행동으로 표현하는 것이다. 행동하지 않고서 1mm도 앞으로 나아가지 못한다. 믿음이란 1톤의 생각보다 1g의 행동이다. 성경을 믿으라. 믿고 순종하면 반드시 인생에 새날이 열린다.

 

4. 신앙에는 결단을 요구받는다(15).

(1)언약궤를 메고 무조건 요단강으로 들어가는 것을 과연 보통 마음으로 해낼 수 있겠는가? 그것은 목숨을 건 결단이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을 따르는 생활에는 언제나 이러한 신앙의 결단이 요구된다. 항상 믿음의 길에는 `물러 서느냐?' '전진하느냐?'의 결단을 선택받게 된다. 이때 하나님을 온전히 의지하고 따르는 사람은 과감한 신앙의 결단을 한다.

(2)믿음의 결단에는 항상 결과가 아름답다. 흐르던 요단강이 멈추는 기적이 일어났다. 물이 철철 넘쳤던 강에 물이 끊어지고 마른땅으로 바뀌었다. 믿음의 결단은 결과가 아름답다. 이것이 하나님의 방법이다.

최원영목사_본푸른교회, 본헤럴드대표
최원영목사_본푸른교회, 본헤럴드대표, 서울신학대학교신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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