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효 목사】 사랑으로 더불어 사는 삶(빌레몬서 1:1-20)

  • 입력 2024.12.19 15: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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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효 목사(선교학 박사). 1983년 2월 스위스 사역시작, 취리히 중앙교회, 바젤한인교회, 인터라켄 쉼터교회 담임. 총신대학교신학 대학원졸업, 스위스한인교회 홈페이지 www.koreanchurch-swiss.com
김정효 목사(선교학 박사). 1983년 2월 스위스 사역시작, 취리히 중앙교회, 바젤한인교회, 인터라켄 쉼터교회 담임. 총신대학교신학 대학원졸업, 스위스한인교회 홈페이지 www.koreanchurch-swiss.com

그리스도 예수를 위하여 갇힌 자 된 바울과 및 형제 디모데는, 우리의 사랑을 받는 자요 동역자인 빌 레몬과 및 자매 압비아와 및 우리와 함께 군사 된 아킵보와, 네 집에 있는 교회에 편지 하노니,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 좇아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을 지어다! 내가 항상 내 하나님 께 감사하고, 기도할 때에 너를 말함은, 주 예수와 및 모든 성도에 대한 네 사랑과 믿음이 있음을 들음이니, 이로써 네 믿음의 교제가 우리 가운데 있는 선을 알게 하고, 그리스도께 미치도록 역사하느니라! 형제여, 성도들의 마음이 너로 말미암아평안함을 얻었으니, 내가 너의 사랑으로 많은 기쁨과 위로를 얻었노라! 이러므로 내가 그리스도 안에서 많은 담력을 가지고 네게 마땅한 일로 명할 수 있으나, 사 랑을 인하여 도리어 간구하노니, 나이 많은 나 바울은 지금 또 그리스도를 위하여 갇힌 자 되어, 갇힌 중에서 낳은 아들 오네시모를 위하여 네게 간구하노라! 저가 전에는 네게 무익하였으나, 이제는 나와 네게 유익하므로, 네게 저를 돌려보내노니, 저는 내 심복이라, 저를 내게 머물러 두어 내 복음을 위하 여 갇힌 중에서 네 대신 나를 섬기게 하고자 하나, 다만 네 승낙이 없이는 내가 아무 것도 하기를 원치 아니하노니, 이는 너의 선한 일이 억지 같이 되지 아니하고, 자의로 되게 하려 함이로라! 저가 잠시 떠 나게 된 것은, 이를 이하여 저를 영원히 두게 함이니, 이 후로는 종과 같이 아니하고, 종에서 뛰어나 곧 사랑받는 형제로 둘 자라, 내게 특별히 그러 하거든, 하물며 육신과 주 안에서 상관된 네게랴, 그러므 로 네가 나를 동무로 알찐대, 저를 영접하기를 내게 하듯 하고 저가 만일 네게 불의를 하였거나, 네게 빚진 것이 있거든 이를 내게로 회계하라! 나 바울이 친필로 쓰노니, 내가 갚으려니와, 너는 이외에 네 자신으로 내게 빚진 것을 내가 말하지 아니하노라! 오, 형제여! 나로 주 안에서 너로 인하여 기쁨을 얻 게 하고, 내 마음이 그리스도 안에서 평안하게 하라! (빌레몬서 1:1-20)

<복음전파>를 인하여 옥에 갇힌 <바울 사도>는 <로마 황제>의 <재판>을 받기 위해 로마로 압송됩니 다. 가택연금 상태에서 <황제의 재판>을 기다리던 바울 사도는 <오네시모>를 만나게 되는데, 바울 사 도 의 <전도>를 받아 기독교인이 된 오네시모는 그의 신실한 동역자가 됩니다.

오네시모는 가택연금 상태로 갇혀 있는 바울 사도의 수족이 되어, 바울 사도의 <복음 사역>을 돕기 위해 성심을 다합니다.

그러던 중 바울 사도는 오네시모가 그의 이전 동역자였던 <빌레몬>의 종이었고, 그의 주인의 재물을 훔쳐 달아난 <도망자>였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빌레몬은 바울 사도의 <에베소 사역>을 통해서 예수를 믿게 된 사람인데, 후에 <골로새 지방>으로 이 주하여 그의 집을 <골로새 교회>의 예배처소로 제공해준 헌신적인 동역자였습니다.

빌레몬은 부유하여 여러 종들을 두었는데 오네시모는 그들 중 하나였습니다.

<가택연금상태>의 바울 사도에게 오네시모는 참으로 없어서는 안 되는 수족 같은 절실한 <동역자> 였지만, 그에 관한 모든 사 실을 알게 된 이상 더는 그를 곁에 붙들어 둘 수는 없었습니다.

그를 주인에게로 돌려보내는 것이 그리스도 안에서 형제요, 복음 사역의 동역자인 빌레몬에 대한 도 리라 여겨져, 바울 사도는 빌레몬에게 오네시모에 대한 선처를 당부하는 편지를 써서 그의 손에 들려주며, 이제는 주인에게 돌아가 용서를 빌고 새 출발을 하라고 합니다.

<빌레몬>은 <신실한 신자>였고, <사명자>였으며, <사랑과 선행>이 많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러기에 바울 사도는 그의 <돈독한 신앙심>과 <착한 성품>을 믿고, 오네시모를 그에게 돌려 보낸 것입니다.

그때 오네시모의 손에 들려 보낸 편지의 내용이 바로 이 <빌레몬서>입니다.

사실 빌레몬서는 지극히 개인적인 내용을 담고 있는 짧은 서신이지만, 그럼에도 빌레몬서는 그리 스도인들이 사랑하며 살아가는 것이 어떠한 것인가를 가르쳐주는 소중한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1. 사랑하며 산다는 것은 <화평>케 하는 삶을 추구함을 의미합니다.


화평케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 (마태복음 5:9)

'화평케 한다'는 말은 사람과 사람 사이를 화목하게 하고, 평화롭게 한다는 뜻입니다.

<성도>는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는 마땅히 <화평케 하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1) 사람과 사람 사이를 <화평케 하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본문의 내용을 보면, <사도 바울>이 <빌레몬>과 <오네시모>를 <화해>시키기 위해 매우 애쓰고 있음 이 느껴집니다.

빌레몬과 오네시모 사이는 본시 주인과 종의 관계입니다. 그런데 어떤 이유에서인지 오네시모가 그의 주인을 배반하고, 주인의 돈을 훔쳐 멀리 도망쳐 버린 것입니다.

그런 오네시모가 당시 세계의 수도인 <로마>에서 <로마황제의 재판>을 기다리고 있는 바울 사도를 만나게 된 것입니다.

오네시모는 어떤 기회에 바울 사도가 기거하고 있는 집을 방문해서, 그가 전하는 <구원의 복음>을 듣 게되었습니다. 바울 사도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들은 오네시모는 지난 날의 잘못된 삶을 뉘 우치며 <회개>했습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를 <구원의 주>로 <영접>했습니다.

이제 그는 새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 었도다! (고린도후서 5:17)

주의 <구원의 은혜>가 감사한 오네시모는 어떻게든 바울 사도의 <복음사역>을 돕고 싶었고, 가택 연 금상태인 바울 사도 역시 오네시모를 곁에 두고 함께 일하고 싶었습니다.

그는 <죄수의 신분>이라 자유롭게 바깥 출입을 할 수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누군가 그를 대신해서 편지도 전해주고, 사람도 만나주고, 생필품을 위해 장도 봐다 줘야 했습니다.

이제 <헌신적인 신자>가 된 오네시모는 이 일에 매우 적합한 사람이었습니다.

하지만 그가 그의 이전 <동역자>인 <빌레몬>에게서 도망쳐 나온 종이라는 사실을 알고는, 어쩔 수 없어 그의 잘못에 대한 선처를 당부하는 편지를 손에 쥐어주며 그를 그의 주인인 빌레몬에게 돌려보냅니다.

나 바울은 지금 또 그리스도를 위하여 갇힌 자 되어, 갇힌 중에서 낳은 아들 오네시모를 위하여 네게 간구하노라! 저가 전에는 네게 무익하였으나, 이제는 나와 네게 유익하므로, 네게 저를 돌려보내노니, 저는 내 심복이라, 저를 내게 머물러 두어 내 복음을 위하여, 갇힌 중에서 네 대신 나를 섬기게 하고자 하나, 다만 네 승낙이 없이는 내가 아무 것도 하기를 원치 아니하노니, 이는 너의 선한 일이 억지 같이 되지 아니하고, 자의로 되게 하려 함이로라! (빌레몬서 1:9-14)

하나님의 자녀인 성도가 원치 않게 다른 사람의 마음에 상처를 주는 행동을 하고, 원망 들을 만한 행 동을 했다면, 지체 없이 사과하고 화해를 도모해야 합니다. 이렇게 하는 것이 주님의 뜻입니다.

그러므로 예물을 제단에 드리다가 거기서 네 형제에게 원망 들을만한 일이 있는 줄 생각나거든, 예물을 제단 앞에 두고 먼저 가서 형제와 화목하고, 그 후에 와서 예물을 드리라! (마태복음 5:23-24)

요즘 원한 때문에 발생하는 끔찍한 살인사건들이 참 많습니다.

서로 배려해줄 줄 모르는 각박한 세태 때문에 그렇습니다.

성도가‚ 이웃을 사랑한다‘는 것은 그 <삶과 행위>가‚ 주 안에서 <의(義)>를 이루고 <선(善)>을 이루기 위해 서로 <배려>해줌을 의미합니다.

너희를 핍박하는 자를 축복하라! 축복하고 저주하지 말라! 즐거워하는 자들로 함께 즐거워하고, 우는 자들로 함께 울라! 서로 마음을 같이 하며, 높은데 마음을 두지 말고, 도리어 낮은데 처하며, 스스로 지혜 있는 체 말라! 아무에게도 악으로 악을 갚지 말고, 모든 사람 앞에서 선한 일을 도모하라! 할 수 있 거든 너희로서는 모든 사람으로 더불어 평화 하라! (로마서 12:14-18)

(2) 하나님과 사람 사이를 <화평>케 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독생자(獨生子)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과 사람> 사이를 <화평>케 하시기 위해서 <십자가의 대속(代贖)의 죽음>으로 <인류의 죄값>을 치러주셨습니다.

곧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에 그 아들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목되었은즉, 화목 된 자로서는 더욱 그의 살으심을 인하여 구원을 얻을 것이니라! 이뿐 아니라 이제 우리로 화목을 얻게 하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 안에서 또한 즐거워하느니라! (로마서 5:10-11)

<성도>는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의 복음>을 <세상에 전파>함으로써 <하나님과 사람> 사이를 <화평>케 하는 일에 힘써야 합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 났나니, 저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를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고, 또 우리에게 화목하게 하는 직책을 주셨으니, 이는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 계시사 세상을 자기와 화목하게하시며, 저희의 죄를 저희에게 돌리지 아니하시고, 화목하게 하는 말씀을 우리에게 부탁하셨느니라! (고린도후서 5:18-19)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그런즉 저희가 믿지 아니하는 이를 어찌 부르리요, 듣지도 못한 이를 어찌 믿으리요, 전파하는 이가 없이 어찌 들으리요,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으면 어찌 전파하리요, 아름답도다! 좋은 소식을 전하는 자들의 발이여 함과 같으니라! (로마서 10:13-15)

2. 사랑하며 산다는 것은 <용서의 삶>을 추구함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용서의 사랑>입니다.

나 곧 나는 나를 위하여 네 허물을 도말하는 자니, 네 죄를 기억지 아니하리라! (이사야 43:25)

사랑의 하나님께서는 인류의 <죄와 허물>을 <용서>하시고, <영생의 삶>을 주시 기 위해서 독생자 (獨生子) <예수 그리스도>를 <인류의 구원>을 위한 <대속물(代贖物)>로 주셨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장래 좋은 일의 대 제사장으로 오사, 손으로 짓지 아니한 곧 더 크고 온전한 장막으로말미암아, 염소와 송아지의 피로 아니하고, 오직 자기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사 단번에 성소에 들어가셨느니라! (히브리서 9:11-12)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 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요한복음 3:16)

<기독교의 사랑>은 <용서의 사랑>입니다.

너희가 사람의 과실을 용서하면, 너희 천부께서도 너희 과실을 용서하시려니와, 너희가 사람의 과실을 용서하지 아니하면, 너희 아버지께서도 너희 과실을 용서하지 아니하시리라! (마태복음 6:14-15)

용서하고, 또 용서하고, 끝까지 용서하는 것이 <기독교의 사랑>입니다.

그 때에 베드로가 나아와 가로되, '주여! 형제가 내게 죄를 범하면 몇 번이나 용서하여 주리이까? 일곱 번까지 하오리이까?' 예수께서 가라사대, '네게 이르노니 일곱 번뿐 아니라, 일흔 번씩 일곱 번까지도 할지니라!' (마태복음 18:21-22)

바울 사도는 빌레몬에게 보내는 편지를 통해, 그가 오네시모를 너그러이 용서해 줄 것을 간청했을 뿐아니라, 오네시모가 그의 로마에서의 <복음사역>에 얼마나 소중한 존재였는가를 상기시키며, 이제는 두 사람이 동일하게 <구원의 주>로 믿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화해>를 이루고, 이전의 주인과 종의 관계가 아닌 그리스도 안에서의 <형제>로 <새 출발>을 하도록 당부하고 있습니다.

이 후로는 종과 같이 아니하고, 종에서 뛰어나 곧 사랑받는 형제로 둘 자라, 내게 특별히 그러 하거 든, 하물며 육신과 주 안에서 상관된 네게랴, 그러므 로 네가 나를 동무로 알찐대 저를 영접하기를 내 게 하듯 하고, 저가 만일 네게 불의를 하였거나 네게 빚진 것이 있거든 이를 내게로 회계하라! (빌레몬서 1:16-17)

사랑하며 산다는 것은 <용서와 화해의 삶>을 추구함을 의미합니다.

이는 사람과 사람 사이를 <화평>케 하고, 삶의 환경을 <평화>롭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미국의 도시에서 한 젊은 부인이 번잡한 거리로 나왔다가, 어떤 젊은 흑인에게 큰 봉변을 달하고 심한 상처까지 입고 길에 쓰러졌습니다. 신고를 받은 경찰이 현장으로 달려와서 부인에게 물었습니다.

"어떻게 생긴 사람입니까?"

부인은 신음하며 말했습니다. "젊은 흑인이에요! 젊은 흑인!"

경찰은 즉시 그 흑인을 뒤좇았습니다. 그리고 얼마 후 사건현장 부근을 지나던 젊은 흑인 한 사람이 범인으로 지목되어 경찰서로 연행되었습니다.

그러자 범인이 붙들렸다는 소식을 듣고 경찰서로 달려온 그 부인의 남편이 이 흑인을 보자마자, 경찰들이 채 손쓸 틈도 없이 사정없이 주먹질을 했습니다.

하지만 경찰 조사결과 이 흑인에게는 아무런 혐의가 없음이 밝혀져 곧장 풀려 났습니다.

집에 돌아온 이 흑인 청년은 영문도 모른 채 처음 보는 백인 남자에게 마구 주먹질을 당한 것이 너무도 분했습니다.

"두고 봐라! 죄 없는 나에게 마구 주먹질을 한 그 백인 놈을 그냥 놔두나!"

이를 갈며 복수를 다짐하는 이 젊은 흑인을 그의 어머니가 말렸습니다.

"그 사람이 잘 모르고 엉겁결에 그랬잖니? 그러니 용서해 주거라! 봐라! 예수님은 자기를 죽인 사람을 위해서도 하나님께 용서를 빌었단다! 되갚아 주는 사람이 이기는 사람이 아니고, 용서하는 사람이 이 기는 사람이다! 네가 잘못이 없음이 드러난 것 만으로도 너는 벌써 이긴 것이다! 그런데도 네가 굳이 복수하겠다고 나선다면, 그것이 곧 하나님께 죄가 되지 않겠니?"

어머니는 아들의 마음을 돌이키려고 무척 애썼지만 아들은 쉽사리 마음을 바꾸지 않았습니다.

아들이 일을 저지를까 크게 걱정이 된 어머니는 아들 곁에서 흐느끼며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 제발 아들의 마음을 돌이켜 주세요! 그렇지 않으면 끔찍한 죄를 저지르고 말 거예요!"

완고한 아들을 위해 흐느껴 울며 애타게 기도하는 어머니의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아들은, 마침내 어머니의 목을 끌어안고 울음을 터뜨리며 말했습니다.

"어머니! 어머니! 울음을 그치세요! 제가 잘못했어요! 이제 복수하겠다는 생각을 버릴게요!"

바로 그때였습니다.

난데없이 문이 덜컥 열리더니, 한 사람이 쏜 살 같이 들어와서 두 사람을 한꺼번에 껴안고 통곡을 했습니다.

두 흑인 모자는 갑자기 뛰어들어온 사람의 얼굴을 살폈습니다.

"아니, 당신은?"

"예, 맞습니다! 제가 아무것도 모르고 당신 아드님에게 마구 주먹질을 했던 사람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예, 난 틀림없이 당신의 아드님이 나에게 복수하기 위해 나를 해칠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그런 일이 생기기 전에 내가 먼저 당신의 아드님을 해치워버리려고 칼을 품고 몰래 숨어들었으나, 때마침 두 분의 대화를 듣고 도저히 견딜 수가 없어 이렇게 뛰쳐나왔습니다. 제발 용서해 주세요!"

그는 칼을 꺼내 바닥에 내려놓고 털썩 주저앉아 통곡하며 울었습니다.

일이 이렇게 된 것을 알게 된 흑인 모자는 또 한번 얼싸안고 울며 하나님께 감사기도를 드렸습니다.

참으로 <사랑과 용서>는 칼보다도 강하고, 죽음보다도 강합니다.

내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친히 원수를 갚지 말고 진노하심에 맡기라! 기록되었으되,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고 주께서 말씀하시니라! 네 원수가 주리거든 먹이고, 목마르거든 마시우라! 그리함으로 네가 숯불을 그 머리에 쌓아 놓으리라! 악에게 지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라! (로마서 12:19-21)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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